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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고서랑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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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독후감

허삼관매혈기 - 아버지, 아버지

by 와룡 2007. 11.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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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국내에 꽤 유명해진 중국 작가 위화. 그의 작품들이 줄줄이 국내에 소개되고 이름도 날리고 있다.

중국 소설을 좋아하지만, 역사/무협 소설이 위주였고 현대소설은 별로 관심도 없었고 읽은바도 없었다.
최근에 서점에 가보면, 일단 마음에 드는 책을 찾기 힘들다. 겉만 예쁘장하게 꾸며놓은, 한 시간이면 읽을 수 있는 뻔한 자개계발/재테크 책들이 대부분에, 소설란엘 가 봐도 평소 싫어하는 일본 작가 작품들 뿐이다.
파울로 코엘료의 새 작품이 진열되어 있긴 했지만, <연금술사>보다는 <오자히르>류라고 해서 벌써부터 관심밖이었다. 개인적으로 그의 작품은 <연금술사>외에는 다 별로였다.
그리하여 선택의 폭이 좁아지게 된 어느날, 깔끔한 표지가 눈에 들어온 책이 한 권 있었다.
그 작품을 살펴보았더니, 웬걸 벌써 국내에서 이름을 날리고 있는 중국 작가였다. 그의 대표작은 <형제>라고 하던데, 무얼 먼저 볼까 고민하다가 일단 <형제>는 장편이니까 간단한 것부터 읽자라는 생각으로 <허삼관매혈기>를 골랐다.

과연 이것이 중국의 이야기인가 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 책이다. 학창시절에 국어 교과서에서 접했던 우리나라 소설들과 어쩌면 느낌이 이렇게나 비슷할까. 중국이나 우리나라나 격동의 시기와 개혁을 겪으면서, 그 변화에 무던히 적응해나가는 민초들의 삶은 거의 비슷했던 것이다.
위화라는 작가는 참 간단하게, 그리고 무심하게 너무도 현실과 가까운 이야기를 잘 풀어나간다. 위트와 해학이 있으면서도 과장하지 않고, 감동을 만들면서도억지로 눈물을 짜내게 하지도 않는다. 단순 깔끔한 문장과 구조가 무척 마음에 든다.
허삼관은 순박한 우리네 옛 사람들과 전혀 다를 바 없는 평범한 한 집안의 가장이다. 아내가 혼전 임신으로 가진 아들을 두고 미움과 애정을 동시에 보여주는 그 모습이 눈물겹다. 다른 건 몰라도 피를 팔아 번 돈으로는 핏줄이 아닌 아들을 먹여 줄 수 없다고, 어린 아들을 혼자 두고 가족끼리 국수를 먹으러 간 그, 그러다가도 그 아들이 집을 나가자 결국 업어다 식당으로 데려간 그다.
아들의 친아버지가 사고로 드러누워, 오로지 그 아들이 불러야만 영혼을 되찾을 수 있다는 말에 그네 부인이 찾아와 한 번만 아들을 빌려달라고 매달릴 때, 허삼관의 아내 허옥란은 굳이 그 속을 긁어놓고서도 집에 들어와선 허삼관에게 '그래도 생명이 소중하니까'라며 그들의 부탁을 들어주자고 말한다. 그리고 허삼관 역시 아내에게는 '나를 죽이고 데려가라'며 버럭 화를 내면서도 따로 아들을 불러 '그래도 생명이 소중하고 네 친아버지'라며 타이른다. 그 모습이야 말로 소설속의 주인공이 아닌 바로 우리의 모습이 아닐까.

아들이 병에 걸려 입원비를 마련하겠다고, 도시를 두루 돌며 피를 파는 허삼관의 모습에서, 나는 그가 죽음으로써 이 작품이 한 바탕 비극적인 신파극으로 끝나겠구나 생각했다. 그러나 위화는 뜻밖의 결말을 보여주었다. 물론 죽을 뻔 하기도 했지만, 허삼관은 죽지 않았다. 죽기는 커녕 손자를 볼 때까지 건강하게 살고 있다.
나이든 그가 이제는 자신의 피를 아무도 사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엉엉 울고 있을 때, 그의 세 아들은 부끄럽다느니, 남들이 보면 우리가 잘못해서 그렇다고 할 거라느니 하고 자기 입장을 떠들어댄다. 어렸을 때 '허삼관만이 우리 아빠'라고 그렇게 따르던 첫아들도 나이가 들어서는 그 고마움을 잠시나마 잊은 것일까. 그 역시 우리네 삶과 다를 바 없다.

결국 이 작품은 아버지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도, 또 평범한 가장과 평범한 가족을 이야기하고 있다. 누구나 겪어 봤을 법한 이야기에다, 뜻밖의 상황을 더하여 웃음을 자아내고, 그러면서도 살짝 코끝이 찡한 그런 이야기다.
그래서 나는 그의 다른 작품도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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