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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고서랑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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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영화와 드라마

삼국지 용의 부활을 보다

by 와룡 2008. 4.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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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의 중국 영화다.
명장도 꽤 유명했는데 보지 못했고, 연의 황후는 주연배우들이며 내용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아 볼 생각이 들지 않았다.

삼국지의 광팬인 나로써는 '삼국지' 세 글자가 들어가는 영화를 도저히 그냥 넘길 수가 없었다. 앞으로 <적벽대전>도 개봉을 앞두고 있다니 이래 저래 고마울 뿐이다.
작품의 중국제목은 <삼국지-견룡사갑(見龍卸甲)>이다. 마지막 장면에서 조운이 전쟁 때는 한 번도 벗지 않았다던 갑옷을 벗는 것을 묘사한 것으로, 영웅의 최후를 의미하기도 한다. 그가 벗은 갑옷은 출정전에 들렀던 오호대장묘(내멋대로 지은 이름)에 전시(?)하기 위해서다. 즉, 오호대장은 그 곳에 여전히 살아있다는 뜻이요, 용의 부활이라는 말도 틀린 것은 아니다.

보고나니 이 영화는 삼국지 매니아들에게 실망만을 안겨주게 될 듯 싶다. 조운을 제외한 촉 영웅들의 비중이 너무 낮은데다 역사적 사실(어쩌면 연의에 기록된 사실)과 다른 부분이 여기저기 나타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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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는 그다지 나쁘게 보지 않았다. 시작부터 실제 역사와 영 동떨어진 이야기를 하기에, 아, 이건 삼국지 이야기가 아니라 삼국시대 판타지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단지 삼국시대를 배경으로 한 가상 무협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보면 몇 가지 어긋나는 부분도 그리 거슬리지는 않는다. 무엇보다 주인공 유덕화의 멋진 모습을 보는 것으로도 충분한 느낌이 든다.

유덕화도 이제는 나이가 많은지, 젊은 시절보다 노년 시절 연기가 훨씬 잘 어울렸다. 반백의 머리가 어쩜 그렇게 잘 어울리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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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으로도 멋진 노인(?) 역할을 계속 하면 좋을 듯 하다.
영화의 주요 장면은 두 부분으로 나눠볼 수 있다.
첫째는 장판파 싸움. 조조의 백만대군을 헤치고 아두를 구한 일로 크게 이름을 떨친 조운의 이야기라면 빠질 수 없는 장면이다. 조조를 워낙 싫어하는 나로써는 조운이 저 때 한 번만 더 칼을 휘둘러 조조를 죽였더라면 하고 아쉬워했다. 어쨌거나 이 중에서 말을 타고 절벽을 뛰어넘는 장면은 정말이지 멋있었다. 여기서 조조의 손녀 조영과 처음 대면하며, 이것이 말미의 봉명산 전투의 인연으로 이어진다. 영화에서는 이 장소를 장판파가 아닌 봉명산으로 표현하고 있다.
두번째는 봉명산 전투. 조운의 ㅣ이름을 두 번째로 날리게 한 전투이기도 하다. 위나라 측 선봉대 한덕 5부자를 칠순의 조운이(칠순이라고 하지만 약간 과장되었다고 본다) 모두 베어넘겨 노익장을 과시하는 장면이다. 하지만 이 부분보다는 조영과의 마지막 싸움이 주요 내용이다. 지난날 할아버지 조조를 죽일 뻔 했던 조운을 제 손으로 처리하겠다고 결심한 조영은 일기토에서 패배한 후 아군까지 죽이는 잔인한 수법을 써서 조운군을 몰살한다. 이 때 그녀가 하는 말이 그 유명한 '내가 천하인을 저버릴지언정 천하인으로 하여금 나를 저버리게 하지는 않겠다'는 조조의 말이다. 말하자면 이 싸움에서 조영이라는 가상 캐릭터는 실제로 조조를 의미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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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움 화면이라던가, 역시 중국스러운 대규모의 병사들을 보노라면 확실히 잘 만들어진 영화이기는 하다. 하지만 전체적인 내용을 보았을 때, 30여년의 시간 간격이 있는 두 전투를 중심적으로 보여주느라 그간의 공백을 나레이션으로 때워 흡입력이 약간 떨어진다. 관우 장비가 중심인물이 아닌 만큼 그 아들들도 단역(!)이라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포스터에 당당히 이름이 올라있는 홍금보와 매기 큐의 역할 또한 단순하기 그지없다는 사실로 아쉬운 부분 중 하나다. 최후를 맞는 영웅 조운이 겨우 '뭘 위해 싸웠는가' 라던가 '결국은 원점을 돌아왔을 뿐'이라는 허무주의적 말만 남기는 것도 뜻밖이고. 굳이 덧붙이자면 번역도 조금 별로다. 삼국지에 아무런 사전 지식이 없는 사람이 번역한 것으로 보이는데다 제멋대로 대사를 잘라먹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벌써부터 이 영화가 역사를 왜곡함으로써 삼국지 팬들에게 비난받고 있다는 말들이 들려온다. 조조의 손녀라는 캐릭터가 나올 때부터 짐작해야 했을 일일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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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굳이 하나씩 짚어보자면, 일단 조운의 임관 부분부터 다르다.
영화에서 그가 군에 입대한 일이 정확히 어느때인지는 보여주지 않았는데, 일단 제갈량이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유비가 신야에 들어온 이후라고 볼 수 있다. 실제로 조운은 공손찬이 죽은 후 유비가 원소를 떠날 때 그에게 투신했다.  
조운과 나평안의 대화를 보면, 제갈량이 나타나기 전 그들이 지키고 있는 곳은 청주 쪽인데, 유비의 입장에서 청주를 다스린 적은 한번도 없다. 제갈량이 알려준 계책도 그렇고, 위군 대장도 그렇고 대체 어떤 전투를 모티브로 했는지 감을 잡을 수가 없을 정도다.

장판파 싸움에서도 문제의 역사 왜곡(?)이 나타난다. 유비의 가솔을 보호하던 일을 가상인물인 나평안이 했고, 결국 조조군에 당하자 조운이 대신 구하러 가는 부분이다. 여기서 조운은 관우와 장비를 상대로 싸우기도 하는데, 역사나 연의나 없는 이야기다. 유비의 두 부인의 죽음도, 조운이 조조에게 직접 청홍검을 빼앗아 그를 죽일 뻔 한 것도 허구다. 그 싸움 이후 조운은 고향인 상산에 돌아가 결혼을 하는데, 당시 위나라 땅인 상산에 그가 갈 수 있을리 만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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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비가 제위에 오른 후 오호대장을 임명하는 장면에서도 몇가지 문제가 보인다. 관우를 대장군으로 임명하는데 관우는 한번도 대장군에 오른적이 없다. 그의 최후 관직은 전장군이며 유비의 한중왕 즉위 때 수여받는다. 여기서도 알 수 있듯 실제로 오호대장을 뽑았을 때는 제위에 올랐을 때가 아니라 한중왕 즉위 때다. 더군다나 번역자는 후장군 황충을 경호대장 황충으로, 정동장군 조운을 돌격대장 조운으로 옮겨놨다.
오호대장 임명시 마초와 황충의 이름이 나와 어떤 모습일까 무척 기대했는데, 제대로 보여주지도 않아서 아쉬웠다.

관장마황이 모두 죽은 후 관흥과 장포가 북벌에 참가하는 장면이 나온다. 여기서 관흥 역할은 다름 아닌 오건호다. 그래도 이름이 있는 사람이니 뭔가 하겠거나 했건만, 두어 장면 이후 죽고 깃발만 돌아온다-_-;; 이번 북벌에서 제갈량이 조운에게 두 개의 금낭을 주는 장면이나, 관흥과 장포가 공을 세울 수 있도록 조운을 미끼로 삼는 장면도 실제와는 약간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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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북벌에서 제갈량은 마속을 내세워 가정에 진을 치게 했고, 위군 대장 조진을 유인할 기병(奇兵)으로 조운과 등지를 기곡으로 보낸다. 이미 패배를 예측한 출병이었고 실제로 이 싸움에서 패한 조운은 관직이 강등되기도 했다.
따라서 그와 등지가 한 팀이 되어 패배한 것은 사실이며, 내용상 제갈량이 그를 미끼로 쓴것도 얼추 맞다. 물론 영화에서처럼 조운 몰래 한 일은 아니지만.
이 싸움에서 조운의 부장으로 나오는 등지는 교섭에 능한 문관인데 여기서는 자신만만한 무장으로 그려진다.
이 때 관흥과 장포가 궁지에 몰린 조운을 구하게 되는데, 이 부분을  오히려 그들이 죽은 것으로 표현했다.
관흥, 장포, 등지는 물론이고 조운 역시 여기서 죽지 않는다. 그는 제갈량의 북벌 도중 집에서 편안히(?) 죽음을 맞는다.  

하나 하나 따져보니 오랜만에 삼국지를 읽고 게임을 하고픈 생각이 든다. KOEI는 대체 삼국지 12를 계획이나 하고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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