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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고서랑은...

    예스러운 배경의 소설과 드라마를 이야기합니다.

미디어/영화와 드라마

2007 대기영웅전

by 와룡 2008. 5.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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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자현이 여주인공으로 캐스팅되어 국내에서도 인기몰이를 했던 2007 CCTV판 <대기영웅전>이다. 참 오래전에 구해놨었는데 이제야 겨우 다 봤다.

<대기영웅전>은 고룡님의 명작임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국내에 소개되지 못했다. 한 때 고룡님 미번역작에 열정을 불태웠던 때가 있어서 아이무림의 도움에 따라 번역을 진행했었는데, 현재는 중단된 상태이다. 초기작이기 때문에 초류향, 육소봉 등과는 아주 다른 구조와 문체를 띠고 있다. 굳이 따지면 소리비도와 유사하지만 내용은 전통 무협에 가깝다.
사실 그래서 초반에 번역할 때는 조금 지겨웠다. 무공을 약간 못하는 착한 주인공이 절벽에서 떨어져 인연을 만나는 이야기가 뻔하게 느껴졌다고나 할까. 하지만 가면 갈수록 고룡님 특유의 놀라운 반전(?)들이 드러나 점점 빠져들게 되었다. 어떻게든 끝장을 보고 싶었지만, 일반적인 고룡님의 직설적 문체가 아니라 묘사가 많은 작품이라 시간이 많이 걸리고 장편답게 내용도 길어서 포기해야만 했다. 그런 와중에 드라마로 나왔다고 하여, 뒷 이야기가 궁금해 받아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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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번역한 부분은 원문의 반 정도로 기억하는데, 이 드라마의 2/3이 그 내용이다. 뒷부분을 좀 빨리 진행시킨 면이 없잖아 있다. 더욱이 결말 부분이 너무나도 고룡식이 아니라고 느껴져 찾아보니 완전히 바꿔놓았다. 일단 주인공인 철중당과 수령광이 죽는 것부터가 각색이다. 뒷부분에는 야제도 다시 등장하는 모양인데 드라마에서는 나오지 않는다. 그러거나 말거나 일단 궁금했던 뒷 이야기를 (비록 조금 수정했더라도) 다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사실 이 이야기에서 나는 주인공보다는 운쟁을 더 좋아한다. 어떻게 보면 시덥잖은 오기와 필부의 용기로 똘똘뭉친 고집쟁이일 수도 있지만, 모든 면에서 완벽한 철중당보다는 훨씬 인간적으로 느껴진다고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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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룡님이 만들어낸 여자 캐릭터 중에서 가장 입체적이고 가장 매력적인 온대대도 너무도 아름답게 나와 마음에 들었다. 내가 상상하던 온대대 그대로인 모습으로, 내 눈엔 아무리봐도 수령광을 맡은 추자현보다 훨씬 예뻐보였다.

온대대라는 여자는 처음 등장할 때는 고룡식 나쁜 여자의 모습 그대로지만, 차차 선한 본성을 되찾아 운쟁과 백년가약을 맺는다. 그녀와 운쟁과의 사랑은, 단순히 철중당과 수령광식 '외로울 때 함께해준' 남매같은 사랑이 아니며, 주조가 수령광에게 느끼는 것처럼 첫눈에 반한 사랑도 아니다. 물론 운쟁 쪽에서야 성숙미 넘치는 그녀의 모습에 푹 빠진 것이지만 말이다. 그래서 나는 그들 두 사람의 애틋하면서도 아름다운 사랑을 무척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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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드라마에서 한 가지 더 마음에 든 게 있다면, 주변 캐릭터를 잘 살렸다는 점이다. 정통 장편 무협답게 <대기영웅전>에는 수많은 무림호걸들이 등장하는데, 특히 초반에 나오는 구자귀모와 그 제자들이 눈에 띈다. 드라마에 나오는 구자귀모는 전혀 귀신같은 모습이 아니며 생각보다 젊고 카리스마 있는 여걸이다. 그 수제자인 애천복도 어딘지 배트맨을 연상시키긴 하지만 본래 캐릭터를 잘 살려 멋진 모습을 연출해냈다. 그와 운쟁의 대결은 원작에서도 최고로 꼽을 수 있는 장면이다.

일후와 야제 또한 잠깐 등장함에도 불구하고 카리스마 있는 배우가 연기하여 무척 눈에 띄었다. 야제의 아들 주조의 경우, 번역할 때 뇌편의 모습과 겹쳐져 어딘지 뚱뚱하고 나이든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는데, 드라마 덕분에 완전히 바뀌었다. 온조륜이 연기한 주조는 비록 마지막에는 친누이를 사랑하게 되었다는 불행을 안게 되지만, 풍류남아답고 무공 또한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멋진 모습을 보여주었다. 실제로 음빈과 연인 사이였던 것을 보면 결코 적은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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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아니었으리라 생각되는데, 드라마에서는 음빈이 훨씬 연상의 여자처럼 느껴진다. 중년의 여배우 치고는 음빈을 연기한 배우도 원작의 캐릭터를 나름 잘 살린 것 같다.

<대기영웅전>은 철혈대기문과 오복연맹간의 오랜 원한을 다루고 있는데, 실제로는 그것이 아주 사소한 사건으로부터 비롯되었다는 것을 깨닫고, 철중당과 운쟁이 그 응어리진 원한을 풀어나가게 된다. 말하자면 강호의 원한이라는 것이 결국은 아무런 의미도 없다는 것과 화해를 통해 정의를 구현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여기서 <대기영웅>이라는 말은 곧 철중당을 지칭하며, 그는 고룡의 작품속에서 소리비도의 이심환과 비슷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고룡님 또한 철중당과 이심환 같은 사람을 가장 좋아한다고 했는데, 그들이 바로 그가 꿈꾸던 이상적인 영웅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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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에서 철중당은 운쟁과 함께 독신(毒神)이 된 한풍보의 냉일풍과 싸우다 절벽으로 떨어지고, 그를 그리워하던 수령광은 살아난 그가 다시 찾아오기 전에 물에 빠져 죽는다. 대기문은 운쟁이 장문인이 되어 이끌어나가고 철중당은 수령광의 무덤 앞에서 생을 마감한다.

원작에서도 그가 절벽으로 떨어지는 것은 맞는 것 같으나 죽는 것이 아니라 야제와 함께 은거하는 것처럼 나온다. 고룡님의 영웅은 본디 죽지 않고 영원히 사람들의 마음 속에 남아 있어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결말에서 그가 등장하지는 않지만 살아 있는 듯한 여운을 남기는 것이다.

이 <대기영웅전>은 고룡님의 또 다른 명작 <초류향전기>의 선대 이야기다. <대기영웅전>이 곧 초류향의 사부 이야기라는 말이 있었는데, 대체 그들이 어떤 관계인지는 아래 트랙백에서 찾아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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