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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고서랑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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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무협 이야기

천애명월도 읽은 후

by 와룡 2007. 1. 28.

연재 중단까지 당해 고룡님을 절망하게 만들었던 천애명월도다. 오랫동안 기다렸지만, 완결된 후에 한꺼번에 읽고픈 마음에 또 다시 오래 기다렸다. 시적인 무협이라고 하기에 느낌이 많이 다를 줄 알았지만, 보통 고룡님의 글과 별다른 차는 없어 보였다. 원문을 직접 접해보면 또 다를지도 모르지만.

천애명월도는 그토록 비난을 받을 작품은 아니었다. 당시에는 어째서 그랬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단편인만큼 등장 인물이 그다지 다채롭지는 않으나, 또 단편임에도 불구하고 등장인물들의 캐릭터가 나름 특색이 있다.

부홍설. 그는 여전히 다리를 절며 홀로 천애로 나아가고 있다. 고룡님의 주인공 중 가장 불행한 사람이지만, 그런만큼 가장 인간적이기도 하다. 그는 복수라는 이름으로 키워졌고, 서른 일곱이 되는 그날까지 하루도 걸르지 않고 자신을 단련해왔다. 그리고 지금도 자신의 도(刀)를 놓지 않은 채 걷고 있다.

<구월응비>에서 엽개는 부홍설이 여전히 어머니를 모시며 효성스럽게 살고 있다고 했다. 이제 그의 어머니는 천명을 다하신 것일까? 천애명월도에서 전편의 여자라고는 오직 한 사람, 취농의 이름만이 거론될 뿐이다. 취농을 닮은 명월심을 본 그는 다시금 발작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에게 단 하나뿐인 사랑을 주었고, 또 잊지 못할 깊은 상처를 주었기에. 난 언제나 부홍설과 취농이 너무 슬픈 사랑을 한 것에 가슴이 아프다.

명월심에게는 연남비라는 멋진 청년이 있다. 선홍빛 붉은 장미검을 휘두르는 연남비는  한번 한 약속은 무슨 일이 있어도 지키며, 자신의 본분을 위해서 무슨 일이든 해내는 사람이었다. 그의 행동은 어딘지 엽개를 연상시킨다. 엽개보다 뒤떨어지는 것이라면 천하제일의 고수가 아니라는 것 정도일까. 어쨌든 그는 비폭력주의자로써, 폭력을 대표하는 강호 제일의 고수 공자우를 처치하기로 마음 먹었다. 명월심은 또한 사천당문의 적계 자손으로써 공작령을 얻어 그를 도와주고 있었다. 연남비에게 목숨 일년을 빌려준 대가로 부홍설 역시 공자우 대 연남비의 싸움에 어쩔 수 없이 휘말리게 되었다. 아마 그 역시 연남비라는 인물에 반해있었기 때문에, 그의 조력자가 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공작산장의 주인 추수청은 자결하면서 마지막 혈육을 보존하기 위해 첩인 탁옥정을 보살펴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탁옥정을 의심하는 부홍설을 이해한다. 고룡님의 소설인 바에야 단번에 진짜 탁옥정을 찾아낸다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공작산장의 지하에서 벌어진 일들은 재미도 있고, 긴장감도 있으며 또 놀랍기도 하다. 처음에는 추수청이 공작령이 없다는 것을 보이기 위해 부홍설등을 안내하여 들어왔다가 믿었던 친구 공손도에게 배신당해 그 곳에 갇혔다. 두번째는 상처를 입은 명월심을 보살피기 위해 돌아왔다가, 오직 출구가 하나밖에 없다는 잘못된 생각 탓으로 명월심과 탁옥정이 모두 납치당했다. 그리고 세번째는 탁옥정과 부홍설이 다시 갇혔다가 탁옥정의 출산으로 두 사람이 부부의 연을 맺었다. 절망의 끝에서 부홍설은 다시금 그 곳을 빠져나갈 방법을 생각해냈고 연남비의 도움을 받아 그들은 결국 공작산장을 떠날 수 있었다.

세번이나 왔다가 다시 돌아왔다는 연남비의 한마디에 가슴이 뭉클하다. 그 느낌을 누가 알 것인가? 나는 이래서 그가 사랑스럽다. 절대로 이 안에 갇히진 않았으리라 생각하면서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여러번이나 찾은 연남비의 마음이 곧 사람의 마음일 것이다. 아니라고 생각되면 미련없이 버리고 떠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런 연남비였기에, 탁옥정과 아이들을 보살피기 위해 부홍설을 먼저 떠나보내고 홀로 천왕참귀도와 맞서 죽음에 이른 것이다. 고룡님이 탄생시킨 조연 중에서도 일류에 속하는 캐릭터가 틀림없다.

마지막 몇 장을 남겨두고서야 깨달았다. 공자우가 누구인지, 탁옥정은 누구인지, 또 명월심은 누구인지. 오랫동안 고룡님의 작품을 접하지 못해서일까. 반응이 좀 느리지 않았나 싶다. 어쨌든 나는 이 마지막 부분이 무척 마음에 든다.
명월심이 부홍설의 연인이라는 듯한 구절을 어디선가 본 듯 해서, 두 사람이 맺어지리라 기대했지만 그것이 조금 아쉽다. 그래도 그에게는 또 한 사람이 나타날 것이다.
<변성도성>과 <비도우견비도>에서는 이제 좀 밝아진 부홍설의 모습을 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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