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다. 함께 나열된 것은 시간적으로 유사한 때라고 보면 될 것이다. 시리즈 첫 작품인 <진관동> 첫장을 맛보기로 올려놓는다.
제1장, 숲속의 열 세마리 이리떼
끝없는 사막에서 먼지가 되어 흩어진 76기 조직에 속해있었던 그였다. 차디찬 흑룡강에서 군룡왕 설유를 잡은 적도 있었다.
계란이
단박에 익을 듯한 뜨거운 곳에 머물기도 했고, 그렇게 무섭다는 카말라르위아산 골짜기를 지나기도 했다. 일곱 성의 순무들에게
인사를 받던 고관도 해봤고 저잣거리 백정짓도 해 봤다. 사람을 죽여본 적도 있고 구해준 적도 있었다. 그리고 지금은 자신이 가장
흠모하던 사람의 문하에서 기쁜 마음으로 일을 하고 있었다.
나이는 스물, 외모도 괜찮았다. 죽여 마땅한 자들이 그의 검 아래 죽어갔다. 10여년간 그의 추격을 피해 달아난 자는 단 한 사람 뿐이었다.
그는 흥분하는 적이 없었다. 따라서 적이 흥분하거나 겁을 먹었을 때 손을 쓰곤 했다. 마치 이리가 노루를 사냥하듯이. 이것이 바로 그의 오래된 수법이었다.
그러나 그 문파에 씻을 수 없는 죄를 지은 자를 죽이라는 명을 받았을 때, 그는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원수와 그 부하들을 추적하기 시작했다. 비록 자신이 그 자의 적수가 되지 못하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는 혼자였고 상대는 열 세 명이었다.
문제는 상대방 역시 이리같은 자라는 것이었다. 그가 검을 드는 것을 배우기도 전에 상대는 이미 20년 동안 이리같은 생활을 해왔다. 그자는 그가 잡지 못한 유일한 적이며, 되려 적의 손에 목숨을 잃을 뻔도 했다.
요행히 살아돌아왔지만 3년 후인 오늘, 그는 다시 그 자를 쫓을 수밖에 없었다.
그는 냉철하고 괴팍하면서도 꿋꿋했다.
그의 검은 신비하고 매서우면서도 빨랐다.
그리고 손은 굳세었고 신법은 화살처럼 빨랐다.
흙은 축축히 젖어 있었다. 숲 속으로는 빛 한 줄기도 새어들지 않았다. 그는 마른 입술을 축였다. 아무래도 오늘은 피를 흘려야 할 듯 하다.
쌓인 낙엽속으로 피비린내가 퍼지고 있었다. 진흙에도 피냄새가 났다. 그는 무릎을 꿇고 팔꿈치로 몸을 지탱했다. 발에 힘을 주자
그의 몸이 퉁기듯 올라가더니 손만 땅에 댄 채 거꾸로 섰다. 화살처럼 빠른 동작인데다 자세또한 산처럼 안정적이었다. 몸의 어느
한 군데에도 허점을 찾을 수 없을 정도였다.
팔다리가 튼튼한 사람이야 많지만, 그것을 제대로 사용할 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바위처럼 꼼짝도 하지 않았다. 번쩍이는 눈동자가 어둡고 으시시한 숲을 응시했다.
울창한 숲은 죽음의 느낌이 들 정도로 어두웠다. 그는 칠흑같은 이 숲에서 장장 삼일밤낮을 잠복해있었다. 적을 하나 하나 쓰러뜨리지 않고서는 결코 물러나지 않을 것이다.
그는 줄곧 냉정을 유지하고 있었다.
오늘이 세번째 밤이었다. 이 숲에 발을 들여놓은 후부터, 상대가 경성에서 일을 저지를 때까지 그는 언젠가는 다시 싸우게 될
것이라고 느끼고 있었다. 그가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 그와 세 사람의 동료를 파견해 도망가는 적을 쫓게 했을 때 그는 이미
피비린내를 맡고 있었다. 고향을 지나며 지난날의 은사와 친구들이 모조리 죽임을 당한 것을 보았을 때, 그는 결코 물러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강호의 흑도들이 그 이름만 듣고도 무서워 벌벌 떤다는 네 명의 고수가 네 길로 추적을 시작했고 결국
그가 따라잡았다. 상대는 일부러 숲속으로 들어갔다. 뚫고 가기는 어려운 곳이었지만 일단 지나가면 안전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식량과 은자를 준비한 후 지나는 곳마다 살인을 저질렀다. 그들이 지나는 곳은 풀한포기 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그것이
그들의 관례였던 것이다.
그는 줄곧 그 뒤를 쫓았다. 쫓으면서 그들 열 셋의 흉악하고 잔인한 악행을 모두 보고 들었으며, 절대로 그들을 놓치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산채로 잡던지 아니면 모두 죽여버리리라!
삼일째 밤.
숲 속에서도 가장 깊은 곳이었다.
백장이나 될 듯 커다란 나무에는 푸른 이끼가 잔뜩 끼어 있었다. 때로는 인광이 번쩍이기도 했다. 이 숲에서 유일한 빛이었지만 그 불이 번쩍일때마다 더 공포스러웠다. 들짐승들의 숨소리가 그 자신들의 왕국으로 울려퍼졌다.
피.
들개 한마리가 죽어 있었다. 칼 한자루가 목에 박힌 채.
피를 봤다고 해서 사람이 있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칼이 있다면 분명 사람도 있었다.
짐승들도 피를 흘리지만 칼을 쓰는 짐승은 없으니까.
이
런 곳에 사람이 있다니. 그러나 아무런 움직임도 없었다. 말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저 칼만 아니었다면 이런 곳에 사람이 있다고는
생각조차 못했으리라! 인광이 번쩍이지 않았다면 돌무더기 같은 그림자가 열 세 명의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도 없었을 것이다.
‘칙-!’
화절자가 켜졌다.
흉악한 얼굴 열 세 개가 모습을 드러내자 짐승과 벌레소리가 뚝 끊겼다. 인광과 등불에 비친 열 세 사람은 마치 지옥에서 온 악귀같았다!
그러나 역시 아무도 말이 없었다.
한 참 후.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쫓아온 자가 있군.”
약간 쉰 듯한 목소리가 그 말을 받았다.
“이리 데려와.”
여자의 맑은 목소리도 있었다.
“너흰 저자의 적수가 못 돼.”
느릿느릿한 목소리가 물었다.
“저 자가 누군데?”
“냉혈(冷血).”
약간 나이가 든 목소리가 대꾸했다.
잠시 당황한 듯 침묵이 이어졌다.
“이런 숲속까지 쫓아오면 안되지.”
누군가 말했다.
이어 냉혹하고도 무정하지만 위엄이 있는 목소리가 말했다.
“우릴 쫓아왔으니 언젠가는 만나야겠지. 너희들은 저 자의 적수가 아니니 각자 흩어지도록. 숲을 나가 첫번째 역참에서 만난다.”
그의 말은 육중한 보도와도 같았다.
“우리가 힘을 합해도 저들 사형제 네 사람이 함게 덤비면 골치아파진다. 흩어져서 저 자가 마음을 놓도록 하는 것이 좋아.”
그
말투는 느릿느릿했지만 음산하면서 무시무시했다. 한 자 한 자를 똑바로 발음했고 내용도 간결했지만 실제로는 매우 빠른 것 같았다.
그러나 그가 첫 한 마디를 시작했을 때 화절자의 불이 흔들리기 시작했고, 마지막 한 마디를 시작했을 때는 그의 몸도 흔들렸다.
그리고 마지막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는 사라졌다.
화절자도 꺼졌다. 인광이 다시 번쩍였을 때 이 곳에는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열 세 사람이 모두 사라진 것이다.
물론 아무도 없는 것은 아니다. 한 사람이 남아 있었다. 그들이 떠난 후 인광이 다시 번쩍였을 때 그는 바위처럼 굳건하고 냉정하게 서 있었다.
너무 빨리 모습을 드러낸 셈이었다.
그는 다 타버린 화절자를 찾아 든 채 살짝 웃음을 지었다.
“목표를 분산시키겠다라..., 하지만 마지막 한 놈까지 모두 죽게 될 것이다!”
그의 손은 굳건했다.
그는 그가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 가장 아끼는 네 명의 조력자, 철수(铁手), 무정(无情), 냉혈(冷血), 추명(追命) 중 한명이었다. 그가 바로 냉혈이다.
물론 진짜 이름이 있지만 사람들은 그를 ‘냉혈’로만 알고 있었다.
순간, 그의 모습도 사라졌다.
숲속은 다시 짐승과 벌레의 소리로 가득찼다. 인광도 위세있게 번쩍였다.
그는 홀로 걷기 시작했다. 발 아래 낙엽이 잔뜩 쌓여 있었지만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았다. 놀랄만한 경공이었다. 그것도 특별히 신경써서 펼친 게 아니라 평소처럼 그냥 걷는데도 말이다.
그는 냉혈따위는 겁나지 않았다. 그의 화살보다 빠른 사람은 없었으니까. 지금 그 화살은 시위에 얹힌 채 쏘아져나가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냉혈이 나타나는 순간 그의 몸에 세 개의 구멍을 뚫어놓으리라! ‘냉혈’이라는 이름이 강호에 나타나기도 전에, 그는
이름만 들어도 간담이 서늘해진다는 ‘혈궁냉전(血弓冷箭)’ 전구여(田九如)로 이름을 날리지 않았던가.
이런 생각을 하며 그는 냉혈이 어서
빨리 나타나 자신의 손에 죽어주기를 기다렸다. 어쩌면 돈도 조금 더 받을 수 있을지 모른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은자를 생각하니
절로 웃음이 났다. 그는 신나게 웃어댔다. 이 숲을 나가기만 하면 아무도 그들을 체포하지 못할 것이고, 그는 은자와 함께 행복한
나날을 보낼 수 있을 것이다.
망할 놈의 자식, 감히 혼자 숲속까지 쫓아와? 죽으려고 환장했군!
그는 다시 웃음을 터트렸다. 죽기로 결심한 놈이 분명했다. 천하의 누구도 큰 형님의 삼초를 받아낼 수 없다. 더구나 그 자신, 전구여 또한 만만한 상대는 아니었다.
밤, 자시가 지났다. 밤안개가 짙게 깔렸다. 뭔가 썩는 듯 지독하고 축축한 냄새를 맡은 전구여가 중얼거렸다.
“좀 쉬어야겠군...”
그는 왼쪽에 있는 커다란 나무 위로 뛰어올라 나뭇잎으로 재빨리 잠자리를 만들었다. 그 후 다시 아래로 내려가 야행복에 있던 철사 세 가닥을 나뭇잎 침대에 걸고 또 다른 나무 위로 기어올랐다.
전구여를 습격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그를 건드리는 순간 결과는 죽음뿐이었다!
기습이 성공했다고 생각하는 순간, 전구여의 화살이 등을 꿰뚫을 것이다.
첫번째 나무의 잠자리를 건드리면 철사가 흔들려 전구여에게 위험을 알려준다. 그 때 사마귀가 잠자리를 잡아채듯 전구여의 화살이 적의 심장을 꿰뚫게 되는 것이다.
이는 암습에 대비하는 방법 중 하나였다. 이 방법으로 그의 ‘차가운 화살’ 아래 죽은 사람들이 몇이던가. 그래서 사람들은 차라리 그와 맞대결을 할 망정 기습은 하려 들지 않았다.
전구여의 활 솜씨는 암습에 대비하는 반격술과 마찬가지로 일류였다. 경공도 뛰어나 아무리 높은 나무라도 한 번에 6,7장 위로 날아오를 수 있었다. 손까지 쓸 경우에는 10장 높이도 거뜬했다.
그는 등에 멘 통에 화살을 꽂은 채 손발을 사용해 재빨리 나무 위로 올라갔다. 화살로 냉혈의 심장을 뚫을 생각을 하니 다시 웃음이 나왔다. 큰 소리로 웃으려던 그는 순간 딱 멈췄다.
겨우 세 자 정도 남은 나무 꼭대기에서 누군가 차가운 눈길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마치 차가운 얼음으로 찌르는 듯한 눈빛이었다.
전구여는 한기를 느끼며 쉰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네... 네놈은...”
가지를 붙잡고 오를 생각조차 나지 않았다.
상대의 차갑고 무정한 말이 떨어졌다.
“네가 하는 짓은 모두 보았다.”
순간 전구여는 폭갈을 터트리며 몸을 솟구쳤다. 냉혈의 머리를 뛰어넘어 높은 곳에 내려선 후 반격을 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그의
몸이 공중에 떠 있는 동안 한광이 어두운 밤하늘을 갈랐다. ‘챙’하는 소리와 함께 검이 뽑혔다가 다시 검집으로 돌아갔다.
전구여의 몸은 어둠 속에서 날아오르는 대붕마냥 허공에 잠깐 정지했다가 급격히 아래로 떨어졌다. 그의 몸은 허공에 선혈을 길게
뿌려대다가 마침내 ‘쿵’ 소리와 함께 바닥에 곤두박질쳤다.
죽기전, 그는 큰 형님의 말을 떠올렸다.
“최후의 승리를 얻기전에는, 적이 완전히 죽기 전까지는 결코 마음을 놓지 마라. 아니면 분명 후회하게 될 거다.”
그러나 그는 이제 후회조차 할 수 없게 되었다.
냉혈은 천천히 나무에서 내려왔다. 그는 힘을 전혀 낭비하지 않으면서도 필요할 때는 전력을 다했다. 초식을 남발하지 않으면서도 단
일초만으로 적의 목숨을 앗기 위해 그에게는 단 49초의 검초만 있을 뿐이었다. 가만히 있을 땐 처녀처럼 조용히, 움직일 땐
토끼처럼 빠르게. 그는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땅에 내려선 그는 전구여를 바라 보았다. 이미 죽어 있었다.
그러나 그는 전혀 기뻐하지 않았다. 적 중 한 명을 죽였을 뿐 큰 적을 깨뜨린 것은 아니기 때문이었다.
진짜 적은 여전히 저 앞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큰 걸음으로 전구여의 시체를 넘어 앞으로 나아갔다.
뜻밖에도 시작부분이 고룡식 무협을 떠올리게 한다. 착 가라앉은 분위기에서부터 인물의 성격과 행동 묘사. 그리고 등장하기 무섭게 이미 '유명인사'라는 점도. 이것으로 보아 고룡이 온서안의 영향을 받은 것은 분명하다. 그래서 사대명포를 읽는 것이 더욱 기대된다고나 할까.
드라마로도 무엇 무엇이 나와있나 살펴보았다. 최근 2008 소년 사대명포(The Four) 덕분에 쉽게 사진을 구할 수 있다.
1984년 사대명포
2000년 사대명포 회경사
84년 판이야 배우가 누군지조차 모르겠지만, 2000년 사대명포는 차인표가 철수 역으로 출연하여 나름 화제가 되었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이 '철수'라는 캐릭터에 차인표는 조금 안 어울린다는 느낌이랄까. 사대명포-회경사는 사대명포 시리즈 중에서도 인기가 많은 작품이다. 게다가 이 드라마에서는 철수의 비중이 커서 여주인공을 맡은 왕염과 차인표의 애정 라인이 주라고 한다.
사대명포 투장군
사대명포 진관동
소년 사대명포 2008
투장군이란 제목이 본래 시리즈에 포함된 것인지 아닌지는 모르겠다. 국내에 '하윤동 판' 소년 사대명포로 알려져 있는데, 여기서 하윤동은 추명 역을 맡았다. 사대명포의 N각 관계를 그렸다고 하니 왠지 지루할 듯.
첫 작품 <진관동>도 드라마화 되었는데, 드라마 내용은 원작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한다. 오기륭, 범빙빙, 임천, 장철림 등 유명 배우들이 대거 포진하고 있는데, 냉혈이 대사형으로 설정되었다니 오기륭이 냉혈을 연기한 듯 하다.
이어서 가장 최근작인 <소년 사대명포>다. 젊은 시절 사대명포의 모습을 잘 그려냈다고 하는데, 왜 하필이면 저런 유니폼을 입혀 놓았는지 안타깝다. 물론 극 중에는 사복을 입기도 하지만, 저렇게 유니폼을 입혀 놓으니 쌍둥이 같아서 누가 누군지 알 수가 없다.
아무튼 드라마 사대명포의 이야기는 중요하지 않으니 이쯤에서 접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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