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천고서랑은...

    예스러운 배경의 소설과 드라마를 이야기합니다.

미디어/영화와 드라마

적벽대전2 - 최후의 결전

by 와룡 2009. 1. 28.



적벽대전 2
감독 오우삼 (2008 / 중국)
출연 양조위, 금성무, 장첸, 린즈 링
상세보기

기다리고 기다리던 <적벽대전2>다. 물론 설 특수에다 개봉이 며칠 안된 시점이었지만 1편의 '악평(?)'을 생각해볼 때 꽤 관객이 많았다. 그야 1편을 봤으니 2편도 볼 수 밖에 없었던 사람들도 있겠지만, 발키리, 체인질링 등 대작들이 나란히 개봉했음에도 무시당하지 않았다는 것에 놀랐다.

적벽대전2는 1에 비해 훨씬 박진감이 있었다. 적벽대전이라는 중국 소설에서 가장 대단한 전쟁이 그 소재이니 당연한 일이다.
개인적으로는 엄청난 수전과 화공에 압도당했다. 싸움의 무대가 육상 조조의 본거지로 바뀌면서 삼국지의 한 전쟁이라기 보다 중국 무협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결전'으로 바뀌었다는 것이 조금 아쉽지만 수많은 배들을 태우는 수상 화공은 정말 멋있었다.
1편에서 적벽대전에 등장할 수많은 영웅들을 하나씩 조명해 보여주었다면 2편은 전쟁 그 자체에 중심을 두었다. 그러다보니 주유와 제갈량 외의 사람들이 스크린에 제대로 얼굴을 비출 일이 거의 없어서 아쉬웠다.


1편에서 고뇌하는 젊은 영주의 모습을 잘 보여준 손권 - 장첸 - 은 마지막 조조와의 대결에서도 여전히 풋내기 어린애 모습을 벗지 못하고 있었다. 더구나 그가 제대로 나온 장면은 그 부분 뿐이다. 화려한 싸움을 선보였던 관우와 조운은 제대로 된 대사도 찾기 힘들다. 주유의 계략이랍시고 유비가 동맹군의 본거지를 떠남으로써 그들은 극의 반 이상 '중심'에서 사라졌다. 그런 그들을 대신한 것이 손상향과 소교인데, 그들만큼 대단한 인상을 남기지 못했다. 실존인물이기는 해도 '없는' 사실을 지어내서 하다보니 그들의 행동이 전혀 공감가지 않는다. 
조조의 군영을 제집 드나들듯 하는 손상향과 '나도 뭔가 해야지'하는 어줍잖은 결심으로 조조를 찾아가는 소교라니. 
그야 물론 당시에도 조조군에 숨어든 세작이 있었을테니 영화에서 손상향이 그들을 대표한다고 볼 수는 있다. 하지만 소교는?
이 영화는 마치 소교가 없었다면 주유가 조조를 깨뜨릴 수 없었다고 말하는 것 같다. 그래서 결국 주유는 엄청난 공을 세운 사랑하는 아내를 구해야만 하고, 그러기 위해 칼도 버려야 했다. 그런 주유에게 은혜를 입은 조운은 유비에 대한 충성과 신의는 어디로 갔는지 주유와 결의형제라도 된 마냥 때마침 달려들어 소교를 구해낸다.(주유와 나란히 등맞대고 싸우는 조운이라니, 대체 니 주인이 누군데 그러고 있냐고?) 
사실 영화를 통틀어 나는 오우삼이 적벽대전을 정말 제대로 신경써서 그렸구나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마지막 결론, 한 여자를 사이에 둔 두 남자의 대결에서 결국 정의로운 주인공이 승리하는 뻔한 결론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더구나 머리도 좋고 싸움도 잘하고 마음도 착한 완벽 주유는 다잡은 조조를 내버려두고 떠나면서 '이번 전쟁에 승자는 없다' 따위의 말을 멋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때문에 볼거리는 2편이 낫지만 줄거리는 1편이 훨씬 낫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도 그렇게하면서까지 오우삼이 보여주고자 적벽대전을 하나씩 짚어보자.
1편은 '정사'에 치중했지만 적벽대전이라는 소재의 특성상 <삼국지연의>를 완전히 무시할 수가 없을테니 실제 싸움이 펼쳐질 2편에는 '소설 삼국지'를 차용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적벽대전의 화려한 계략들을 두어 시간의 영화에 모두 담아낼 수는 없었던 모양이다. (그야 소교와 손상향의 이야기를 좀 줄였더라면 괜찮았겠지만)

제갈량의 '초병차전(草兵借箭)' 즉, 화살 십만개 구하기는 당연히 빼놓을 수 없는 장면이다. 장간을 가지고논 주유의 계략도 마찬가지다. 재미있는 것은 오우삼이 이 두개를 하나로 엮었다는 것이다. 같은 날에 진행된 이 계략에서 제갈량과 주유는 각기 '목'을 걸고 내기를 벌인다. '각기'라고는 하지만 두 사람은 서로의 계략을 이미 알고 있었다. 해서 제갈량은 주유를 위해 화살받이 초병 배를 일부러 하나 떠내려보냈고, 주유는 제 반간계가 쉽게 먹히지 않을 것을 우려, '채모 등이 우리에게 화살을 줄 것이다' 따위의 말을 흘려보냈던 것이다. 그러니 따져보면 제갈량의 '초병차전'이 없었다면 주유의 반간계도 성공할 수 없었다. 해서 장간에 대한 주유의 반간계가 영화에서 그리 감명깊지 못하게 그려졌는데, 이를 만회하기 위해서 조조를 속이기 위한 주유의 작전이랍시고 유비가 동맹을 깨고 떠난 것처럼 해 두었다.

본 사람은 알겠지만 영화 적벽대전은 사실적으로 잘 만들어진 영화임에도 너무 주유 위주로 흘러갔다는 평을 피할 수가 없다.
지난 포스트에서도 썼지만 이는 양조위라는 배우 때문일 것이다. 본래대로 양조위가 제갈량 역을 맡았더라면 이야기는 바뀌었을지 모른다.
물론 역사적으로 적벽대전의 주인공은 주유가 맞다. 하지만 그를 돋보이게 하기 위해 황개사항계를 빼버린 것이나, 아무리 계략이라지만 유비가 '의'를 저버리고 동맹을 깨뜨렸다고 하는 것은 조금 과하다. 덕분에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만들겠다던 시작은 좋으나 그 끝은 유덕화의 <삼국지 용의 부활> 못지 않은 코믹 판타지가 되어버린 것이다.

간단하게나마 몇 가지를 짚어본다.
우선, 화타, 그가 왜 조조의 군영에 있는가?
이건 확실히 오우삼의 실수라고 생각된다. 삼국지를 짧은 한 편에 담으려다 보니 화타라는 유명한 캐릭터를 자세히 소개조차 못하고 무작정 가져오고야 말았는데, 어쩌면 내심 조조의 최후를 미리 보여주려는 의미가 포함되었을 수 있다. 삼국지연의에는 화타를 의심해 죽인 조조가 그로 인해 병을 얻어 최후를 맞이한다고 써있으니까.
사실 몇 번 등장하지도 않으니 풍토병을 치료하던 의사가 화타라고 자막으로 명시해놓지 않아도 좋았을텐데 굳이 소개를 함으로써 관객들로 하여금 화타가 나왔으니 뭔가 하지 않을까, 혹은 왜 이런 곳에서 화타가 나오지 하는 의혹을 자아내게 했다. 그럼에도 불구, 화타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명의라고는 하는데 풍토병조차 치료하지 못하다니.


둘째, 화타도 나오는 마당에 방통은 왜 안나올까?
이미 '똑똑한 역'은 주유에게 집중되어 있었으니 방통이란 사람을 굳이 등장시킬 필요가 없었으리라. 일단 등장하게 되면 아무에게나 맡길 수도 없을뿐더러 비중 조절도 필요했을테니까. 그리고 어차피 방통이 적벽대전에서 연환계를 펼친 일은 삼국지의 픽션일 뿐이다.

셋째, 북풍이 부는 동안 조조가 화공을 펼치려고 했다?
소교의 역할을 부각시켜 주유와의 엉뚱한 로맨스를 극적으로 만들기 위한 초석일 것이다. 강을 사이에 두고 양쪽에 포진한 두 부대가 단순히 바람이 한쪽으로 분다고 냉큼 불을 질러 적을 쓰러뜨릴 수 있는 게 아니다. 황개가 사항계를 펼친 이유가 적의 진영에 가까이 가서 불을 지르기 위함이었고, 더욱이 당시 조조의 군은 연환계로 배들을 묶어놓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북서풍을 업고 제아무리 불화살을 쏘아댄들 동오의 수군이 뜻대로 무너져 줬을까?
하지만 한가지, 조조가 지난날 '한 여자' 때문에 커다란 실패를 맛본적이 있다는 것을 빼놓아선 안된다. 그 점을 보아 오우삼은 소교 때문에 조조가 '약간' 공격 시간을 늦췄다고 해도 비약은 아니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넷째, 감녕은 왜 이 싸움에서 희생되었는가?
본래 감녕은 적벽대전에서 중요 역할을 하는 사람이 아니다. 대신 이 싸움이 끝난 후 합비를 두고 벌어지는 위-오의 싸움에서 장료와 함께 각측의 대표장수로 활약한다.
적벽대전에는 주유와 노숙을 주축으로 황개,정보 등 구신들이 나섰는데 이 부분이 영화화 하기에는 에너지가 부족하다고 느껴 젊은 장수를 등장시킨 모양이다. 사실 이번 영화에서 감녕은 꽤 색다른 느낌으로 그려졌는데 그것이 성공했다. 강상 대도라는 옛 직업(?)에서 힌트를 얻어 장비와 비슷한 느낌을 주는 장수로 변화시켰는데, 적벽의 싸움을 위해 스스로 한 몸을 희생함으로써 더욱 뇌리에 새겨졌다. 오우삼은 이 부분에서 '승리한' 손오 동맹도 '이 정도의 희생을 입었다'라는 말을 하고싶었던 것이리라. 본래 감녕의 최후는 그로부터 수십년 후 손유 동맹의 결렬과 함께 벌어진 이릉싸움에서다.

다섯째, 장간은 독살당했는가?
별로 중요한 대목은 아니지만, 자신에게 피해를 줬다고 연회에서 독주를 먹여 장간을 죽인 조조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조조의 간악함을 보여주기 위해 오우삼이 골라 골라 내보낸 대목이 이 장면과 풍토병으로 죽은 병사의 시체를 강너머로 흘려보낸 부분이다. 둘 다 오우삼의 상상속에서 나왔지만 짧은 영화에서 조조란 인물이 어떤 사람인가를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적벽의 싸움전 조조가 <단가행>을 읊는 장면이 나오는데 - 마지막 부분의 해석이 좀 우습긴 했다 - 여기서 흥을 깨뜨린 관료 한 명을 직접 창으로 찔러 죽이는 게 빠져있다. 그 장면 대신 들어간 것이 장간의 독살 장면이다. 어차피 장간이 가상 인물이니 만큼 어떻게 죽었느냐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지만.

사실 삼국지연의에서 그려진 약간은 '졸렬한' 주유의 모습이 실제와는 다르겠지만 <적벽대전>의 주유는 너무 과하게 미화되었다. 더욱이 젊고 잘생긴, 이라는 점에서 양조위는 이미 주유의 본 모습에서 한참 벗어났다. 젊은시절 '우수에 찬 눈동자'로 유명했던 그이지만, 지금은 아무리 봐도 금성무의 눈동자가 더 우수에 차 있는 느낌이다. 그래서 양조위는 잘생긴 것보다는 똑똑하고 인의로운 주유로 밀고나가기로 한 것일까.
하지만 내 입장에서는 주유보다는 '꼭 어울리는' 금성무가 연기한 '본래 좋아하는' 제갈량이 훨씬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주유처럼 억지 웃음도 짓지않고 억지로 멋있어보이려고 칼솜씨 자랑도 하지 않지만 꼭 필요할 때 꼭 필요한 동작으로 시선을 끄는 타입이다. 더불어 장풍의의 조조도 나쁘지 않았다. 여러 만화, 드라마, 영화 등을 통틀어 가장 조조에 잘 어울리는 것 같다.
 
비록 불평은 해댔지만, 2편으로 이루어진 <적벽대전>을 보고나서 삼국지의 향수에 젖은 나는 또 다시 기대하지 않을 수 없다. 꼭 적벽의 이야기가 아니어도 좋으니 좀 더 다듬어진 시나리오로 누군가 다시 한 번 삼국지의 열기를 느끼게 해 주지 않을까 하는.
이 영화 <적벽대전>이 나타남으로써 이제 <삼국지 용의 부활> 따위의 판타지를 지어낼 낯짝 두꺼운 감독은 없어지지 않았을까?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