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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고서랑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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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뮤지컬과 음악

뮤지컬 <삼총사> 그 즐거움과 열정

by 와룡 2009. 6. 3.


난, 삼총사의 팬이다.
영웅, 그리고 뜨거운 남자들간의 의리를 좋아하는 나에게 <삼총사>는 더없이 매력적이었다. 때문에 뮤지컬이 있다는 소식에 망설이지 않고 예매했다.

달타냥 역을 맡은 엄기준과 박건형은 실제로 공연에서 본 적은 없지만 워낙 이름을 많이 들었던터라 새로운 배우를 만난다는 생각에 기대가 컸다. 본래는 엄기준의 달타냥을 보고 싶었지만 신성우를 피하기 위해 박건형을 선택했다.
캐스팅

아토스역 유준상, 달타냥역 박건형


달타냥 파리 입성

공연을 보고난 다음에야 엄기준이든 박건형이든 별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주인공은 달타냥이 아니었으니까.

사실 따지고보면 내용은 형편없다. 일단 원작을 제대로 무시해준데다, 영웅담을 이것저것 갖다 섞어 놓아 별다른 극적인 부분도 재미난 부분도 없다.
하지만 2시간이 조금 넘는 공연 시간이 언제 지났는지 모르게 흘러간 걸 보면 지루한 공연은 아니다. 뮤지컬이라는 장르상 줄거리가 얼마나 잘 짜여졌나보다는 음악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배우들이 얼마나 노래를 잘하는가, 공연 전체가 얼마나 멋진가가 더 중요하기 때문일것이다.

뮤지컬 <삼총사>는 일단 '신나는' 공연이다. 진지한 장면도 있지만 그보다는 한번씩 툭툭 터지는 맛깔난 유머가 기억에 남는다. 장난스럽게 웃어대는 삼총사들이 칼을 휘둘렀다하면 영화의 액션 못지 않는 부드럽고 멋드러진 싸움장면을 보여주는 것도 눈길을 끄는 요소다.

웃고있는 삼총사

싸우는 삼총사


뮤지컬 <바람의 나라>에서 창과 쌍칼 등으로 무대를 화려하게 수놓던 액션이 떠오른다. 배우 자체가 가진 멋짐과 분장의 화려함, 박력있는 동작이 <바람의 나라>의 특징이라면 <삼총사>의 액션은 그보다는 조금 가벼우면서도 우아한 것이 귀족사회 다움을 느끼게 한다. 배우 자체의 매력보다는 액션의 매력덕에 배우가 빛나보이는 느낌이랄까.
이토록 멋진 칼싸움 장면을 과연 다른 뮤지컬에서도 볼 수 있을까?
달려가는 마차에서 콘스탄스(김소현)를 구하러 간 달타냥(박건형)밀라디(백민정)가 벌이는 싸움과 포르토스(김법래)의 부름에 달려오는 해적들의 모습에서는 훌륭한 무대장치를 볼 수 있다. 아무래도 요즘 뮤지컬은 무대장치조차 화려하지 않으면 관객들을 끌지 못할 것 같다. 수준이 너무 높아진 것 같기도 하지만 정말로 삼총사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사실 난 유준상이라는 배우에게 별다른 관심이 없었다. 그저 신성우보단 낫겠지란 생각으로 선택했지만 아주 잘 한 선택이란 생각이 들었다. 유명 배우가 캐스팅된 공연이 크게 이름을 떨친 일은 거의 없는데, 이번에 유준상은 꽤 선전한 느낌이다. 아쉽게도 웹상에서 뮤지컬 <삼총사>를 검색하면 신성우의 모습이 더 많이 나온다. 관객은 유준상보다 신성우를 선택한 것일까?
사실 유준상의 아토스를 더블캐스팅된 신성우와 비교해보지 않아 우열을 매기지는 못하겠다. 이 공연 자체가 아토스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데다 올곧은 사내, 달타냥처럼 덤벙거리지도 않고, 포르토스처럼 거칠지도 않고, 아라미스처럼 느끼하지도 않으면서 능력있고 아픈 과거까지 있는 캐릭터이니 누가 했더라도 멋있어 보였을지 모른다.

삼총사 중에서 아토스를 가장 좋아하는 내가 볼 때 이 뮤지컬 <삼총사>는 만족스러울만큼 아토스를 잘 표현했다. 달탸낭은 본래 어리고 철없고 고집쟁이다. 포르토스는 겉치레를 좋아하는 시끄러운 건달이고 아라미스는 여자와 하느님 사이에서 고민하는 우유부단한 사내다. 오직 아토스만이 백작이라는 신분에 걸맞는 우아함과 침착함을 지니고 있다. 그가 없으면 삼총사도 없고 달타냥도 없다. 그래서일까. 이 뮤지컬은 아토스를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영화에서 곧잘 쓰이는 아토스와 밀라디의 로맨스가 싫지 않은 것도 그 덕분이다. 악녀에 연연해하는 주인공은 조금 마음에 들지 않지만.
아토스가 중심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르토스와 아라미스에게도 솔로곡을 할당하여 각자의 과거를 돌이켜볼 수 있는 기회를 준 것도 좋았다.

안타깝게도 공연 시간은 한정되어 있고 보고싶은 인물은 많았다. 삼총사가 습격한 사람이 버킹엄 공작일까 하고 기대했지만 아쉽게도 공작은 이름조차 거론되지 않았고, 안느 왕비는 단역에 불과했다.

별밤에 노래하는 삼총사와 달타냥

노래는 특별히 나쁜 곡은 없지만 그렇다고 한 번 듣고 곧장 따라할만한 곡도 없는 것 같다. 그렇지만 삼총사가 부르는 <우리는 하나>와 대사와 함께 즐겁게 부르는 <가스코뉴에서 온 촌뜨기> 등은 계속 반복되면서 귀에 익숙해진다. 특히 콘스탄스가 납치된 후 별밤에 삼총사와 달타냥이 부르는 1막 마지막의 <우리는 하나>는 감동이다. 아마도 내가 이들 삼총사를 좋아하기 때문에 그들이 열맞춰(?) 휘두르는 칼이며 목소리가 감동적이었기 때문이지,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겐 평범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전직 오페라 가수였다는 아라미스는 연인을 위해 죽음도 불사하고 무대에 오른 역할대로 파워있는 노래를 선보였다. 민영기라는 배우는 뮤지컬 <클레오파트라> 때 다소 실망했었지만 이 노래에서 제대로 실력을 보여준 것 같다. 곡 자체가 좋은 건 아니지만 민영기, 아라미스의 열정에 반할 만 했다.

포르토스 김법래는 본래도 허스키한 목소리지만 이번에는 맑고 높은 목소리의 배우가 많아서 그런지 더더욱 낮고 허스키하게 노래했다. 덕분에 그 어떤 노래건 포르토스가 함께 부르면 항상 독특한 저음이 깔려 안정적이고 조화로운 느낌이 들었다. 전직 해적 포르토스가 친구들과 부르는 노래는 흥겹고 신이 났다. 특히 그들의 춤이 꽤 오래전 중학생 때 춤추었던 <해적춤>을 기억나게 해서 즐거웠다.

이번에도 느꼈지만 김소현은 실력에 비해 별로 좋은 노래가 없는 것 같다. <지킬앤하이드>에 비하면 그래도 파워를 느낄수 있는 곡들이 있긴 했지만 다소 아쉽다. 곧 있을 <오페라의 유령>에서 본 실력을 뽐내줄 것을 기대한다. 달타냥이 주인공이 아니니 콘스탄스 역

오페라 가수였던 아라미스 - 민영기

시 여주인공이 아니다. 달타냥과 함께 부르는 듀엣곡에서 맑은 목소리를 느낄 수 있으며, 감옥에 들어간 후 평소 그녀가 부르던 곡과는 전혀 다른 느낌의 <생마르그리뜨?>에서는 그녀의 성량도 대단하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지만, 여주인공이 아닌 만큼 할당된 곡이나 역할이 아쉽기는 마찬가지다.

아토스와 밀라디는 커튼 콜에서 제일 마지막에 함께 등장한다. 말 그대로 주인공, 여주인공인 셈이다.
밀라디 역의 백민정의 목소리는 악녀 그대로라서 도중에 과거를 회상할 때의 귀여운 척 하는 모습은 조금 어색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노래는 정말 잘하는 것 같다. 아토스와 함께한 듀엣도 듀엣이지만, 마지막 곡 <버림받은 나>에서 제대로된 노래를 불러주었다. 아쉽게도 노래 자체는 그리 아름답지 않았다.

삼총사가 외치는 '우리는 하나' 구호는 몇 번을 들어도 지겹지 않다. 웹을 뒤지다보면 그 반복되는 구호가 부담스럽다는 글도 있던데, 영화 <삼총사>'All for one, one for all' 을 수없이 듣고도 눈물흘렸던 나로썬 노래보다 중요한 구호라는 생각이다.

시간적인 여유만 있다면, 총알조차 튕겨내는 전설의 총사 아토스와 그를 위시한 총사들의 '우리는 하나', 그리고 멋드러진 칼솜씨와 열정적인 노래를 다시 한 번 보고 싶다.


밀라디 - 백민정

콘스탄스 - 김소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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