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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고서랑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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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독후감

오두막? 아무에게나 추천하지 말자

by 와룡 2010. 7. 22.

사실 나는 제목과 표지를 보고 책을 고르는 타입이다.
요즘같이 책이 쏟아져 나오는 때 좋은 책을 고르기란 정말 쉽지 않다. 더더구나 베스트셀러라고 광고하는 것들중에 내 입맛에 맞는 책은 거의 없었기 때문에 웬만하면 내 마음대로 책을 고르기로 결심했다.

물론 이 <오두막>은 베스트셀러다. 듣자니 영화화도 된다고 한다(벌써 되었던가?)

처음 나왔을 때 '오두막'이 담고 있는 느낌이 너무 마음에 들어 찍어 두었던 책이지만, e-book을 구매했던 시점이라 전자책으로 나오기를 갈망했다. 하지만 전자책으로 나오기도 전에 가격 보호 기간이 지나 값이 내렸길래 냉큼 구매해보았다.

도입부는 괜찮았다. 확률은 적다지만 세상에서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 아닌가? 사랑하던 어린 딸이 내가 잠시 한눈을 판 사이 범죄자의 손에 목숨을 잃었다.
확신하건대, 나라면 절대 그 범인을 용서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용서하는 사람도 있겠지. 그들은 어떤 생각으로 범인을 용서했을까?

누구나 그런 기대감으로 <오두막>을 읽게 되었을 것이다. 나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결론은 없다.
이 <오두막>은 아무에게나 추천하지 말아야 할 책이다. 미국에서 베스트셀러가 된 것은 대부분의 미국인들이 크리스찬이기 때문이리라.
'선교'를 무척이나 싫어하는 나는 이 책을 읽는 내내 반감을 지울 수가 없었다. 게다가 신들 - 하나님과 예수가 하는 말을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메캔지 역시 처음에는 그들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분노하고, 반박했다.

당신이 그 아이를 사랑한다면 왜 그 아이가 비참하게 죽도록 내버려두었나?


신은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을 교묘히 피하고만 있다.

나는 모두를 사랑하지만 모두를 보호할 수는 없다, 인간은 내게서 독립하길 원했고 나는 그들이 원하는 대로 해 주었다.

난 도저히 책을 끝까지 읽을 수가 없었다. 메캔지의 어린 딸이 죽고, 그가 '파파'의 초대를 받아 오두막으로 가는 것은 소설의 초반부다. 그 뒤로 저 두꺼운 책의 대부분이 파파, 예수, 사라유와 메캔지 사이의 대화로 이루어져 있는데, 크리스전찬이 아니라면 그 대부분의 내용에 공감하기 힘들 것이다. 그래서 지루하다.
죽음과 믿음과 용서에 관한 소재를 이렇게나 일방적인 견해로 풀어놓았다니.

나는 영화 <밀양>을 보지는 않았지만 그 줄거리는 알고 있다.
다소 <오두막>과 유사한 소재가 그 속에 있다. 신을 믿었지만 범죄자의 손에 아들을 잃은 주인공, 범인이 신으로부터 용서를 받았다고 말하는 것을 보고 그녀는 어떤 기분이었을까?
메캔지 역시 신이 범인을 용서해야 한다고 하는 말에 분노했다.

물론 용서란 자신을 위한 것이다. 과거를 잊고 고통스러운 사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이 스스로의 삶을 위해 더 나은 선택이라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어째서 전지전능한 신의 이름을 빌려야만 할까? 전지전능하다는 신은 어째서 필요할 때 힘을 쓰지 않고 이미 모든 일이 벌어진 후에나 나타나는 것일까?

쓰다보니 책 읽던 때가 생각나 나도 모르게 흥분한 것 같다.
나도 신의 존재를 부인하는 사람은 아니다. 나도 힘들 때는 신을 찾는다. 종교적인 느낌의 책이라고 무조건 싫어하는 것도 아니다.

한 때 내가 좋아하던 작가 미우라 아야코의 소설들이 생각난다.
<빙점>도 <오두막>과 비슷한 소재다. 어머니가 잠깐 한눈을 판 사이 어린딸이 밖에 나갔다가 납치,살해된다. 늘 '적을 사랑하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던 아버지는 범인의 딸을 입양하여 키우지만 그 목적은 적을 사랑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범인에 대한 분노를 아내에게 돌려 복수하기 위해서였다. 처음에는 입양한 범인의 딸을 차마 사랑스럽게 보지도 못하던 그이지만, 시간이 갈수록 딸에 대한 애정과 함께 범인을 용서하게 된다. 그와 동시에 그 아내는 사랑하던 딸이 범인의 자식이란 사실을 알고 점차 딸을 미워하게 된다. 물론 그것은 딸에 대한 미움보다 자신을 속인 남편에 대한 미움이겠지만.
<빙점>에는 종교적인 느낌이 별로 없지만, 미우라 아야코가 인간의 본성과 용서라는 점에서 종교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었던 것만은 분명하다. 또 다른 작품 <양치는 언덕>에서 한사코 나오미를 괴롭히던 류이치는 결국 신앞에서 용서를 구하고 죽는다. 그가 남긴 마지막 그림을 보면서 나오미가 용서해달라면서 울었을 때 나도 울었다. 용서가 '신'에 의한 것이었더라도 <양치는 언덕>에서의 용서는 <오두막>의 용서와는 다르게 공감을 불러 일으켰다.

<오두막>은 베스트셀러는 될 망정 스테디셀러는 되지 못할 것이다. <오두막>은 아무에게나 추천할 수 없는 책이지만 <양치는 언덕>은 누구에게나 추천할 수 있는 책이니까.

갑자기 다른 책 이야기로 넘어간 것 같지만, 정말 요즘들어 미우라 아야코만한 깊이 있는 작품을 써내는 작가가 없는 것 같아 아쉽다. 이젠 뭘 읽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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