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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고서랑은...

    예스러운 배경의 소설과 드라마를 이야기합니다.

취미/독후감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

by 와룡 2011. 6. 20.

사긴 오래전에 샀더랬다. 내 전자책 '스토리'에 문제가 있어서 보지 못했을 뿐.

초반부터 여담이지만, 확실히 우리 나라는 전자책이 활성화되긴 한참 멀었나보다.
이 책 산지가 언젠데 그 때부터 아이리버나 교보문고나 서로 자기네 문제 아니라고 떠밀더니만, 다른 책 샀다가 여전히 안돼서 끝내 전화를 했더니, '정식 버전'은 아니지만 펌웨어 패치를 보내주겠단다.
결국 '불평'을 털어놓은 사람에게만 해결책을 주겠다는 것이고, 그전까지 나처럼 속앓이하는 사람들은 무턱대고 기다리라는 말.
패치를 하고 났더니 아예 다운로드가 안되는 책 하나를 빼곤 제대로 읽히긴 한다. 그래서 기분 좋게 이 책을 읽었다.
그 전에빅 피처를 PDF 버전으로 눈 아프게 읽은게 아쉽다.

사실 전화해도 해결책이 없으면 아예 전자책을 바꾸려고 했었다. 나같은 일개 힘없는 사용자가 거래처(?)를 바꾼다한들 아이리버나 교보 측에서 눈이라도 깜빡하겠냐마는...

난 늘 소설에 목말라 있지만, 요즘은 소설보다는 자기관리나 경제서적이 주류를 이루고 있어서, 좋은 소설을 찾기가 쉽지 않다.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은 제목과 엄청난 추천 수만 보고 덜컥 구입했다. 덕분에 이 소설이 서간체인 것도 몰랐다. 서간체 소설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처음에 펼쳐보고 당황했다. 정말 푹 빠져서 읽을 수 있을까 하며 읽었는데, 생각보다 잘 읽혔다.

신식 서간체라 해야할까, 짤막한 편지가 이어질 때면 오히려 풀어쓴 소설보다 더 긴장감이 느껴진다. 주인공이 통통 튀는 느낌의 젊은 작가이기 때문인지 편지 내용도 지겹지 않다. 각자 특색을 가진 '감자껍질파이 북클럽' 회원들이 편지로 이런 저런 삶의 이야기를 떠들어대는 것도 재미있다.

2차 세계대전 때 독일군에 점령당한 건지 섬 주민들의 이야기가 이 소설의 주 소재다. 작가는 다른 소설을 구상하다가 충동적으로 건지 섬에 갔다가 이 소설을 쓰기로 했다고 한다. 주인공인 줄리엣도 자신이 판 중고책을 산 건지 섬의 도시로부터 편지를 받고는, 그들의 북클럽에 흥미를 느끼면서 그 이야기를 글로 써내기로 한다.

전쟁이라는 비참한 과거를 이야기하는데도, 그들의 편지를 읽고 있자면 즐거운 기분이 든다. 이 이야기의 주요 인물이자 훗날 줄리엣이 쓸 소설의 주인공이 될 엘리자베스는, 타고난 재치와 용기로 어두운 현실을 이겨냈다. 그녀가 강제 수용소에서 이유없이 맞는 소녀를 구출하려고 간수를 폭행(!)하다 총살당했다는 사실은, 건지 섬 사람들에게나 나에게 모두 충격적인 소식이었다. 하지만 우는 사람은 없다. 작가는 이 소설에서 잔인한 전쟁을 다루면서도, 고통스럽고 슬픈 이야기로 독자를 울리지는 않겠다 결심한 모양이다.
물론 작가가 직접 겪은 일이 아니라 좀 더 멀리서 평온한 시선으로 이야기를 바라볼 수 있었던 때문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적잖은 전쟁을 겪은 우리네의 전쟁 이야기 중에 이렇게 웃으며 읽을 수 있는 이야기가 과연 있을까?

읽는 동안 난 정말 줄리엣이 되었으면 했다. 얼굴 한 번 보지 못한 사람들과 편지만으로 서로를 이해하고 감동하고 싶다. 그들로부터 색다른 삶을 얘기듣고 색다른 글도 쓰고 싶다.
요즘 사람들은 가까이 있는 사람들과 간단한 이야기를 할 때도 경쟁심, 눈치 보기, 속마음 캐기에 바쁘다. 주제도 대체로 아이들 교육, 회사 생활, 부동산, 주식...
하긴, 고등학생 때 친구들과 토론회한답시고 아침 저녁으로 책 읽고 떠들어 댈 때도, 다른 친구들은 우릴 이상한 눈으로 보았다. 그러니 10년이 훌쩍 지난 지금은 말할 것도 없겠지.
그 친구들도 각자의 삶을 따라 떠나간 지금, 이제 누가 나와 함께 문학이나 예술을 이야기할까? (그렇다고 내가 아주 문학적이거나 예술적인 사람이라는 뜻은 결코 아니다-_-;;)

바로 여러분 (^^)

사람들이 블로그를 하는 이유는, 어쩌면 주변에서는 자신의 취미를 공유하고 의논할 사람이 없기 때문에 이름 모를 누군가를 찾기 위해서가 아닐까?
내가 그런 것처럼.

줄리엣은 그렇게 찾은 건지 섬에서 자신의 동반자와 평생 함께 할 것이다. 출판계의 거물이자 모든 여자가 눈독들이는 잘생기고 멋진 옛 남자친구를 내던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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