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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고서랑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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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영화와 드라마

배트맨, 다크나이트, 라이즈

by 와룡 2012. 8. 15.

난 배트맨 세대가 아니다.

굳이 슈퍼 히어로 세대를 따지자면 스파이더맨에서 아이언맨 세대이고, 배트맨은 맹구의 개그에서나 잠깐 봤을 뿐이다.



하지만 난 수없이 등장하는 슈퍼 히어로 중에서도 배트맨을 가장 좋아한다. 이유는?

여러가지 이유를 대봤었다. 

- 난 존재의 번뇌를 가진 히어로가 좋다. 

- 항상 이기기만 하는 히어로보다는 괴로움을 당하고 이겨내는 히어로가 좋다.

- 여자에게 매달리는 히어로보다는 여자에 독립적인 히어로가 좋다.


그런 이유를 다 종합해보니, 실은 크리스토퍼 놀란이 만들어낸 배트맨이 좋았던 거였다.


배트맨 비긴즈를 본 후부터 난 배트맨을 좋아했고, 크리스찬 베일에게 푹 빠졌다.

당시 내 주변에서는 배트맨 비긴즈를 역작이라 평가한 사람은 없었다. 그저 그런 히어로 물이라고들 했다.

그래도 내겐 천편일률적인 히어로 물과 다른 부분이 보였다.


우연히 지구로 떨어져서, 우연히 거미 독을 맞아서, 우연히 납치되어 살아남기 위해 슈퍼 히어로가 된 사람과는 다르다. (일단 색깔부터가 다르다)


그는 아버지가 지키려던 곳을 지키기 위해 슈퍼 히어로가 되기를 선택했다. 슈퍼 히어로라곤 하지만, 그는 그냥 히어로다. 슈퍼 히어로랑은 달라도 한참 다르다.


그 어둡고 고독한 영웅 배트맨



남부러울 것 없는 부잣집에 태어났지만, 어린 시절 눈앞에서 부모가 살해당했다. 그것도 그들이 지키려고 하던 도시의 시민에게서. 다소 수줍고 찌질(?)하던 어린 아이는, 살인자가 도시의 파괴자 거물의 정보를 제공하는 대신 석방되자, 제 손으로 죽이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그가 나서기 전에 살인자는 거물의 손에 살해당한다. 거물이 도시를 망치고 있었지만, 그래도 내 부모님의 원수가 멀쩡히 활개치고 사는 건 볼 수 없다는 게 나 같은 일반인의 마음이다. 그도 처음엔 그랬다.

하지만 부모님의 복수를 하는 것은 자신의 개인적 만족이고 바람일 뿐, 도시를 망가뜨리는 적을 벌하는 것이 대의라는 것을 깨달으면서 달라지는 것이다.





그는 두려움 앞에서도 정의를 지킬 수 있도록 힘을 기르기로 했다. 물론 돈과 기술의 도움을 받긴 했지만, 그 전에 라스 알굴의 집단에서 기초적인 싸움 기술을 배우고 정신 무장을 했다.




슈퍼 히어로라면 금세 천하무적이 되어야겠지만, 그는 익숙해지는 동안 실패도 많이 겪었다. 배트맨 시리즈는 비긴즈, 다크나이트, 라이즈 모두에서 배트맨의 좌절을 그려보였다. 

비긴즈에서는 부모님을 잃고, 필부의 용기로 만나러간 팔코니에게 모욕 당하고, 다크나이트에서는 조커에게 농락당해 여자친구가 죽고, 라이즈에서는 베인에게 져서 동굴 감옥에 갇힌다. 


다크나이트만 놓고 보면, 배트맨은 일반적인 슈퍼 히어로와 다를 것 없이 보일 수 있다. 그래서 다들 영리하고 독특한 조커를 더 좋아했을 것이다. 하지만 비긴즈를 기억하는 나는 배트맨이 왜 다크나이트가 되길 선택했는지 생각하면서 눈물을 쏟았다. 시리즈를 통틀어 그에게는 일관적인 삶의 지향점이 있다. 아이언맨에게 그만한 고뇌와 삶의 목표가 있었던가? 


하긴 어떤 사람에게는 엉뚱 발랄한 영웅이 매력적일 수도 있다. 아이언맨이 인기를 얻은 이유도 그 때문일 것이고, 반대로 배트맨이 나같은 사람에게 어필한 것도 남들과는 다른 그 매력 때문일테다.


배트맨에겐 도시를 희망과 평화로 만들어야 할 또 다른 이유도 있었다. 여자친구 레이첼.



고담 시가 배트맨이 필요없는 곳이 되면 만나자고 했던 그녀지만, 얼마 못가 다른 남자 친구를 만나고 말았다. 그것을 인정하지 못하는 것도, 또 아무리 신념을 가졌어도 사랑하는 여자와 도시의 희망 중에서는 사랑하는 여자를 택하려고 했던 것도 배트맨의 인간적인 매력이다. 


인간 심리에 능한 조커의 장난으로, 그는 결국 여자 친구를 잃고 도시의 희망을 구하게 되었다. 도시의 희망이던 투 페이스 하비 덴트는 배트맨과는 정 반대의 길을 간다. 여기서도 화이트 나이트와 다크 나이트의 차이를 알 수 있다.


좌절한 화이트 나이트


화이트 나이트는 평소엔 더없이 이지적이고 신념을 향한 강한 집념을 가지고 있지만, 소중한 것을 잃는 순간 신념을 포기하고 개인적인 복수에만 매달렸다. 반면에 다크 나이트는 선택의 순간에는 개인적인 욕심을 선택했지만, 실패한 후에는 오히려 더욱 신념에 몰입했다.

하지만 평소 사람들은 하비 덴트의 신념를 지지했고, 따라서 배트맨은 다크 나이트가 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물론 여자친구 레이첼을 잃었기 때문에 세상과 등지고픈 생각도 있었겠지.


다크나이트 라이즈의 시작이 그거였다. 지치고 상처입고 사랑까지 잃은 배트맨이 세상을 등진 채 살고 있었다. 물론 그 때쯤 세상은 화이트 나이트의 그림자 덕분에 평화로워져 있었다. 어둠의 사도 베인이 다시 나타나기 전까지. 


다치고 늙은 브루스


한 인간이 대단하면 뭐 얼마나 대단하다고 평화롭던 곳을 순식간에 범죄의 소굴로 만들 수 있겠냐마는, 라스 알굴이란 인물 자체가 본래 말도 안되는 생각과 말도 안되는 일을 하던 사람이니까 그러려니 한다. 

지난 시리즈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것을 보상하기 위해서였는지, 다크나이트 라이즈에서는 실제로도 예쁜 여자가 둘이나 그의 곁에 나타났다.


캣 우먼 

탈리아 알굴


알프레도 집사가 그의 미래를 그리는 첫 장면에서, 프라하의 카페에 브루스와 함께 있던 여자는 미란다였다. 관객의 시선과 주인공의 기억을 거짓으로 교차시키는 크리스토퍼 놀란의 방식 그대로였다. 다른 여자인 캣 우먼 셀리나는 배트맨과 대립하는 역으로 나오다보니 두 여자 중엔 미란다가 더 가까운 역할인가하고 생각했었다.

나중에 배트맨이 모습을 감춘 후 알프레도 아저씨가 그를 만나러 갔을 때, 똑같은 장면에서 셀리나가 브루스와 함께 있는 장면을 볼 수 있다. 메멘토에서도, 인셉션에서도 유사한 장면이 있었는데 또 속고 말았다.


아무튼, 그의 끝이 외롭지 않고 예쁜 여자와 함께 한다는 사실이 만족스럽다. 정말 죽은 건 아니겠지, 설마 죽어도 사람들 마음 속에는 살아 있다는 소리비도 류의 결말은 아니겠지 하고 빌고 빌었는데, 해피엔딩이라서 다행이다.



훗날 로빈이 그의 임무를 이어 받아 크리스토퍼 놀란 손에 화려하게 그려지면 좋겠는데, 너무 큰 바람일까.

로빈을 짐작한 사람도 있던데, 난 전혀 몰랐다. 

하지만 트레일러 공개 때부터 이런 이야기가 떠돌았다고 한다. 


파티에서 가면 쓴 로빈 등장


미식축구 관객 사이에 로빈 마크 등장


옛날 로빈 역을 했던 배우 WARD 이름 공개


결말을 먼저 얘기해버렸지만, 해피엔딩이 되기 위해서 배트맨은 또 다시 고생을 해야 했다. 라스 알굴이 주군의 딸과 사랑에 빠져 쫓겨나왔다는 장면에선 깜짝 놀랐다. 감독이 배트맨 비긴즈를 만들 때부터 그런 스토리를 염두에 두고 있었던 건지, 아니면 우연히 대사가 맞아떨어진 건지 정말 모르겠다.


아내 얘기를 해주는 라스 알굴

라스 알굴을 사랑했던 여자가 갇혔던 빠져나올 수 없는 감옥에서, 사람들은 오직 나갈 수 있다는 희망만 품고 도전자를 응원하고 있었다. 라이즈는 바로 그것이었다. 그들이 도전자를 향해 외치던 바로 그 소리.

비긴즈 중에서도 동굴에 떨어졌던 배트맨인데, 이번에도 떨어졌다. 처음엔 아버지의 도움으로 빠져나왔지만 이젠 스스로의 힘으로 일어나야 했다.



 

아버지도 그러지 않았던가? 

우리 왜 떨어질까? '일어나는 것'을 배우기 위해서.

짧은 시간에 그의 권토중래를 모두 그리다보니 다소 얕고 가벼워진 느낌도 있지만, 다크나이트 '라이즈'에서 그 장면을 빼 놓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이런 글을 쓰다보면 감정도 감정이지만, 참 글 솜씨가 없단 생각도 든다. 


배트맨 시리즈와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를 소름 돋을 정도로 오싹하게 분석해놓은 블로그를 링크해본다. 벌써 성지순례자들이 가득한, 인셉션은 놀란의 배트맨 시리즈 2.5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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