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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고서랑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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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잡설

랑야방 좀 더 자세히 알기 - 1권에 나오는 시

by 와룡 2016. 8. 9.

주석을 다는 것은 소설에서는 지양해야 할 부분이다. 주석이 주렁 주렁 달리면 아무래도 소설의 흐름이 끊겨서, 독자가 소설 내용에 푹 빠지는 것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나도 <뒤마클럽>을 보면서 제대로 느낀 적이 있다)

하지만 우리가 다른 나라의 문화를 속속들이 아는 것이 아니다보니 주석을 달 수 밖에 없을 때도 있다. 

중국 소설에서는 특히 사람 이름 갖고 말장난 하는 부분이 있는데, 이 부분에 주석을 달지 않으면 그 개그를 이해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사람 이름만 아니면 우리 나라에 잘 알려진 다른 단어로 대체하거나 할 수 있지만, 사람 이름은 함부로 바꿀 수도 없으니...

예를 들면, <운중가>에서는 운가가 자신과 유불릉의 이름을 가지고 퀴즈를 내는 장면이 있었고, <랑야방>에는 2권과 3권에 그런 장면이 있다. (스포일까봐 말 안함 ㅎㅎ) 이런 부분은 주석을 붙일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시는 조금 다르다. 시에 주석을 붙이는 것이 좋은가 아닌가는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누가 왜 그 시를 지었고, 작가가 어떤 이유로 그 시를 끌어다 썼는지 주절 주절 설명하는 것은 독자에게 상상의 기회를 주지 않는 느낌이 든다. (물론 나도 왜 그 시를 여기 넣었는지 이해를 못해 설명할 수 없는 때도 있다-_-;;)

그래서 가능한 설명은 붙이지 않되, 그래도 깊이 깊이 파고드는 것을 좋아하는 독자를 위해 작가와 제목 정도는 알려준다. 그럼 궁금한 사람은 직접 그 의미를 찾아볼 수 있고, 궁금하지 않은 사람은 그냥 '왜 또 주석이야'하면서도 짧으니까 잠시 짜증만 내고 넘어갈 수 있지 않을까?

<랑야방>은 한시가 적은편이다. (휴, 다행...) 그래서 지면 상 길게 소개하지 못했던 한시들을 여기서라도 상세히 뜯어보는 것도 나름 재미가 있을 것 같아서 한 번 써 본다.


<랑야방> 1권에는 시가 두 번 나오는데, 첫번째는 작가가 초룡방주 속경천의 입을 빌려 직접 지은 '강좌매랑' 시. 이건 작가가 지은 것이니 특별히 고사와 연관될 것이 없어서 한자만 쓰고 끝 ^^


두번째는 매장소가 옛 스승인 여숭의 친구 주현청과 대면하여, 여숭의 옥매미 이야기를 하는 장면에서 사용한 낙빈왕의 <재옥영선>

파란색으로 된 뒷부분 두 구절이 <랑야방>에 언급되었다. 

이 두 구절은 주현청이 "여숭이 왜 옥매미를 지니고 다녔는지 아는가?"라고 묻자 매장소가 대답한 말이다. 전체 구절과 맞추기 위해 책에서와 달리 약간 짧게 썼다. 

(출처: helix님 블로그 http://blog.naver.com/bpc1356/220594237597 - helix님, 허락없이 퍼왔어요, 죄송-_-;;


책에는 "이슬 젖은 날개로 날아오르기 어렵구나, 바람 일어 노래는 묻혔노라, 이 고결함 믿어주는 이 없으니 누가 그 마음 전해줄 것인가"라고 되어 있다. '매미'를 왜 가지고 있냐고 물었는데 뒷 두 구절에는 매미의 'ㅁ'자도 나오지 않기 때문에 어떻게든 매미와 연결지어 보려고 '날개'란 단어를 덧붙인 거다. 중국 독자들은 이 구절을 보자마자 그 제목을 척 떠올리고, '그래서 옥매미군'할 정도로 한시를 잘 알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우리 나라 독자들은 (나 포함하여) 어찌 알라고 이 두 구절만 갖다 썼단 말이냐...


아무튼 매미가 구절에 나오든 말든, 중요한 것은 '고결함 믿어주는 이 없으니'가 바로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다. 

태부 여숭이 갑자기 강등되어 분을 품고 경성을 떠난 이유는 무엇일까? 이미 짐작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아무튼 난 스포는 안하련다. 3권을 보라...

1권에는 이렇게 되어 있다.

그러던 어느날, 여숭은 어떤 연유로 황제의 노여움을 사 

황제의 노여움을 샀을 때, 그가 한 주장은 그 스스로는 '고결함'이라 믿었다. 하지만 그를 위해 발벗고 나서는 사람도 없고, 황제도 그 고결함을 믿어주지 않고 다른 식으로 오해를 했다. 그래서 분을 품고 경성을 떠난 것이다.

여숭이 옥매미를 지닌 것이 그 이후인지 이전인지는 모르지만, 그 '옥매미'는 고결하게 내민 주장이 받아지지 않고 도리어 '죄인'이 되어 쫓겨난 그의 억울함을 의미한다.


이 시를 지은 낙빈왕은 당나라 고종 때의 사람으로, 본래 정의롭고 협의심이 강해 불공평한 일을 두고 보지 못하는 성미였다고 한다. (이름에 왕자가 들어가지만 진짜 왕은 아니다. 그냥 일반인) 조정에 있을 때 상소를 올려 측천무후를 거스르는 말을 많이 하는 바람에 죄인이 되어 옥에 갇혔고, 그 옥에서 자신의 고결함을 노래한 것이 이 <재옥영선 - 감옥에서 매미를 노래하다>이다. 매미는 바로 고결함의 상징이다. 

그 후 감옥에서 풀려난 그는 지방으로 좌천을 당하고, 이경업이 측천무후에 대한 반란을 일으킬 때 동참하여 측천무후를 비판하는 격문을 쓴다. 그 격문을 본 측천무후가 "재상이 잘못했다. 이런 인재를 임용하지 않았다니"라고 한 말은 유명하다.

여숭이 자신을 낙빈왕에 비한 것을 보면 좌천된 일을 (좌천 때문이 아니라 그 원인 때문에) 얼마나 한스러워했는지 알 수 있다. 낙빈왕은 그 때문에 반란에 참여하기까지 했으니까.

의미심장하게도, 이경업의 반란이 진압된 후 낙빈왕의 행적이 묘연해졌는데 일설에는 스님이 되어 영은사(靈隱寺)에 들어가 숨어 살았다고 한다.

(출처: 바이두 백과)

이 영은사가 어디냐면, 바로 주현청이 은거하던 곳.

작가가 영은사에 데려다놓은 것도 이미 고인이 된 여숭의 절친 주현청을 여숭 대신 낙빈왕과 연결시키기 위해서일 것이다.

마침 영은사는 항주에 있기 때문에 금릉(현재의 남경)과도 제법 가깝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찾아보니 270킬로미터 정도 떨어져 있다고 하니 (우리 기준에는) 아주 가까운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북경에서 항주에서 사람 데려왔다고 하는 것보다는 말이 된다. 

주현청을 데리러 그 먼 곳까지 다녀온 우리의 목청, 대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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