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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잡설

우리 나라에 처음으로 정식 출간된 <천애명월도>

와룡 2018.01.25 22:37

이런 날이 올 줄, 내가 처음 고룡님 작품에 빠졌을 때, 그래서 내멋대로 한글로 옮겨 공유하고, 같은 취미를 가진 여러 사람들을 알게 되었을 때,

이런 날이 올 줄 정말 누가 알았을까!

7,80년대 무협 매니아라면 누구나 한 번쯤을 생각했을 고룡님 명작의 정식 국내 출간이 드디어 이루어졌다.

어느 무협팬이 어마어마한 부자가 되어 (사실 출간에 드는 돈이 얼만지 몰라서 어마어마한 부자여야 하는지 좀 부자여야 하는지는 불확실하다) 옛다 하고 내주던지, 아니면 갑자기 고룡님의 작품이 급 인기를 얻어 여러 출판사에서 너도 나도 뛰어들어 내주겠다고 하던지... 그런 일은 없겠지만 그랬으면 참 좋겠네~ 하고 입맛만 다셔왔다.

그런데, 예상과는 너무나도 다르게, 전혀 뜻밖의 곳에서 터트렸다.

넥슨이 <천애명월도>라는 고룡님 작품 원작의 게임을 국내 론칭하면서 그 홍보의 하나로서 <천애명월도>를 출간한 것이다!!

게임이 천애명월도 원작이었기에 얼마나 다행인지! 이미 국내에 출간된 적 있는 <초류향>이나 <소리비도>같은 것이었다면 이런 일도 없었을 것을!! 이 또한 운명일지니!!!!

흥분은 여기까지 하고,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이제 '고룡'이라는 작가가 단순히 무협 소설만으로 다시금 국내에서 주목을 받기란 어려운 일임을 인정해야 한다. 원작을 갖고 드라마든 게임이든 자꾸만 새롭게 만들고 그 하나가 대박을 터트려야, 그래서 대중들이 그 하나 때문에 '고룡이 누구야, 이거 말고 또 뭐 썼어?'라고 묻기 시작해야, 그 작품이 하나 둘 출간될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넥슨 게임 <천애명월도>가 대박나기를 바란다.

<초류향>, <육소봉>, <절대쌍교>, <무림외사>, <변성랑자>가 재출간되고 <대기영웅전>, <소십일랑>, <구월응비> 등 미출간 작품들이 차례차례 나올 수 있도록.


<천애명월도>는 드라마가 있는데,, 마침 내가 종한량의 소봉에게 쏙 빠졌던 때라 한 번 보려다가 머리스타일에 놀라 포기했었다...-_-;;

그런데 <천애명월도> 게임 홍보 영상을 보면 부홍설의 얼굴이 종한량을 빼닮았다. 듣자니 일부러 종한량을 모델로 만들었다고 한다. (그런데 마흔이 다 되어가는 부홍설이 너무 잘생겨서 처음에는 당황스러웠다...)


<천애명월도>는 고룡님이 나름대로 철학과 목적 의식(?)을 갖고 쓴 작품이다. 물론 고룡님 작품에는 모두 그만의 철학이 있긴 하지만.

부홍설은 고룡님 작품 중에서 주연 보다는 조연에 훨씬 많이 나오는 류의 캐릭터다. 고독하고, 예민하지만 속은 따뜻하고, 그리고 검이나 도에 모든 것을 바친 과묵한 남자. <다정검객무정검>의 아비와 형무명, <초류향>의 중원일점홍, 그리고.... 그 모든 이들을 합친 결정판인 <육소봉>의 서문취설.

형무명아비
서문취설중원일점홍 - 일점홍은 역시 이미지보다 혜천사!

그들 중 유일하게 주인공이 된 사람이 부홍설이다. 부홍설도 물론 <변성랑자>에서는 주연같은 조연으로 나왔으니 처음부터 주인공은 아니었지만, 고룡님이 그를 주인공으로 세운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아마도 너무나 지독한 운명을 겪었지만 비뚤어지지 않은(?) 고독한 방랑자에게 쉴 곳을 마련해주고 싶어서가 아닐까. 아비도 형무명도 외로운 길을 걸었다. 유일하게 서문취설만이 처음부터 반려자를 만나는데, 이런 것도 내가 서문취설을 고독한 방랑자들의 결정판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다. (그러고보니 중원일점홍은 마지막에 곡무용과 떠나긴 한다....)

부홍설이 앞서 말한 사람들과 다른 것이 있다면 무엇보다 절름발이에 간질을 앓는다는 것이다. 또 앞서 네 사람이 모두 검을 쓰는 검객인 반면 부홍설만 유일한 도객이고, 다른 이들이 모두 과거가 비밀에 싸여 있는 데 반해 부홍설은 과거가 밝혀져 있다.그렇기에 그에게 좀 더 평온한 만년을 주고 싶었을지도.

다소 혈기가 남아 있고 여자 앞에서 마음이 오락가락하던 젊은 시절의 부홍설에 비해 <천애명월도>의 부홍설은 확실히 훨씬 묵직해졌다. 좀 더 고룡식 고독한 방랑자 느낌이 난다. 

강호제일인자인 공자우도 두려워하고, 강호명인방 1위에 오른 연남비마저 쓰러뜨리는 자타공인 천하제일 도객(엽개가 없다는 가정 하에)인 그가 불혹의 나이를 몇 년 앞두고 어떤 고수를 두려워할 이유는 없다. 그래서 <천애명월도>에서 부홍설이 싸우는 것은 자신보다 강력한 고수가 아니라 자기 자신이 만들어낸 고독과 절망이다. 그가 그 속에서 벗어나는 것을 지켜보는 것이 재미있다.

<천애명월도>의 최종 보스인 공자우는 성이 공이고 이름이 자우가 아니라, '우'라는 이름을 한 공자이다. 게임 <천애명월도>에서는 그를 심랑의 후손으로 삼았으니 심우라는 이름으로 생각했는지도... 나는 고룡님이 작품을 쓸 때 공자우라는 캐릭터는 상징성을 가진 인물이고 성이나 신분, 과거가 드러날 필요가 없다 생각해서 그런 이름을 지었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다. 물론, 공자우가 심랑의 전인이라는 것은 공식 설정이다.

웹을 뒤져보니 '전인'이라는 단어가 혈육이라는 의미일 수도 있으니 공자우가 심랑의 손자라는 설정이 영 틀리진 않았다는 글이 보인다. 심랑의 후손이 어떻게 악인이 될 수 있나 싶긴 하지만 사실 공자우는 악인이 아니다. 무슨 나쁜 짓을 했는지 나오지도 않는다. 너무 영리하고 현실적이었다고 할 수는 있는데, 이런 성품은 왕련화에게서 영향을 받았다는 어느 중국 팬의 주장도 있다. 

<천애명월도>에는 고룡님이 창조한 '소리비도 계열' 강호 고수의 흐름이 명확하게 나온다. 

"처음 십년은 심랑, 두 번째 십년은 이심환, 세 번째 십년은 엽개, 그리고 지금은 공자우."

비록 소리비도 계열은 아니지만 <무림외사>에서부터 <다정검객무정검>, <변성랑자>, <구월응비>, <천애명월도>의 역사를 한 마디로 정리한 것이다. 부홍설과 아비같은 인물은 왜 빠져 있느냐면, 그들은 주인공 계열이 아니라 고독한 방랑자 계열이기 때문이다.

고룡님 작품 이야기를 하자니 끝이 없을 것 같으니 이 이야기도 시간날 때 천천히 써봐야겠다.


<천애명월도>를 옮기면서 열혈 모드가 되었다. 그냥 읽기만 해도 피가 끓어오르게 만드는 고룡님의 문장, 참 오랜만인데도 오래오래오래 전 처음 읽었을 때와 별로 다르지 않은 감동이 밀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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