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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고서랑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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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영화와 드라마

<학려화정> 처절하지만 사랑할 수밖에 없는 드라마

by 와룡 2020. 2. 28.

최근 들어 드라마 감상을 많이 쓰는 것 같다. 요번에는 <학려화정> 감상이다. <학려화정>은 중국에서 방영이 끝났고 우리나라에서는 얼마 전부터 아시아앤에서 방영 중이다. 초반에 너무 푹 빠져서 아끼고 아끼며 보다가 도중에 <절대쌍교>를 보느라 미루다가 이제야 끝을 보았다.

66편… 기나긴 장편에 내용이 복잡하고 대사도 어렵고 감정 소모도 극심하지만, 내가 본 중국 황궁 정치 드라마 중에서 손에 꼽는 대작이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내용, 연기, 촬영, 소품 등등 뭐 하나 빼놓을 것이 없다. 말했다시피 감정 소모가 심해서 이런 유를 싫어하는 사람에겐 추천 못하겠지만, 주인공이 괴로워도 괜찮으니까 정말 감동적이고 잘 찍은 황궁 드라마를 보고 싶은 사람에겐 더할 나위 없는 선택이라 생각한다.

스포일러를 주의하세요.

공연히 겁낼까봐 미리 말해두는데, 원작과 달리 해피엔딩이다.

학려화정 처음 몇 편은 엎치락뒤치락하는 계략과 반전이 주를 이루고 대부분 주인공이 승리한다. 중반부에 가면 가까운 이들을 구하기 위해 점점 승기에서 멀어지며 고통받는 주인공을 볼 수 있다. 후반부에는 주인공이 최종 선택을 하고 이야기를 정리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여주인공이 주인공 곁에서 활약하지만, 이 이야기는 절대로 로맨스가 아니다. 여주인공과의 사랑과 갈등보다는 오히려 아버지와 아들의 사랑과 갈등이 주요 플롯이라 생각된다.

아버지와 아들이 사이 좋을 때
사이 안좋을 때. 이런 내용이 계속 반복된다

 

황태자 소정권이 처한 길

소정권은 황제와 초대 황후의 셋째 아들이며, 나라의 군권을 쥔 무덕후 고사림의 외조카다. 외척의 발호를 두려워한 아버지 황제로부터 어려서부터 사랑을 받지 못한 데다, 궁문이 닫히기 전에 미처 들어오지 못해 어머니의 임종조차 지키지 못했다. 어려서부터 아버지처럼 자신을 예뻐해 준 외숙은 전쟁터에 나가 있고, 아버지처럼 믿고 따랐던 스승 노세유는 그를 지키기 위해 눈앞에서 자결했다. 처음으로 연정을 느낀 여인은 아버지의 반대로 맞이들이지 못했고 노세유의 명예를 지키려고 어쩔 수 없이 차갑게 외면해야 했다. 연정은 아니지만 태자비로 맞이한 선량한 여인에게 진심을 다했고 마침내 가족을 이루었다 생각했지만, 그 태자비 역시 음모에 휘말려 임신한 채 목숨을 잃었다.

태자를 구하고자 자결하는 노세유
태자비에게, 자신은 아버지와 달리 태자비의 가족이 누구든 항상 지켜주겠다고 다짐한다. 그렇지만 결국 태자비도 죽는다

이런 지독한 상황에서 누가 버텨낼 수 있을까? 소정권 곁에는 믿을 만한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어려서부터 함께 자란 궁인 구주도 큰형인 제왕 소정당에게 매수되었고, 믿어도 될지 확신하지 못하면서도 끝내 뿌리치지 못한 궁인 고아보도 결과적으로 그를 배신한다. 하나밖에 없는 가족, 외숙 고사림은 그를 지키기 위해 백성과 군사를 저버릴 계획을 세웠다. 이 복잡한 상황이 모두 자신이 황태자 자리에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 그는 결국 아버지에게 자신을 폐해달라 청한다. 실상 나도 중반부터는 차라리 그 자리에서 내려오라고 소리소리 질렀다. 그 정도로 힘든 자리였다.

태자를 지키고자 적군의 기습 정보를 알고서도 모른척 한 고사림. 아버지와 오라버니의 복수를 하겠다며(어쩌면 정의에 대한 집념일 수도 있다) 태자를 배신한 육문석(고아보), 고사림의 군권을 빼앗기 위해 태자의 위기를 이용하는 황제. 아버지의 총애만 믿고 태자 자리를 빼앗으려 온갖 음모를 꾸며온 제왕 소정당. 그 사이에서 마지막에 태자의 선택은 육문석으로 대표되는 올바름이었다. 마지막 사건에 가서야 태자가 이런 선택을 한 것이 저 앞에 있었던 여러 가지 사건과 연결 지어진다.

황태자를 배신한 후 올바르게 살라며 꾸짖는 육문석

한 때 어사중승 육영은 딸 육문석 앞에서 태자가 정치 소용돌이 속에서 깨끗함을 유지하는 흔치 않은 젊은이라고 칭찬했다. 그 깨끗함을 지켜주기 위해서 딸을 태자에게 시집보낼 수 없다고도 했다. 하지만 권력에 대한 욕심으로 점점 더 거세지는 제왕 측 공격을 이겨내기 위해, 태자 역시 탁류에 휩쓸릴 수밖에 없었다. 한 번은 먼저 함정을 팠다가 스승 노세유에게 손바닥을 맞으며 혼이 났다. 그때 노세유는 태자의 이름이 무슨 의미인 줄 아느냐며 그의 선택에 영향을 미쳤던 가르침을 남겼다.

태자의 이름자, 권력의 권. (중간 자인 ‘정'은 돌림이므로 무시하고)

왼쪽의 나무는 들보를 의미하며, 머리에 풀이 있는 것은 민초를 의미하며, 그 밑에 입이 두 개 있는 것은 여론을 의미하며, 그 아래 아름다울 가가 있는 것은 칭송을 의미한다. 권력이란 나라의 동량이 되어 언행일치하고 백성들의 입에서 칭송을 받음으로써 이뤄지는 것이지, 음모술수를 펼치거나 조정을 농단하고 약한 이를 괴롭히는 것이 아니다.

그의 이름, 그리고 그의 자, 민성 역시 그런 뜻에서 황제가 그에게 내려주었다.

중반부에 허창평이 그에게 선택을 물으며, 소자와 고자를 적어준 적이 있다. 당신은 소씨 태자인가, 고씨 태자인가. 이 질문은 마지막 사건에서 다시 태자 앞에 떠오른다. 소정권. 아버지가 내린 소씨 집안 태자의 이름. 고아보. 고씨 집안의 사랑스러운 외조카, 즉 고씨 집안의 태자. (아보는 소정권의 아명이며 고사림은 나중에도 그를 그리 불렀다. 거기에 육문석이 고씨 성을 가진 궁인으로 위장해 들어왔다가 소왕에게서 들은 정보로 그의 아명을 이름으로 썼기에 고아보라는 이름이 되었는데, 실상 이는 곧 고씨 집안의 태자를 의미하게 된다)

소정권은 권력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 변방의 장병들을 저버리려는 고사림을 보자, 자신은 소씨이지 고씨가 아니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닫고 황제에게 달려가 고사림의 계획을 알리고 제발 어서 그를 회유하라고 청한다. 물론 여기서 그는 소씨냐 고씨냐를 선택한 것은 아니고, 이름자대로 ‘백성'과 ‘올바름'을 선택한 것이다.

발바닥 맞는 형벌을 받는 태자를 구하러 온 고사림
고사림은 피묻은 자신의 신발을 주며, 널 위해 다시 한번 피를 밟고 갈테니 너는 아무것도 하지 말고 그 신발을 신기만 하면 된다는 말을 남겼다
하지만 태자가 선택한 건, 고아보가 아닌 소정권

나는 고사림이 권력을 위해 그랬다고 생각지 않는다. (아들 이름마저 승은, 봉은으로 지은 그다) 그가 말했듯이, 이제 그는 나이도 들었고 다시 변방에 싸움하러 가면 태자가 위험하더라도 급히 돌아와 도와줄 수 없을지도 몰랐다. 그래서 그전에 태자의 큰 적인 제왕을 쓰러뜨리고 떠나겠다는 말이었다. 하지만 소정권은 그 때문에 죄도 없는 백성들이 죽어가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게 그가 스승으로부터 받은 가르침이었으니까. 차갑게 대하는 외조카 앞에서 한탄을 금치 못하며 마지막 절을 올리고 떠난 고사림은 적을 물리치고 돌아오는 길에 습격 당해 전사한다. 모든 것이 끝나고 아버지와의 관계도 회복한 태자에게 단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것이 그 일이었다. 그처럼 자신을 아껴준 아버지 같았던 외숙에게 마지막으로 차가운 모습을 보였던 것.

분함을 안고 태자에게 절한 후 떠나는 고사림.

 

황제 소예감이 처한 길

일개 소왕이었던 그는 당시 중서령이었던 대관의 딸을 왕비로 맞았고, 고씨 집안의 도움을 받아 형인 민태자를 물리치고 황위에 올랐다. 비록 고사림 앞에서 “평생 고씨를 저버리지 않을 것이다. 고씨의 딸을 황후로 삼고 그 아들을 후계자로 삼겠다"라고 맹세했지만 하늘에는 두 개의 태양이 있을 수 없듯, 막강한 군권을 쥔 외척을 꺼리는 마음에 황태자를 멀리할 수밖에 없었다. 그가 왕비인 고사경을 사랑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아직도 그 초상화를 간직하고 때론 꿈에서 이름을 부르기도 한다. 다만 그녀가 자신의 권력을 위협하는 고씨 핏줄이기 때문에 자꾸만 멀어졌다.

조강치저의 초상을 보며 하소연하는 황제. 어려서부터 소정권이 고사림을 닮았다고 누군가 자꾸 속닥였는데 이제야 자기를 제일 닮았다는 것을 깨달았단다

그가 아직 소왕이던 시절, 고사경은 임신한 몸으로 황궁에 문안을 올리러 간다며 민태자가 갇혔던 공학으로 갔고, 그가 목메고 죽은 광경을 목격해 쓰러지면서 유산했다. 그 후 세상에는 “금령이 걸리고 동경이 만들어졌네. 현철이 녹아 봉황이 나오네. 가인이 고개를 돌리니 돌아볼까 말까"라는 동요가 돌았고 소왕은 그 동요를 퍼트린 자를 잡으려고 성을 발칵 뒤집어놓는 바람에 선황의 미움을 사서 곧바로 태자가 되지 못했다. 그 일로 그와 고사경의 사이는 멀어졌고 측비인 소씨가 총애를 독차지해 첫아들을 낳았다. 그가 바로 제왕 소정당이다. 하지만 고씨 집안은 반드시 적자가 있어야 한다며 소왕을 압박했고 그렇게 낳은 태자 소정당은 고씨 집안의 사랑을 듬뿍 받는 대신 아버지의 사랑을 받지 못했다.

민태자의 죽음을 목격하고 쓰러진 소왕비
황제의 이름 감은 곧 거울이란 뜻

저 동요의 의미는 민태자를 물리치고 소왕이 높아진 것은 모두 고씨 집안 덕분이라는 것인데, 그 속에는 또 하나 숨겨진 의미가 있다. 바로 소왕비였던 고사경이 사실은 민태자를 사랑했다는 것. 황제가 저 동요를 싫어한 건 자신이 고씨 집안의 도움을 받았다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것뿐 아니라 조강지처가 다른 남자를 사랑했다는 사실을 일깨워주기 때문이었다.

 

아무튼 그에게는 가장 치욕적인 사실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숨기고 싶어 했다. 이 사건을 일으킨 조 황후와 제왕이 과연 그것까지 알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고씨 집안을 꺼리는 황제의 마음을 이용해 어떻게든 제왕을 태자로 올리려고 온갖 계략을 꾸며왔다.

황제가 조 황후를 진심으로 사랑한 것 같지는 않다. 그녀가 있어도 늘 고사경을 떠올렸으니까. 첫아들인 소정당에게는 정을 많이 준 게 맞지만 그렇다고 태자로 세울 생각이 있었던 것 같지도 않다. 단지 너무 사랑을 듬뿍 준 나머지 제왕 소정당이 헛꿈을 꾸게 만들긴 했고, 잇달아 잘못을 저질러도 몇 번 꾸짖기만 하고 대부분 용서했다. 어쩌면 소정당과 그 무리를 이용해 태자와 고사림을 견제하려 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아들과 화해할뻔한 시점에 그는 이런 말을 했다.

태자의 자리는 어렵다. 군주는 나라만 생각하고, 신하는 군주만 생각하면 되지만 태자는 군주이자 신하이기 때문에 둘 다 돌봐야 하므로 어려운 자리라고.

그리고 태자를 홀대한 것이 아버지로서 미안하지만 황제로서는 미안하지 않다고. 그건 네가 황제가 되어봐야 알게 될 거라고.

아버지로서 미안하다

황제로서의 소예감과 평범한 지아비이자 아버지인 소예감은 다른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다. 마지막까지 아버지로서의 진정한 마음을 바랐던 태자의 기대는 산산이 부서졌다. 그래서 그 역시 아들이 아닌 신하로서 마지막으로 제왕 소정당 처벌 방법을 두고 거래할 수밖에 없었다.

다른 사람들이 처한 길

제왕 소정당은 권력의 화신이다. 권력을 위해 중서령 이백주의 딸을 꼬드겨 힘을 얻고 온갖 계략으로 태자를 무너뜨리려 했다. 실패도 많이 했고 성공도 많이 했지만 그때마다 태자를 원망했다. 이백주와 더불어 깨끗이 죽기를 바랐는데 그래도 황자랍시고 목숨은 구했다. 다시는 황궁에 발을 들여놓지 못하게 된 그는 태자의 배려로 어머니 소 황후와 문을 사이에 두고 잠시 대면한 후 문이 닫히자 문을 두드리며 통곡한다. 이 장면이 태자가 어머니의 임종을 보러 왔다가 들어가지 못한 3년 전의 모습과 짝이 된다. 소 황후가 닫힌 문 안에서 “네가 없으면 이 황궁은 황궁이지 집이 아니야"라고 하는 장면은, 곧 방영될 고성폐를 떠올리게 한다. 고성폐도 <학려화정> 못지않은 대작이 될까.

닫히는 궁궐문 밖에서 어머니에게 절하는 제왕 소정당

똑같이 소 황후에게서 태어났지만 다섯째 황자 소왕은 조금 다르다. 어머니에게 사랑도 받지 못하고 권력에 욕심도 없고 주어진 운명과 질서에 순응하는 선량한 그는 어찌 보면 태자와 제왕이 모두 무너진 후 유일한 후계자가 될 수도 있지만, 저 유약한 성품으로 보아 황위에는 어울릴 것 같지 않다. 하지만 그의 끝이 행복하기를 바란다.

그와 비슷하게, 태자비가 된 장연지도 철저히 비열한 아버지와는 달리 선량한 사람이다. 아버지가 육영을 이백주의 친족으로 엮어 죽인 후 괴로워하면서도 아버지를 구명했고, 아끼던 궁인 고아보가 육영의 딸임을 알고 나서는 무릎 꿇고 사죄했다. 독을 먹고 죽어가는 순간 고아보가 자신이 아닌 여덟째 황제를 살리는 것을 보고도 황태자가 나타났을 때 고아보를 괴롭히지 말아 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그처럼 선량한 사람이기 때문에, 고아보도 차마 그녀를 원망하지 못했다. 악인의 자녀가 꼭 악인이 되란 법은 없는 거다. (이백주의 딸이 음모궤계에 능한 아버지와는 달리 순진하고 멍청한 것도 그런 맥락인가 보다)

아버지가 투옥되자 태자에게 도움을 청하기 위해 그림을 가져가려는 육문석. 나중에 이 그림에 학 두마리를 그려넣는다

고사림이 죽은 후 장주의 군권은 공을 세워 후로 승진한 고봉은에게 돌아갔다. 소정권이 황위에 오르면 그를 도와 큰일을 하겠지. 육문석으로 돌아간 여주인공은 황태자의 첫 아이를 가졌고 오래전 황태자가 부탁한 대로 그림에 학을 한 마리 더 그려 넣었다. 오랫동안 태자를 모신 왕옹은 마지막에 태자 곁으로 돌아갔다. (태자가 잡혔을 때 쫓겨났던 걸까? 그 이야기는 잘 모르겠다) 고사림이 죽은 것을 빼면 모든 것이 아름답게 끝났다.

원작과 다른 점

원작 소설을 보다 말다 보다 말다 해서 정확히 파악하지는 못했지만, 우선 드라마의 초중반부는 거의 원작에 나오지 않는다. 한 40여 편쯤 봤을 때야 원작 장면이 하나둘 나오기 시작했다. 원작 소설은 소 귀비가 이미 황후가 되었고 육문석은 이미 고아보로서 궁에 들어와 있다. 노세유와 육영은 기억에서만 등장하며, 허창평이 태자의 꾀주머니로 활동한다. 황태자의 정적도 제왕보다는 다섯째 황자 소왕이다.
옛이야기도 조금 다른 것이, 당금 황제 소예감은 재위 전에 녕왕이었고, 공회태자가 폐위된 후 정적인 소왕과 치열하게 싸우다가 선황이 죽기 전에야 후계자로 지목되었다. 이에 따라 후반부의 가장 큰 사건인 동요 사건에서 노랫말도 약간 다르다.
이처럼 여러 가지 차이가 있지만, 원작 소설 작가가 드라마 각본을 썼기 때문에 본래 원작의 의미를 거의 살리면서, 원작에는 회고로 나오는 이야기를 드라마에 맞게 잘 덧붙인 것 같다.
가장 큰 차이점은, 원작이 비극이라는 것이다.

자꾸 보고 싶은 고대 문화

줄거리는 이쯤 하고 다른 이야기를 해보자.

드라마 <학려화정>에서는 군데군데 고대의 문화를 꼼꼼하게 보여주는 장면이 보인다. 드라마 내용은 가상이지만 복장으로 보면 송나라에 가깝다. (이건 고성폐 스틸컷을 보면 보면 알 수 있다. 이런 면에서도 이 작품이 고성폐를 연상시킨다)

흔히 보는 화려한 중국식 복장이 아니라 다소 절제된 복장이라 단아하면서도 아름다운 느낌을 준다. 첫 편에 황제가 등장했을 때 입은 옷이며 머리에 쓴 건을 보면 마치 황제가 아니라 일반 사대부 같아서 놀랐다. 황제와 황태자는 황금색이나 보라색 옷보다 빨간색 옷을 많이 입는다.

황제의 평상 복장. 옥관만 썼다. (출처: 바이두 이미지 검색)
빨간 옷에 옥대를 찬 황태자 (출처: 바이두 이미지 검색)

복식 규정에 관한 이야기도 나온다. 예를 들어 옥대는 황태자만 찰 수 있고, 친왕은 아무리 높아도 금대만 찰 수 있다. 황제가 상으로 제왕에게 옥대를 내렸을 때 태자가 얼마나 충격받았는지 보면 그게 실로 중요한 걸 알 수 있다. 또 한 예는, 아무리 호위병이라 해도 황제 곁에서는 연갑을 입을 수 없다. 사열식에서 기마술을 겨뤄야 할 황태자더러 위험하니 연갑을 입으라고 권한 어린 내관은 왕옹에게 크게 꾸지람을 들었다. 실제로 그 사열식에서 이백주의 사주를 받은 장군이 연갑을 입고 달려가는 것을 본 황태자는 그가 딴 뜻을 품었음을 깨닫고 황제를 지키러 돌아서기도 했다.

내가 가장 인상 깊게 본 장면은 차를 타는 장면이다.

황태자가 차와 군마 사건을 고발하러 왔을 때 황제는 제왕이 타 준 차를 마시고 있었다. 차를 타는 장면이 아주 길게 나오는데 평소 내가 아는 차 타는 법이랑은 확연히 달라서 찾아보니, 당송 때 유행한 “점차"라는 방법이라고 한다.

점차는 잘 말린 차를 나뭇잎에 싸서 동그란 모양으로 만들어놓았다가 (이걸 단병차라 한단다), 마실 때 나무망치로 톡톡 두드려 깬 뒤 바퀴 같은 걸로 잘게 부수고, 맷돌에 갈아 다시 체에 쳐서 고르게 한 다음, 잔에 넣고 뜨거운 물을 조금씩 부으면서 싸리비 같은 걸로 계속 저어 보글보글 거품이 일게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꼭 라떼같은 형태가 된다. 어디서 저걸 하는지 몰라도 나도 꼭 마셔보고 싶다.

출처: https://www.jianshu.com/p/a8cfb98409e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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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차가 나온다. (출처: 바이두 이미지 검색)

 

황태자 소정권의 생일은 중양절인데, 황제는 매년 궁정 행사만 하고 제대로 챙겨준 적이 없었다. 황궁 연회가 끝나면 황태자는 늘 외숙이 고사림이나 사촌 형 고봉은과 함께 생일을 축하했다. 한 번은 그날 아버지가 너무 보고 싶어서 찾아갔더니 아버지는 큰형 제왕에게 점차법을 가르쳐주고 있었다. 그에게는 한 번도 알려주지 않아서, 훗날 그는 아버지에게 차를 타 주면서 배운 적이 없어서 혼자 익혔다고 했고 이를 들은 황제도 안타까워하며 가르쳐주기도 했다.

태자의 점차 장면

이밖에도 <학려화정>에는 고대 문화를 보여주는 장면이 많다. 드라마 내용과는 무관하지만 영상이 아름다워서 가끔 계속 찾아보고 싶어 진다.

최근 감상을 쓴 드라마는 계속 성공작이다. 물론 보다 만 건 감상을 안 쓰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잘 찍은 드라마가 많이 나온다는 건 반가운 일이다. 이런 대작을 보고 난 다음에는 뭘 봐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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