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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고서랑은...

    예스러운 배경의 소설과 드라마를 이야기합니다.

미디어/영화와 드라마

<청평악> 첫 인상

by 와룡 2020. 5. 8.

정오양광에서 제작하고 왕카이가 주연하기에 촬영 때부터 많은 주목을 받은 <고성폐孤城閉>가 <청평악清平樂>이라고 이름을 바꿔 방송을 시작한 지 좀 됐다. 왜 제목을 바꾼 것일까? <고성폐>는 제목부터 너무 답답하고 암울해서? 내용이야 어떻건 행복해 보이는 제목으로 바꾸자는 생각인가? 아니면 정말 마지막에 태평성대를 노래하며 행복하게 끝낼 생각인 걸까?

<학려화정>을 본 후 마음을 잡지 못하고 다양한 작품을 손댔다 때기를 반복하다가 <청평악>을 방영한다기에 한편 한편 보기 시작했다. 12편까지 봤으니 그나마 손댄 것 중에 가장 꾸준히 본 셈이다.

<학려화정>과 복식도 비슷하고, 제목과 원작이 주는 느낌도 비슷하기에 기대를 품었는데, 뚜껑을 열어보니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솔직히 말하면 두 드라마가 비슷할 이유가 하등 없는데, 그냥 받아들이는 내 마음이 그랬던 것뿐이다. <학려화정>이 초반부 쉴 새 없이 몰아치는 반전에 박진감이 넘치는 반면, <청평악>은 상당히 차분하고 고전적이다. 살짝 10여 년 전 CCTV에서 방송하던 삼국지, 수호지 등과 비슷하게 느껴졌다. 촌스럽다는 뜻은 아니고, 상업 드라마라기 보단 교육 드라마 같은 느낌이다. 

그렇게 느낀 가장 큰 이유는, 서사보다는 송 인종 치세 하의 굵직한 사건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기 때문인 것 같다. 12편을 봤는데 1편에서부터 이때까지 흐른 시간이 약 5-6년인 것 같은데, 그사이 벌써 친모가 죽고, 유 태후가 죽고, 첫 황후가 쫓겨나고, 둘째 황후가 들어왔다. 그리고 범중엄은 쫓겨났다 돌아왔다를 두 번 반복했다. 다양한 사람들이 쏟아지고 갈등이 생겨나지만, 해결이 명확하지 않으며 그 사이사이 다른 이야기가 끼어들면서 전체적으로 분위기가 느슨해진다. 

기본적으로 대사도 어려운데 문인들이 많이 등장하다보니 시 구절이 많아서 무슨 뜻인지 이해하기 힘들 때가 많으며 (물론 이건 우리나라에서 정식 방영하면 해결될 문제다), 하필이면 그럴 때마다 새로운 캐릭터가 나와서 저 사람은 누군가 하고 소갯말을 보는 사이 어려운 대사가 휙휙 지나가 버리기도 한다. 또 한 가지 나를 혼란스럽게 하는 것은 시간 흐름을 알려주는 연호인데, 연호만 달랑 보여주기 때문에 인종 때의 연호를 모르면 몇 년이 지났는지 전혀 감이 오지 않는다. 중국인들은 연호만 보면 언제쯤인지 다들 아는지 몰라도, 나는 드라마 <판관 포청천>에서 본 "살쾡이 사건"을 빼면 송인종에 관해 아는 것이 없는 사람이라, 지금이 언젠지, 누가 누군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70화나 되는 작품을 12화만 보고 하는 이야기지만, 이런 식이면 뒷 부분도 비슷하리라 생각한다. 즉, 긴장감 있는 스토리보다는 역사적인 흐름에 따라 인종의 정치 인생을 보여주는 사극으로 생각하면 될 것 같다.

유 태후와 송 인종

그런 잔잔한 드라마인데도 초반에 포기하지 않고 보게 된 까닭은 유 태후 때문이다.

수렴청정하는 유 태후

보통 어린 황제를 수렴청정하는 태후는 악인으로 그려지기 마련이라 <청평악>의 유 태후도 그런 역할을 할 줄 알았다. 어쨌거나 장성한 황제를 두고도 권력을 내려놓지 않고 죽을 때까지 수렴청정했으니 전혀 권력욕이 없는 사람이라곤 할 수 없다. 인종이 그간 비밀이었던 친어머니의 이야기를 들은 뒤부터 유 태후와의 사이가 어긋난 것은, 물론 유 태후가 친어머니가 아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장성한 황제로서 수렴청정하는 태후에게 느끼는 반발심리이기도 할 것이다.

오래전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판관 포청천>에도 인종의 태생에 얽힌 이야기가 나온다. 유 귀비가 이 귀비 소생의 아들을 살쾡이와 바꿔 이 귀비를 쫓겨나게 한 뒤, 그 소생의 아들을 자신이 낳은 것처럼 속여 황제로 만들어 태후 자리에 올랐는데, 훗날 이 귀비가 포청천의 도움으로 다시 아들을 찾게 되는 에피소드다. 살쾡이 태자 사건이라 불리는 건데, 바로 각색된 송 인종과 유 태후의 이야기다.

드라마 <청평악>에 따르면, 이 씨는 본래 유 씨 궁의 시녀로 진종의 승은을 입었는데, 그녀가 아들을 낳자 진종은 아들의 미래를 위해 집안이 강력하고 자신도 총애하는 유 씨에게 그 아들을 키우게 했다. 이 씨는 궁에 있을 때도 아들을 아들이라 부르지 못하는 상황에 처했고, 아들이 즉위하게 되자 진종의 유언에 따라 출궁해 그 묘릉을 지키는 신세가 되어 다시는 아들을 보지 못했다. 이 사실을 인종에게 알려준 사람은 조 씨의 나라를 유 씨가 좌지우지하는 것에 불만을 품은 팔왕 ⏤<판관 포청천>에 나오는 포증의 영원한 조력자 팔현왕⏤ 이었다.

<청평악> 드라마는 이 사실을 안 인종이 유모에게 사실 확인을 한 후 진종의 묘로 달려가는 것으로 시작된다. 들어가지 못하도록 막아서는 신하들 앞에서 "너희는 태후의 신하냐 내 신하냐"를 따지자, 그들은 "선제께서 지명하신 섭정 태후가 지지하는 폐하의 신하"라고 대답한다. 그 와중에 스승도 찾아오고 친어머니 이 씨마저 아들의 미래가 걱정되어 사람을 보내 만나지 말자고 하자, 인종은 포기하고 돌아오지만 유 태후와의 관계는 이미 여기서 틀어졌다.

여기까지 봤을 때는 유 태후가 권력을 두고 인종과 한 바탕 싸울 줄 알았다.
그런데 유 태후는 권력에 대한 욕심보다는, 20년간 키워주고 선황의 유언에 따라 대 센 신하들을 상대하며 황제를 대신해 어렵게 나라를 지켜준 자신을 '친어머니'가 아니라는 이유로 원망하는 인종에 대한 섭섭함이 더 강했다. 물론 권력욕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보다 큰 이유는 권력보다는 좋은 뜻으로 해온 일을 악한 마음으로 그랬다고 오해한 데서 오는 섭섭함이고, 그 때문에 황제와 자존심 싸움을 벌인다.
유 태후가 진종이 자신에게 내린 유언 앞에 오열하며 했던 질문, 인종의 친어머니 이씨가 죽은 후 장례 행렬이 궁을 나가는 문제를 두고 여이간이 간하러 왔을 때 했던 말, 병상을 찾은 인종에게 마지막으로 따졌던 말이 마음에 많이 와 닿는다. 결국 인종도 그 마음을 알았는지, 그녀가 원하던 대로 곤룡포를 입고 제묘에 오르도록 해준다.

친어머니 일로 자신을 멀리한는 인종에게 섭섭해하는 유 태후
병석에 누워서도 섭섭해하는 유 태후

물론 신하들의 간언으로 몇 가지 장식을 떼어 황제의 곤룡포와는 다르긴 하지만, 그 옛날에 여자가 곤룡포를 입고 공식적으로 제묘를 참관하게 되다니 참 충격적인 일이다. 처음에는 곤룡포라는 게 정말 그건가 싶어 믿기지 않았는데 정말 그거였다.

황제의 곤룡포를 입고 제묘에 오르는 유 태후

그래서 위키피디아를 뒤졌다.

송 진종의 황후 유씨. 야사에는 이름이 '아'라고 알려져 있다. 야사이긴 하지만 고대 여자의 이름이 전하는 일은 아주 드물다. 위키피디아에는 유 태후가 송나라 최초의 섭정 태후로서 혁혁한 공을 세워 한 고조의 여후, 당 고종의 무측천과 나란히 일컬어진다고 되어 있다. 마침 여후와 무측천도 이름이 전해진 여걸들이다. 그들과 달리 유 태후에 관해서는 사서에 이런 말이 적혀 있다 한다.

"여씨와 무씨 같은 재주를 가졌으나 여씨와 무씨 같은 해악은 없었다."

유 태후가 곤룡포를 입고 제묘에 오르려 한 것은 나라를 빼앗겠다는 말도 아니고, 황제를 무시하고 내가 만승지존이라고 주장하기 위해서도 아니었다. 진종의 유조로 11년간 수렴청정을 하다가 이제 생명이 얼마나 남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자 종묘사직에 자신의 공을 고하고 싶었던 것이다. 인종은 이를 이해하고 곤룡포를 입게 해 주었다. 곤룡포를 입고 제묘에 오른 뒤 유 태후는 인종에게 정치를 맡기고 완전히 물러났다.
죽음을 앞두고 말을 하지 못하게 된 유 태후는 자꾸만 제 옷을 잡아 당겼다는데, 이를 본 사람들은 유 태후가 곤룡포를 입은 채 진종을 뵙고 싶지 않아서라고 해석하고 재빨리 황후의 복장으로 갈아입혔다고 한다.

유 태후가 인종의 친어머니를 독살했다고 주장한 팔대왕. 검시 결과 중독 흔적이 없었다고 한다.

고대 정치사에 전해지는 여자의 이미지는 상당히 고정적이다. 황제를 홀려 전횡을 일삼는 요녀나 권력욕에 함몰된 잔혹한 여걸, 그렇지 않으면 어질고 순종적인 황후. 그 세 가지 고정적인 이미지에 비하면 유 태후는 조금 독특하다. 권력을 쥐긴 했으나 전횡을 부리지 않았고(인종도 말했듯이 친족을 등용하긴 했으나 지나치지 않았다), 능력이 있어 정치를 잘 했음에도 잔혹하지 않았다.(여이간이 간했기 때문이긴 하지만 마지막까지 인종의 친모를 대한 방식을 보면 알 수 있다). 게다가 곤룡포를 입고 제묘에 오른 뒤 깔끔하게 권력을 내려놓아 최후도 아름다웠다. <청평악>을 통해 역사상 이런 여자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으니 그것만으로도 이 드라마를 본 것이 아깝지 않다.

송 인종과 그 후비들

사실 드라마 <청평악>에는 그시대 문인/정치가 이야기가 좀 더 많긴 하지만 그 부분은 영 재미있게 보질 못했다. 반면 후비 이야기는 나름 흥미진진하게 보고 있어서, 역시 나도 자극적이고 요란한 것을 좋아하는구나 하고 새삼 깨달았다.

조강지처 곽 황후

인종의 첫 번째 황후인 곽 황후는 유 태후가 억지로 맺어준 사람이라 애초에 인종의 사랑을 받지 못했다. 후궁 선발 때 인종은 다른 여자인 장 씨를 더 좋아했고 그녀를 황후로 세우고 싶었지만 유 태후가 그 여자를 재인으로 삼고 곽 씨를 황후로 밀어붙였다고 한다.

황제가 마음에 들어했던 장미인과 말다툼하는 곽 황후

곽 황후는 처음 등장할 때부터 앞뒤 안가리고 무턱대고 후비들과 싸움을 벌이는 걸 보고 곧 퇴장하겠구나 생각했는데, 과연 몇 편 후에 후비를 때리려다가 그를 감싸던 인종의 목에 실수로 상처를 내는 바람에 폐위된다. 인종은 폐할 생각이 없었지만, 유 태후가 죽은 후 끈 떨어진 사람이다 보니 여이간이 다른 사람을 세우고자 물리치게 한 것이다. 폐위된 곽 황후는 용안에 상처를 입혔다는 이유가 아니라 스스로 정양하기를 원해 출가한 것으로 되었는데, 늘 울기만 해서 마음 약한 인종이 몰래 다시 데려오려다 거절당하고, 조 황후의 의견에 따라 정식으로 데려오려다가 그만 여이간 등에게 독살당한다. 

후궁을 때리려다 인종에게 상처를 내는 곽 황후

청매죽마 묘심화

묘심화는 인종과 어려서부터 함께 자랐으며 첫 아이를 낳아준 사람이다. 오라버니라고 부르기에 처음엔 동생인 줄 알아서, 분위기가 오묘해지자 무슨 일인가 했다. 알고보니 유모의 딸이라 궁에서 살았고 유 태후가 어려서부터 교육시켰다고 한다.

친어머니 이순용이 죽은 후 괴로워하는 인종을 달래는 묘심화
그러다가...

묘심화가 낳은 첫 아이가 바로 조휘유, 원작 소설의 여주인공이다. 묘심화는 착하고 예쁘고... 아무튼 흠잡을 데 없는 사람이다. 원작 소설 초반에 보면 인종의 총애를 듬뿍 받는 장 미인이 제 딸이 병에 걸리자 묘심화와 그 딸 휘유를 모함하는데, 조 황후가 도와주는 장면이 나온다. 드라마에서나 원작 소설 모두 묘심화는 분수를 잘 지키고 착한 성품으로 나온다.

첫사랑 진희춘

곽 황후가 폐위된 후 태비가 인종에게 바치기 위해 데려온 상인의 딸이 진희춘이다. 인종은 보자마자 마음에 들어했고 황후로 세우고자 했으나 당연하게 대신들이 반대한다. 인종은 진희춘이 세상을 두루 돌아다니며 많은 것을 보고 들은 것을 기뻐했고, 어차피 황후로 만들지 못할 사람을 궁에 가두기보다 세상에 내보내 자유롭게 살게 해 준다.

진희춘에게 출궁해서 자유롭게 살라고 하는 인종

조 황후도 지식이 많은데, 나중에 그 모습을 보고 인종이 반가워하자 조 황후는 인종이 진희춘을 떠올린다 생각하고 더 괴로워한다.

승자 조 황후

인종의 두 번째 황후인 조 황후. 드라마에서의 이름은 조단주다.

황후가 되는 조단주
인종이 오지 않아 혼자 동방을 지키는 조단주

어려서부터 영리해서 오빠 이름을 빌려 학관에 들어가 범중엄에게 글을 배웠는데, 그 부분은 고전 소설에서 여주인공의 남다름과 지적임을 보여주는 흔한 설정이라 별로 신선하게 생각하진 않았다. 그 보다 신선한 부분은 조단주의 혼인 이야기다.

조단주는 어려서 할아버지가 정해준 짝이 있었는데, 성인이 된 그 약혼자가 도사가 되겠다며 혼인에 반대했다. 당연히 그 집안에서는 아들이 대를 잇지 않는 것을 원치 않았고, 조단주도 어차피 좋아하는 사람과 결혼하지도 못하는데 뭔들 어떤가 하는 생각으로 ⏤물론 집안과의 약속을 지키겠다는 뜻도 있고⏤ 혼례를 올린 후, 혼인 첫날 자신을 보고 귀신 보듯 무서워하는 남편에게서 이혼장을 받아내고 다시 집으로 돌아온다. 그러다가 곽 황후가 폐위되고 인종이 상인의 딸인 진희춘을 황후로 삼으려 하자 대신들이 입을 모아 반대하면서 대신 조단주를 추천했다. 그 옛날에 한 번 시집간 여자를 황후로 삼으려고 하다니, 내게는 유 태후의 곤룡포 사건 이후 또 하나의 충격이었다. 드라마에는 안 나왔지만, 유 태후 역시 결혼을 했다가 아직 왕이었던 진종에게 재가한 걸 보면, 송나라 때는 그런 문제에 꽤 개방적이었나 보다.

아무튼, 조단주는 인종을 한 번 보고 사랑에 빠진 상태라 예상치 못한 황후 책봉에 뛸듯이 기뻐했다. 반면, 인종은 대신들의 반대로 마음에 쏙 든 여자를 궁에서 내보내고 누군지도 모를 여자를 맞이하게 되어 기분이 썩 좋지 않은 상태였다. 설상가상으로 한기에게 들은 조단주에 관한 소문이 좋지 않았다. 규방에서만 지내는 처녀가 현숙하고 영리하고 재주가 뛰어난지 대신들이 어떻게 알고 전에 없이 입을 모아 주청하느냐고 인종이 투덜거리자, 한기는 다른 사람은 그렇지만 조단주는 이미 잘 알려져 있다며 소문을 들려주는데...

조단주가 도사를 꿈꾸는 남자에게 시집을 갔는데 신랑이 조단수를 보자마자 너무 못생겨서 창문으로 달아났고 혼례가 깨졌다. 대신들이 조단주를 추천한 것은 "아름다운 용모로 제왕을 현혹하지 않기 때문"이다.

한기: 조씨는 다 좋은데 못 생겼다고 합니다. 
인종: 뭬이야?

한기: 조 씨가 약혼자가 있었는데 조잘조잘...

인종: 시집을 갔다고? 그런 여자를 황후로...

한기: 아니요, 그게 아니라 시집간 첫날 남자가 얼굴을 보자마자 창밖으로 달아났고....

(한기가 조씨가 못생겼다는 말을 하는 동안 인종의 표정. 정말 눈치없는 한기)
한기: 대신들은 조씨가 용모가 추해서 군주를 미혹하지 않는다고 생각해서 추천을...

인종은 '어차피 원해서 하는 결혼도 아닌데 얼굴이야 예쁘건 말건' 하면서 신경 안 쓰는 척 하지만, 혼례날 황후를 찾아가지 않은 이유 중 큰 부분이 못생겼다는 소문 때문 아니었을까. 뒤늦게 아침이 되어 미안한 마음에 찾아갔다가 본 조단주가 드라마 설정상 "재색을 겸비한 여인"인 것을 보자 당황해하는 걸 보면 알 수 있다. 하지만 이미 조단주는 마음의 상처를 받아서 쉽게 인종을 받아주지 않는다.

안타깝지만, 위키피디아를 찾아보면 조 황후는 "용모가 평범"하고, "인종에게 사랑을 받지 못했으며 자식이 없어 복왕 조윤량의 아들을 양자로 삼아 자리를 지키고 태후가 되었다"고 한다. "엄청난 추녀"까지는 아니지만 "용모가 평범"하다는 말이 남아 있을 만큼, 후궁에서 내세울 만한 외모가 아니란 건 사실이었나 보다. 그래도 타고난 재주와 정치감각을 이용해 결국 후궁의 승자가 되었으니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첫날밤 황후을 찾아가지 않은 인종: 황후가 다 좋은데 못 생기기로 유명하다지
조 황후를 본 적 있는 장무칙이 수습 중
인종: 아 됐고. 예쁘든 못났든 뭔 상관 (이라고 하지만 무척 신경쓴다)
아침이 되어서야 얼마나 못 생겼는지 보자 하는 심정으로 찾아온 인종
너무 예뻐서 어쩔 줄 모르는 인종
어색해하다가 한 번 불러보는데... (황실에서도 이렇게 이름을 불러주는 것이 참 보기 좋다)

드라마 <청평악>을 보면 인종의 첫사랑은 진희춘이고, 가장 애틋한 사람은 묘심화고, 조 황후는 정치적 동반자같은 느낌에 살짝 썸이 덧붙여진 느낌이다. 인종이 마음은 있는 것 같은데, 그렇다고 첫날밤 응어리를 잘 풀어서 서로 애틋한 사이가 된 것 같지는 않고... 그러는 사이 훌쩍 몇 년이 지나서 도대체 저 두 사람의 관계가 뭔지 알쏭달쏭해진다.

사이좋은 황제와 황후

그렇지만 조 황후는 유 태후가 죽은 후 그 뒤를 이을 여걸이며, 총애도 자식도 없이 어떻게 후궁에서 살아남는지 궁금해서 내가 <청평악>을 계속 보게 해주는 원동력이다.

원작 소설과의 관계

인종의 첫 아이, 공주 송휘유는 묘심화의 딸로 원작 소설의 여주인공이다. 드라마 <청평악>의 초반부는 원작 소설 이전에 송 인종의 정치적 상황을 보여주고, 12화부터 원작의 주인공이 등장한다.

소황문들 틈에서 재주를 뽐내는 양원형

어려서 부모를 잃고 어쩔 수 없이 황궁의 내시가 되어야 했던, 총명하고 재주 많은 양원형. 피휘를 어기기 쉬운 이름이기에 이름 때문에 죽을 뻔했지만, 장무칙이 조 황후에게 부탁해 살려주고 "회길"이라는 새 이름을 내려준다.  드라마에서는 조 황후가 새 이름을 내려주는 것으로 나온다. 

원형이정(주역의 점괘)의 '원형'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다가 피휘를 어긴다. (인종의 이름이 정(禎)이어서 발음이 같은 정(貞)도 피휘자)
조 황후가 양원형을 살려주고 새 이름을 내린다

첫 아이이기도 하고, 애틋한 청매죽마인 묘심화와의 사이에서 난 아이이기도 해서 인종은 휘유를 무척 사랑했다고 한다. 드라마에서는 황실에 남자로 태어나 골치깨나 썩은 자신과 달리 자신의 첫 아이, 특히 적통도 아닌 아이가 고뇌를 안고 살지 않도록 딸로 태어나길 바랐고, 평생 행복만 누리고 살기를 바란다고 했다. 드라마에서는 그렇게 말하지만, 실제로는 정치적인 이유(혹은 친어머니에 대한 미안함)로 정략결혼시킨다.

원작 소설은 환관인 양회길의 시점에서 사랑스러운 소녀 휘유와의 이야기와 인종이 처한 정치 상황을 상세히 묘사하는 반면, 드라마는 인종의 입장에서 정치적인 사건을 담담히 설명한다.. 행복하길 바랐던 딸이 자신의 선택으로 불행해지는 것을 지켜봐야 하는 인종의 모습도 초반부처럼 담담하게 그려질지 궁금하다.


쓰고 났더니 드라마 감상이라기엔 좀 애매한 글이 되었다.  확실히, 이번 <청평악>은 다른 드라마와는 달리 인물 이야기나 감정보다는 정치적 사건을 하나하나 짚어가는 쪽에 가까워서 감상적인 드라마로 추천하기엔 쉽지 않은 것 같다. 긴장감 있는 정치 싸움이나 애틋한 로맨스를 기대하는 사람에게는 환영받지 못할 것 같고, 인종 시대 역사의 흐름이 궁금한 사람, 혹은 그 시대를 이미 잘 알고 있는 사람에게 어필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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