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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고서랑은...

    예스러운 배경의 소설과 드라마를 이야기합니다.

미디어/영화와 드라마

<곡주 부인> 반쯤 보고...

by 와룡 2022. 5. 28.

WeTV 결제한 김에 <설중한도행>에 입은 마음의 상처를 달랠 겸 <곡주부인>을 보기 시작했다. 구주 시리즈니까 기본은 하겠지 하는 생각으로. <곡주부인>의 배경은 구주 세계관 중원 왕조 중 마지막인 징(徵) 나라다. 표묘록의 배경인 윤나라와는 시대적으로 한참 떨어져 있어서 표묘록과는 요만큼도 연결되지 않는다. 구주표묘록에 우족이 나왔다면 곡주부인에는 교족(인어족)이 나온다.

내가 좋아하는 커플이 나온 &lt;곡주부인&gt; 포스터 (출처: 바이두 백과)

잠시 배경을 살펴보자면, 징나라 53대 황제 저중욱(황제여서 제욱이라 불림)은 본래 태자도 아니고, 놀기 좋아하는 평범한 친왕이었다. 친왕 시절 정략혼으로 자잠과 결혼했으나 서로 사랑해서 사이도 좋았다. 그러다 숙부의 반란으로 태자가 죽고 내란이 일어나자 별 수 없이 내란을 평정하러 나갔는데, 혼란한 와중에 임신한 자잠이 죽었다. 저중욱은 내란을 평정하고 황위에 올랐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고통 때문에 냉소적인 성격이 되었다. 젊은 시절 그와 절친이던 청해공 세자 방감명, 저중욱이 자신의 요청으로 싸우러 나갔고, 그래서 자잠이 죽었다고 생각했기에 미안한 마음에 차라리 죽고 싶을 만큼 괴로워하는 저중욱의 그림자가 되어 그를 보호한다. '백해'라는 비술을 써서 저중욱이 입는 상처를 모조리 자신이 대신 받는 방식으로.

스포방지용 해시네 마을 (출처: WeTV)

여주인공 해시는 진주(교주)를 상납하는 일을 맡은 어촌의 소녀였다. 그 진주는 인어의 눈물로 만들어지는 것이라 귀한데 위에서 상납 요구가 과해지자, 주민들은 별 수 없이 인어를 유인해 슬픈 장면을 보여줘 눈물을 흘리게끔 만들곤 했다. 해시도 그 '슬픈 장면'을 연출하기 위해 아버지 손에 목졸려 죽을 뻔했는데, 다행히 인어의 도움으로 살아났고 때마침 마을 근처를 지나던 방감명을 만나 그 제자가 되고, 방감명이 이끄는 비밀 결사대 비슷한 흑우림군 속에서 무공을 배우며 자란다.

스승과 제자의 금지된(?) 사랑

스승과 제자의 사랑이라니, 일단 여기서부터 내 취향이 아니다. 게다가 취향을 떠나서, 정치 고민만으로도 시간이 부족할 방감명이 어린 시절 자기가 구해준 어린 여자애, 그것도 남장을 시켜 자란 여자애에게 사랑을 느낄 까닭이 대체 뭘까? 비슷한 나잇대인 방탁영이 좋아하지 않은 걸 보면 딱히 절세미녀 설정도 아닌 것 같은데. 게다가 해시는 왜 이렇게 사고뭉치인지, 뭐든 시키는 대로 하는 게 하나도 없고 제멋대로 군다. 보고만 있어도 짜증 나는 캐릭터. 물론 꼭 이런 애들이 여주가 되어 사랑받긴 하더라만은.
두 사람의 사랑 이야기가 애틋하지 않은 것은 줄거리 탓도 있다. 일단 방감명의 태도가 너무 애매모호하다. 좋아하는 듯했다가 밀어내고, 밀어내는 듯했다가 또 찾고, 도와주고.... 내가 해시라도 짜증 날 정도로 이랬다 저랬다 한다. 그래서 이야기는 둘이 알콩달콩 하려다가 다시 싸우고, 싸워서 다시는 안 볼 것처럼 하더니 언제 그랬냐 싶게 또 만나서 두근거리는 척하는 식이 반복된다.

그 속에서도 건진 것은

나쁜 남자 저중욱. 이 옷이 참 맘에 든다 (출처: WeTV)

이와중에 악인인 줄만 알았던 황제 저중욱은 왜 이렇게 매력적인가. 내 취향은 역시 나쁜 남자인가 보다. 비록 성격은 괴팍하지만 저중욱은 여전히 나라를 돌보는 데는 진심이어서 방감명과 함께 숨은 옛 권신의 세력을 제거하고, 주변 부족을 억누르려 했다. 그러던 중에 사별한 부인 자잠의 부족인 주련에 가 있던 친동생이 돌아오면서, 주련 족장의 추천으로 자잠의 여동생 제란을 후궁에 넣기 위해 데려왔다. 제란은 자잠과 어머니는 다르지만 얼굴이 똑같이 생겨서(실제로 같은 배우가 연기), 제욱의 해묵은 상처를 후벼 파고 말았다.
잊지 못할 사랑과 똑같이 생긴 얼굴을 본 제욱은 사실 조금 흔들리긴 했지만, 이런 짓을 꾸민 주련 족장에게 일어난 분노를 제란에게 쏟아부었다. 가엾은 제란. 언니와 똑같이 생겼단 이유로 아버지에게 이용당하는 중인데, 무슨 영문인지 남편까지 자기만 보면 난리를 쳐대니 얼마나 황당할까. 그런데도 제란은 괴로움을 드러내지 않고 가능한 트집을 잡히지 않으면서 제 부족에 도움이 되려고 온갖 노력을 다한다. 난 이런 제란이 안타까우면서도 사랑스러워서 저중욱이 언제쯤 제란을 받아줄까 기대하면서 봤다. 이 커플이 없었다면 중반부까지 보지도 않았을 것이다.

저중욱과 제란의 좋을 때 (출처: WeTV)

주인공 커플과 다르게 매력적인 커플은 또 있다. 자수의 달인 자류와 겉보기완 달리 귀요미인 방탁영이다. 자류는 방감명이 청해공 세자일 무렵 혼약을 맺었던 국칠칠의 조카로, 국칠칠이 죽은 후 뒤를 이어 방감명의 비밀 연락책 역할을 한다. 방감명의 대제자 방탁영은 길에서 자류를 한 번 보고 사랑에 빠져 모습을 숨긴 채 자류를 돕다가, 자류가 사고로 시력을 잃은 다음에야 나서서 친구가 되겠다며 슬퍼하는 자류의 곁에 있어준다. 방탁영에게도 숨겨진 과거가 있는데, 이걸 끝까지 못 본 게 살짝 아쉽다.

방탁영의 숨겨진 형제(?) (출처: WeTV)

무공 씬은 훌륭

<설중한도행>의 과도한 그래픽에 과도한 슬로모션 무공 씬에 실망했다면, <곡주부인>은 정통 무협 드라마가 아닌데도 무공 씬은 훨씬 볼만했다. 저잣거리에서 방감명이 암살자들과 싸우는 장면은 특히 압권이어서 몇 번 돌려보기도 했다. 방감명 역을 맡은 진위정이 연기는 못하지만, 그 무표정함과 독특한 생김새 덕분에 무공 씬은 잘 어울리는 것 같다.
양멱이 연기한 여주인공 해시는 남장여자 신분인데, 디리러바에 비하면 남장이 잘 어울리고 무공 연기도 자연스럽다. 캐릭터 자체는 마음에 안 들지만 전투 장면에서 화살을 쏠 때는 '저렇게 여리여리해서 무슨 전쟁을 하겠다고?' 하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말 타고 활 쏘는 해시 (출처: WeTV)

이 덕분에 내게 <곡주부인>은 해시와 방감명의 안타까운 사랑 이야기라기 보다는 저중욱과 제란의 안타까운 사랑과 눈이 즐거운 무공 씬으로 기억될 것 같다. 끝까지 보지는 않았지만, 해시와 방감명은 마지막까지 맺어지질 않을 모양이다. 방감명은 해시를 안전하게 보호한답시고 황궁에 보내려는 것 같고, 해시는 방감명이 저중욱의 '백해'니 저중욱을 지켜야만 방감명이 살 수 있다는 걸 알고 저중욱 곁에 있기로 했다고 한다.
<곡주부인> 소설에서 방감명과 저중욱은 절친 사이가 아니라 계약 때문에 '백해'를 쓴 사이다. 게다가 소설의 방감명(방제)은 자신의 후손이 또 계약에 묶이는 것이 싫어서 (아마도 스스로) 고자가 되었다. 소설을 읽어보진 않았지만, 여기서 유추해보면 소설에서는 저중욱이 악인처럼 나올 것 같다. 제란마저 나중엔 곁을 떠난다고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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