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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고서랑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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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독후감

<뒤마클럽>, 삼총사를 보다가

by 와룡 2008. 11. 24.

삼총사를 보고 나니 <뒤마클럽>이 보고싶어졌다. 한 때 관심가졌던 작품이긴 했는데 무슨 이유 때문인지 여태껏 보지 않고 있었더랬다.
(읽고 나서 보니 아마도 분류가 '공포'쪽이라서였던 듯)

<뒤마클럽>은 초반에 무척 흥미를 유발하다가, 뒤로 갈수록 복잡해지고 마지막에는 황당한 느낌을 주는 책이다.
작가의 엄청난 지식에는 감탄하는 바이지만, 작가적인 능력은 그다지 뛰어나지 않은 것 같다. 이렇게나 흥미를 일으켰다면 마지막도 아주 감칠맛나게 정리할 수 없었을까?

스포일러를 제외한 웹에서 대강 찾아본 줄거리는 '뒤마의 작품 삼총사의 원고와 그에 얽힌 악마술에 관한 비밀을 파헤쳐가는' 우리의 주인공이다.
그렇다면 스포일러를 털어보면 어떤 줄거리인가.

주인공 책 사냥꾼 코르소는 비슷한 시기에 한권의 책과 한 뭉치의 원고를 받는다. 하나는 친구인 서적상 라 폰테(그는 자살한 서적수집가 타이예페르로부터 받은)에게서 받은 뒤마의 <앙주의 포도주> 육필원고이고, 다른 하나는 부자 수집가 보르하로부터 받은 금서 <아홉개의 문>이다. 이것들이 진짜인지를 조사하게 된 그는 문학가(?)인 보리스 발칸에게 자문을 구한다. 이 보리스 발칸은 물론이고 주인공 코르소 조차 너무나도 해박하여 독자가 따라가기엔 너무 힘들다. 더욱이 역자는 알 듯 말듯한 책 제목이며 인물들의 이름마다 각주를 달아놓아 더 집중하기 힘들었다. 이야기에 나오는 어떤 어떤 책을 쓴 사람이 누구든지 그게 이야기를 이해하는데 하등의 도움이 될 것도 없건만 왜 저리 많은 주석을 달아놓았는지. 작가가 해박하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었던 것일까.

아무튼 불만은 이쯤하자. 보리스 발칸은 뒤마의 <삼총사>에 나오는 인물들이 각기 실존했던 인물이지만 서로 다른 시간에 활동했으며, 뒤마가 그들에게서 모티브를 따와 글을 썼다는 것을 알려준다. 실제로 뒤마는 아무것도 아닌 듯 해보이는 이야기에 옷을 입혀 그럴싸하게 잘 만드는 재주가 있었다. 리슐리외가 악인이 되고 버킹엄 공작이 밀라디의 손에 죽는 등의 픽션이 그의 솜씨이다.
<삼총사> 뿐 아니라 국내에는 출간되지 않은 <20년 후>나 <브라쥘론느 자작>등의 이야기도 소개하고 있으므로 <삼총사>의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즐거워 할 것이다. 더구나 막 <삼총사>를 읽은 내 경우는 더욱 그렇다.
그런 점에서는 이 <뒤마 클럽>이 결코 구입을 후회할만한 책은 아니다. 쓸데없이 '추리'를 끼워넣지 않고 순수하게 뒤마의 이야기를 해줬더라면 독자들이 당황할 일은 없었을 텐데 말이다.

코르소는 이 '앙주의 포도주'를 가졌던 타이예페르의 미망인 리아나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는 다시 로슈포르와 닮은 칼자국이 있는 사내를 만난다. 누구나 혹할만한 미모를 가진 리아나가 삼총사의 밀라디를 연상시킴으로써, 그는 이 두 이야기가 죽음이라는 단어로 얽혀있음을 직감한다.
세상에 단 세권뿐이라는 <아홉개의 문>은, 악마 루시퍼가 직접 그렸다는 아홉개의 삽화를 포함하고 있는데, 17세기에 금서로 낙인찍혀 그 인쇄공을 화형시킨 무서운 책이다. 삽화 중 하나가 처형당하는 여자를 그리고 있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밀라디의 이야기가 아닌가 의심하게 만든다.
보르하로부터 받은 책을 다른 사람이 소유한 또 다른 두 권과 비교하면서 코르소는 삽화가 미묘하게 서로 다르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가 떠나기 무섭게 다른 두 권의 책 소유자는 죽음을 당하고 그 때마다 뒤를 따라붙는 로슈포르 때문에 그는 이 사건을 '리슐리외를 부활시키려는 삼총사 추종 클럽 무리'라고 단정한다. 밀라디-로슈포르가 실제로 옛 모습 그대로 되살아 났다고 믿는 것일까?

알렉상드르 뒤마 출처:위키피디아(commons.wikimedia.org)


그러나 리아나 일행이 노리던 것은 <아홉개의 문>이 아니라 <앙주의 포도주>였다. 즉, 결론은 <앙주의 포도주>와 <아홉개의 문>은 아무런 관계가 없었다는 것.
<앙주의 포도주>는 뒤마가 마케와 동업하여 <삼총사>를 썼고, 특히 역사적 사실을 비롯한 줄거리의 대부분은 마케가 짜고 뒤마는 그것을 재미있는 이야기로 만들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원고였다. <뒤마 클럽>은 그것을 숨기고 대중문학을 좀더 '발전'시키자는 취지하에 보리스 발칸이 만든 문학동호회일 뿐이었다. 우연히 뒤마의 <삼총사> 육필 원고를 발견한 보리스 발칸은 각 장의 원고를 동호인들에게 나눠주었는데, 앙주의 포도주를 가졌던 타이예페르가 불만을 품으면서 그 원고를 팔아넘기려고 한 것이 이야기의 발단이다.
따라서 무시무시한 악마의 모임인 것 같았던 뒤마클럽은 세 사람 - 타이예페르, 포르가스, 웅게른 - 의 죽음에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 밝혀진다. 물론 타이예페르는 뒤마 클럽이긴 했지만 결국은 자살이었던 듯.

이제 남은 것은 <아홉개의 문>이다. 의뢰인 보르하를 찾아가보니 그는 벌써 세 권에서 모은 삽화를 놓고 지옥으로 갈 문을 열 준비를 마치고 있었다. 코르소는 그런 그의 '실패'를 비웃으며 유유히 물러난다.

책을 다 읽고나면 황당하다는 게 바로 이 때문이다.
일단 삽화에 분석 그림까지 그려가며 자세히 설명한 책의 비밀이 전혀 풀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보르하가 암호를 풀면서 뭐라고 떠들어대지만 무슨 소린지 전혀 이해할 수가 없다. 스페인어다 보니 거울에 비춰본들 알 수도 없다. 내 독해능력이 떨어지는 게 아니라면 번역의 문제일 수도 있다고 생각된다.
두 책을 비교하면서, 두번째 삽화-손, 네번째 삽화-출구 어쩌고 하면서 스펠링까지 적어놨길래 나도 풀어보겠다고 각 그림에서 다른 부분에서 그림번호의 스펠링을 뽑아다 붙여보기까지 했는데 헛수고였다. 그래도 각 그림의 다른 부분 찾기는 나름 재미있었다.
또 하나는 누구나 궁금해했을 이레네 아들레르의 정체다. 모두 다 알지만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는 그녀. 결국 끝까지 비밀을 지킨 채 코르소와 함께 떠나는 그녀. 대체 누군가? 작가가 우연인 듯 설정해 놓은 '셜록 홈즈'일 뿐?

박식한 작가이다보니 독자에게 불친절해서 모든 것을 설명해주지 않는다. 아니, 사실은 앞뒤를 잘 보면 설명해놓았지만, 정리를 해주지 않아서 다시 다 찾아봐야 한다. 기억력과 관찰력이 좋은 사람이라면 한 번 보고 무릎을 쳤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그렇지 못해서 책을 다시 뒤적였다.


<뒤마 클럽> 덕분에 알게된 뒤마는 놀랍게도 고룡과 느낌이 비슷했다. 다작, 수많은 애인, 대중작가, 버는 족족 쓰는 성격이나 술 등으로 재산을 탕진한 것....
그래서인지 더욱 애착이 간다. 솔직히 말해서 내 취향은 움베르트 에코보다는 뒤마다. 대중문학을 써내서인지 그의 평가는 그다지 대단하지 않다지만, 어린이든 성인이든 시대에 관계없이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책을 쓰는 것은 결코 아무나 갖고 있는 재능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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