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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고서랑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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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역사

<중국의 역사> 그리고 진순신

by 와룡 2009. 1. 8.


무지 갖고 싶었지만 절판으로 몇 년 동안 구하지 못하고 애를 태운 책이 있었다. 바로 중국계 일본 역사문학가 진순신의 <중국의 역사> 시리즈(전 12권)다.

돈 없는 학생 때 한권씩 사 모아 6권을 구했지만 그 후로 절판되어 구할 수 없게 되었다. 학교 도서관에서 빌려 읽기는 했지만 보고 싶을 때 볼 수 없다는 사실이 어찌나 아쉽던지... 도서관에서 빌려다 잃어버린 척 하고 돈으로 물어줄까 하는 생각까지 해 봤다.
인기가 많아서인지 헌책방에서도 찾기 힘든 책이었는데, 며칠 전 다른 일로 헌책방 사이트를 검색하다가 우연히 발견하고야 말았다, 그것도 전질을!
낱권은 가격 책정이 되어 있지 않아 그 사이 누가 사갈까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하루를 보내고 다음날 일찍 전화를 걸어 물어보았더니 가격을 책정해 주겠단다. 소식을 듣기 무섭게 낱권으로 구매를 신청했다. (12권은 낱권이 없었지만, 본래 현대사는 좋아하지 않아서 빠져도 별로 아깝지는 않다. 물론 다 모으는 게 좋긴 하지만)
2009년 초, 내게는 가장 뿌듯하고 행복한 사건이었다.

가끔 이 책을 찾는 사람들이 있던데, 지금이라면 헌책방 '형설서점'에서 구할 수 있을 듯. 낱권으로도 한 두 권 재고가 있는 것 같으니 말이다.


중국의 역사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진순신은 참으로 고마운 작가다. 물론 단순히 역사적인 사실을 나열한 것만은 아니지만, 소설도 아닌 역사책을 이렇게 재미있게 쓰는 사람이 또 어디 있을까. 몇 번을 읽어도 지루하지 않은 책은 소설 중에서도 찾기 힘들다.

2008년 7월에 한국일보의 [오늘의 책]에 이 책이 소개된 적 있다. 오래 전에 절판된 책을 소개하는 것도 놀라웠지만, 기사에는 다른 출판사에서 이 책을 '다시' 내놓으리라는 소식을 들었다고 써 있다(==> 기사보러가기).
기자에게 메일까지 써 보았지만 답변이 없어서 그게 대체 어느 출판사인지, 언제쯤 나오려는지 알 수는 없지만.

중국의 역사가 절판된 후, 이를 2권에 압축한 <중국오천년>이 다락원에서 출판되었다. 구하지 못한 <중국의 역사> 7권 부터의 내용을 담은 제2권을 구입해봤지만 역시 짧다. 하지만 너무 긴 내용이 지루한 사람이라면 이 2권 만으로도 충분할 것 같기도 하다.

그 외에도 <영웅의 역사>(전 10권)라는 어딘지 <중국의 역사>를 본 뜬 듯한 시리즈가 있었다. 오랜만의 역사책인지라 약간 탐이 나긴 했지만, 인물 중심으로 엮은 역사는 큰 줄기를 보지 못하는 단점이 있는데다 '아마도' 중국의 역사와는 달리 일대기 형식이 되지 않을까 해서 구입을 포기했다. 아직도 이 책을 읽어보지 못했으니 그 내용이 어떤지는 잘 모르겠다.

진순신이라는 작가를 알게 된 것은 고등학생 때 한창 삼국지에 푹 빠져 있을 때다. 온갖 삼국지 관련 책을 사모으다가 아주 오래되어 뵈는 <소설 제갈공명>을 내키지 않았지만 사 봤다. 처음에는 국내 작가가 쓴 '소설 제갈공명'이 표지가 예뻐 사 봤지만,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런데 진순신의 <제갈공명>은 표지는 별로였어도 내용이 아주 괜찮았다.
일단 필력이 대단하다. 극적인 사건도 오바도 없이 아주 담담하게 펼쳐지는 이야기다. 지독한 악인도 지독한 선인도 없는 현실의 삶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느낌이다. 게다가 작가가 자신의 역사적 지식을 바탕으로 추측한 (물론 비약적일 수도 있다) 내용이 포함되어 아주 색다른 '삼국지'를 보는 느낌이 든다. 이런 부분이 <비본 삼국지>에서도 나타나 있는 듯 하다.
그래서 지금도 우리 집에는 국내 작가의 <소설 제갈공명>은 사라지고 진순신의 <소설 제갈공명>만이 남아 있다.
포스팅을 위해 찾아보니 제갈공명 관련 소설이 몇 가지 더 있는 게 눈에 띈다. 유재주의 경우 <공명의 선택>이라고 예전에도 소설을 쓴 적이 있는데, 그 책과 무슨 관계인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다시 3권짜리 소설 제갈공명이 나와 있다.

진순신 &lt;소설 제갈공명&gt;,1991

정현우 &lt;소설제갈공명&gt;,1996


김광원 &lt;한권으로보는소설 제갈공명&gt;,2002

유재주 &lt;제갈공명&gt;,2006


<중국의 역사>는 이런 그의 문장력을 유감없이 발휘한 책이다. 일본의 어떤 신문에 연재되던 내용을 묶은 것이라고 하는데, 매일 매일 썼다고 보기에는 너무도 구성이 잘 짜여져 있다. 신화시대의 이야기를 굴원의 <천문>을 들어가며 설명하는 부분이 특히 인상적이다. 이 책 덕분에 <천문> 전문을 구해 읽기도 했는데 진순신의 설명 없이는 이 고대 서사시를 이해하기는 역부족이었다(==> 천문 전문보러가기)
어떻게 보면 너무 많은 이야기를 하려고 해서 난잡해 보일 수도 있는 책이지만, 중국 역사의 몇몇 굵은 줄기를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 책과 함께 그 줄기를 연결해 전체를 이해할 수 있게 되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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