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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역사

북경 자금성

by 와룡 2007. 1. 28.

CCTV에서 제작한 고궁(古宮)이라는 다큐멘터리를 보고 쓴다.

북경의 자금성은 규모면에서 세계에서 제일가는 궁전 건축물이다. 이 자금성이 세워진 것은 명대의 일이며 그 후대인 청왕조가 보수하여 지금까지 남아있다.
고궁을 구경하면 처음에는 그 아름다움에 흠뻑 취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똑같은 궁전, 끝이 없는 길에 지친다. 여름과 겨울에 한 번씩 들러봤는데 특히 여름 뙤약볕 아래에서는 끝까지 통과하는 것이 무척 힘들었다.
만일 그 전에 이런 이야기들을 알았더라면 어땠을까? 당시에는 청대의 건축물이라고만 생각했는데...

명나라 초대황제인 홍무제 주원장이 처음 수도로 정한 곳은 남경이다. 그곳이 반란군의 첫 발상지이기도 하며, 당시 북쪽은 몽고의 원나라가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가 죽은 후 손자인 건문제 주윤문이 즉위했지만, 숙부가 되는(즉, 주원장의 아들) 주체가 조카의 제위를 뺏았다. 이 주체가 후일 명나라 전성기를 이끌어낸 영락제이다.
영락제는 황제가 되기 전 연왕으로 봉해졌다. 연이란 북경을 말한다. 영락제가 북경으로 천도하여 자금성을 쌓은 것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자신의 봉국이었기 때문이었다.
그 외에도 그의 즉위를 반대한 대신들을 무참히 살해하여 밤낮 그 악령에 시달렸기 때문에 남경을 떠나고 싶었고, 또한 수도를 북쪽으로 옮겨 세력을 더 확장하겠다는 이유를 들 수 있겠다.

당시 북경의 이름은 북평이었는데, 천도하면서 이름을 북경으로 바꾸고 천하에서 온갖 물자를 끌어들였다. 원나라의 수도 역시 북경이었는데, 자금성은 원나라의 궁전이 있던 곳에서 조금더 남쪽으로 내려온 곳에 새로 지어졌다. 원나라의 궁전은 모조리 무너뜨리고 현재 남은 것은 담벽 하나밖에 없다고 한다. 궁전이 있던 자리는 산을 쌓아 버렸다. 자금성 뒤쪽에 있는 경산은 자금성의 경치가 훤히 보이는 곳으로, 예전엔 원나라의 궁전이 있던 곳이다.

영락제는 심산에서 오래 자란 나무들을 베어다 자금성을 쌓게 했다. 이 나무들은 강에 띄워 북경으로 흘려보냈다. 또한 높은 산에 있는 커다란 바위를 통째로 옮기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동원되어 길을 닦기도 했다. 강에 띄운 나무를 옮기는데 13년, 바위를 옮기는데는 28일이 걸렸다고 한다.
지금도 자금성 궁전 앞 계단 가운데에는 생동감있는 용이 새겨진 바위가 있다. 이 바위가 오랫동안 운반되어온 한덩이짜리 돌부조이다.
이런 재료들을 다듬기 위해 자금성 안에는 갖가지 공장이 섰는데, 그중 금빛 기와를 만든 곳이 리우리창이다. 현재 리우리창은 북경의 유명한 거리중 하나가 되어 있다.

자금성이 완성된 것은 영락14년인데, 한 점성가가 벼락을 맞아 삼태전(3개의 궁전)이 불탈것이라고 예언하는바람에 영락제의 노여움을 사 죽음을 당하는 일이 벌어졌다. 헌데 뜻밖에도 그의 예언대로 궁전은 불탔다. 영락제는 자신이 천벌을 받을 짓을 저질렀다고 생각하여 많이 상심했고, 몽고와의 전쟁 중 말에서 떨어져 숨을 거두었다.
그 후 두 명의 황제가 뒤를 이었고, 다시 삼태전을 재건했으나 영락제가 세운 형태는 불길하다고 해서 똑같이 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 같은 역사 때문에 명나라의 15황제 중 태조의 능만 남경에 남아있고 나머지는 모두 북경에 있다. 명13릉은 북경의 관광코스 중 하나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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