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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고서랑은...

    예스러운 배경의 소설과 드라마를 이야기합니다.

취미/독후감

더글라스 케네디, <빅 피처>

by 와룡 2011. 4. 10.

어디선가 추천작으로 본 후 제목이나 줄거리가 꽤 마음에 들어서 꼭 함 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한 번 손에 잡으면 놓기 힘든 소설이었다. 왠만큼 재미있는 소설은 약간 아끼는 것도 없지 않은데, 이건 내용이 너무 궁금해서 단번에 읽어버렸다.

잔인한 살해 장면이 있고, 쫓겨다니는 주인공이라는 점은 그다지 내 취향이 아닌데도, 난 주인공에게 깊이 몰입했다. 그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을 남편 탓으로 돌리며 외도까지 한 베스가 정말 내 아내인것 처럼 미웠고, 아내의 외도 상대를 죽이는 순간에도 이건 정상 참작이 아니냐고 외치고 싶었다. 그가 아들 앞에서 눈물 흘릴 때, 아들 애덤이 아버지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편지를 읽을 때는 나도 같이 울었다. 주인공이 다시 한 번 비슷한 상황으로 돌아가 거짓 죽음을 맞게 된 때에는, 아예 '이걸 어떻게 또 해?'하고 혼잣말까지 했다.

그 정도로 흥미진진하다. 게다가 진행도 빨라서 반쯤 읽었나 했더니 어느 틈에 끝이 나버렸다.
오랜만에 제대로 된 추천작을 만났다.

벤이 '보장된 삶'을 포기하지 못해 변호사가 되고, 사진가가 되겠다는 꿈은 그렇게 번 돈으로 좋은 카메라를 수집하는 것으로써 보상하는 모습은, 요즘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 대부분이 공감하는 부분일 것이다. 그의 아내 베스 역시 소설을 쓰겠다는 꿈을 꾸면서도 삶을 위해 잡지사에서 일하다가, 결국 결혼하고 아이를 갖고 가족에 얽매임으로써 자신이 꿈을 버리고 평범한 가정주부가 되었다는 사실에 괴로워한다. 게다가 그녀는 그것을 남편의 탓으로 돌리고, 결국 남편과 같이 사진가가 되겠다는 꿈을 가진 이웃 청년 게리와 외도를 하게 된다. 게리는 이상적인 남편감도 애인감도 아니지만, 힘든 그녀의 하루를 위로해줄 만한 사람은 되었던 모양이다.

아내의 외도를 알아차린 벤은 순간적인 분노를 참지 못하고 게리와 말다툼을 하다 살인을 저지른다. 그 뒤에 닥쳐올 일이 두려워진 그는 요트 사고를 가장하여 거짓으로 죽은 후 원래 살던 곳을 떠나 게리로서의 삶을 시작한다.
게리로서의 삶이라고는 하지만 결국 그는 자신이 그렇게나 싫어하던 변호사를 그만두고 꿈을 좇아간 것이다. 그것이 그의 의지였다면 좋았겠지만, 아무래도 범죄를 숨기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던만큼 유명한 사진가가 되자 도리어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결국 그의 비밀은 루디라는 칼럼리스트에게 발각되고, 전시회에 찾아온 아내 베스를 피하려고 루디와 함께 달아나다 뜻하지 않은 자동차 사고를 당한다. 이번에는 그의 의도와 상관없이 루디가 '벤'이 가장했던 '게리'로서 죽고 '벤' 자신은 벤도 게리도 될 수 없는 상황에 처한다. 또 다른 누군가가 되어 세상의 눈에 띄지 않는 사진가 지망생으로서의 삶이 그의 앞에 기다리고 있다.

누구나 꿈은 꾼다. 모두들 꿈을 이루고 산다면, 세상에 '꿈'이란 말도 없었을 것이다. 꿈을 이루라며 독촉하는 소설들도, 어린시절 꿈꾸던 것을 떠올려보라는 노래들도 없을 것이다.
이루지 못하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이라서, 나도 반드시 꿈을 이루어야 행복한 삶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내게도 꿈이 있다. 가끔 현실과 타협하는 바람에 그것을 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답답하고, 슬프기도 하지만 마흔 살, 쉰 살이 되었을 때 할 수 있을 거라는 상상에 젊을 때 열심히 일해보자고 생각하기도 한다.

벤의 삶은 내가 보기에도,  또 다른 사람이 보기에도 결코 실패작이 아니었다. 연봉 수십만 달러의 유능한 변호사, 특별한 일이 없으면 회사에서 잘릴 염려도 없고, 아름다운 아내와 두 아들까지 있다. 프로 못지 않은 암실과 좋은 카메라를 많이 가지고 있으며 심심할 때는(?) 자신의 꿈대로 사진을 찍기도 한다.
이 정도면 행복한 삶 아닐까? 행복하지 않다는 건 벤 본인이 자족하지 못했기 때문일 뿐. 벤이 꿈을 좇아가지 못한 것은, 용기 부족이 아니라 의지 부족이 아니었나 싶다.

베스가 부부 관계가 악화된 모든 잘못이 벤에게 있다고 하는 이유를, 벤의 마지막 연인 앤이 자기였어도 벤 같은 남자와는 결혼하지 않았을 거라고 하는 이유를, 난 아직 모르겠다. 벤의 입장에서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일까? 그가 자신의 꿈을 이루지 못했다고 투덜거리는 것을 매일 보는 것이 꽤 힘든 일이었나보다.

<빅 피처>는 영화화 될 거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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