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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고서랑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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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독후감

더글라스 케네디, <위험한 관계>

by 와룡 2011. 7. 8.

빅 피처가 꽤 인기가 있었던지 순식간에(?) 더글라스 케네디의 새 소설이 나왔다.
빅 피처를 재미있게 본 한 사람으로서, 나도 재빨리 이 위험한 관계를 읽어봤다.

이제보니 원제목은 <A Special Relationship>이다. 책 표지를 만끽할 수 없다는 것이 전자책의 한 가지 단점이랄까.

빅 피처도 아이와 가족으로 인해 자신의 꿈을 놓치고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라 할 수 있는데, <위험한 관계>는 그 소재를 좀 더 상세히 다루었다.

대단한 유명세는 아니지만 나름 잘 나가는 여기자 샐리는, 파견 취재 중에 영국 유명 신문사의 기자인 토니와 만난다. 둘 다 자신의 일을 사랑하고 자부심도 있지만, 토니가 본사로 발령받고 샐리가 임신을 하면서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간다.

세계 곳곳을 누비며 자유롭게 살아온 샐리지만, 임신중독으로 아이가 위험하다는 말에 어쩔 수 없이 직장을 그만두었다. 토니 역시 비록 승진은 했지만 자유를 잃고 사무실에 틀어박혀있어야만 했다.
미국인인 샐리는 문화가 너무도 다른 영국 생활에 적응하기 힘든데다 남편이 바쁜 업무로 함께할 시간이 적어지자 점차 우울해지기 시작한다. 처음 영국에 왔을 때는 말없는 마트 직원에게 인삿말 한번 이끌어내보려고 노력하던 밝은 사람인데.

산후우울증이 꼭 어두운 사람에게만 찾아온다는 법은 없지만, 샐리가 그 병을 앓은 것은, 자신의 꿈이었던 커리어우먼에서 무거운 몸을 하고 밤낮 집에만 있어야 하는 외로운 주부가 된 데 대한 자괴감의 영향 때문일 것이다.
초반에 이런 내용을 읽으면서, 우리나라 사람들에겐 더더욱 '결혼하지 말고, 아기 낳지 말라'는 소리로 들리겠다는 생각을 했다.

심각한 임신중독증을 거쳐 미숙아를 낳은 샐리는, 아이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충격과 자신이 아기에게 적당한 엄마가 아니라는 자책감에 빠져 산후우울증으로 접어든다. 자기가 낳은 아이지만 왠지 자기가 안고 있으면 다칠 것 같다는 두려움에 모성애도 생기지 않았다. 남편은 자기 꿈을 펼치겠다며 늦게 귀가하고서도 혼자 서재에 틀어박혀 소설을 쓰고, 샐리는 혼자서 하루종일 갓난아기를 돌봐야했다.
수면제 처방을 받고 자다가 비몽사몽간에 아기에게 수유하는 바람에 아기가 죽을 뻔한 사건이 터지자, 샐리는 어쩔 수 없이 병원에 입원해 우울증 치료를 받는다. 출산했던 병원이나 우울증을 치료했던 병원이나, 다정다감한 의료진보다는 철두철미하고 피도 눈물도 없어보이는 의료진이 더 많았다. 그 사람들이 나중에는 그녀의 적이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든 미국이든, 육아 분담과 산후우울증이 큰 문제가 되는 모양이다. 더글라스 케네디는 <빅 피처>에서 힘든 육아에 대해 썼고, 이 위험한 관계에서는 산후우울증에 대해 썼다. 산후우울증이 그 사람의 인성이나 정신 문제가 아니라 누구나 앓을 수 있는 '단순한 병'이라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 같다. 훗날 토니는 법정에서 샐리에게 엄마 자격이 없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산후우을증을 앓을 때 한 행동들을 걸고 넘어진다. 만약 그것이 샐리가 가진 본능적인 파괴성향이라면 아이를 뺏길 수밖에 없다.

초반에 서로에 대한 희생으로 지쳐가는 요즘 부부에 대한 이야기를 보여준 <위험한 관계>는 중반에 갑작스런 반전을 일으킨다. 샐리와 토니의 '위험한 관계'가 토니의 깜짝 이혼 요청으로 깨어지고 만 것이다.
샐리가 잠시 고향으로 떠난 사이 토니는 아기를 데리고 연인(?)과 잠적한 후 이혼 소송을 시작했다. 여기서부터는 영국의 법률 구조와 소송 진행 방법을 구경할 수 있다. 왠만한 드라마 못지 않게 긴박감이 느껴지는 스토리거 '가족과 책임감에 대한 비관'으로 살짝 지쳐있던 정신을 깨워주었다. 의학/법학 드라마는 어둡고 복잡해서 싫어하는 나지만, 양육권을 놓고 벌어지는 이 부부의 화려한(!) 법정 공방은 꽤 재미있었다.

더글라스 케네디는 아멜리 노통브처럼 톡톡 튀는 것도 아니고, 파울로 코엘료처럼 차분하고 신비하게 이야기를 전개하는 것도 아니다. 대신 그의 소설은 현실적인 소재와 긴장감 있는 진행 덕분에 어떤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이건 친근감을 느끼며 읽을 수 있다.

한 때 내가 좋아하던 데이비드 리스도 반짝 인기였던지, 그의 새 소설이 우리나라에서 출판되지 않아 섭섭했다. 더글라스 케네디의 소설은 또 다시 나와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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