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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잡설

보보경심 번역 후기 - 두 번째

by 와룡 2013. 3. 10.

한국판 <보보경심>에 주석이 부족하다는 평이 많은 것 같아서 시작한 번역 후기 두번째.

 

작가 동화는 중국 사람이니까 별다른 설명없이 역사 속 인물들을 불쑥 끌어다놓곤 하는데, 중국인이 아닌 우리로썬 당황스러울 수도 있다. 뭐, 주요 인물들이야 이미 책을 읽거나 드라마를 본 사람이라면 그의 역사적 위치(?)를 잘 알테고, 가끔씩 등장하는 사람들에 대해 한 번 얘기해보겠다.

 

우선, 역사에는 이름조차 나오지 않는 황자의 부인들

 

팔황자 정복진인 곽락라 명혜는 실제로 팔황자의 부인이 맞다. 이름은 뭐였는지 모르지만.

 

곽락라 명혜는 안친왕 악락의 손녀이다. 안친왕 악락은 청 태조 누르하치의 손자이고 순치제와 강희제 때의 공신이다. 악락의 일곱번째 딸인 화석군주가 곽락라 명상과 결혼했고, 그 딸이 곽락라 명혜이다.

 

<보보경심>에서 팔황자의 유일한 아들인 홍왕은 곽락라 명혜의 아들로 나오지만, 실제로는 첩 장씨의 자식이다.

 

 

그녀의 동생이라고 하는 곽락라 명옥은 역사에 없는 인물이다

 

십황자의 정복진은 박이제길특 씨이며, 측복진은 혁사리 씨다.

 

첩 중에 곽락라 씨가 있지만 곽락라 명상의 딸이 아니라 원외랑이었던 곽락라 영보의 딸로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아쉽지만, 팔황자의 측복진 중에 약희의 언니인 마이태 약란은 없다.

 

정복진을 제외하고 세 명의 첩 중에 마이태 씨는 없다고 한다.

 

하지만 마이태 가문은 대대로 서북지방 총독을 지냈다고 하니, 아예 없는 성을 만들어낸 것은 아니다.

 

많은 사람이 좋아하는 십사황자의 경우엔, 정복진 완안 씨를 비롯해 측복진 두 명과 서복진 한 명, 첩이 한 명 있는데, 이 중에 마이태 씨는 없다. 

 

대신, 약희가 십사황자와 결혼한 후 십사황자의 칼춤에 금을 타는 장면에서 등장한 첩 오씨는 역사상 이름과 같다.

 

 

 

 

 

 

그럼 승환은 실제로도 십삼황자의 딸일까?

 

이름은 안 나오지만, 십삼황자의 넷째 딸이 화석화혜공주로 봉해져 옹정 7년에 몽고 할하부로 시집을 간 기록이 있다.

 

<보보경심> 번외편에서 궁궐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처럼, 십삼황자 정복진인 요가 씨의 딸이다. 승환의 행복한 삶을 위해, 약희와 십삼황자가 결정한 일이라고들 하지만, 과연 행복했을까?

 

이 공주는 겨우 15살에 시집을 갔고 17살에 죽었다고 한다.

 

 

 

 

 

 

 

 

가능하면 역사에서도 약희의 흔적이 있었으면 하고 바라지만, 사실 아무리 찾아도 비슷한 사람조차 보이지 않는다. 약희가 자식조차 없이 떠났으니 더 그렇겠지.

 

대신 <후궁견환전>에서 누구보다 옹정제의 사랑을 받았던 연갱요의 누이 연귀비의 이야기를 찾아봤다.

 

 

돈숙황귀비(敦肅皇貴妃) 연 씨 - 연세란

 

옹정제가 옹친왕이었을 때 측복진이 되었다. 옹정제가 즉위하기 전까지 3남 1녀를 출산했으나 모두 요절했다.

 

옹정제 즉위 후에 귀비로 책봉되었는데, 옹정 3년에 앓아 눕자 존중의 의미로 황귀비로 봉해졌고 곧 세상을 떠났다.

 

<후궁견환전>에서는 연비가 요절한 자신의 아들을 '일황자'라고 부르던데, 옹정제의 일황자는 효경황후가 낳은 애신각라 홍휘이다.

 

특이하게도, 연비가 낳은 세 명의 아들은 다른 황자들처럼 '홍(弘)'자 돌림을 쓰지 않았다. - 복의(福宜), 복혜(福惠), 복패(福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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