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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고서랑은...

    예스러운 배경의 소설과 드라마를 이야기합니다.

취미/뮤지컬과 음악

지킬앤하이드 10주년

by 와룡 2014. 12. 14.


벌써 10년 째란다.

내가 뮤지컬을 좋아하기 시작한 게 10년 째라는 말. 내가 류정한이라는 배우를 알게 되고 그 사람 공연만 골라 본 것도 10년 째라는 말. 

많은 시간이 흘렀다.


<지킬앤하이드>는 내가 가장 많이 본 뮤지컬이기도 하다. 내가 제일 좋아해서라기보다는, 이만큼 잘 만든 뮤지컬이 이만큼 자주 공연하는 일이 별로 없기 때문이기도 하고, 또 함께 보는 사람의 취향 때문이기도 하다.


아무튼 류정한이 <지킬앤하이드>를 고사하는 바람에 요전에 했던 몇몇 공연은 보지 않았더랬다. 그런데 저번에 <레베카>를 보러 갔다가 <지킬앤하이드> 포스트를 봤고, 10주년이기 때문에 류정한이 나올거라는 소문을 듣고 기다리고 있었다.


사실 그 동안 류정한이 한 작품이 조금 별로여서, 제대로 된 노래를 듣고 싶었더랬다.

다행히 출연이 확정되었고, 티켓 오픈을 기다렸다. 

2시 정각에 클릭했음에도 사이트 먹통에, 새로고침 할 때마다 뒤로 점점 밀려가는 예약 가능 좌석들이라니.

하지만 운좋게 1층 자리를 예약했다. 조승우 공연날은 그보다 더 심하다지? 지금도 표가 없다는데...


이번에는 같이 가기로 한 사람이 바빠서 나 혼자 보러 갔다. 공연을 혼자 본 건 처음인데, 별로 민망하지는 않았다. 그냥 감동했을 때 그 감동을 함께 나눌 사람이 없다는 것이 아쉽지만. 이건 혼자 여행을 갈 때도 마찬가지인 듯... 난 아무래도 수다쟁이인가 보다, 혼자만의 감동에 벅차 있지 못하는 걸 보면.


<지킬앤하이드>는 거의 지킬&하이드의 독무대이다 보니, 아무리 초연 배우들을 대거 등장시켰다는 10주년 공연이라해도 여자 배역은 많이 달라졌다. 류정한은 고정인데, 엠마와 루시는 누구로 볼까 했지만 잘 모르는 사람들이 태반이었다. <드라큘라>에서 이지혜의 노래가 좋았기 때문에 엠마는 이지혜 양으로.


 

오늘의 캐스팅


류정한은 최상의 상태는 아닌 것 같았다. 대사 실수도 한 번 하고 ㅎㅎ

하지만 어쨌거나 류정한 만한 하이드는 없는 듯. 최상의 상태가 아닌데도 류정한의 <Alive>는 언제들어도 파워풀하다.

몇 번 지킬앤하이드를 쉬더니, 목소리나 연기 톤을 조금 바꾼 것 같다. 일단 지킬의 연기가 예전의 연약한 모습에서 좀 더 강한 모습으로 바뀌었다. 물론 뒤로 갈수록 다시 연약한 모습이 나오긴 했지만. 

10년이 지나 이제 그의 나이도 30대에서 40대가 되었고, 그러다보니 목소리가 좀 더 낮아지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든다. 예전 지킬의 목소리는 훨씬 높고 약했는데, 이번에는 좀 더 낮고 강하게 들렸다. 그러다보니 하이드의 목소리는 더욱 거칠고 어두워졌고.

나는 좀 더 강한 지킬이 좋아서, 앞으로도 저런 식으로 더 많이 연기해주었으면 한다. 곱상한 서생같은 지킬 박사는 이제 그만.


요즘 뮤지컬 노래라고 하면 누구나 <지금 이 순간>을 부르는 것 같던데, 사실 난 몇 년 전까지도 이 노래를 별로 좋아하진 않았다. 그 전 관람 포스팅에도 썼겠지만... 어느 공연에서 류정한이 최상의 상태로 이 노래를 부르는 걸 듣고부터 이 노래의 진짜 매력을 깨달았다. 그 후로 이제 왠만한 <지금 이순간>은 내 귀엔 차지 않는다.

요번 공연도 류정한 상태가 별로여선지 <지금 이순간>은 그저 그랬다. 하지만 하이드 변신 후에는, 혼자 갔는데도 불구하고, 옆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던 계속 감탄의 연속... 저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이 류정한 말고 또 있을까? (사실 류정한의 은퇴를 대비해 뒤를 이을(?) 젊은 남자 배우를 빨리 찾고 싶은데, 아직 못 찾았다... 그가 공연을 그만두면 이제 누굴 쫓아서 공연을 보지??)


이지혜 양은 폭발적인 면이 있어서 오히려 루시를 했으면 좋았을 걸 생각했다.

내가 좋아하는 김소현보다 목소리는 날카롭지만, 그래도 힘 있는 목소리였다. 요즘 들어 <지킬앤하이드>의 엠마가 다소 가엾다는 생각이 든다. 분명 여주인공인데 곡에서 루시에게 너무 밀린다.-_-;;


린아는 처음 본 배우인데, 저 사진의 설명처럼 목소리는 정말 매력적이다. 그런데 파워가 좀 딸린다. 김선영 아줌마와 비슷한 톤이라서 어떤 부분에서는 질러주기를 기대했는데, 제대로 질러주질 못해서 아쉬웠다. 요즘 내가 <A New Life>에 꽂혀서 그런지 이 곡은 감동에 차서 들었다. 그런데 정선아는 왜 다시 루시를 안 할까...?


공연을 여러번 보다 보니, 대사를 꼼꼼히 들으며 내용을 더 이해해보겠다고 몰두하게 된다. 이번에는 지킬이 루시에게 보낸 편지 의미가 자꾸 궁금해진다. 

내가 마음대로 이해한 대로라면, 지킬은 루시를 만난 후 자신의 '추악한 면'을 깨달았고, 그래서 더욱더 선과 악을 분리해야겠다는 결심을 한다. 게다가 자기 자신에게. 자신의 추악한 면을 없애버리기 위해 시작한 실험인데, 알고 봤더니 그에게는 추악한 점이 더 많았던 듯(?) 하이드가 더 강해진다. 그래서 차마 지킬로서는 할 수 없었던 "성 주드 병원의 위선자 패거리"를 하이드의 이름으로 죽여버린 것이다. 하이드가 아무나 죽이는 게 아니라 지킬이 원한을 가진 사람만 죽이는 걸 보아 그 때까지는 하이드가 지킬의 본모습이다. 

그런데, 루시는 왜 죽였을까? 왜 지킬은 루시가 위험하다고 생각했을까?

그 동안 어둠 속에 있던 자신에게 빛이 되어주어 고맙다는 말이 편지에 나온다. 그럼 지킬과 루시 사이에 우리가 모르는 어떤 것이 있었을까? 예를 들어 하이드가 지킬로 돌아올 때 루시의 영향이 매우 크다거나, 지킬이 하이드를 억누르고 버틸수 있는 힘이 루시에게 있고, 하이드는 지킬을 없애기 위해 루시를 죽일 수 밖에 없다거나.


이번에서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집에 왔다. 생각해보니 엠마는 단 한 마디로 하이드를 지킬로 '잠시나마' 돌아오게 할 수 있는데, 미리 루시가 아닌 그녀에게 도움을 받았다면 어땠을까 싶다. (아마 루시랑 바람핀게 미안해서 차마 부탁하지 못한....)



10주년이라고 하니 혹시 10주년 OST가 나왔을까봐, 재빨리 1막 끝나고 찾아봤지만 없었다...-_-;;

10년이나 됐으니 다시 만들어도 되지 않을까? 새로 나와주기를 간절히 기대한다.


류정한 인터뷰는 없지만, 역대 캐스트가 말하는 지킬앤하이드를 링크해본다. 10년 동안 이렇게 많은 배우들이 공연을 했고... 김우형의 인터뷰처럼 결혼에 골인한 커플까지 있다!


이번 공연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옆자리에 공연을 전혀 좋아하지 않는 분이 앉았다는 것. 왜 굳이 비싼 돈 주고 와서 저렇게 몸을 뒤틀며 짜증을 내는지 모르겠다. 옆에 있는 나까지 집중 못하게. 

솔직히 <지킬앤하이드>가 다소 어둡고 지루한 면이 있지만, 그래도 국내에서는 첫손꼽는 인기 뮤지컬인데 저렇게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 줄은 몰랐다. 사람마다 취향은 제각각인가보다...


내년에는 <드림걸스>가 한단다. 내가 기다리고 기다리던 두 뮤지컬 중 하나. 다른 하나인 <레베카>는 봤고, 이제 <드림걸스>만 보면 보려고 했던 건 다 본 셈이다. 이번 캐스팅을 기대하고 있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정말 정말 좋아하는 작품인데, 뮤지컬 공연을 한단다. 캐스팅이 영 마음에 안 드는 데... 곡이 좋다는 평이 있어서 고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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