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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고서랑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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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잡설

랑야방 번역 후기 두번째 - 드라마와 원작 맞추기

by 와룡 2016. 7. 23.

앞서 첫 번째 번역 후기에서 놓쳤던 이야기들을 써 보는 두 번째 후기.

몇몇 분들이 번역 후기를 보고 더 이해가 되었다고 해주셔서 용기를 내어 써 본다. 번역하면서 몇 가지 공유해야겠다 싶은 것들이 있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희미해져간다. 더 까맣게 잊기 전에 쓰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참 어떤 분이 스포일러가 될 수 있다고 알려주셨다. 랑야방을 끝까지 보지 않으신 분은 여기서 멈춰주시길 

일단 캐릭터부터.

드라마는 아무래도 영상이기 때문에 캐릭터 개성이 강하면 훨씬 각인이 많이 된다. 번역할 때 자꾸만 드라마 배우가 생각나 나를 헷갈리게 했던 캐릭터라면 언궐과 황제의 아우 기왕이다. 

언궐에게 한 눈에 반했던지라, 아무래도 언궐이 나오는 장면에서 언궐 역 배우의 카리스마가 떠올라 훨씬 점잖고 차분하게 번역하게 되었다. 원작의 언궐도 크게 다르지 않지만, 분량이 많지 않기 때문에 그 정도 카리스마를 느끼기가 어렵다. 그래서 이 캐릭터는 드라마부터 보고 원작을 보는 것이 더 좋을 듯.

카리스마 언궐

기왕은 드라마에서 토실토실 귀여워서 자꾸만 귀엽게 번역하고 싶어진다. 하지만 원작의 기왕은 황제와 나이 차이가 꽤 많이 나기 때문에 젊은 데다 (40대 쯤??) 풍류 남아다. 귀염상이기 보다는 좀 더 소탈하고 호방한 남자 느낌? 아마도 소설을 읽으면서 기왕 캐릭터가 드라마 기왕과 비슷하게 느껴진다면, 그건 내가 번역할 때 드라마 기왕의 영향을 많이 받았기 때문일 것이다.

귀염캐릭터 1 기왕


드라마보다 원작에서 좀 더 마음을 뺏긴 캐릭터는 몇 번 언급했지만 하동. 그리고 언예진, 목청이다.

언예진 - 소경예 - 사필 트라이앵글은 작가가 초반 분위기를 위해 일부러 만든 캐릭터가 분명하다! 셋이 어찌나 죽이 척척 잘 맞게 노는지 얘들이 없으면 이야기가 얼마나 어두울지 상상이 안 간다... 

사필이 빠졌지만, 분위기 띄워주는 언예진과 소경예

혹자는 사극인데 말투가 왜 이리 가볍냐 하지만, 본래 이 세 사람의 대사는 사극이라 볼 수 없을 정도로 가볍다. 나도 이들을 고귀한 금릉의 공자님으로 오인(?)하고 처음에는 세 사람 모두 합쇼체로 썼다. 그런데 그런 식으로는 말투를 옮기기가 어려운 것도 많고 게다가 너무 점잖아서 유머가 많이 약해져서 해요체로 바꾸고 구어체에 가깝게 썼다.

예를 들어 이런 대사는, 아래처럼 합쇼체를 쓰면 언예진이라는 인물의 개성이 많이 깎이는 느낌. (개인적인 느낌일 수도-_-;;)

"소 형, 그 총명함에는 감탄합니다만 무엇이든 알아맞히는 버릇은 실로 좋지 않습니다. 재미없고 성취감도 없지 않습니까!"

"소 형, 듣고 계십니까? 안 우스우십니까? 그런데 왜 안 웃으십니까?"

참, 쓰다보니 생각났는데 사필은 본래 언예진에게 반말을 한다 (원작에서 이름을 부르기 때문!). 하지만 소경에와 언예진이 비록 나이는 조금 차이가 나지만 죽마고우이고, 사필이 소경예에게는 형이라고 높임말을 쓰면서 언예진에게는 반말을 하는 상황이 한국 사람 입장에서는 다소 껄끄럽기 때문에 (누구나 한 번 쯤 겪었을 빠른 OO년 생 친구가 내 선배와 반말하는 느낌?) 번역본에서는 사필이 언예진에게 높임말을 한다. 

귀염 캐릭터 2 목청귀염 캐릭터 2, 3 목청과 언예진

목청은 드라마도 귀엽지만 원작은 훨씬 더 귀엽다. 알아차린 분이 있을지 모르지만, 사람들이 다른 왕들은 '전하'라고 부르는데 목청만은 '왕야'라고 부른다. '왕야(王爺)'라는 단어는 왕을 높여 부르는 호칭인데, 우리 나라에는 일부 중국 드라마 매니아들에게는 알려져 있지 대부분에게는 낯선 단어다. 

원작에는 일부 다른 왕들 (아마도 기왕이었을 듯)도 '왕야'라고 부르고, 언후나 사옥에게도 '후야(侯爺)'라고 부른다. 하지만 번역본에는 유일하게 목청의 호칭만 '왕야'를 살리고 다른 사람은 '전하' 혹은 '~~후'로 썼다.

목청은 '소왕야'언후는 '후야'

늘 '소왕야'라고 불린 목청이 유일하게 매장소에게만 '왕야'라고 불리자 좋아했다는 항목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어린 전하'라고 부르다가 그냥 '전하'라고 할 수도 있지만 매번 '어린 전하', '어린 전하'하는 것이 다소 늘어지고 진짜 어린 꼬마처럼 느껴져서 '왕야'를 살렸다. 이 때문에 통일성이 떨어지긴 했는데 '소왕야'라 불리는 것이 '어린 전하'보다 목청의 귀여움을 배가해주는 것 같기도 해서. 좀 더 좋은 표현이 있을지는 더 생각해 보아야....


드라마와의 통일성을 위해 원작에서 수정된 부분도 몇 개 있다. 

일단 딱 눈에 띄는 것이 고유명사의 두음 법칙. 이 부분이 나를 헷갈리게 했던 것이, 유명한 인물이면 괜찮은데 잠시 스쳐가는 인물들은 내가 드라마를 볼 때 자세히 살피지 않아 두음 법칙을 적용했는지 기억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드라마에서 두음 법칙을 일괄 적용하지 않은 것도 아니고 일부는 적용, 일부를 미적용했기 때문에 새로운 인물이 나타날 때마다 그때 그때 다시 찾아봐야 했다. 예를 들면 여숭 선생. 짧게 언급되는 인물이라 '려숭'이라고 했는지 '여숭'이라 했는지 알 수 없어 찾아봤는데, 이 분은 '여숭' 선생이었다. (그런데 같은 성씨인 려강은 '여강'이 아니다)

암튼 이 부분이 헷갈려서 가제본에는 몇 군데 덜 통일된 곳이 있었던 것 같다. 물론 최종본에서는 다 찾아 수정했지만 혹시라도 잠깐 등장하는 인물의 두음 법칙이 드라마와 다를 수도 있으니 제보해주면 좋겠다^^;

또 하나 수정된 부분은 셋째 황자 '녕왕'. 원작에는 녕왕이 아니라 '예왕(豫王)'이다. 하지만 엄청 중요한 캐릭터인 예왕(譽王)과 헷갈릴 수 있어서 드라마에서는 녕왕으로 수정했고, 번역본에도 드라마를 따라 녕왕으로 수정했다. 드라마 덕분에 독자들이 헷갈리지 않아도 된다는 장점이 생긴 셈^^ 

몇 번 안 나오는 녕왕

그럼 황장자 기왕과 황제 아우 기왕은 왜 그대로 두었을까? 왜냐면... 중국어에서는 이 두 왕의 발음이 다르다. 중국인들은 저렇게 불러도 둘을 구분한다는 것. 하지만 두 예왕은 중국어로도 발음이 똑같다. 소설에서는 상관없지만 드라마에서는 중국인들마저 구분하기 힘들기 때문에 아예 바꿔버린 거다. (한국에서 이렇게 인기 있을 줄 알았다면 기왕 이름도 바꾸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ㅎㅎ)


또 하나 수정된 부분. 예왕이 몇 째인가 하는 것.

원작에는 예왕의 나이만 있고 몇 째인지는 안 알려준다. 그런데 다른 황자들을 소개할 때 '회왕'을 다섯째 황자라고 한다. 

마침 편집부에서도 예왕이 다섯째가 아니냐고 물어왔고, 나도 드라마에서 태자가 예왕을 '다섯째(老五)'라고 불렀던 기억이 있어서 회왕을 여섯째로 고쳤다. 

그런데 다른 포스트에서 다시 쓰겠지만, 이 부분은 솔직히 아직 불명확하다.


호칭 건에 관해서 가제본에서 논란이 있었는데, 뒤늦게나마 그 중 하나를 짚어보면 예황 군주의 '오빠' 호칭.

앞서 '왜 강좌매랑인가'라는 포스팅에 썼듯, 중국어의 가가(哥哥)는 무척 친근한 호칭이어서 오라버니보다는 오빠에 훨씬 가깝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드라마에는 나중에 형장(兄長)이라는 '오라버니'에 더 가까운 호칭으로 고쳐 부르기 때문에, 그 때 오라버니로 부르기로 하고 '오빠'라는 단어를 썼다. (그런데 반응이 이렇게 뜨거울(!) 줄은 몰랐다-_-)

다행히 원작에는 예황 군주가 임수를 형장이라고 부르는 부분이 없어서, 팬들의 의견대로 '가가'를 오라버니로 수정했다. 언젠가 '가가'가 정식(?) 외래어가 되면 이런 논란은 더이상 없겠지.

사실 오빠를 오라버니로 바꾸자는 말은 가제본 전 교정 중에도 나온 의견이었다. 최종 결정 전에 가제본이 나가서 (나는 가제본을 보지 못해서 몇교 기반으로 나갔는지 모르겠지만 언급된 부분들을 보면 초교일 가망성이 높음) 반영이 되지 않은 것 뿐이다. (해명이랄까, 변명이랄까 ㅎㅎ)

사족인데, 예황 군주는 성이 목씨지만 원작을 통틀어 '목예황'이라고 쓴 것을 본 적이 없다. 일부러 그랬는지 작가가 예황 군주를 워낙 친근하게 느껴서 저도 모르게 그랬는지는 몰라도, 여기서도 새삼 예황 군주의 독보적인 존재가 드러나는 느낌. 그렇게 생각하면 오빠보다 오라버니가 그녀의 무게를 더해주는 것 같긴 하다.


<랑야방>을 번역하면서 많은 경험을 얻었다. 다양한 의견(+욕)도 많이 듣고 독자들의 기대가 얼마나 큰 지도 알았다. 내가 그렇게도 바라마지 않던 중국 소설의 전성기가 왔다! (아니면 드라마와 배우의 인기인지도...) 고룡 작품 저작권 판결이 나면 진짜 제대로 나와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도 몽실몽실 일어난다.

여러 의견을 들으면서 스트레스를 받기도 했지만, 중국 소설이 이렇게 인기를 얻게 된 만큼 독자들 의견을 듣고 교류하면서 서로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 좋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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