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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고서랑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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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잡설

<소오강호> 정식 출간

by 와룡 2018. 10. 11.


드디어 <소오강호>가 출간되었다.

최근의 포스팅이 <천애명월도> 관련 내용인 걸 보면 참 오랜만의 포스팅이다. 그때,  "내가 고룡 님 작품을 번역하다니!" 하고 감동해 마지 않았는데, 사실 <천애명월도>보다 <소오강호>를 먼저 번역했기 때문에 "내가 김용 님 작품을 번역하다니!" 하고 감동한 것이 먼저였다. 출간 순서가 반대가 되는 바람에 고룡 님 작품을 먼저 한 것 같지만....

이번에도 또 말하지만, 좀 과장된 표현으로 수십 년 전, 고룡 님, 김용 님 작품을 닥치는 대로 읽고 내키는대로 끼적이고 사람들과 이야기 나누고 초보 주제에 '번역'이라는 말을 써가며 맘대로 옮겼던 그 시절, 고룡 님과 김용 님 작품이 국내에 정식 출간될 줄은, 더구나 내가 (이번에는 진짜) "번역"을 하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

김영사에서 사조삼부곡을 정식 출간한지가 10년, 다음 작품들이 또 나올 줄은 생각도 못했다. 김영사 측에서 연락을 받았을 때 얼마나 얼마나 얼마나 놀라고 기뻤는지.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번역할 기회를 계속 얻는 걸 보면 난 참 복 받은 사람이다. 

난 김용 님 보다는 고룡 님 팬이지만, 김용 님 작품으로 무협에 입문했고, 15 작품 모두 읽었고, 번역이랍시고 제일 먼저 옮기는 연습을 해 본 것도 김용 님 작품인 <비호외전>이다. (여담이지만 무모한 도전이었다. <비호외전>은 베이징 내 일부 고등학교에서 <아Q정전> 대신 어문학 교재로 채택되었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문학 작품이다. 초보가 손댈 것이 못 된다) 

김용 님 작품 중에서도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 <천룡팔부>이고 두 번째 작품이 이 <소오강호>다! 한 가지 더 기쁜 소식이라면, 책을 받아본 사람은 알겠지만, <천룡팔부>와 <녹정기>도 곧 나온다는 것이다. 난 정말이지 <천룡팔부>를 기대 중이다. 개인적으로는 단예의 결말에 관해 이번 개정판이 마음에 들기도 하고. (천룡팔부 - 김용 개작 최신판의 변화)

그런데 세상일이란 좋은 게 있으면 나쁜 것도 있기 마련인가보다.

번역을 맡기로 결정된 다음, 기분이 좋긴 했지만 부담도 컸다. 무협 팬이라면 익히 알다시피 <소오강호>는 이미 최고의 번역이라고 극찬을 받은 이전 출간작이 있는데다 가장 최근에 출간된 사조삼부곡의 번역에 대한 의견들도 워낙 다양했으니까. 이전 출간작을 다시 읽고, 또 인터넷을 뒤져가며 독자들이 어떤 걸 좋아하고 어떤 걸 싫어하는지 전전긍긍하며 살피다보니 번역이 결정난 후부터 작업을 시작하기까지 꽤 시간이 걸렸다. 1장에 나오는 복위표국 임진남과 임평지의 대사는 정말 지겨울 정도로 이리 옮겨보고 저리 옮겨봤다. 임평지는 이렇게 말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 하다가도 독자들이 싫어하면 어쩌지 하면서.

결론은 무엇이냐하면, "흔들리지 말고 그냥 내 스타일로 가자"였다.

내 스타일이 뭐냐고 묻는다면, <소오강호>에서는 이렇게 꼽을 수 있겠다.

  • 오래 전 무협 소설의 분위기는 살리되 너무 촌스럽지 않게 옮기기

  • 말장난은 가능한 주석 없이도 알아들을 수 있게 옮기기

이 방식이 독자들, 오래전 온라인에서든 오프라인에서든 나하고 이야기도 하고 토론도 했던 고전 무협 팬들에게 받아들여질지 어떨지는 모르겠다. 개인적으로는 최고로 잘 옮겼다거나 문장이 예술이라거나 하고 자랑할 수는 없더라도 저 두 가지는 잘 지켰다고 생각한다. 

<소오강호>, <천애명월도>를 번역하기 전까지는 주로 젊은 작가가 쓴 로맨스 소설을 번역했는데, 무협 소설과는 달리 중국 로맨스 소설이 국내에 소개된 역사가 오래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하면 쉬운 단어로 풀어서 옮기는 게 목표였다. (<랑야방>은 조금 달라서 그보다는 약간 덜 풀어썼지만) 하지만 무협 소설은 이미 오래된 무협 팬들이 많아서 굳이 풀어쓰지 않아도 될 것들은 그대로 남겼다. 새로 입문할 독자들에게는 다소 불친절할 수 있지만, 그래도 이 작품을 사는 독자는 옛 무협의 향수를 느끼고 싶은 사람이 좀 더 많을 테니까.

원문 자체는 저술된 시대가 시대인만큼 상당히 예스러운 느낌이 많이 나기 때문에 (내가 고룡 님 팬이라서가 아니라, 이런 면에서 고룡 님 작품은 좀 더 현대적이다. 당시에 파격적이고 앞서가는 문체라는 말을 들었음직하다. 물론 취향을 좀 타지만...) 이런 것을 가능한 현대적으로 옮긴 것은 새로 입문할 독자들에게 조금이나마 친절하기 위해서다.

말장난은 아마 어느 언어건 간에 번역을 하는 사람이면 늘 고민하게 되는 요소일 것이다. 이걸로 뭔가 추리를 하는 게 아닌 이상, 솔직히 이런 말장난은 소설의 감초 역할을 할 순 있지만, 잘 옮기든 못 옮기든 줄거리를 이해하는데는 전혀 지장이 없다. 하지만 A를 A로 옮기는 것만이 번역이 아닌 바에야 이런 걸 잘 살리고 싶은 게 번역하는 사람의 마음일 것이다. 요번 <소오강호>를 읽는 분들이 나중에는 잊어버리더라도 그런 말장난에서 한 번 빵 터지기를 바랄 뿐이다.

김용 님에게 동화한 걸까, 쓸데없이 길게 썼다. 

<소오강호>에는 김용 님이 쓰신 서문도 있고 몇 군데 주석도 있는데, 내가 느끼기엔 김용 님이 쓰신 일반 문장은 소설 내 문장과는 달리 상당히 건조하고 날이 서있는데다 솔직히 약간 TMI다. 나도 이 포스팅에서 딱 그런 느낌.... 반성한다.

<소오강호> 포스팅에서 쓰고 싶은 건 개정판에서 달라진 부분이다. 사실 <소오강호>는 개정판(일명 신수판新修版)에서 줄거리 상 크게 달라진 부분이 없어서 딱히 기존 번역판과 비교할 만한 의미는 없을지도 모르겠다. 몇 가지 설정 등이 조금씩 달라진 게 있는데 가장 큰 부분은 말미에 추가된 두어 문단이다. (아직 읽어보지 못한 분들을 위해 내용은 쓰지 않겠다.)

시간 나는 대로 개정판 달라진 부분을 정리해 볼 생각인데, 개인적으론 전혀 못 알아차리고 있다가 교정 과정에서 하나 발견한 게 있어서 공유해본다.

동백쌍기가 처음 등장할 때는 각각 지팡이를 들고 있고 서로 반대쪽의 눈 하나가 멀었다고 나온다. 그런데 나중에 항산에서 다시 등장할 때 임영영이 그들에게 "다리도 하나 뿐이고 눈도 하나 뿐이니"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다. 교정하시는 분이 그들이 언제 다리가 하나씩 잘렸느냐고 물으시기에 찾아보니 신수판은 아니고 신문 연재 후 첫 번째 개정 출간에서 수정된 부분이란다.

옮길 때는 너무 자연스럽게 동백쌍기를 다리를 저는 사람들로 알고 있어서 (난 대체 어디서 그런 이미지를 갖게 되었을까? 오래전 드라마에 그렇게 나왔기 때문일까, 아니면 내가 본 번역판에도 임영영이 저렇게 말했기 때문일까) 전혀 이상하게 느끼지 않았는데. 꼼꼼한 교정에 놀랐다. 김용 님께 리포팅 해도 될 정도! (물론 하진 않았다.)

책 출간을 축하하듯 올해 초에 <소오강호>가 또 새로운 드라마로 나왔다. 이름하야 <신소오강호>. 임영영이 너무 예뻐서 보려다가 내용이 유치하다 하여 관뒀는데, 책 출간 기념으로 한 두 편이라도 볼까 했으나....

  

왼쪽이 영호충이란다! 아, 이건...할 말을 잃었다. 오른쪽은 임평지.

하다못해 동방불패도 (정상일 땐) 이렇게 생겼는데...

고운 임영영으로 눈 정화를 하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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