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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고서랑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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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영화와 드라마

의천도룡기 2019 보는 재미

by 와룡 2019. 3. 17.


소오강호 2018에 충격을 받은 와중에 의천도룡기 드라마가 방영한다는 말에 한번 보기로 했다. 난 장무기를 아주 싫어하기 때문에 별 기대없이 시작하긴 했는데 정말이지 명작이었다. 드라마도 잘 만들었지만, 역시 김용님의 원작은 어마어마했다. 

좋아하는 결말이 아니어서 책을 본지 오래인데 다시 보니 초반부가 어찌나 감동적인지. 영웅들의 의리에 약한 편이어서, 오래전 양조위 주연의 의천도룡기에서도 명교 교인들이 죽음 앞에서 의연하게 구호를 외치는 장면에 크나큰 감동을 받았더랬다. 이번 <의천도룡기2019>에서는 장취산의 최후에서부터 양소의 등장, 어린 장무기의 고달픈 삶에 이어 본래 좋아하던 명교 장면까지 줄줄이 감동의 도가니였다. 

어린 장무기는 어찌나 우는 걸 잘하는지 아이가 울 때마다 나도 함께 울었다. 저 나이에 저렇게 어려운 삶을 산 게 너무 불쌍해서, 내가 비록 장무기를 싫어하지만 저 아이를 봐서라도 앞으로 예쁘게 봐주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큰 장무기가 나오고 얼마 안 있어 그 감정은 저 만치 날아가버렸다...)

울보 아기 무기

다른 배우들도 연기력이며 표현력이 발군이지만, 아기 장무기 이후로 내 마음을 뒤흔든 것은 양소였다.

내가 의천도룡기에서 좋아하는 캐릭터는 남자 중에서는 양소와 범요, 여자 중에서는 소소다. 양소 - 기효부 - 양불회 - 은리정 이야기도 참 좋아하는데, 이번에 나온 양소는 정말 기대하던 모습이었다. 원작의 이미지를 떠나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캐릭터가 멋진 배우를 만났을 때의 감동이었다. 몇 년 전 천룡팔부에서 황일화가 소봉으로 나온 기분이랄까. 저런 남자인데 기효부가 안 흔들리면 이상하다. 기효부 앞에서 하는 걸 보면 진짜 선수 중의 선수였다.

최근은 아니어도 중국 고전 드라마를 꽤 많이 봤다 자부했는데, 이런 배우를 몰랐다니! 하고 소리치며 찾아봤더니 현대극에 주로 나온 배우 같다. 인터뷰 영상을 보면 매력적인 저 목소리도 진짜 본인 목소리다. 왕카이 이후 처음인 멋진 목소리.

장무기의 처절한 어린 시절이 지나고 명교의 위기가 닥쳐온다. 명교 영웅들의 의기 넘치는 장면이 약 20화부터 23화까지 이어진다. 사대법왕 가운데 가장 멋있는 사람은 역시 백미응왕.

쓸데 없이 내분을 일으켜 멍청하게 당할 입장이 된 다른 사람들에 비해 끝까지 싸우면서 명교를 지키려고 했다. 죽지도 않고 손자가 교주가 되었으니 참 다행이었다. 하지만 자꾸만 두드려 맞는 게 마음아파서, 장무기더러 어서 빨리 나오라고 소리소리 질렀더랬다. 이 녀석은 지금 명교가 무너져가고 있는데 아무리 익히는 속도가 빨라도 그렇지 건곤대나이를 다 익힐 때까지 안 움직이다니! 

명교 사람들이 구호를 외치는 모습은 생각보다 덜 웅장해서 아쉽다. 인건비가 많이 올랐는지 명교 부하가 거의 안보인다.

어제까지 본 24편이 명교가 위기를 넘긴 후 장무기가 교주가 되어 조민을 처음 만나는 장면이었다. 비로소 여자 1번에서 4번을 모두 만났지만, 조민을 만난 후부터 내가 아주 싫어하는 장무기가 되기 때문에 여기서부터는 한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빨리 다음편을! )

 

 

장무기의 여자들

위에서 왼쪽부터 조민, 주지약, 소소, 은리. 개인적으로는 주지약과 은리가 참 예쁘다. 내가 좋아하는 소소는 느낌이 많이 하녀같은데, 좀 예쁘게 치장해주면 좋겠다.

이 아이는 양불회

이 드라마는 총 50부작이고, 3/17일인 오늘 25편까지 방영되었다. (근데 왜 유툽에는 없을까...) 앞으로 갈 길이 한참 멀고 장무기의 속터지는 행동에 욕을 수백 번 퍼부을 게 예상되지만 그래도 끝까지 볼 것 같긴 하다.

드라마 자체만 보자면, 우선 배우들이 보통이 아니고 입체적인 캐릭터를 잘 살렸다. 멸절사태는 아마 대부분 싫어하는 캐릭터겠지만 이번에는 다른 면도 잘 살려서 마냥 밉지만은 않다. 물론, 미워야 제맛이니 아주 선한 사람으로 그린 것은 아니지만. 배우 역시 미모를 자랑하던, 잘 알려진 배우. 유대암은 비중이 크진 않지만 장취산과 은소소가 서로 만나고 결국 자결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사람으로서 적절한 분노와 절제를 보여주었다. 금모사왕과 백미응왕, 양소는 뭐 말할 것도 없고. 그리고 최대 악역인 성곤도 생김새나 연기가 훌륭하다. 내가 좋아하는 버전 천룡팔부에서 착하디 착한 허죽 역을 맡았던 번소황이라는 데 일단 한 번 놀랐다. (스님 전문 배우인가...) 지금까지 봐서는 연배가 있는 배우들은 훌륭하고, 연배 어린 배우들 (특히 장무기와 조민)은 연기가 좀 어색하지만 참을만은 하다.

처음 1편을 딱 틀었을 때 너무 익숙한 곡이 나와서 한 번 또 놀랐다. 주화건이 부른 <도검여몽>이다. 옛날 노래긴 하지만 난 주화건을 좋아해서 그저 반갑기만 했다. 옆에서 같이 본 사람은 노래가 너무 촌스럽다고 하다가, 한 열 편쯤 봤을 때부터는 귀에 쏙쏙 들어온다며 같이 흥얼거리는 수준이 되었다.

무공 씬은 내 기준에서는 다소 아쉬운 것이, 연출이 너무 과하다. 중요한 장면만 있으면 슬로모션 모드에다 카메라를 360도로 돌리지 않나... 개인적으로는 그냥 쭉 싸우는 게 좀 더 박진감 있고 좋은데 좀 볼만 하면 화면이 멈춰서 답답했다. 장무기가 싸우는 부분에서는 퀵실버/플래시 흉내를 내는 장면도 종종 보여서 어색하기도 했고.

원작과 잘 일치하느냐는, 솔직히 원작을 본지 오래되어 세세한 것까지는 잘 모르겠고 큰 줄기의 변화는 없어 보인다. 이 기회에 다시 읽어봐야겠다. (하지만 장무기 때문에 책을 던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인 것이, 양정천이 사손을 임시 교주로 내정한 이유가 뭘까? 사손은 제 입으로, 성곤이 집안을 몰살시켰을 때 복수하려고 했지만 상대가 되지 못했다고 했고, 성곤은 당시 양정천에게는 상대가 되지 못했으니 무공만 따지면 양정천 > 성곤 > 사손일 것이다. 당시 양소는 이미 건곤대나이를 익히는 중이었고 지금도 명교에서 가장 무공이 높은데 대체 왜 양소가 아닌 사손에게 교주를 맡기려고 했는지 모르겠다.

물론, 내용 흐름만 보자면 그래야만 장무기가 사손을 찾아갈 수 있기 때문이지만...

원작을 잘 기억하시는 분들이 있으면 알려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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