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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고서랑은...

    예스러운 배경의 소설과 드라마를 이야기합니다.

미디어/영화와 드라마

<청설루> 다 보고 나서

by 와룡 2019. 8. 17.

본래는 마음에 드는 캐릭터 위주로 글을 하나씩 써보려고 했는데, 이런저런 핑계로 미루다 보니 캐릭터 이야기를 하기도 전에 드라마를 다 보고 말았다.

원작 자체가 청설루에 연관된 캐릭터들의 이야기를 이어가는 연작이라 각 조연들의 서사가 상당히 잘 짜여 있어서 그런 식의 감상문이 잘 어울릴 것 같았는데 아쉽다. 뒤로 갈수록 편수의 제약과 원작과 다른 이야기 전개 때문에 서사가 망가진 캐릭터가 나온 것도 아쉽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으로는, 이 정도면 정통 무협 드라마 중에 선방했다고 생각한다. <의천도룡기>는 워낙 원작이 재미있고 원작을 크게 훼손하지 않는 쪽으로 잘 연출했으니 정통 무협 드라마의 대작이라 할 수 있겠다. (뒤로 갈수록 무협인지 로맨스인지 정체성 혼란에 빠지는 건 모른 척 해주자.) 그에 반해 <청설루>는 다소 허술한 구석이 있고, 솔직히 말하면 무와 협보다는 사랑 이야기가 많긴 하지만 그래도 요즘 드물게 정통 강호의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로서 잘 만든 작품인 것 같다.

여기서부터는 스포 밭이 될 수 있다.

청설루 제자들 - 스포방지용

캐릭터 중에 가장 크게 망가진 사람은 남초가 아닐까 한다.

원작에 나오는 남초의 결말을 미리 봤기 때문에 난 당연히 남초가 죽을 걱정은 전혀 하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은 죽을까 봐 조마조마했지만. 그런데 갑자기 허무하게 죽는 바람에 많이 당황했다. 물론 후반부에 죽으니까 남초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초반에 모니터를 집어던지지는 않을 것이다.

아픈 루주 걱정하랴, 싸우는 용봉 눈치보랴 힘든 남초
난 이만 가야겠다...

어쨌거나 나는 캐릭터 위주로 이야기를 해보고자 했으니 마음에 들었던 캐릭터를 나열해보겠다.

첫 번째는 앞서 포스팅했던 황천.  2019/05/28 - [무협읽기/맛보기/소개] - 청설루, 드라마와 소설 원작 "약간" 비교

웃는 모습이 아이같은 황천

<청설루>는 사랑 이야기가 강한 작품인데 그나마 강호의 의기를 느끼게 해주는 캐릭터 중 하나가 황천이고, 그래서 난 그가 무척 좋다. 고몽비를 막기 위해 청설루 입구에서 처절하게 싸우는 장면에서는 이대로 죽을까 봐 얼마나 조마조마했는지.

고몽비와 싸우는 동안 거의 죽을 뻔 한 황천. 아니 루주는 부하들이 다 죽어가는데 혼자 왜 그렇게 여유를 부리고 있는지...

보통 이처럼 어려움을 겪은 사람은 "이게 다 끝나면 이제 강호에서 떠나 은거하며 살자"는 식으로 나가기 마련인데, 황천은 그렇지도 않다. 끝까지 청설루에 남아 취화소축의 검사들을 기르는 의리의 황천이다. 자맥과의 관계도 깔끔하고, 특히 자맥이 두 번 세 번 "난 사씨 집안 첩이었고 네가 좋아할 만한 사람이 아니다"고 거절해도 끝끝내 "그걸 물은 게 아니잖아, 날 좋아해?"라고 말하던 모습에 감동했다. 그래, 이래야 강호의 남자지.

자맥, 내가 묻는 건 그게 아니잖아. 당신 마음 속에 내가 있어?

두 번째는 벽락이다. 강남 제일 검객으로 불리며 죽금을 잘 타는 풍류(?) 공자. 한가로이 떠도는 것을 좋아해서 아무 곳에도 들어가지 않았지만 청설루와 배월교 모두가 초빙하고자 안달 내던 검객.

벽락의 포즈

그에게는 연인인 소음이 있지만, 환화궁에서 그녀가 죽음을 맞은 뒤에는 차차 홍진과 가까워진다. 소억정이 그처럼 초빙하고자 애쓰던 벽락이 마침내 청설루에 들어왔을 때 나도 속이 탁 트이는 것 같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후로 벽락의 활약상이 거의 없다. 강남 제일 검객이라면서 왜 배월교 청휘에게도 상대가 안 되는 걸까.

청설루에 들어가기로 한 벽락

그래도 홍진과 가까워진 것이 참 좋은 게, 나는 홍진도 좋아하기 때문이다.
홍진은 독을 쓰며, 서정용이 홀로 강호를 떠돌 때 그녀를 공격한 적도 있다. 그녀는 본래 남해 용씨 집안에 쫓기는 사람이었고 이를 해결해주겠다는 소억정의 제안을 받고 청설루에 들어간다. 알고보니 그녀는 용씨 집안의 주인 용호천과 이란성 쌍둥이로, 쌍둥이가 나면 한 사람은 죽이는 집안의 규칙 때문에 위험에 처했을 때 생모인 죽낭이 데리고 달아나 겨우 살았다. 용씨 집안 본부인은 용호천을 친아들처럼 키우면서 죽낭과 홍진의 비밀을 숨기기 위해 계속 두 사람을 죽이려 했던 것이다. (너무 재밌게 봐서 캡처를 하나도 못했다)

용씨 집안일이 해결되고 죽낭이 죽은 뒤 홍진 역시 벽락과 함께 활약 없이 금이나 타는 한가로운 생활을 하게 된다.

금을 가르치고 배우면서 가까워진 벽락과 홍진

이들 세 사람과 자맥까지 네 사람은 훗날 소억정에 의해 청설루 사대호법이 된다. 네 사람이 힘을 합쳐도 고몽비 하나 못 막지만.

사대호법이 되는 네 사람. 왼쪽부터 벽락, 홍진, 자맥, 황천

고몽비.

대체 지소태 어디가 좋다고... 이름도 웃긴데

사실 고몽비는 청람 다음에 글을 써보려던 캐릭터였다. <청설루>가 사랑 이야기 위주인 것은 이런 주요 악역들이 대부분 사랑 때문에 악역이 되었기 때문이다. 화련도 그렇고, 그 딸 명하도 그렇고, 고몽비와 지소태 역시 그렇다. 고몽비는 초반에는 자유로운 영혼 같았는데, 지소태에게 집착하게 되면서 결국 반란을 일으킨다.

고몽비가 딸 지소태를 책임지겠다고 했을 때 설곡 할아버지의 반응.
오예~
지소태가 싫다고 해도 끝까지 책임지겠다고 하자 따봉~

뭐, 본래부터 야망이 많은 사람이었다는 회고가 있긴 했지만 그래도 가장 직접적인 원인은 지소태다. 백제의 둘째 제자로서 청람 못지않은 무공을 자랑하는 고몽비(청우)는 실제로 청설루에서 다양한 공을 세웠고 사대호법보다 더 많이 활약했다. 그리고 당당하게 령주가 되지만 지소태의 인정을 받고자 동분서주하다가 자리를 뺏기고 결국 최악의 길로 들어선다.

사대호법은 아니지만 고환과 임비양 역시 눈길이 가는 캐릭터다. 드라마 <청설루> 이야기 상 주요 인물이 아니기 때문에 서사가 약간 약하게 나오긴 했지만, 황천 이후로 강호의 맛을 보여주는 캐릭터가 이들이다. 임비양은 처음 나올 때 분장이 너무 이상해서 기가 막혔는데, 뒤로 갈수록 제대로 강호인이 되어서 그 분장도 용서해줄 만했다.

의형제를 맺는 고환과 임비양
임비양이 먼저 검을 교환하자고 제안해서 제 무덤 제가 팠다.

고환은 집안의 원수를 갚기 위해 청설루에 들어간 사람이고, 임비양은 강호가 멋있는 줄 알고 뛰어든 철없는 소년이었다. 실력은 없는데도 의기 하나로 풍우조직 일에 엮였다가 위험에 처한 임비양을 고환이 구해준 후로 두 사람은 의기가 통해 의형제를 맺게 되었다. 그 증표로 서로 검을 교환할 때 고환은 그 검을 보고 임비양이 원수 집안의 아들인 것을 알게 되어 눈물을 흘리며 독약으로 임비양을 죽였다. 임비양은 그렇더라도 차라리 검을 써서 싸우지 비열하게 독을 쓴 것을 비난하지만, 사실 독을 쓴 것은 임비양에게 활로을 열어주기 위함이었다. 덕분에 임비양은 풍우조직 추호옥의 도움을 받아 살아나, 복수의 칼을 갈며 풍우조직의 일원이 되었다. 

고환, 누흔검을 가진자는 반드시 문정검을 가진 자에게 죽는다.

하지만 오히려 노강호인 고환보다 초출인 임비양이 더 의기가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은원의 대를 끊고자 복수하지 않았고, 고환이 배월교 손에 죽자 강호의 정의를 수호하고 싶다며 풍우조직을 떠나 청설루에 들어간다. 그가 풍우조직을 떠나며 추호옥과 하는 이야기는 그야말로 강호다.

사실 황천과 임비양, 추호옥이란 캐릭터에 고룡님의 느낌이 많이 느껴지는데, 아마도 그들이 정통 강호를 그리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안타깝지만, 임비양 역시 고환과 비슷하게 배월교 손에 죽는다. 정확히는 배월교 휘하에 들어간 추호옥의 칼에. 이들이 <청설루>에서 드문 강호인이기 때문에 한 사람씩 죽을 때마다 정말이지 계속 보기가 힘들었다. 고몽비와의 대결에서 황천마저 죽었더라면 끝까지 못 봤을지도!

포위 공격 당하는 고환. 애초에 왜 배월교 세력권에서 노닥거렸는지!
역시 배월교 세력권에서 노닥거리다가 죽음을 맞는 임비양

그 외에도 많은 캐릭터가 있다. 초반에 엑스트라인 줄 알았는데 끝까지 살아남아 배월교 교주가 된 고광. (고광이 이 드라마의 승자 같다. 가장 안된 사람은 설문... 드라마 시작부터 끝까지 배월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운명)

처음 나올 때 고광이 교주가 될 줄은 생각도 못했다.

게다가 드라마 전체에서 가장 재미있는 이야기였던 남해 용씨 집안 신부 사건의 두 주인공, 용호천과 강천미. 이건 정말 따로 이야기를 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의 주인공, 청설루의 인중용봉인 소억정과 서정용. 그들의 반대에 서 있는 명하와 가야...

솔직히 56편 안에 그 이야기를 다 욱여넣자니 후반부가 그 모양이 된 것도 이해는 간다.

소억정과 서정용의 반목은 원작 청설루 시리즈의 <혈미>의 큰 줄거리다. 겉만 봐서는 소억정이 좀 더 부드럽고 서정용이 고집스러울 것 같지만, 사실상 소억정은 무림패주가 되겠다는 야망이 큰 반면 서정용은 자신이 그런 고난을 겪었기 때문인지 덜 가혹하다. 적을 대하는 태도에 있어서 자꾸만 엇나가던 그들은 결국 석명연의 계략에 빠져 서로를 죽고 죽이는 상황에 처하고 만다. 드라마에서는 석명연의 신분이 바뀌면서 캐릭터의 설득력이 떨어졌지만, 뭐 주인공 두 사람을 살리기 위한 장치라고 생각하자.

혼자 강호를 떠돌던 서정용을 지켜줬던 소억정 
소억정을 살리고자 일부러 심장을 찔러 가사상태에 빠뜨린 다음 다시 치료하는 서정용

아무튼 두 주인공은 오해와 화해를 자꾸만 반복하는데, 드라마에서 볼 때 오해는 조금 억지스럽고 화해는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는 부분이 꽤 있었다. 어차피 드라마를 해피엔딩으로 끝낼 생각이었다면 저 중 몇 개를 없애고 다른 캐릭터 이야기나 넣어줄 것이지. 게다가 마지막에 살릴 거면 왜 굳이 소억정이 죽는 것처럼 연출했을까? 무공을 다 써서 살릴 수 있었으면 애초에 왜 다른 사람들은 안 살리고?
아무튼 두 주인공의 결말이 해피엔딩인 것은 시청자들이 반겼을지 몰라도, 이 덕분에 전체 줄거리가 엉망이 된 건 사실이다. 그래서 <청설루>를 완전 명작이라 할 수는 없을 것 같아 아쉽다.

명하는, 어머니인 화련과는 달리 여린 사람 같았는데 결국 어머니와 같은 길을 걸었다.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고, 그 사람을 갖지 못하자 차라리 없애버리려 하는 것.(그러고 보니 지소태도 마찬가지다) 청람은 명하가 사문의 원수인데도 불구하고 그간 자신에게 보여준 정 때문에 차마 매정하게 떠나지 못했다. 알고 보니 서정용에게 다른 남자가 생겨서 그런 것도 있지만, 그전에 나오는 그의 성격을 봐도 본래 똑 부러지지 못하는 편임을 알 수 있다. 배월교를 착한(?) 곳으로 만들고, 명하와 함께 숨어 살고자 했지만 명하가 흑화 하는 바람에 결국 함께 죽는 처지에 빠진다. 사실, 그가 마지막으로 명하에게 하는 말은 듣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었다. 차마 제 손으로 죽일 수는 없지만, 사문의 원한도 모른 척할 수 없으니 다시는 인연이 이어지지 않기를 바라는 게 당연하겠지.

명하의 마지막
청람의 마지막. 둘 다 화면이 예뻐서 캡처해보았다.


무너지는 대전에서 빠져나가지 못하고 함께 죽는 두 사람 모습은 얼마 전에 끝난 <왕좌의 게임> 제이미와 세르세이를 떠올리게 한다.

배월교는 고광과 빙릉의 손에서 다시 태어나게 되었다. 고광도 사랑 때문에 교를 배신했으니까 결국 이 모든 이야기는 사랑으로 인한 일이었다. 그리고 청설루는...

당연히 남초가 살아남아 이을 거라 생각했건만, 남초가 목숨을 잃고 원작과 달리 석명연을 세울 수도 없게 되었으니 결국 무주공산으로 남았다. 서정용은 사대호법과 석명연, 종로, 강천미 등에게 청설루를 맡기고 혼수상태에 빠진 소억정과 함께 떠난다. 물론 소억정은 다시 깨어나 해피엔딩.

스토리를 간략하게 적어봤다. 뒷부분이 이상하다고 투덜거렸지만, 막상 다 보고 나니 또 이만한 무협 드라마가 나올까 싶어 아쉽다. 몇 가지 유명한 드라마를 찜해 뒀지만, 요즘 이런 옛 강호 이야기가 별로 없다 보니 선뜻 손이 가지 않는다.

다음에 나올 <절대쌍교>는 기대는 별로 안 하지만, 그래도 <청설루> 만큼은 나와주면 좋겠다. 그런 의미로 무공 씬 몇 가지...

강호를 떠돈 후 다시 만난 서정용과 소억정의 대결 씬
황천의 공격을 손가락 둘로 막은 소억정. 이건 육소봉의 절기인데
혈고에 당해 괴뢰가 된 맥천성을 공격하는 소억정
황천과 소억정의 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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