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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고서랑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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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잡설

승란, 약간 다른 천월 이야기

by 와룡 2019. 11. 12.

천월 소설 <승란>

<천재소독비>가 끝나고 어떤 재미있는 작품을 소개하면 좋을까 하고 여기저기 기웃거리던 중에, 방문객 한 분이 내가 찜한 작품 중 하나인 <승란>이 이미 국내에 웹 연재되고 있다는 소식을 알려주셨다. 최근이 중국 장르 소설의 전성기(?)라고 느끼긴 했지만 <승란>의 연재 소식은 이를 확신하게 해 주었다. <승란>은 아직 책으로 나오지도 않았고, 드라마화 결정되지도 않았고, 더구나 국내에 소개된 적도 없는 작품인데, 그래서 나도 천천히 읽어볼 생각이었는데 이렇게 떡하니 나와버릴 줄이야.

<승란>은 중국의 대표적인 웹소설 플랫폼인 기점중문망의 인기 작품이다. 나는 주로 웨이신 도서와 당당 클라우드 리더를 써서 여기서 추천해주는 책을 많이 읽는 편이다. <승란>이 연재된 기점중문망은 웨이신과 같은 텐센트 산하라서 웨이신 도서에서 추천받아 읽다가 꽤 평이 좋아서 대체 얼마나 유명한 것인가 하고 기점중문망에 들어갔더니 명예 레벨 4성 에 올라 있었다. 

명예 레벨 4성 작품들 (더 있다)

자체 점수 집계 방식에 따라 특정 기간동안 얻은 점수가 기준을 달성하면 올라가는 명예 레벨은 총 5성까지 있고, 현재 5성에 있는 두 작품은 이미 국내에 연재되고 있는 <교랑의경> 작가인 희행의 <대제희>와 또 다른 기점중문망 인기 작가 지지의 <모남지>다.

명예 레벨 5인 작품은 단 둘

본문과 무관한 내용이지만, 희행의 <대제희>와 <군구령>은 예전에 추천받아 잠깐 읽었는데 <교랑의경>은 처음 듣는 작품이었다. 어째서 대표작을 먼저 런칭하지 않았는지 모르겠지만 이미 희행 작가 작품을 낸 걸 보면 <대제희>와 <군구령>도 곧 나오지 않을까 생각한다.

아무튼 간에 아직 명예 레벨 5성 작품도 다 안 나온 마당에 <승란>이 나올 줄은 몰랐다! 

약 150화 정도 읽었는데 연재분이 이미 그 정도 나온 것 같지만, 그래도 결말 이야기가 나올 수 있으니 스포를 피하고자 하면 여기서 멈추길.

솔직히 말해 웹 연재 소설은 유행이 있다 보니 몇 번 보고 나면 고만고만한 생각이 든다. 특히 천월은 너무 많아서 약간 시들해진 바람에 소갯말만 보고도 넘기곤 했다. 승란, 대제희, 모남지, 군구령 모두 천월이라 대충 훑어보려고만 했는데 <승란>은 조금 다르다는 독자 평을 보고 깊이 손을 댔다. 일반적인 천월 소설이 아니라 평행 세계를 그린 유일한(그 독자가 아는 범위에서) 소설이며, 여주인공 명미와 그 스승인 천산자가 나라를 구하기 위해 각자 차례로 과거로 돌아가 세상의 흐름을 바꿔놓으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렸다는 내용이었다. 그 글을 읽었을 때 내가 제일 먼저 떠올린 것은, 정말 정말 좋아하던 게임 <헌원검 창지도>였다. <창지도>는 남북조 시대에서 춘추전국 시대로 넘어간 두 사람이 각자 미래를 바꾸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내용이 너무 좋아서 책까지 샀는데, 하필이면 내용은 정리해놓은 게 없으니 아래 편년사로 대체한다.

 

헌원검 시리즈 편년사

중국의 대표적인 RPG 게임인 <헌원검>인만큼 매니아층이 두텁다. 나야 겨우 4 외전 <창지도>와 5 외전 <한지운>만 즐겼을 뿐이지만, 1~5를 비롯 3,4,5의 각 외전까지 즐기는 사람들도 많은데, 우연히 <창지도>이야..

lyingdragon.tistory.com

<승란>은 가상 역사를 다루지만, 설명하는 역사를 읽다보면 춘추전국과 남북조의 영향을 받은 것을 알 수 있다. 게다가 무너지는 나라를 구하고자 과거로 돌아가거나, 역시 같은 일을 하러 온 미래의 사람이 있다거나 하는 점도 비슷하다. 그 때문인지 모르지만 읽는 내내 여주인공 명미를 <헌원검 창지도>의 차운 모습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사실 차운은 미래에서 온 사람이 아니지만)

이 말고도 다른 천월 소설과 다른 점은 주인공이 술법을 부리는 명사라는 것이다. 명사라는 개념은 아마 이 소설에서 처음 만든 것이겠지만, 술법을 할 줄 아는 현사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것이 명사이며, 명사는 단순히 귀신을 쫓고 술법을 부리는 사람일 뿐 아니라 기관술 같은 지식과 정치력까지 지닌 사람이기도 하다. (기관술 역시 헌원검 차운을 연상시킨다)  작가가 만든 이 가상 세계에서는 귀신과 술법이 꽤 잘 알려져 있으며 현도관의 현사들은 나랏일에 나서기도 한다. 따라서 술법 같은 것이 허무맹랑하지 않고, 몇몇 사람은 아예 명미가 본래의 명 일곱째 소저가 아니라 차시환혼한 사람이라는 것을 짐작하기도 한다. 

여주인공인 명미는 북쪽 오랑캐가 쳐들어와 남북의 두 나라 북제와 남초가 무너지고 사부마저 죽자 사부가 만든 천행진을 이용해 과거로 가서 역사를 돌리려고 한다. 그녀가 돌아간 과거는 70년 전 북제가 건국된지 얼마 되지 않을 무렵이었다. 그녀가 들어간 몸의 주인인 명 일곱째 소저는 나면서부터 혼백을 잃어 약간 모자라는 소녀였고 어려서 아버지를 잃어 어머니의 보살핌으로 살다가, 집안에 귀신이 나타난 것을 보고 놀라 죽는 바람에 명미가 그 몸에 들어가게 되었다. 보통 자신도 모른 채 다른 세계로 날아가는 주인공들과는 달리 명미는 스스로 선택한 타임슬립이라 당황하거나 하지 않고, 명 일곱째 소저의 혼을 봉인했다가 나중에 그 어머니와 함께 다시 태어나게 해 준다. 

승란과는 무관한 사진인 것 같긴 한데, 소설 설명에 나오니까... (출처는 http://baijiahao.baidu.com/s?id=1627043948548830545&wfr=spider&for=pc)

초반에는 명미가 명씨 집안의 귀신 소동과 몸의 본래 아버지인 명 셋째 나리에 얽힌 사건을 풀어나가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었던 것은, 주변인들이 안하무인인 악인이어서 다짜고짜 주인공을 해치려고만 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명씨 집안 어른들은 각자 처한 상황이나 욕망이 있어서 좋은 쪽이나 나쁜 쪽을 선택하고, 아이들은 역시 아이답게 순수하고 착하거나 감수성 예민한 소년 소녀답게 집안의 입장에 휘둘린다. 이야기가 진행되어야 하니 당연히 악인은 있지만, 이 악인이 아무 이유 없이 주인공을 미워하거나 죽이려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보는 사람의 심신이 덜 지친다.

어려서부터 고아였던 명미는 자신을 친딸로 여기고 애지중지 하는 명 셋째 부인을 정말 어머니처럼 여겨, 그녀가 겪고 있는 어려움을 알자 방법을 강구해 그녀를 데리고 명씨 집안을 빠져나갈 마음을 먹는다. 하지만 그 사이 명 셋째 부인이 죽자 참지 못하고 그 죽음을 파헤치고 복수를 한다. 나는 명 셋째 부인의 안타까운 사연과, 명미가 겨우 한 달 정도 함께 한 가짜 어머니에게 친정을 느껴 떠나는 명 셋째 부인이 '인연이 닿았으니 너도 내 딸이야'라고 할 때 눈물을 글썽인 장면에서 크게 감동 받았다.

명미는 명씨 집안 귀신 사건과 명 셋째 부인과 명 둘째, 셋째, 넷째, 여섯째 나리 사이에 얽힌 치정 및 야망을 파악하고 깔끔하게 해결한 뒤 명씨 집안이 있던 동녕을 떠나 외가가 있는 도성으로 간다. 명씨 집안 사건을 해결하는 도중에 만나는, 박릉후의 공자이자 동녕의 역모를 파헤치러 온 황성사 소속 양수는 현재 신분으로는 황제의 외종질이자 황제 누님의 친손자다. 명미는 역사를 바꾸기 위해서는 반드시 권력의 중심에 가야 한다는 것을 알기에 비록 미래에 양수라는 이름의 정치가가 없었다는 것을 알지만 차선책(?)으로 그와 함께 하기로 한다. 일부러 알려준 것은 아니지만 양수는 그녀가 명 셋째 소저가 아니라는 것을 눈치채고 있었는데, 미래에서 온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하고 있다가 그녀로부터 자신의 나라인 북제가 70년 후에 멸망한다는 말을 듣고 충격에 빠져 그녀를 돕기로 한다. 사실 그의 본명은 양수가 아니며, 그에게는 숨겨진 출신이 있다. 지금까지 읽은 부분에서 알려진 내용은 그가 황실의 성인 강씨라는 것인데, 아마 명미가 미래에서 천행진을 찾아 나섰을 때 도와준 검신일 것이라 생각된다. 명 셋째 부인은 머리가 모자란 딸을 걱정해 딸이 어렸을 때 이미 친정 조가 기소오와 혼약을 맺어놓았지만, 명미의 짝은 양수일 수밖에 없다.

양수는 본래 풍류로 유명해서 여자를 상대하는 솜씨가 보통이 아닌 남자인데 명미를 만난 후에 말발에서 밀리는 모습이 재미있다. 사실은 사건 해결을 위해서 만난 것 뿐인데 주변 사람들이 양수와 명미의 관계를 오해하고 반대하는 빚어지는 아기자기한 이야기도 재미있다. 명미는, 아마도 명사라는 신분에다 이곳에 온 목적이 있기 때문이겠지만, 그 시대 여자들에게 주어지는 각종 제약을 꺼리지 않는 데다 성격도 상냥하고 유머러스하다. 두 사람의 대화를 읽고 있으면 절로 흐뭇한 웃음이 난다. 

아직은 두 사람이 어떻게 역사를 바꾸는지 다 읽지 못했지만, 결과적으로 두 사람은 역사를 바꾸고 서로 함께 하게 된다고 한다. 거기까지 보려면 아직 한참 먼 길이 남아 있지만, 명미와 같은 이유로 과거로 넘어온 사부, 그리고 미래에서부터 그들을 공격한 적인 이십팔수(이것도 헌원검과 비슷하다. 헌원검에서는 칠요사자)와 얽히고설켜 역사가 뒤바뀌는 복잡한 이야기가 궁금해서 끝까지 볼 생각이다. 워낙 가끔씩 읽으니 아마 국내 번역 연재가 더 빨리 끝나지 않을까?

안 나올 줄 알았던 작품이 너무 빨리 나온 바람에 충격이 커서 한 번 써 보았다. 이 작품 전에 먼저 본 소설은 다행히(?) 기점중문망 작품이 아니어서 내가 추천할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다음에는 그 작품 이야기도 한 번 써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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