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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고서랑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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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영화와 드라마

설산비호 07 - 호일도 vs 묘인봉

by 와룡 2007. 12.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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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년도 : 2007년
감독 : 왕정          
주연 : 섭원 - 호비
              황추생 - 호일도
              방중신 - 묘인봉
              담요문 - 전귀농
              종흔동 - 정영소
              주   인 - 원자의



사정봉의 <대인물>이 나왔는지 확인차 웹을 뒤지다가 발견한 작품이다. 개인적으로 김용의 작품 중에서 <천룡팔부>,<소오강호> 에 이어 <비호외전>을 좋아하기 때문에 무척 반가웠다. 특히 정영소 캐릭터를 좋아했는데, 마침 이 작품에서 네티즌들이 가장 기대하는 배우가 정영소를 맡은 종흔동인데다, 모습도 마음에 들어서 기대가 컸다.

1편을 보는 순간, 대작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무엇보다 초반을 이끌어가는 배우들의 매력과 연출력이 빛났다. 원작에서는 단순히 지난날의 회상으로 나오는 호일도와 묘인봉의 대결을 자세히 보여준 것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지난날의 무협 영화는 주인공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에 주변인들에게 많은 공을 들이지 않는다. 더군다나 주인공 호비가 자랐을 즈음, 묘인봉은 이미 늙었기 때문에 멋진 배우를 쓸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본디 김용의 <비호외전>+<설산비호>는 주인공 호비의 매력보다 주변 인물들의 매력이 훨씬 돋보이는 작품이다. 이번 왕정의 작품은 이 부분을 잘 살린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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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옛 설산비호에서 황일화가 호일도를 연기하여 큰 호평을 받은 적이 있는 것처럼, 그 역할은 카리스마 있는 배우가 제대로 연기할 경우 강한 인상을 남길 수 있다. (그러고보면 황일화는 나이든 역할에서 더 많은 칭찬을 받은 것 같다)
어쨌거나 초반 황추생의 호일도와 방중신의 묘인봉이 너무도 멋있었다. 소탈하면서도 자신이 넘쳐 약간 거만한 듯도 한 호일도. 그리고 말수가 적으면서도 한 마디 한 마디에 의기가 넘치는 묘인봉. 덧붙여 어려운 자신의 가족을 도와준 일로, 무공을 전혀 모르면서 은혜를 갚겠다고 어린 호비를 데리고 달아난 평사의 모습도 눈물날만큼 멋있었다.
방중신과 황추생이라는 배우는 꽤 멋진 역할로 많이 출연했다. 찾아보니 왕정 감독의 영화 <풍운>에도 나왔는데, 황추생이 검성을, 방중신은 섭풍의 아버지 섭인왕을 연기했다고 한다. 검성은 잘 기억이 안나지만 섭인왕은 역시 카리스마 넘치는 배우였던 걸로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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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란과 묘인봉, 전귀농의 삼각관계도 볼만하다. 남란 역할을 맡은 배우도 퍽 잘 어울렸다. 떠난 아내를 잡지 못하는 묘인봉과 죄책감으로 고민하면서도 딸을 버리고 떠나는 남란. 그리고 시종일관 거짓으로 그녀를 유혹한 전귀농.

사실 원작을 읽은지 오래되어 자세한 내용이 기억나지 않는다. 남란이 자결한 후 전귀농이 저토록 애통해했던가? 잘 모르겠다. 하지만 무척 감동(?)적인 장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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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애같기만 하던 그녀가 그 인생을 뒤바꾼 자신의 착오를 깨닫는 순간, 그리고 단지 화가 나서 내뱉은 한마디에 사랑하는 여자를 잃은 전귀농이 땅을 치며 후회하는 순간.
새삼스럽게 악인의 눈물도 슬프게 느껴질 수 있구나를 깨달았다. 어디선가 본 것 같은데 대체 저 배우가 누굴까 찾아봤더니, 뜻밖에도 담요문이었다. 한 때 주인공이나 멋진 역할을 독차지하던 그가 왜 저리 늙었나 싶으면서도, 악인 역도 참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든다.
설산비호에서의 악인이라면 전귀농과 복강안을 들 수 있는데, 이번 역할은 둘 다 배우가 괜찮았다. 복강안은 철화회 총타주인 진가락과 1인2역이다. 고귀하면서도 권력을 가진 역할에 알맞은 배우를 선별한 것 같다.

정영소는 본디 외모가 전혀 아름답지 않은 여자지만, 이 작품에서의 그녀는 그렇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상당히 아름답다느니 하는 말은 없지만. 개인적으로 그녀의 모습이 김태희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본디 원자의를 좋아하지 않는데다, 그 예쁘던 주인도 이제는 나이가 많이 되어 그런지 역할에 별로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았다. 하지만 원작과 같이 정영소는 그 모습 그대로 죽어야 가장 감동적이리라 생각했고, 이 작품이 그나마 원작에 충실하다는 생각에 기대하면서 지켜보았다.
정영소를 연기한 종흔동은, 여성 듀엣인 Twins의 멤버다. 어차피 더빙을 했고, 정영소라는 캐릭터가 동작이 많거나 떠들썩한 스타일이 아닌지라 연기력이 어떤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정영소 캐릭터를 연기한 사람(물론 그리 많지 않았고, 중요한 역할도 아니었지만)들 중 가장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내가 생각하던 정영소의 모습과 거의 비슷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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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아쉽게도 후반부로 갈수록 작품은 완전히 변질되었다. 원자의가 출가인이 아니라는 것부터 뭔가 꼬이기 시작했다. 정영소가 호비를 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원자의를 구하기 위해서 죽은 것도 황당했다. 그 유명한 칠심해당을 오로지 원자의를 구해서 7년간을 키운다니. 이건 백발마녀전이 아닌가.
더욱이 설산비호로 넘어간 후부터 호비는 더이상 지난날의 호비가 아니었다. 웃지도 않고 말도 없고 폼만 잡는 무의미한 인물로 변한 것이다.
아무래도 후반부에 작가가 바뀌지 않았나 싶을 정도로 내용 연결도 안되고 비약이 심했다. 그 높다는 설산 꼭대기에서, 전귀농을 비롯해 호비, 묘인봉, 묘약란이 줄줄이 떨어졌는데도 다 살아난다. 호비는 서너번 떨어졌지만 모두 무사할 정도.
전귀농이 주백통의 양손 상박술을 익히는 것이며, 묘약란이 기억을 잃고 복강안과 결혼하는 것, 묘인봉이 전귀농의 손에 죽어가면서 그의 약점을 남긴 것 등등 도대체가 어디서 주워들었는지 모를, 말도 안되는 이야기들이다.
그런 면에서 이 <설산비호>는 총 40편 중에서 30편 정도까지만 수작이고 나머지는 차라리 보지 않는편이 낫다고 평할 수 있겠다. 배우 선정은 만점 이상을 주고 싶지만, 내용은 반쪽짜리인 느낌이라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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