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하던 드라마 <삼국>을 드디어 보게 되었다. (언제 방영한 건지는 모르겠다...)
<삼국지>는 내 삶에서 빼놓을 수 없는 단어다. '삼국'이 들어가는 거라면 게임이건, 드라마건, 영화건, 아무튼 닥치는대로 해봤다.
중국에서 5년에 걸쳐 제작한 84편의 드라마 <삼국연의>는 녹화해서 여러번 보았고, DVD를 구매하기도 했다. 너무 오래전 작품이라 연출력이 많이 떨어지지만, 저 방대한 이야기를 눈으로 볼 수 있다는 게 얼마나 즐거웠는지.
삼형제의 도원결의
그리고 마침내 최신판 드라마 <삼국>이 나온 것이다.
지난 포스팅에서 소개한 것과 같이 중국 드라마를 조금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만한 배우들도 많이 출연했고, 연출력도 예전 작품에 비해 월등히 나아졌다. 특히 주목할 점은, 지루한 부분은 제거하고 주요 장면만 긴장감 있게 꾸며놓았다는 것이다. 게다가 내용에도 비교적 많은 각색이 있었다.
★ 일단 '황건적의 난'은 드라마에서 빠졌다. 시작은 동탁이 집권한 후, 왕윤이 동탁 암살을 위해 조조에게 칠성보도를 건네주는 부분부터다. 이각과 곽사의 집권도 설명으로만 잠깐 나온다.
★ 동탁타도 18로 제후군에서 유비와 공손찬은 생면부지로 나온다. 유비가 처음 제후군에 참여했을 때도, 원소, 원술의 박대로 제후군을 떠나려고 할 때도 도와주는 쪽은 조조다.
어린 손권
손책
낙양 폐허를 수색중인 손견 부대
★ 여포와 초선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가 포함되었다. 초선은 왕윤의 간절한 부탁때문에 어쩔 수 없이 동탁에게 갔지만 여포에게만 마음이 있었다. 여포가 죽은 후 조조가 그녀를 얻어보려고 노력하지만, 그의 앞에서 '간사한 당신보단 순수한 여포'라며 자살하는 초선이다.
동탁 주살을 결심하다
여포와 초선의 결혼
여포의 죽음
★ 훗날 여포의 군사가 되는 진궁은, 왕윤의 저택에서 여포를 처음 만나 동탁 주살을 부추기게 되고, 그 후로 여포를 따른다.
★ 조조-장수 전이 빠져있고, 그 때문인지 한참동안 가후가 등장하지 않는다. 과연 나오기나 할지?
★ 조운은 유비가 서주 도겸을 도우러 갈 때부터 아예 유비 사람이 된다. 공손찬이 그런 것까지 허락하다니, 대단한 도량이다.
★ 동승이 의대밀조 사건으로 죽은 후 조조는 곧장 자기 딸을 황후로 삼는다. 즉 복황후와 복윤이 등장하지 않는다는 말.
총 95편 중 25편 정도까지에서 발견한 변화들이다.
편집이 많았지만 눈에 거슬릴 정도도 아니고, 개인적으로는 배우들의 연기나 캐릭터 설정이 아주 마음에 든다.
여포 - 하윤동이라는 배우에게 꼭 어울리는 역할이 아닐까? 사실 초선 역 배우가 그닥 예쁜 얼굴이 아니라 여포와 초선이 나란히 있으면 오히려 여포가 더 눈에 띈다. 적토마때문에 의부를 죽인 초절정 배신자 여포이지만 초선에 대한 마음만은 진심으로 그려졌다. 말 그대로 순수하다. 하비성에서 조조에게 포위되었을 때도, 초선이 아프다는 말에 차마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결국 부하들의 손에 포로가 된다.
도원삼형제의 삼전여포
조조 - 얄미워서 때려주고 싶을 만큼 연기가 일품이다. 누가 무슨 말을 하든 껄껄 웃으며 도량이 넓은 척 하고 뒤에서 화를 내거나 손을 쓴다. 제후군 속에서 유비와 의기투합하여 원소등을 버리고 떠날 때의 모습은 꽤 뭉클했지만, 그 후로 아버지의 죽음을 이용해 서주를 공격하거나, 유비가 서주민들에게 인기를 얻는 것을 보고 '반드시 허창으로 데려가겠다'며 벼르는 것, 황제가 유비를 황숙이라 칭하자 비웃는 모습 등은 난세의 간웅에 꼭 어울린다. 나야 조조를 정말 싫어라하지만 이 정도 조조라면 제대로 골랐다는 느낌이다.
유비 - 이번 드라마에서는 유비를 많이 신경썼다. 절대 '비굴하지 않은' 유비가 이 드라마의 모토다. 유하고 어딘지 나약한 느낌의 유비는 여기서 찾아볼 수 없다. 무슨 일이 있어도 눈하나 깜짝 하지 않고, 조조든 원소든 누구 앞에서나 떳떳하게 할 말을 한다. 비록 두 아우에게 미치지는 못하지만 쌍칼을 쓰는 솜씨도 뛰어나다. 이제 형주로 가서 제갈량을 만날 때는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궁금해진다. 부디 계속 이 당당한 모습을 유지하길.
죽음을 앞둔 진궁
아버지의 죽음앞에서 형을 다독이는 손권
반면 조조의 진영에서는 순욱과 정욱이 가장 눈에 띈다. 서생같이 고운 얼굴의 곽가도 가끔 나오지만 아직은 활약할 때가 아닌가보다. 순욱은 식견이 있고, 정욱은 꾀가 많다. 정욱은 조조에게 황위를 이으라고 말하는 등 완전히 조조 편이지만, 순욱은 아니라는 것은 조조는 벌써 알고 있다. 훗날 순욱의 죽음을 벌써부터 경고하는 것일까.
서량군 차림의 여포 장수들
게다가 기존 연의에서는 볼 수 없는 인물들의 속마음이 대사로 잘 표현되어 있다. 도겸은 유비를 불러다놓고, "당신에겐 서주가 필요하고, 스스로도 무척 원하고 있다. 다만 인의때문에 받지 못하는 것 뿐이다"라고 말했고, 유비 역시 자신에게 오라는 조조에게 "여포는 늑대고 당신은 호랑이다. 늑대 곁에 있는 것이 호랑이 곁에 있는 것 보다 낫다"고 대답한다. 때로는 조조에게 대놓고 "왜 날 안죽이느냐?"고 묻기도 한다. 조조의 대답은 "아까워서."란다.
사실 그 동안 게임도 안 나오고, 책 읽을 일도 없고 해서 삼국지를 조금 멀리하긴 했다. 그래선지 분명 익숙한 인물들인데 갑자기 자가 생각나지 않아 당황스럽기도 했다. 이야기 진행도 그 상황을 보고서야, '아 여기서 이런 일이 있었지' 싶을 정도.
그래서인지 드라마 <삼국>이 너무 반갑고, 너무 재미있어서 신나게 보고 있다. 어서 빨리 제갈량이 등장하기를 바라면서.
25편 쯤에서 유비가 원소를 떠나 유표에게 가게 되었으니 곧 제갈량이 등장하리라. 지금까지는 강동의 '미남' 건아들도 가끔 모습을 보였을 뿐이지만, 앞으로는 이야기의 중심이 될 것이다. 지난 포스팅에서는 주유 역을 맡은 황유덕이 별로라고 했었는데, <모의천하>를 본 후로 다소 바람기있는 역할에 잘 어울렸기 때문에 기대가 크다. 물론 이미 몇 번 나오긴 했지만. 그와 제갈량이 심하게 싸우지 않고 선의의 경쟁을 펼쳐주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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