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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고서랑은...

    예스러운 배경의 소설과 드라마를 이야기합니다.

미디어/영화와 드라마

표협과 대영웅

by 와룡 2007. 1. 28.

표협시리즈는 몇 년 전 비디오로 본 기억이 있다. 워낙 재미있게 봤던지라 이번에 구하기 무섭게 다시 보았다.

표협의 원제는 '보표', 해석하자면 표사 정도되는 셈이다. 포청천에서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하가경이 주연한 최초이자 거의 최후인 드라마로 생각된다. 하가경을 제외하면 대단한 미남자도 없거니와 여주인공들도 그다지 예쁘지 않지만, 이 시리즈는 보는 재미가 가득하다.

그 첫째가 액션이다. 그래픽을 거의 쓰지 않고도 화려하고 박진감넘치는 액션이 놀라울 정도다. 몇년이 지난 지금 다시 봐도 여전히 멋진 저 액션 장면들. 쾌검 신력의 쏜살같이 뻗어나가는 검기를 볼때마다 다시 되돌려보곤 한다.
두번째는 캐릭터의 매력이다. 유유자적, 풍류공자인 주인공 곽욱을 비롯해, 오로지 한 여인만을 사랑하는 외곬수 봉평, 단순무식하지만 의리에는 강한 정철의, 무공은 모르지만 박식하고 우아한 정채옥 등, 마음에 들지 않는 캐릭터가 없을 정도다. 특성이 명확하기 때문에 가끔은 이게 고룡님 작품이 아닐까하는 생각마저 든다.

대영웅은 확실히 고룡님의 작품이 베이스가 되었다. 원제는 '대인물'이다. 별로 유명하지 않은 배우 오경이 주연했지만, 개인적으로는 오경을 마음에 들어한데다 원작을 즐겨보았기 때문에 매우 기대가 컸다. 우연히 찾아 보았더니, 오경의 연기가 소리비도때에 비하면 훨씬 늘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오히려 최근작인 무당에서는 퇴보한 것처럼 보인다.

대영웅은 원작에 비해 각색을 많이했다. 각색한 작품중에서도 괜찮은 작품들이 있지만 대부분은 실패작이다.
초반은 진행이 괜찮았다. 양범과 전사사가 처음 만나 무술을 겨루는 장면에서 액션도 쓸만해 보였다.
그러나 초기 강적으로 등장하는 김동방을 비롯하여, 악환산의 부활등 가면 갈수록 줄거리의 수준이 떨어진다.
세상 무서울 것 없던 부잣집 아가씨가 강호를 주유하며 이리저리 혼나다가 마침내 겉모습이 아닌 진짜 멋진 사내를 선택하게 된다는 줄거리가 갑작스런 두 사람의 애정행각이며, 폼잡는 진가의 모습 등으로 많이 흐려졌다.
원작을 빼놓고 생각하더라도 그래픽을 남발한 액션이나 전체적인 상황도 실망스러웠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다름아닌 번역이다.

당시에는 별 생각없이 봤었는데, 다시 보니 표협의 번역가에게는 정말 찬사를 보내고 싶을 정도다. 일단 내용을 확실히 꿰고 있을 뿐 아니라, 의역도 적절해서 본문의 의미를 정확히 전달하기 좋다. 인물들의 말투도 시종일관하며 고급스러운 말을 쓴다.
반면, 대영웅은 서투른 번역가가 틀림없다. 호칭이 시시때때로 바뀌고 아이같은 말투를 쓰는가 하면, 아예 빼먹은 말도 많다. 더욱이 번역가 스스로도 내용을 이해못했는지, 실제 대사와는 다르게 옮겨놓은 것도 눈에 띈다.

예를 들어보자면,
표협3에서 채옥과 곽욱이 신력더러 미녀를 만났다고 놀리는 장면.
신력이, "두 사람, 짜고 날 놀리는거지?" 하고 덤비자 두 사람이 서로 마주보며, "아닌데"라고 대답한다.
여기서 '아닌데'는 '有ma?'로 실제로는 '그랬나?'라고 되묻는 셈이다.

반면, 대영웅에서는, 진가가 양범으로부터 호접의 이야기를 들은 후 고민하는 장면이 있다.
여기서 진가는 혼잣말을 한다.
"설마 내가 양범을 잘 못 본 걸까?"
실제로는 '양범'이라는 단어는 없고 'ta'라는 말이 나온다. 이 'ta'는 그, 그녀, 그것이라는 뜻과 동일한 발음이니 헷갈릴 수 있겠지만, 상황상 분명 '호접'을 가리키는 '그녀'이다. 그런데 번역자는 이를 '그'도 모자라 '양범'이라고까지 바꿔버렸다.

중국의 훌륭한 작품들, 아니 꼭 중국이랄 것도 없다. 해외의 작품들이 국내에 들어오면서 너무 제멋대로인 경우가 있다. 기대가 컸던 <환상삼국지>도 번역이 엉망이란 말을 들었다. 대영웅 또한 번역이나마 제대로 되었다면 그토록 실망스럽지는 않았으리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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