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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고서랑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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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영화와 드라마

오랜만의 쓸만한 중국 영화, 묵공

by 와룡 2007. 1.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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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중국 영화 몇편씩은 나온다. 여기서 중국 영화라고 함은 중국의 전통 내용을 담고 있는 영화다. 무협이나 역사극이 주다. 하지만 요 몇년간 중국 영화 중 볼만한 것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크게 떠들어대기는 했지만, <연인>이니 <무극>이니 <야연>이니 대박을 터트릴 만한 것이 없었던 것 같다. 왠지 그럴것 같아서 세 편 모두 극장에서 보지 않았다. 집에서 혼자 보기에는 어느 정도 괜찮다 싶지만, 글쎄 극장에서는 어떨까?

한중일 삼국이 함께 제작했다는 <묵공>은 그런점에서 오랜만에 쓸만한 중국영화라 할 수 있다. 주연부터가 이미 스케일이 다르다. 유덕화, 안성기는 말할 것도 없고,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최시원까지 등장한다. 보기 전에는 몰랐지만 보다보니 예전에 좋아했던 또 다른 배우도 나왔다.
묵가에 대해 깊이 알지는 못하지만, 중국 제자백가 중에서 매력적인 학파중 하나이며, 무협과도 연관이 있기 때문에 흥미가 있었다. 그 묵가의 이야기가 주제가 되었다는데다 배우들도 믿을만 해서 이번에는 극장에서 보기로 했다.

때는 춘추전국시대. 조나라가 연나라를 공격하러 가는 길에 하나의 성이 있다. 이 양성 사람들은 항복할 것인가 싸울 것인가를 두고 고민하다가, 묵가에 도움을 요청한다. 묵가는 본디 공격하지 않고 지키는 것을 주장하는 학파다. 공격당하는 곳이 있으면 온 힘을 다해 도와주고도 아무런 이득을 바라지 않는다. 어렴풋이나마 이런 이야기가 기억난다. 묵자가 공격을 당할 뻔 한 어떤 나라를 위해 타국 왕을 설득해서 전쟁을 일으키지 못하게 했다. 돌아오는 길에 공공격당할뻔한 그 나라를 지나다 비가 내려 어떤 집 처마 아래서 비를 피하고 있었는데, 집 주인이 나와서 그를 쫓아냈다는 이야기다. 이런 꼴을 당하고서도 '내 덕분에 전쟁을 면했다'니 뭐니 위세부리지 않는 것이 묵가의 가르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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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거나, 묵가를 청해놓고도 불안한 양성 성주는 아들의 반대도 뿌리치고 항복사절을 보낸다. 이제나 저제나 걱정하던 양성에 나타난 구원자는 혁리라는 단 한사람 뿐이다.
<묵공>의 재미는 이야기속에 등장하는 수많은 인물이 제각각 개성이 넘친다는 데에 있다.
주인공 혁리야 주인공답게 전형적인 영웅이지만, 그를 따르는 연인 일열이 기마대를 이끄는 장군가문의 딸이라는 것이 특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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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성의 성주 역시 독특하다. 겁많고 눈앞의 유희에만 빠져있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양성을 지키기 위해 그 어떤 것도 마다않는 독한 사람이다. 한번 맡기겠다고 마음먹고 혁리에게 모든 것을 맡긴 후, 위험이 물러갔다고 생각했을 때는 가차없이 은혜를 저버린다. 아들을 잃고서도 슬픔 한번 나타내지 않는, 그러면서도 그렇게 미워할 수는 없는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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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주의 아들 공자 양적. "그간 당신이 제일 강했던 것은 당신이 공자였기 때문이다"는 신랄한 비판을 듣고서도 옳다고 생각하면 끝까지 따르는 멋진 젊은이다. 능력도 있고 기개도 있으며, 속이 좁지도 않다. 최시원에게 잘 맞는 역할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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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병대의 대장 자단. 그 동안은 튀지 않기 위해 조용히 지냈지만, 혁리로부터 능력을 인정받은 후 온 힘을 다해 성을 지킨다. 양적과 함께 활솜씨를 겨루는 장면이 가장 인상적이다. 그렇지만 그의 성격은 분란을 일으키지 않는 타입이라, 혁리가 쫓겨난 후 순순히 팔목이 잘리는 형벌을 받는다. 그리고 결국은 이런 세상에서 돌아서서 유유히 홀로 떠나는 사람이다. 오기륭은 참 오랜만인 것 같은데, 뜻밖에 성룡을 많이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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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기가 맡은 항엄중은 생각보다 비중은 없다. 대신 그의 유창한 중국어에 놀랐다.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지금까지 중국어 연기를 한 국내 배우 중 최고였다. 항엄중이라는 인물은 승부욕이 강한 사람이다. 최종 목표는 연나라임에도 불구하고 혁리를 이기고자 하는 마음에 작은 양성을 끝까지 노리다가 마침내는 목숨을 잃는다.
이들 뿐 아니라 엑스트라로 볼 수 있는 난민들과 외국인 노예도 나름대로 특징을 가진 캐릭터들이다.

혁리와 항엄중의 머리 싸움은 혁리의 완벽한 승리로 끝나지만, 최후의 승자는 두 사람 중 누구도 아닌 양성의 성주이다. 물론 영화가 끝난 후에 조나라의 대군이 양성을 가만히 놔둘지는 미지수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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