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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고서랑은...

    예스러운 배경의 소설과 드라마를 이야기합니다.

취미/뮤지컬과 음악

뮤지컬 <아가씨와 건달들>

by 와룡 2011. 8. 29.


<아가씨와 건달들>
, 오랜만의 공연이다.
내가 좀 더 어렸을 때, 어머니와 언니가 보고 와서 너무너무 재밌었다며 얘기해준 기억이 난다.

올해 뮤지컬 어워즈에서 정선아옥주현이 시상하러 나왔다가, 같이 다음 작품을 하게됐다며 홍보하기에 일정에 넣어두고 있었다. 정선아 - 김무열 라인을 보는 게 주 목적이었는데, 마침 또 예전에 <클로저 댄 에버>에서 보았던 굵은 목소리의 소유자 김영주 씨가 나온다기에 표 예매에 애를 먹었다. 많지 않은 ,세 사람이 동시에 출연하는 주말 공연 중에 좋은 좌석을 잡았는데, 개인적인 일정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김영주 씨는 포기해야했다.

스카이 역 김무열

사라 역 정선아

아들레이드 역 옥주현

네이슨 역 이율



<아가씨와 건달들>은 정말 재미있는 뮤지컬이다.
실상 노래는 별로 쏙 들어오는 게 없지만, 내용이 너무 재미있고 음악도 신난다. 등장부터 남다른 우리의 주인공, 20층에서 떨어지고도 살아남은 도박의 전설 스카이는, 이미 그 캐릭터부터 한 수 먹고 들어간다. 게다가 김무열이라니!


<쓰릴미>
에서 겉모습에서는 류정한을 완전히 패퇴시켰던 김무열 씨. 드라마에 출연했을 때는 생각보다 그 매력이 안 드러나서 아쉬워했는데, '스카이'로 제대로 살아났다. 아마도 '스카이 매스터슨'이란 인물이 김무열의 이미지(어쩌면 본모습일지도? ㅎㅎ)와 꼭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리라.

배우 - 영화배우든 뮤지컬 배우든 - 의 눈빛과 대사만 보고 이렇게 가슴 두근거려 본 적도 참 오랜만이다.
<쓰릴미>에서부터 눈여겨 보긴 했지만, <아가씨와 건달들>을 통해, 난 김무열 이란 사람을 류정한 다음으로 좋아하는 남자 뮤지컬 배우로 꼽기로 했다.
하긴 공식 홈피 소개만 봐도 내 이런 반응은 너무나 당연한 것.

"매 공연 여성 관객을 설레게 하는 뮤지컬 계의 블루칩"

사라의 상상 속에 나오는 스카이가 운동하다 더워서 샤워를 한다고 했을 때, 그 얼마나 많은 여성 관객들이 비명을 질렀던가!  인정, 나도 그중 한 명이었다.

타고난 도박사 스카이는, 구세군에서 일하는 성실한 신자인 사라를 데리고 하바나로 여행갈 수 있냐 없냐를 두고 네이슨과 내기를 한다. 순진한 사라는 온갖 사탕발림, 느끼하지만 관객들을 웃게 만드는 멘트에 반쯤 넘어갔다가, 결국 기도회에 사람들을 모아주겠다는 그의 약속을 믿고 하바나에 동행한다.

사라 역의 정선아는 워낙 파워풀하고도 귀여운 배우라서 기대를 많이 했는데, 아쉽게도 그녀의 가창력을 감상할 노래가 없었다. 그녀의 노래는 <아이다>의 'My Strongest suit' 로 만족해야 하는 걸까.
정선아가 아들레이드 역을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14년 동안 네이슨의 약혼녀로만 지낸 아들레이드는 옥주현이 맡았다. 아들레이드는 히스테리컬한 노처녀로 관객을 웃겨야 하는 역할이어서, 그간 옥주현이 맡은 역할과는 아주 다르다. 어쩌면 새로운 변신을 위해 이 역할을 선택했을지 모른다.

저 빠른 대사, 주책바가지 같으면서도 귀여운 노처녀 히스테리의 연기까지, 별로 흠잡을 곳은 없다고 생각했고, 앞으로 연기의 폭을 늘려가는데도 도움이 될 것 같았다. 물론, 아들레이드란 캐릭터를 보니 행동이나 노래가 김영주에게 꼭 어울리긴 했다. 하지만 뭐, 옥주현도 그리 실패는 아닌 듯 하다.

주인공들도 멋지지만, 늘 세트로 나와서 웃음을 선사하는 베니와 나이슬리는 정말 대단했다. 특히 베니 아저씨 - 실제 나이는 모르겠지만^^; - 임춘길 씨는 어쩜 저렇게 춤을 잘 추는지! 끊임없이 대사하고 춤을 추니, 커튼 콜에서 저렇게 환호를 받는 것도 당연하다.

시카고의 큰 손, 어린이 집을 경영하는 총 든 도박사 빅쥴도 재미에서 뒤지지 않는다. 무게있는 모습과 묵직한 목소리에 어울리지 않는, 귀여운 주사위 던지는 모습을 보면 누구나 웃음을 터트릴 것이다.

이야기에서 절대 빠질 수 없는 베니와 나이슬리


수많은 도박사들의 주사위 놀이는 주사위 던지는 모습과 춤이 잘 어우러져 지루하지 않고, 동작도 화려하다. 아가씨와 건달들이라지만 아가씨는 단 둘이고 건달들이 훨씬 많기 때문에, 이 뮤지컬은 무척 남성적이다. 남자들의 군무는 <영웅>이라든가 <바람의 나라>에서도 몇 번 봤지만, <아가씨와 건달들>에서는 심각하지 않으면서도 절제가 있어서 훨씬 보는 재미가 있다.
스카이와의 내기에 져서 기도회에 모인, '최고급의 죄인'들이 떠들어대는 모습이나 고해하는 모습에서도 한 시도 웃음을 참을 수 없다.

죄인들의 기도회


난 그저 우습기만 한 뮤지컬은 다소 감동이 덜 할 거라 생각해왔다.
하지만 <아가씨와 건달들>은 한참을 재미있게 웃고 났는데도 계속 여운이 남는다. 돌아가면서도 계속 그 장면들을 되새기며 낄낄거렸다.

심각한 일 따윈 잊어버리고 신나게 웃고 싶을 때 보기엔 꼭 맞는 공연이다.
게다가 캐스팅도 환상적이어서 거의 실패하지 않을 것이라 본다.

시사 프로그램에서 뮤지컬 배우들이 받는 옳지 못한 대접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앙상블들은 말할 것도 없고, 스타 배우들도 처지는 비슷했다. 대부분 공연이 끝난 후에 출연료를 받는 구조라서, 흥행에 실패하면 아예 못받는 수도 있다고 한다.
뮤지컬 관객이 증가하면서, 오픈하는 공연의 수는 브로드웨이보다 많은데, 그 중 성공하는 작품은 손에 꼽을 정도라고 한다. 수준이야 어떻건, 아이돌을 대거 영입해서 그네들에게 비싼 출연료만 넘겨주려하지 말고 약자이지만 뮤지컬에 인생을 건 진짜 배우들에게 혜택이 돌아갔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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