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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고서랑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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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영화와 드라마

한국영화의 위상을 올려놓다, <놈놈놈>

by 와룡 2008. 7.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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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한번쯤 그렇게 느꼈겠지만, 광고 많이 하는 영화치고 제대로 된 영화 못봤다. 광고를 보면서 기대치가 올라가기 때문이겠지만 말이다.
한국 영화를 썩 좋아하는 편은 아니고, 특히 욕설이 난무하는 한국 액션 영화(말하자면 조폭 영화겠지...)에 질린 나였기 때문에, 또한 정우성이니 이병헌이니 별로 좋아하지 않는 배우들이라 1년 전에 이 영화 이야기가 나왔을 때 별달리 보고싶지 않았다.

그런데 최근 개봉을 앞두고 TV를 틀기만 하면 나오는 예고편이 시선이 갔다. 이병헌의 카리스마있는 분장(?)과 칼솜씨, 이어서 정우성의 말 위의 총질 장면이 아주 괜찮아보였다. 저 정도라면 세계적인 액션 영화에 못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어서 꼭 한번 봐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내가 본 한국영화 중에서는 단연 최고였다. 엄청난 흥분을 안고 극장을 나와 보니, 아쉽게도 다른 사람들도 똑같이 호평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래도 어떤가. 비록 잔인한 장면이 좀 있
긴 하지만 장면 하나 하나가 빼 놓을 게 없을 정도로 화려한데다 스토리도 이정도면 나쁘지 않다고 느껴진다.

굳이 스토리를 따지자면 요즘 나온 액션 블록버스터 중에 스토리 탄탄한 게 어디 있단 말인가? <아이언맨>이 그렇게들 재밌다지만 대체 그 내용이 뭐냔 말이다. 그나마 <놈놈놈>은 '비밀지도'라는 한가지 큰 줄기를 따라 색다른 캐릭터들이 치고 빠지고를 계속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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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언맨>같은 경우 부족한 데 하나 없는 멋쟁이 영웅의 원맨쇼일 뿐이다.
더욱이 쓰잘데 없는 러브라인을 단 한 순간도 늘어놓지 않은 점이 마음에 든다. 어차피 세 등장 인물의 매력 때문에 주변 여자들을 끼워넣어봤자 몰입도 안되었을 것이다.

한 가지 재미있는 점은 배우 소개시 이들 세 사람을 새로 비유해놓았다는 점이다. 옷 색깔이나 행동거지나 - 정확히 송강호를 빗댄 새가 뭔지 모르겠지만 - 지독한 까마귀 박창이나 제일 마지막에 먹이를 낚아채고 유유히 날아가는 매 박도원의 모습은 정말 딱 그대로다. 후반부 대규모 전투에서 멋지고 신나는 음악과 함께 달려오는 박도원을 보면서 처음의 그 장면이 자꾸 떠오를 정도였다.
정우성이라는 배우가 멋있다고 생각해본 적이 한번도 없었는데 이 영화를 보고 새삼 깨달았다. 비록 카리스마 철철 넘치는 이병헌의 캐릭터가 좀 더 강렬하긴 하지만, 아무래도 길이가 다르달까, 서부 영화에서 나올법한 패션이 저렇게 잘 어울리는 것은 확실히 정우성이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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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 마음에 든 것은 영화 음악이다. 어쩜 이렇게 극 중 느낌과 딱 맞게 만들었는지. 탁 트인 광활한 사막 장면과 빠른 템포의 음악만으로도 이 영화는 '제대로 만들었다'는 평을 들을만 하다.
손가락 귀신의 정체를 마지막에 밝힌 것도 나름 반전이라고 생각하면 귀엽게 느껴진다.
윤태구가 조선땅에 있을 때 어떤 사람이었는지, 박도원의 꿈이 무엇인지 풀리지 않은 의문들이 있지만 내용에 몰입하는데 방해가 될 정도는 아니다.

세 사람의 마지막 싸움은, 말 그대로 나쁜 놈은 죽고 좋은 놈이 이겼다. 이상한 놈이야 운이 좋은지 나쁜 건지 어쨌건 살아나 제 갈길을 간다.
단 한 발로 결정짓는 싸움인 줄 알았는데 마구잡이 총질이 될 줄이야. 저 정도라면 셋 다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텐데, 어떻게 또 한 명만 죽고 둘은 살아났다. 이 부분이 좀 엉성할 수 있겠지만, 영화 곳곳에서 보이는 멋진 장면들과 송강호의 코믹 연기, 숨 쉴틈도 주지 않고 바삐 달려가는 박진감 있는 전개가 그 정도 단점은 커버해주리라 생각한다.

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 본래 좋아하지 않는 영화, 좋아하지 않는 배우라서 기대도 크지 않았기 때문에 재미있게 느껴졌을지도. 그래서 기대를 많이 한 사람들은 똑같은 <놈놈놈>을 보고도 한숨만 푹 내쉴지도. 하지만 내가 본 <놈놈놈>은 한국 영화의 위상을 한 단계 올려놓을 만한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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