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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고서랑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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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영화와 드라마

조선왕조 악녀 이야기

by 와룡 2013. 5. 16.

오랜만에 글을 써 본다.

오래 돌보지 않았더니 이상한 댓글이 많이 달려 있어 정리부터 했다. 이렇게 한산한 블로그도 관리를 안 하면 먼지가 쌓이는구나 싶다.


매번 어떤 이벤트가 있을 때마다, 이건 블로그에 써야지 하면서도 미루고 미루다 결국 뭘 써야할지 잊어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오늘은 꼭 써야겠다 싶어 생각나는 대로 써 보련다.


난 사극을 참 좋아한다. 요즘 사극이 많긴 하지만, 대부분 판타지 사극이어서 별로 내키지 않았다. 

장옥정이란 드라마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기대했던 것도 그 때문이다. 오래전부터 장옥정 이야기는 숱한 사극 소재가 되어왔고 그 때마다 늘 재미있었다. (하지만 난 동이는 보지 않았다... 그것은 아마도 판타지 사극일거란 느낌 때문일까.)



김태희, 유아인 주연의 <장옥정, 사랑에 살다> 역시 어떻게 보면 정통 사극은 아닐지 모른다. 

장옥정이 당시 패션 디자이너였다는 설정이나, 숙종이 신하들에게 휘둘려 몰래 사병을 키운다거나 하는 설정 때문에 정극이라는 느낌이 덜 하긴 하다. 

솔직히 나 역시 숙종이 자신을 '짐'이라고 칭하는 걸 듣고 경악했다. 

한 번이라도 사극 대본을 써 본 사람이라면, 한 번이라도 사극을 연출해 본 사람이라면, 한 번이라도 조선왕조 사극 연기를 해 본 사람이라면, 아니 그냥 그 사극을 '보기만 했던' 사람이라면, 조선의 왕이 자신을 뭐라고 칭하는지 정도는 알았을텐데. 그 방송이 나갈 때까지 그 많은 스탭과 연기자들이 아무도 그걸 몰랐다니.

그러니 정통 사극일 수가 없는 거다. 사극을, 역사를 모르는 사람들이 만든 거니까.

 

하지만 역사적 사실에 대해서는 약간의 비약이 있긴 해도 완전히 지어내지는 않았기 때문에 아직 절망하진 않았다. 더구나 이제야 장옥정이 장희빈 다운 악녀의 면모를 갖춰가고 있으니까.

 

장옥정과 숙종이 사랑한 사이였다는 것은 김혜수 주연의 <장희빈>에서 이미 써먹은 바 있다. 사실 난 당시 너무 나이든 숙종과 장옥정의 사랑이 어쩐지 이상하게 느껴졌었다. 김혜수의 장희빈이 잘 어울리지도 않았고, 어린 세자 시절 사랑했다는 사람들이 마흔은 훌쩍 넘어 보였으니 애틋한 사랑같아 보이지도 않았으니까. 

물론 김혜수의 미스 김은 더할나위 없긴 하다. 


어쨌거나, 두 사람이 정말 사랑했느냐 아니냐로 역사를 왜곡했다 볼 수는 없으니 그 문제는 제외하자.


남인의 허적이 복선군과 함께 숙종을 암살하려다 실패한 장면이 있었다. 뜻밖이지만 이 역시 역사에 기반한 이야기다. 허적의 서출 아들인 허견이 복선군, 복창군, 복평군 세 사람과 역모를 꾸몄다는 고발이 있어 이들 모두 주살되었고, 허적 역시 이에 연루되어 사사당했다는 기록이 있다. 연회에서 숙종을 암살하려 했다는 소문이 있었다고 하는데, 실제로는 남인을 실각시키기 위한 서인 측 음모였다고 한다. 


대비 김씨와 대왕대비 조씨가 대놓고 싸우는 건 조금 심했지만, 두 사람의 당파가 다르고 그 때문에 두 사람이 각각 인현왕후와 장희빈이라는 두 여자를 감싸고 돈 것은 역사적 사실이다. 


그리고 이제는 후궁 첩지까지 받은 상태가 되었으니, 누구나 다 잘 알고 있는 장희빈 이야기를 엉뚱한 방향으로 왜곡시킬 수도 없을 것이다. 그저 좀 더 색다른 시각으로 만들어 보이는 것일테니 판타지스럽지는 않으리라 본다.




이에 더해, 종편에서 방송 중인 <꽃들의 전쟁>도 간간히 보고 있다.

재밌게도, 두 드라마가 똑같이 '사사당한 악녀'를 그리고 있다. <꽃들의 전쟁>의 조귀인은 장희빈 만큼 유명하진 않지만 장희빈 못지 않은 악녀로 나온다. 요즘엔 장희빈을 재조명하는 시기다보니, 오히려 <꽃들의 전쟁>의 조귀인이 장희빈같은 느낌이다.


또 하나 재미있는 것은, <꽃들의 전쟁>에서 조귀인에게 인조의 총애를 빼앗긴 장렬왕후가 <장희빈>에서 장옥정을 이용해 남인 세력을 복귀시키려는 대왕대비 조씨라는 사실이다. 나이 열 넷에 서른 살 많은 왕에게 시집 가서, 10년 만에 남편은 죽고 아이 하나 낳지 못한 채 평생 구중궁궐에서 외로이 산 여자다. 젊어서 조귀인 같은 악녀를 만나 총애를 뺏겼던 그녀가 나이 들어서는 조귀인 못잖은 장희빈을 밀어주는 상황이 된 것이다.




<꽃들의 전쟁>은 대놓고 악녀인 조귀인보다, 조선 시대 여자 같지 않은 강빈과 어린 나이에도 차분하고 고운 장렬왕후의 매력 때문에 보게 된다. 홈페이지 내용에 따르면 마지막에 조귀인을 무너뜨리는 건 장렬왕후인 것 같다.

 

다소 과장된 김현주의 연기 때문에 정통 사극이라는 느낌이 약해지긴 했지만, 인조 시절 이야기를 다룬 정극이 없었기 때문에 처음부터 판타지로 가지는 않으리란 기대를 갖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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