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일 삼국이 함께 제작했다는 <묵공>은 그런점에서 오랜만에 쓸만한 중국영화라 할 수 있다. 주연부터가 이미 스케일이 다르다. 유덕화, 안성기는 말할 것도 없고,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최시원까지 등장한다. 보기 전에는 몰랐지만 보다보니 예전에 좋아했던 또 다른 배우도 나왔다.
묵가에 대해 깊이 알지는 못하지만, 중국 제자백가 중에서 매력적인 학파중 하나이며, 무협과도 연관이 있기 때문에 흥미가 있었다. 그 묵가의 이야기가 주제가 되었다는데다 배우들도 믿을만 해서 이번에는 극장에서 보기로 했다.
때는 춘추전국시대. 조나라가 연나라를 공격하러 가는 길에 하나의 성이 있다. 이 양성 사람들은 항복할 것인가 싸울 것인가를 두고 고민하다가, 묵가에 도움을 요청한다. 묵가는 본디 공격하지 않고 지키는 것을 주장하는 학파다. 공격당하는 곳이 있으면 온 힘을 다해 도와주고도 아무런 이득을 바라지 않는다. 어렴풋이나마 이런 이야기가 기억난다. 묵자가 공격을 당할 뻔 한 어떤 나라를 위해 타국 왕을 설득해서 전쟁을 일으키지 못하게 했다. 돌아오는 길에 공공격당할뻔한 그 나라를 지나다 비가 내려 어떤 집 처마 아래서 비를 피하고 있었는데, 집 주인이 나와서 그를 쫓아냈다는 이야기다. 이런 꼴을 당하고서도 '내 덕분에 전쟁을 면했다'니 뭐니 위세부리지 않는 것이 묵가의 가르침이다.
<묵공>의 재미는 이야기속에 등장하는 수많은 인물이 제각각 개성이 넘친다는 데에 있다.
주인공 혁리야 주인공답게 전형적인 영웅이지만, 그를 따르는 연인 일열이 기마대를 이끄는 장군가문의 딸이라는 것이 특이하다.
양성의 성주 역시 독특하다. 겁많고 눈앞의 유희에만 빠져있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양성을 지키기 위해 그 어떤 것도 마다않는 독한 사람이다. 한번 맡기겠다고 마음먹고 혁리에게 모든 것을 맡긴 후, 위험이 물러갔다고 생각했을 때는 가차없이 은혜를 저버린다. 아들을 잃고서도 슬픔 한번 나타내지 않는, 그러면서도 그렇게 미워할 수는 없는 인물이다.
이들 뿐 아니라 엑스트라로 볼 수 있는 난민들과 외국인 노예도 나름대로 특징을 가진 캐릭터들이다.
혁리와 항엄중의 머리 싸움은 혁리의 완벽한 승리로 끝나지만, 최후의 승자는 두 사람 중 누구도 아닌 양성의 성주이다. 물론 영화가 끝난 후에 조나라의 대군이 양성을 가만히 놔둘지는 미지수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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