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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고서랑은...

    예스러운 배경의 소설과 드라마를 이야기합니다.

소설/잡설

새롭게 나온 <천룡팔부>

by 와룡 2020. 7. 9.

김영사가 정식 출간하는 김용님 작품 다섯 번째, <천룡팔부>가 나왔다. 사실 나온지는 조금 되었는데, 이런저런 일로 이제야 소개글을 써본다.

최근 재간된 무협 소설을 함께 찍어봤다

김용님 작품 중에 내가 가장 좋아하는 소설이 <천룡팔부>다. 그 다음 좋아하는 것이 <소오강호>. 김영사에서 <천룡팔부>, <소오강호>, <녹정기>를 출간한다고 했을 때 난 꼭 천룡팔부를 맡고 싶다고 소신 있게 내세우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그렇게 되지는 못했지만, 어쨌든 <소오강호>도 워낙 좋아하는 소설이어서 어느 쪽이든 즐겁게 했을 것이다.

솔직히 말해 어린 시절 무협 소설에 푹 빠져 있었을 때는 보고 보고 또 봤는데, 최근에는 드라마만 보고 소설을 읽지 않아서 자세한 내용은 많이 잊어버렸다. 게다가 그때는 빌려보기만 했지 가진 책도 없어서, 그동안은 읽고 싶어도 읽을 수 없는 상태였다. 마침 새롭게 나와줬기에 새로운 마음으로 읽어 보는데....

 

나는, <천룡팔부>의 진주인공은 어디까지나 소봉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단예와 허죽이 어떤 스토리를 일궈내건 그다지 중요하게 생각지 않아서 기억도 많이 옅어졌다. 하지만 아는 사람은 알다시피, <천룡팔부>의 큰 줄거리는 단예가 중심이라 초반부터 단예 이야기가 펼쳐진다. 소봉이 나오려면 한참 기다려야 하는데, 그 초반부의 단예 이야기를, 내가 썩 좋아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새록새록 떠올리고 있다.

올해 찍는 드라마 <천룡팔부>의 소봉. (출처: 바이두백과)

처음 <천룡팔부>를 본 것은 <녹정기>를 보기 전이었으니 몰랐는데, 지금 보면 단예는 위소보의 전신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많은 사람들이 녹정기를 걸작으로 평하는데도 나만은 끔찍히 싫어하는 까닭은, 주인공 위소보 스타일이 나와 전혀 맞지 않기 때문이다. <천룡팔부>에서는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인 소봉이 크게 활약하기 때문에 단예 캐릭터가 주는 답답함이 많이 희석되었던 것 같다. 

 

이번에 나온 <천룡팔부>는 <소오강호> 때처럼 신수판이다. 달라진 부분이 꽤 많다고 하는데, 그 내용은 오래전에 2014/01/01 - [취미/잡설] - 천룡팔부 - 김용 개작 최신판의 변화에 정리한 적이 있다. <소오강호>가 소소하게 변했다면 <천룡팔부>에는 그야말로 결말이 바뀌는 대 변화가 있었다. 소용녀 뒤를 잇는 선녀의 대명사인 왕어언이 단예와 짝이 되지 않는다는 것. 단예는 그토록 왕어언을 사랑했지만, 결국에는 그녀를 신선 누님처럼 여겼을 뿐임을 깨닫고 왕어언과 혼인하지 않는 선택을 한다. (사실 아직 끝까지 보지 않아서 이게 원인의 전부인지는 파악하지 못했다)

올해 찍는 드라마 <천룡팔부>의 단예와 왕어언. (출처: 바이두백과)

단예는 실존 인물인 대리 헌종 단정엄(단화예)에서 따온 캐릭터고, 책에서도 그 이름이 언급된다. 헌종 단정엄의 황후는 왕씨라고 하니, 김용님도 그에 따라 단예의 짝에게 왕씨 성을 주었을 것이다. 다만, 시간이 흐르면서 크거나 사소하게 어긋난 부분을 맞추는 과정에서 단예의 짝이 바뀌는 결과가 되었다.

나는 그저 이야기가 재미있고 그에 담긴 소소한 교훈 때문에 <천룡팔부>를 좋아했지만, 그런 내 수준과는 달리 <천룡팔부>에 담긴 문화적, 종교적 의미가 아주 깊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그중 하나를 가져와 보자.
<천룡팔부>의 주제는 '구부득(求不得, 바라지만 얻지 못함)'으로, 이야기에 나오는 사람 거의 모두가 바라고 또 바꾸려 하지만 정해진 운명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따를 자 없는 영웅임에도 천명이 정해준 출신 때문에 중원무림에서 쫓겨나야만 하는 소봉의 운명이나, 부처에 귀의하려는 순수한 마음을 지녔지만 결국 사랑에 빠져 환속하게 된 허죽의 운명이 그렇다. 그렇게 볼 때 그토록 일편단심으로 쫓아다닌 왕어언과 맺어진 단예의 이야기는 주제에서 어긋난다. 단예와 왕어언의 결말이 바뀐 것은 그 때문이라고 한다.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분석이다.

올해 찍는 드라마 <천룡팔부>의 허죽. (출처: 바이두백과)

개인적으로는, 단예가 가장 먼저 연모의 정을 느낀 사람이자 단예를 부군으로 섬기기로 맹세한, 그리고 심지어 단연경 때문에 심각한 사이까지 발전할 뻔했던 목완청이야 말로 단예의 올바른 짝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신수판의 결말이 마음에 든다. 왕어언과의 이야기라면, 아무런 이유 없이 신선 누님을 닮은 얼굴 하나 때문에 졸졸 쫓아다닌 것뿐인데, 그런 사랑이 생사고락을 함께 한 목완청과의 정을 이겨서는 안 되는 거 아닐까. 물론 독자로서의 짧은 의견이다.


<천애명월도>, <소오강호>, <다정검객무정검> 이야기를 할 때도 썼지만, 이번 <천룡팔부>는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판권료를 지불한 정식 출간작이다. 예전에 나온 것은 구하기도 어렵고, 작가가 직접 수정한 내용이 들어가지 않은 구판이다. 구판 내용이 더 좋은 사람도 있겠지만, 혹 <천룡팔부>를 처음 보는 사람이라면 꼭 정식 출간된 작품을 구매하길 권한다.

나도 우리나라가 베른 협약 가입 전에 판권 없이 출간한 무협 소설을 보고 무협 팬이 된 사람이니, 그때 그렇게라도 출판해준 것을 고마워해야 한다고 말한다면 뭐라 따질 말이 없다. 하지만 지금처럼 정식 출간작이 나오는 상황에서 구태여 구판을 살 필요는 없을 것이다. <소오강호>를 번역할 때는 어떻게 하면 독자들 입맛에 맞게 번역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에 구판을 여럿 구해서 읽었는데, <천룡팔부>는 구판에 돈을 쓸 필요가 없어 다행이다. 그때문에 구판에 무엇이 잘 되었고 무엇이 못 되었는지 확인할 수 없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번에 나온 작품이 원작에 충실하게 번역되었다는 것이다.

무슨 이유 때문인지 도통 모르겠지만, 내가 무협 소설을 즐겨볼 때만해도 원작에 있는 내용을 잘라내거나 없는 내용을 덧붙이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소오강호>만 해도 첫 장 한 장을 통째로 빼먹은 것으로 유명하다. <다정검객무정검>은 주인공 이름을 바꾸고 결말에 없는 내용을 집어넣었다. 그리고, 몇 달 전에 <절대쌍교> 드라마를 보고 흥미가 생겨 새삼 원문을 찾아보다 알았는데, <절대쌍교> 예전 번역본 역시 도입부에 원작에 없는 설명과 묘사를 추가했고 캐릭터 대사가 자극적으로 바뀌었다. (새삼스레 강풍 이미지 와장창) 그렇기에 정말로 원작을 보고 싶다면, 요즘 번역되는 책을 추천한다. (하지만 절대쌍교는 안 나오는 거겠죠....)

올해 찍는 드라마 <천룡팔부>의 소봉. 배경이 멋져서 올려본다. (출처: 바이두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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