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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고서랑은...

    예스러운 배경의 소설과 드라마를 이야기합니다.

미디어/영화와 드라마

드라마 <장가행>

by 와룡 2021. 4. 17.

 

 

중국 인기 만화 작가 샤다(夏达)의 역사 기반 만화 <장가행>이 드라마화되었다. 배경은 당초. 내가 좋아하는 시대여서 찜해두고 있다가 마침 <제황서>의 여주인공이 디리러바로 결정되었다기에 여주인공을 미리 알아둘 겸 보기 시작했다. 그래서 말인데, 보다 보면 왜 디리러바에게 제황서 여주인공 자리를 줬는지 짐작이 간다. <장가행>의 주인공 이장가 역시 모략과 무력을 모두 갖춘 여자니까.

사실 드라마가 나온다고 했을 때 내용이 궁금해서 만화를 조금 봤는데, 심각한 몰개연성과 먼치킨 설정 때문에 금방 접었다. 드라마는 생각보다 그 부분을 많이 희석하려고 한 듯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뒤로 갈수록 원작의 향기가 느껴지기는 한다. 그래도 초반부에서 나가떨어질 정도는 아니어서 잘 각색했다는 생각이 든다. 제작진이 좀 더 역사에 맞게 하려 노력했다고 들었는데, 어쩌면 그래서 초반부가 내게 좀 더 매력적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여기서부터는 스포에 주의하세요!

이장가는 누구인가

드라마 소개에 잘 나와있지만, 주인공 이장가는 당고조 이연의 큰아들, 황태자 이건성의 딸이다. 물론 가상 인물이다. 현무문의 변이 벌어져 이건성과 이원길이 피살되고 이건성의 어린 아들 다섯 명이 주살되던 날, 이장가는 어머니 덕분에 운 좋게 죽음을 면해 달아났다. (실제 역사에서는 이세민도 조카딸들은 살려주었다. 여자는 어차피 작위를 잇지 못하기 때문일까)

어려서부터 숙부인 이세민과 명사 위징에게 가르침을 받아 무예를 배우고 모략을 배웠다는 설정이라,  평소 남장을 하고 잘 돌아다닌다. 돌궐 사자들이 왔을 때 돌궐 청년들과 축국 시합에서도 남장하고 등장해서 팀을 승리로 이끌기도 했다. 무관심한 아버지보다는 다정했던 숙부를 좋아했던 이장가는 어머니까지 죽자 이세민을 죽여 복수하려 했으나 실패하고 황태자 인장을 훔쳐 유주로 달아났다가, 나중에는 삭주를 거쳐 돌궐로 들어간다. 

 

원작 만화의 이장가 (출처: 바이두 백과)
드라마의 이장가 (출처: 바이두백과)

 

현무문의 변이 일어나기 전에 이장가의 어머니(태자비인지 아닌지 명확하게 말하지 않음)가 이건성이 이세민을 죽이려는 모략을 꾸미는 것을 엿듣는 장면이 있다. 이건성이 이장가를 몹시 아끼며, 아련한 눈빛으로 어머니에게 안부 전하라는 말을 하는 것을 보면 저 두 사람의 관계가 심상치 않다. 게다가 그일 이후 이장가의 어머니는 현무문의 변이 있던 날 이장가를 일부러 멀리 보내며 사별을 암시한다. 흐름으로 보아 이세민이 걱정되어 소식을 전했고, 자신은 그게 마음에 걸려 자결하려던 것 같다. 이장가를 살리려고 내보낸다는 것을 봤을 때는 이세민이 자기 가족을 다 죽일 줄 알았던 것도 같은데, 설마 그렇게까지 해서 이세민을 살리려고 한다는 건 말이 되지 않으니, 그냥 설정 오류라고 생각하자.

남자 주인공은 누구

원작 만화에 따라 남자 주인공은 당연히 돌궐 가한의 양자, 아사나준이다. 그런데 초반부터 서브남들이 등장한다.

첫 번째는 위징의 아들인 위숙옥. 청매죽마이나 이장가가 마음이 있었던 것 같지는 않고, 이세민의 딸 이낙언이 마음에 둔 남자다. 위숙옥은 실존 인물이며 훗날 당태종의 사위가 되니 이낙언과 혼인할지도 모르겠다. 서브남으로 설정된 것 같으나 행동이 이랬다 저랬다 하는 데다 별다른 활약도 없어서 왜 등장시켰나 싶은 인물. (설마 이런 인물을 등장시켜 놓고 역사 고증했다고 하는 건....)

두 번째 서브남은 두여회의 양자 호도. 여기서 hold the door가 생각나겠지만, 다행히 지나가는 찌질남 1처럼 등장했다가 차차 매력을 선보여 위숙옥을 뛰어넘는 사람이다. 배우 목록에도 이장가, 아사나준에 이어 세 번째로 나오는 것을 보면 그만한 분량과 역할이 있는 듯하다. 냉혈 무정하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츤데레. 아버지의 명으로 어떻게든 이장가를 죽이려고 쫓아다닌다.

 

츤데레 호도. 만날 뭐라하면서도 위숙옥의 물이 떨어지자 제것을 던져준다.

 

원작 만화에 초반 서브남은 없고 아사나준도 삭주에 가서야 만나기 때문에, 이들의 등장만으로도 이 드라마가 만화보다는 로맨스에 힘을 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낙언과 아두

이낙언은 원작 만화에 없는 캐릭터로, 이세민의 딸이다. 어린 시절부터 이장가와 친하게 지냈는데, 아버지들의 싸움으로 이장가와 어긋나면서부터 그녀에게도 시련이 찾아온다. 이세민이 태자 책봉을 받은 뒤 돌궐과의 화친 대상으로 자신이 지목되자, 이낙언은 위징의 계략에 따라 병을 핑계로 낙양으로 가게 되었는데, 그만 이장가를 쫓는 위숙옥과 호도를 몰래 따라나서다가 그들이 이장가 사건으로 정신없는 사이 인신매매단에 납치된다.

이장가가 그야말로 못 하는 것이 없는 완전무결 캐릭터라면, 이낙언은 그야말로 귀하게 자라 할 줄 아는 게 없지만 마음만은 착한 아가씨다. 둘 다 궁궐을 떠나 초야를 떠돌지만 이장가가 수많은 사적을 세우는 동안 이낙언은 정말이지 어떻게 살아남았는지도 이해가 안 될 지경이다. 아마도 이장가에게서 느껴지는 먼치킨 냄새를 지우기 위한 반대 캐릭터가 아닐까 싶다.

 

이장가에게 매달린 이낙언
우는 게 귀여운 이낙언

 

아두는 원작의 캐릭터지만 설정이 약간 바뀌었다. 현무문의 변 당시 이장가가 숨어든 과자가게에서 만났다가 이장가의 멋짐(?)을 보고 제자로 삼아달라며 끈질기게 쫓아온 아이. 이장가가 자기를 따르면 힘들고 위험하다고 아무리 말해도 이렇게 사느니 죽더라도 멋지게 살아보겠다며 끝끝내 따랐고, 이장가도 아두의 그런 끈질김과 의리를 마음에 들어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드라마에서는 삭주에서 비통하게 목숨을 잃는다. 

 

죽음을 앞둔 아두

 

마음에 들었던 점

드라마 <장가행>의 초반부, 이장가가 유주와 삭주에서 겪는 일은 복수극도 아니고 정치 싸움도 아니며 로맨스도 아니다. 흡사 삼국지를 보는 느낌인데, 나는 이 점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요즘 중국 황실을 그린 드라마는 기본적으로 정치 싸움이 많아서 이런 내용은 드문 편이다. 그나마 <구주표묘록>일까? (정극으로 볼 수 있는 <대진제국>같은 것은 빼고....)

그리고, 이장가의 사적에 집중하는 대신 주변 인물들 이야기를 적절히 섞었다. 형과 아우, 조카들을 제손으로 죽인 냉혈 이세민이 고뇌하는 장면. 이세민의 두 모사 두여회, 방현령의 대조되는 캐릭터성. 태자를 모셨던 위징과 그를 회유하는 이세민. 이런 역사 인물들의 재미나고 감동적인 이야기 외에도, 가상의 인물들이 등장해 이장가를 좀 더 어른스럽게 다져주기도 한다.

유주의 도위 심고는 태자 이건성의 옛 부하로, 이장가가 가짜 전령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여강왕을 진압하는 일에 도움을 주었고, 호도로부터 그녀를 숨겨준다. 그런 다음, 자신과 함께 떠나자는 이장가의 제안을 거절하며 이런 말을 남긴다.

"저는 비록 태자의 옛 부하이나 당나라의 장수입니다. 유주는 국경이며 제 책임은 이곳을 지키는 것입니다. 이런 도리를 모른다면 무엇을 가졌든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아버지의 옛 물건이며, 이세민은 가질 자격이 없다고 생각해서 훔쳐낸 태자의 인장. 이장가는 이 말을 듣고서 인장을 포기하고 쫓아온 위숙옥에게 넘긴다.

이장가를 가르치는 두 번째 인물은 삭주 자사 공손환이다. 이 인물은 원작 만화에도 등장하는데, 원작 만화에서는 그저 훌륭한 관리로서 이장가의 재능을 알아보고 밀어주는 역할만 하는 반면, 드라마에서는 그녀에게 가르침을 주기도 하고 백성의 소중함을 알려주기도 한다. 공손환이 행군 총관 사마도에게 붙잡혀 그를 구출할 계획을 세울 때, 이장가는 삭주의 병사는 병부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오직 자사의 명령만을 따른다는 말을 듣고 유주에서와 비슷한 깨달음을 얻는다.

마음에 들었던 전투

삭주에서는 네번의 공성전이 벌어진다. 드라마 <장가행>은 만화 원작이라는 점을 살리려 했는지, 일부 장면을 만화화해서 보여주는데, 전쟁 장면도 거의 만화로 나온다.

 

만화로 표현한 공성전
그래픽으로 처리한 공성전 장면

 

첫 번째 싸움은 돌궐 웅사(熊师)의 공격으로 시작되나 공손환이 복병을 이용해 여지없이 깨뜨린다. 두 번째 역시 웅사와의 싸움으로, 이때는 이장가의 계책대로 물길을 막아 돌궐 기병대를 유인한 뒤 물을 풀어 쓸어낸다. 세 번째는 우리의 남주인공 아사나준이 이끄는 응사(鹰师)와의 싸움이다. 여기서 아사나준이 처음으로 제대로 된 치장(?)으로 등장한다.

 

그 전의 장사치 차림은 잊어라. 이게 진짜 아사나준이니.
원작 만화를 연상시키는 아사나준의 모습
원작 만화의 아사나준 (출처: 바이두백과)

 

이 시점에서 아사나준은 이미 이장가에게 마음이 있어서, 일부러 심장을 비껴나가게끔 활을 쏜다. 부상 입은 공손환 대신 지휘하던 이장가가 활을 맞고 쓰러지자 돌궐군의 사기가 크게 올랐지만, 이장가가 곧 다시 벌떡 일어나는 통에 돌궐군은 이대로는 싸울 수 없다며 퇴각한다.

 

장수로써 싸우는 이장가. 이런 장면을 보면 확실히 <제황서>에 캐스팅 될만한다는 생각이 든다.

 

마지막 싸움은 돌궐 가한의 계략으로 시작한다. 돌궐 가한은 돌궐군더러 대주를 공략하여 당나라군의 갑옷으로 갈아입은 뒤 원군을 가장해 삭주성을 공략하려 하지만, 원군을 청하러 홀로 떠난 아두가 이 소식을 접한다. 아두는 삭주로 돌아가려다가 돌궐 웅사에 붙잡힌다. 본래부터 아사나준과 경쟁 관계인 데다 삭주 공략에 두 번이나 실패한 웅사 사령관(이름을 모르겠다)은 아두를 그냥 죽이려다가 아두가 자신을 이용해 이장가(이 당시 이름은 이십사)를 항복시키라고 권하자 군대를 끌고 삭주성으로 달려간다. 

물론, 아두는 이장가를 설득하려던 것이 아니라 돌궐의 계략을 알려주려던 것이다. 붙잡힌 아두를 보고 이장가는 몇 번이나 달려 나가려고 하지만, 부장들이 백성을 생각하라면서 뜯어말렸고, 아두 역시 "난 대장군이 될 거야"라며 자신 때문에 대사를 망치지 말라는 뜻을 전한 후 "대주는 함락되었고 원군은 없다!"라고 외치고 돌궐군의 칼에 목숨을 잃는다.

 

마지막으로 이장가를 향해 절하며 자신은 대장군이 될 거라며 다짐하는 아두
아두의 죽음

 

아두의 죽음으로 분노한 이장가와 당군은 출격하여 마구 싸우고, 뒤늦게 원군을 가장하고 도착한 돌궐 응사는 이 장면을 보고 퇴각한다. 죽은 아두의 무덤에는 <대장군 아두>라는 비석이 세워진다.

연이은 돌궐의 공격에 원군은 바랄 수도 없는 상황이 되자, 공손환은 항복을 결정하고 아사나준을 만난다. 그의 목적은 자신의 목숨을 내주고 백성의 안전을 보장받는 것이었고, 아사나준도 이를 받아들인다. 어떻게 적군에게 항복할 수 있느냐며, 적군을 성으로 유인해 불을 지르고 결사 항쟁하자는 이장가에게 공손환은 "성을 지키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백성을 지키는 것이 목적"이라며 그녀가 군주라는 것을 알고 있으니 앞으로 군주에게 삭주 백성을 맡기겠다고 한다.

 

자결하는 공손환
공손환의 수급을 들고 항복하는 이장가

 

마음에 들지 않은 점

삭주 이야기는 상당히 내 마음에 들지만, 이걸 보고 있으면 구태여 '피살된 전 태자의 딸', '도망친 군주', '여자', 라는 설정이 왜 필요할까 하는 의문에 휩싸인다. 원작의 이장가가 삭주에서 고립무원에 처한 까닭은, 이장가가 삭주에 있다는 것을 알고 돌궐 손에 죽게 만들려는 두여회의 계략이었다. 당시 위수의 맹약이 있었던 만큼 장안에서 삭주까지 보낼 군대가 없다는 이유였다. 이장가가 살아서 달아난 당시, 도사 이순풍이 점성술로 당나라가 여자의 화에 처할 것이라는 예언을 내렸기에 두여회든 방현령이든 끝끝내 그녀를 죽이려 한 것이다. 그런데 드라마는, 원작에서 황당한 점을 지우고 역사를 고려하려는 듯한 제작진의 정책 탓인지 이런 내용이 사라져서 삭주에서 싸우는 이장가의 배경이 무의미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귀하게 자란 열 댓살 군주가 모략에 능한 것도 놀랍지만 싸움까지 전문(?) 군사들보다 잘한다는 게 말이 될까? 가상 역사라고 한들 기가 막히는데 실제 역사 배경이라고 생각하면 더더욱 납득이 가지 않는다. <랑야방>의 예황 군주는 시대적으로 여자의 지위가 낮지 않다는 배경인데다 운남 지역은 국경으로 항상 전쟁이 있었고 어려서부터 아버지를 따라 전투를 배운 설정이 있으니 이해할 만하다. <제황서>도 그렇다. 

이장가는 이세민에게서 무예를 배우고 위징에게서 계략을 배웠다는데, 이건성이 결혼하고 현무문의 변이 있기까지 약 11년밖에 안됐으니 겨우 열 살에 그만한 성취를 이뤘다는 말이다. 설사 태어나자마자 말을 할 줄 알았다 해도, 그때는 아직 전쟁통이라 이세민이 한가하게 조카딸을 가르쳤을 것 같지도 않다. 그리고 위징이 이건성 휘하가 된 건 현무문 변으로부터 약 5년 전일뿐이다. 천재라고 한들, 한 번도 실전을 겪지 못했는데 나가자마자 축국단을 승리로 이끌고(평소에 같이 연습이나 해봤을까?), 난생처음 가본 삭주의 지형을 지도만 보고 척척 알고 수공을 세울 수 있을까? 제갈량도 등장하자마자 개세의 공을 세웠지만, 출사 당시 스물일곱이라는 나이였고 그동안 양양의 명사들과 수많은 토론으로 계략을 갈고닦은 데다 양양에 오래 살아 주변 지형을 잘 아는 덕분이었다. (자꾸 쓰다 보니 그럼 안 보면 되지 뭘 자꾸 따지고 있느냐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아무튼, 원작에 비하면 먼치킨 요소가 덜하지만 그래도 주요 내용이 그렇다보니 완전히 없앨 수는 없었던 것 같다.

더욱이 삭주가 항복한 후 아사나준의 노예가 되어 돌궐로 끌려간 후로, 이야기는 점차 내가 마음에 들어했던 전쟁사보다는 소소한 계략과 이장가의 먼치킨 활약, 소소한 로맨스가 중심이 되어 점점 흥미를 잃는 중이다. 여기서부터는 원작을 보지 않았기 때문에 돌궐에서의 이야기가 궁금해서 좀 더 보겠지만, 아마 계속 이런 식이면 언제 멈출지 모르겠다. 

 

노예라면서 이렇게 큰 막사를 주다니....

 

하지만 내용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드라마 자체는 고급스럽게 만들었다. 허접한 싸움 장면을 연출하는 대신 만화를 적절히 섞은 것도 괜찮고, 배경이나 영상도 멋지다. 촌스러운 그래픽도 없다. 그리고 스피커를 바꾼 덕인지는 몰라도 배경음악이 꽤 괜찮다. 정말 웅장한 전쟁사를 보는 느낌이다.

배우 디리러바, 오뢰를 좋아하는 사람(오뢰는 정말 언제 이렇게 자란건지!), 계략/모략을 좋아하는 사람, 혹은 중국 드라마를 좋아하는데 요즘엔 정말 너무 볼 게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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