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천고서랑은...

    예스러운 배경의 소설과 드라마를 이야기합니다.

미디어/영화와 드라마

<설중한도행>, 왜 이렇게 됐을까?

by 와룡 2022. 3. 27.

수년에 걸친 기대작이었던 <설중한도행> 드라마가 방영되었다. 소식이 늦어서 뒤늦게야 봤고, 본 다음에는 뭐라고 평해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아서 이제야 감상문을 쓴다.

(출처: 바이두백과)

<설중한도행>의 작가 봉화희제후는 <장야>, <경여년>의 작가 마오니와 나란히 불리는 판타지 무협 작가다. 평가를 보면 대강 마오니는 누구에게나 인기 많고 정석을 따르는 작가, 봉화희제후는 호불호가 갈리며 다소 기행을 일삼는 작가 같았다. 어쩐지 김용님과 고룡님 생각이 나면서, 나는 고룡님 파니까 봉화희제후의 작품이 더 잘 맞을 것으로 생각했다. 아무래도 <장야>는 내 취향이 아니었고, <경여년> 드라마는 취향에 맞았지만 각색 덕분이었는지 원작 소설은 딱 와닿지 않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경여년> 드라마 각본가가 <설중한도행>도 맡았기에 당연히 <경여년> 드라마 정도 재미는 보장할 줄 알았다.

그런데 원작 문제인지 각색 문제인지 모르지만, 이건 좀 아니다 싶었다.

스포일러 주의

무엇이 아닌가?

가장 큰 문제점은 서봉년이라는 캐릭터다. 당대 최고 군사 가문의 후계자로서 강호를 떠돌다가 귀국한 후 나라의 문제점을 하나씩 해결하면서 왕위를 이어받는, 한량처럼 꾸미고는 있지만 실상은 속에 온갖 계략이 가득한 서봉년. 그는 남들에게 견제받지 않으려고 무공을 배우지 않았지만, 무제성에서 죽은 노황의 검 상자를 되찾고자 무공을 배우기 시작했다. 최종적으로는 초 고수인 천인 반열에 오르지만, <설중한도행> 시즌 1에서는 (비록 타고났다고는 하지만) 갓 입문한 수준이기 때문에 실력을 보일 일이 많지 않고, 갈등이 생기면 주변 고수의 도움과 자기 말발로 해결한다.

무협 드라마에서 주인공이 무공씬을 별로 선보이지 않는다는 건 크나큰 단점이다. 그렇다고 해서 말발이나 계략이 깜짝 놀랄 만큼 뛰어나냐고 하면, 꼭 그런 것도 아니다. 대부분 아버지의 빽과 계획, 어머니의 옛 지인으로 해결된다. 혼자 지혜로 해결한 일이라면 왕림천 일가를 구하기 위해 정안왕비 배남위를 이용하는 것 정도일까.

정안왕의 계략에 따라 혼자 서봉년을 만나러 온 배남위(출처: 바이두 백과)

캐릭터가 가진 목표도 불분명하다. '아버지와는 다른 길을 가겠다'는 것은 알겠는데, 실상 아버지의 빽을 그대로 이용할 뿐 아니라 결과적으로 주위 사람(저록산, 여전당)을 일부 희생한다. 왕위를 잇기 싫다고 한량 흉내를 내면서도 실제로는 경쟁자들을 견제하는 것도 그렇고, 위험을 피하고자 무공을 배우기 싫다더니 굳이 노황을 핑계로 배우는 것도 어쩐지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 것 같다. 어차피 이제 와서 무공을 배운들 왕선지를 상대할 수도 없지 않나? 처음엔 "언젠가 상대가 될 때 싸우러 가겠다"는 취지라고 생각해서 한참 후 고수가 되어서 만나러 갈 줄 알았는데 이번 시즌에서 갈 줄이야.

과거의 패배와 두려움을 잊고자 자신을 버렸던 노황은 다시 왕선지와 싸우 무제성으로 가기 전에 이렇게 말했다. 3년간 서봉년과 강호를 떠돌면서, 무공도 못하는 서봉년이 무슨 일이건 두려워하지도, 물러나지도 않는 것을 보고 다시 용기를 냈다고. 드라마 서봉년의 강호행 3년을 아주 짧게 보여줘서 그럴 수도 있지만, 노황의 말을 들으면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 목숨이 걸린 위험한 순간에 그가 남들 도움 없이 싸워서 이긴 적이 있었던가? 서초의 옛 군사를 만났을 땐 피하려다가 남궁복야의 도움을 받고, 북량 근교에서는 북량군의 도움을 받고 살아났는데.

강호행 때의 서봉년. 고구마를 훔치고, 남궁복야에게 살려달라고 부탁한다 (출처: WeTV)

서봉년 역을 맡은 장약윤도 다소 아쉽다. <경여년>에서는 그렇게나 찰떡이던 배역이 <설중한도행>에서는 왜 이렇게 겉도는 느낌인지. 딴 세계에서 왔기에 세상 보는 눈이 다르고, 사생아로 태어나 예법에 얽매일 일도 적은 범한에 비하면, 서봉년은 일국의 세자로서 고귀한 신분이고 비록 건달처럼 굴 때도 있지만 나면서부터 예법을 익힌 사람이다. 그래서일까, 어쩐지 세자 역할로 나올 때는 장약윤과 잘 맞지 않는 느낌이다.

두 번째 문제점은 주인공 서봉년이 만나는 수많은 우연이다. 옛날 무협에는 우연과 기연이 성행하긴 했다. 하지만 절벽에 떨어졌다가 최고급 무공 하나 익히지 못하면 주인공이 될 수 없었던 시대는 벌써 2,30년 전의 일 아닌가. 이제 와서 우연과 기연의 남발이라니 얼마나 예스러운지!


서봉년에게 처음 무공을 가르친 사람은 북망의 고수 초광노다. 하필이면 북량 청조정 호수 밑에 갇혀 있다가 풀려나 서봉년을 호위하다 보니 처음으로 도법을 가르치게 됐다. 그다음엔 하필이면 북량의 지지를 받아야 했던 무당파 장문 왕중루가 자신이 평생 익힌 대황정 내공을 서봉년에게 전수한다. 그다음은 검신 이순강인데, 그 역시 하필이면 북량 청조정 지하에 숨어 있다가 서효의 요청으로 나와 서봉년에게 검기와 검강을 가르친다. 마지막에는 도화검신 등태옥이 어머니와의 인연이라며 서봉년에게 제 비검을 넘긴다. 게다가 적인 줄 알았던 살수 하하 낭자도 사실은 서봉년 어머니에게 받은 은혜를 갚느라 곁을 맴돌며 그를 지켜주고 대황정을 흡수하게 해 줬다. 서봉년이 문제를 해결하고 고수가 되는 모든 과정은 어머니와 아버지의 옛 인연 덕분이다. 게다가 주인공 보정 덕분에 뭐든 금세 익힌다. 남들, 예를 들어 남궁복야 같이 재능 있다는 사람도 어려서부터 십수 년간 무공에 몰두한 결과 겨우 1품에 오를락 말락 한데, 서봉년은 성년이 된 나이에 무공을 시작해서 온갖 고수의 가르침을 받으면서도 말 한마디만 하면 척척 알아듣고 익힌다. 이건... 21세기 시청자들의 지적 수준을 비웃는 처사가 아닐까?

세 번째 문제점은 매력적이지 않은 악역이다. <경여년> 둘째 황자일 때는 역할도 잘 어울리고, 나름 반전 악인으로 매력도 있었던 유단단이 맡은 조해는 다소 괴팍한 캐릭터이긴 하지만 제1 악역이라기엔 존재감이 부족하다. 누가 봐도 이길 것 같지 않은 실력이라 뭘 꾸며도 긴장감을 주지 못하고, 연기도 딱딱하다. 정안왕세자도 마찬가지고, 수주공주는 악역 같지만 잠깐 나왔다 사라진다. 마지막에 대결하는, 반로환동한 용호산의 노선배는 제법 계략도 쓰고 해서 꽤 강할 줄 알았는데 서봉년을 속일 수준이 못 되고, 본인도 우유부단해서 서봉년을 죽일지 말지 고민하는 사이 기회를 놓쳤다.

물론, 실질적인 악인은 한 초사와 장거록인데 이들은 서봉년과 마주치기보다는 서효 스토리라인의 악인이다. 정안왕 조형도 괜찮은데 한 에피소드에 그쳐서 아쉽다. 조형을 비롯해 훗날 경쟁자가 될 수 있는 진지표가 캐릭터도 괜찮고 가진 배경도 좋아서 기대를 걸어봄직하지만, 시즌2 이후에서나 볼 수 있을 것 같다. 시즌1은 악역이 약하고, 서봉년을 도와주는 이순강이 너무 강해서 전체적으로 이야기의 긴장감이 떨어진다.

기대되는 악역 또는 반주인공파, 진지표 (출처: 바이두 백과)

저 많은 여자를 어찌할꼬

남성향 무협이 으레 그렇듯, <설중한도행>도 그렇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래도 소설과는 호흡이 다른 드라마니 어느 정도 쳐내도 좋았을 텐데, 모든 여자가 시즌1에 전부 등장하다 보니 이야기가 다소 산만하다.
내가 제일 기대하고 마음에 들어했던 남궁복야('복사'인 줄 알았는데 발음이 '복야'에 가까웠다. 이제 보니 '복야'는 관직 이름이기도 해서 어쩌면 일부러 준 이름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는 초반에 잠깐 나온 후로 온종일 청조정에만 틀어박혀 있어서 후반부에는 얼굴도 보기 힘들다.  그 사이 드러난 두 사람 사이 감정은 서로 의지하는 친구 정도. 이럴거면 왜 벌써부터 등장시켰는지 의문이다. 

남궁복야(출처: 바이두 백과)

강니와의 로맨스도 다소 뜬금없다. 스토리상 가장 오래 함께 지낸 사이긴 하지만, 딱히 감정을 쌓을 만한 서사가 없는데 헤어질 때가 되자 너무나 당연스레 사랑하는 사이처럼 군다. 물론 간간이 '서봉년이 강니를 다른 하녀들과는 달리 대한다'는 언급은 있지만, 수많은 여자에게 둘러싸인 마당에 그런 말로 해결될까? 강니라는 캐릭터도 무매력인 게, 서봉년에게 복수한답시고 무공도 모른 채 덤비는 데다(물론 정말 죽이려는 생각이 없기도 하지만), 싫다면서도 어디 가자고 하면 잘도 따라나서고, 툴툴거리면서도 도와주고, 서봉년이 자신에게 잘 대해주는 걸 알면서도 "나는 내게 속한 것 하나 제대로 가진 게 없어" 따위의 어리광이나 부리고 (어유미 같은 삶을 살기나 해봤을까?), 망국의 공주라고 한탄하면서도 막상 공주 역할을 하러 가자고 하니 거절하는 등 완전히 철없는 어린애다. 그런데 또 주인공 보정을 받아 무공에 자질이 있다고 하니 언젠가 고수가 될 것이라 생각하면 황당하기 그지없다.

어렸을 때 서효에게 이끌려 떠나는 강니. 이때부터 북량의 하녀가 된다 (출처: WeTV)

<경여년>에 이어 또 장약윤과 손발을 맞춘 이순이 맡은 헌원청봉은 그나마 강니 다음으로 스토리를 풀어준 편이다. 강니 이외에 서봉년의 혼인 상대로 언급된 유일한 사람이기도 하고. 하지만 홍서와 청조, 하하 낭자는 출신조차 안 밝혀졌다. 홍서와 청조는 서봉년 곁에 꽤 오래 있었던 사람인데, 왜 곁에 있는지, 본래 신분은 무엇인지 밝혀주지도 않았고 홍서는 후반부에 자취를 감췄다.

두 번째로 맘에 든 청조. 왜 청조의 이야기를 안 해줄까 (출처: https://new.qq.com/omn/20220112/20220112A05Q7L00.html)

기대할 것은 강호의 선배들

기연이 남발하는 스토리, 심각한 주인공 보정, 캐릭터의 무매력에도 불구하고 <설중한도행> 드라마에서 기대할 것이 있다면 바로 강호의 선배와 그들이 만든 강호, 그들이 펼치는 비무다. 소설 <설중한도행> 평가를 보면 강호의 의기가 잘 살아있다고 하는데, 이제 보니 그건 서봉년의 스토리가 아니라 강호 선배들의 스토리였다.

검구황

가장 먼저 노황, 검구황. 검을 만들던 사람이었는데, 수십 년 검을 만드는 동안 깨달음을 얻었고, 천하 10대 명검 중 6자루를 얻어 검 상자에 넣어 다니며 강호를 휩쓸었다. 무제성에서 "천하 제2 고수"로 자부하는 왕선지에게 도전했다가 검 하나를 남겨두고 달아났고, 그후 북량에서 평범한 마부로 숨어 살다가 서봉년과 강호를 유람하는 동안 만든 검에 '육천리'라는 이름을 붙이고 다시 왕선지에게 도전하러 간다.
실상 그가 왕선지에게 간 이유는 서봉년의 눈앞에 있던 난제, 아우 서용상을 쫓아 보내거나 그 힘을 빼앗지 않고도 공존하는 방법을 찾아주기 위해서다. 그는 용호산의 어느 선배 고수(정확히 누군지 모르겠지만 반로환동한 노선배가 아닐지?)에게 왕선지의 무공을 볼 기회를 주고, 그 대가로 사천사 중 한 사람인 조희전이 서용상을 받아주게 한다. 떠날 때는 서봉년에게 사실을 밝히지 않고 "나중에 알게 된다"고 해서 전혀 모르고 있다가 뒤늦게 내막을 알고 가슴이 뭉클했다.

싸워서 제압하면 돼요, 도련님! 검구황의 첫 번째 싸움 (출처: WeTV)

노황은 마부로써 살 때는 마부답고, 검구황으로 돌아왔을 때는 고수답다. 고수로 변신해 호수에서 탈출한 초광노를 제압할 때, 검 상자를 열고 검을 하나, 둘 꺼낼 때 그 카리스마를 잊지 못한다. 그러다가 다시 노황으로 돌아오면 또 어찌나 친근하고 귀여운지.
후반부에 무제성에 도착한 서봉년은 노황의 그림자를 좇아 그가 무제성에서 했던 일을 따라 하는데, 나 역시 그때 다시 본 노황이 몹시 반가웠다.

검구황과 왕선지의 두 번째 비무는 글로만 전해지지만, 검구황이 아홉 번째 검 육천리를 꺼냈을 때 왕선지가 마침내 양손을 다 써서 대항했다는 이야기를 듣기만 해도 그 싸움이 얼마나 웅장했을지 상상이 간다. 검구황은 비록 육지신선 급에 오르진 못했지만 그 비무로 많은 강호인들에게 존경을 받았다.

무제성에 남은 검구황의 검 상자. 이걸 찾는 게 시즌1 이야기다. (출처: WeTV)

원작의 검구황은 흘검노조 수야곡의 제자이자 서촉 검황 소무의 사제로, 왕선지에게 패배해 북량으로 달아난 것이 아니라 서촉에 쳐들어온 서효의 철기와 싸우던 사형이 죽자 복수하기 위해 북량에 들어갔고, 모종의 이유로 북량에 남아 초광노를 호수에 가두는 등 역할을 하다가 서봉년의 호위가 되었다고 한다. 하긴, 초광노를 가둔 사람이 검구황인데, 애초에 북량으로 달아나자마자 검을 버리고 숨어 살았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물론 왕선지에게 지고 검 하나를 잃은 것은 원작 내용과 같다.

이순강

목우마 하나로 강호를 제패해 검신이라 불리는 이순강. 역시 왕선지에게 패배한 후 사라졌다는 소문이 있었는데 알고 보니 북량 청조정 지하에 스스로 갇혀 있었다. 젊었을 때 원수 관계지만 서로 사랑하던 여자가 있었는데, 그가 왕선지에게 패하자 그의 기를 살려주겠다고 도전했다가 그의 검에 찔려 목숨을 잃은 슬픈 사연이 있다. 그래서 역시 원수 관계인 서봉년과 강니의 사랑을 지지하고, 두 사람을 지키기 위해 서봉년의 무제성 행을 도와준다.

생김새나 하는 양은 영 고수답지 못하지만, 검구황과는 달리 승패에 연연하지 않고 세상을 달관한 사람으로, 스스로 천도를 깨우치고 운명을 결정짓는 원대한 자부심과 포부를 지녔다. 그 가르침 덕분에 서봉년은 용호산 고수가 펼친 정신 공격에서 무사히 빠져나올 수 있었다. 검강과 검기에 능해서 양수청사, 일검개천문이라는 세기적인 무공을 창시했고, 이를 서봉년에게 전수한다. 서봉년의 무공 중에 내공은 무당 대황정이지만 기술은 전부 이순강에게 이어받았다. 물론 서봉년은 도를 쓰기 때문에 도기나 도강으로 환원해야 하지만.

용호산에 쳐들어갔을 때 "검도 없잖소?"라는 질문에 보여준 그 무시무시한 검 부르기(剑, 来! 봉화희제후의 다른 작품 제목이기도 하다) 기술은 그저 감동 그 자체다. 그 위협 덕에 싸우지도 않고 나올 수 있었다. 끝난 뒤 "고수는 뒤 돌아보는 거 아냐. 폼 떨어져"하는 가르침 역시 으뜸이다.

이순강 "검, 와라!" 시전 (출처: WeTV)
이순강의 부름에 날아온 검들. 이순강은 여기서 육지신선 반열에 오른다. (출처: WeTV)

왕선지와의 비무는 지나친 그래픽으로 감동이 다소 떨어졌지만, 두 사람의 비무에 '하늘 문이 열린다'는 묘사는 그럴듯했다. 마지막으로 "계속하겠소? 이러다 하늘 문이 열리겠소"라는 왕선지의 지적에 두 사람이 약속이나 한 듯 비무를 멈출 때도 육지신선 급에 오른 강호 초 고수의 품격을 볼 수 있다. 두 사람도 그렇고 도화검신도 그렇고, 인간은 인간 세계에서 살아야 한다는 강력한 의지, 그리고 천계와의 인연을 끊고 인간의 길을 가야 한다는 자신감과 포부가 있어서였다.

원작 내용을 잠시 살펴보자면, 이순강은 왕선지보다 먼저 강호에 이름을 날린 사람이라 오히려 왕선지의 도전을 받았다. 그 비무에서 왕선지의 재주를 아껴 자칫하면 죽이게 될까봐 망설이다가 패배했을 뿐 실력이 모자란 것은 아니었다(이건 드라마에서도 언급되었다). 나중에 연인 녹포 선인이 싸우다 중상을 입자 약을 구하러 용호산에 쳐들어갔고, 실패 후 미쳐 날뛰다가 북량 청조정에 스스로를 가뒀다. 뜻밖에도 서초 출신인데, 오히려 서초를 부흥하려는 조장경과 싸운다.

왕선지

스스로 "천하 제2 고수"라 불러 강호의 누구도 '천하제일'이 되지 못하게 한 불세출의 기재. 동해 무제성에 살면서 수많은 도전을 받았고, 패배자의 무기를 무제성 성벽에 남겨두게 했다. 덕분에 무제성 성벽은 온통 무기로 번쩍거리게 되었다. 도전하러 왔다가 패배한 이들 중에는 그에게 경도되어 스스로 그 성벽을 지키는 역할을 맡는 자들까지 있다. 이 정도만 해도 이미 가슴 두근거리게 하는 스토리다.

서봉년은 노황의 검 상자를 찾기 위해 무공을 배우기 시작하지만, 그렇다고 입문 1년도 안 된 초보가 저만한 고수를 이길 수는 없다. 그래서 이순강이 왕선지를 상대하게 한 다음 자신은 호위들을 이끌고 성벽을 지키는 고수들을 물리쳐 검 상자를 되찾으려 했다. 물론 그것조차 실패해 도화검신이 도와줘야 했지만.

왕선지는 딱히 무기가 없어서 손으로만 싸우는데, 보통 때는 한 손만으로도 능히 도전자를 물리칠 수 있는 사람이다. 하지만 검구황의 아홉 번째 검을 상대할 때 양손을 다 썼고, 당연히 이순강과의 싸움에서도 그랬다. 이순강보다 늙어 보이지만, 사실은 어리다. 그가 "천하 제2 고수"로 자처한 것도 자신보다 먼저 이름을 날렸던 이순강을 위해서라고 한다.

오소가 기습당했을 때 한 초사가 황궁에 있었다고 대답하는 왕선지(출처: WeTV)

서봉년의 어머니 오소가 리양 황궁에서 습격당했을 때 왕선지 역시 그곳에 있었다. 그 당시 없어야 할 사람들이 황궁에 있었다는 언급은 아직 밝혀지지 않은 다른 에피소드가 아닐까 싶다. 어쨌거나 왕선지는 그곳에 한 초사가 있었다는 것을 증명해줬고, 덕분에 서봉년은 한 초사를 어머니를 공격한 원수로 확정하고 복수할 수 있었다.

그 밖의 고수들

옛 서초에서 기대조를 맡았던 충성스러운 신하이자 강호에서 3대 고수로 꼽히는 조장경은 바둑 고수답게 비무할 때도 상대가 취할 행동을 미리 헤아리고, 나중을 위해 미리 포석을 두는 스타일이다. 한때 리양 황궁에 들어가 황제를 죽이려고도 했는데, 실패하지만 무사히 빠져나올 정도로 고수다. 흩어진 서초 사람들을 모아 나라의 부흥을 도모하다가, 공주인 강니가 살아 있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와 데려간다. 그가 나타나서 여씨 집안을 물리치는 장면은 한 편의 바둑 같아서 볼 만하다.

바둑과 무공의 고수 조장경 (출처: https://new.qq.com/rain/a/20220115a0aytm00)

리양의 수로를 책임지는 헌원세가의 맏아들 헌원경성도 독특한 고수다. 어려서부터 무공은 안 익히고 책만 읽었는데, 책에서 뭘 읽었는지 몰라도 배움을 얻어 천상의 경지에 이르는 고수가 되었다. 다만, 가문을 집어삼킨 헌원노조를 물리치기 위해 실력을 숨기고 있을 뿐. 그러다가 딸 헌원청봉이 헌원노조의 복수심으로 인한 쌍수 희생양이 될 처지에 이르자, 상대가 되지 않는 것을 알면서도 목숨을 불태워 육지신선의 경지에 올라 헌원노조를 무너뜨린다.
헌원노조와 헌원경성의 싸움은 그래픽이 과한 편이지만, 죽어서까지 딸을 위해 여러 밀지를 남겨둔 헌원경성 이야기는 감동적이어서 볼 만하다.

무술 씬

무술 씬은 다소 아쉬운 것이, 멋있는 장면도 있지만 답답한 장면이 더 많은 편이다. 아무래도 정통 무협보다는 판타지에 가깝다 보니 치고받고 싸우는 장면보다는 비검, 검기 등이 주류라 그래픽을 많이 썼고, 그걸 잘 보여주려고 슬로 모션을 과하게 넣었다. 초반 검구황과 초광노의 대결은 그나마 도와 검의 대결이라 실제로 부딪히는 느낌도 있고 덜 가짜 같고, 이순강이 부장홍갑 중 수갑을 무너뜨릴 때는 나름대로 이순강의 기술을 설명한다는 점에서 슬로 모션도 괜찮았다. 하지만 그 후부터는 뭔가 신이 날만 하면 자꾸 화면이 느려지는 통에 답답하기도 하고, 제대로 싸우기 보다는 시간만 끌어서 이순강이 해결하는 쪽에 가까워서 흥미도 떨어졌다. 특히 모두가 기대했을 이순강과 왕선지의 비무는 글로만 나온 검구황과 왕선지의 비무보다 못한 느낌이었다. 화려한데 실속이 없다.

그래도 검구황의 검 뽑는 장면(워낙 배우가 실감 나게 몸을 잘 쓴 덕분이기도 하고)이나 이순강의 검 부르기는 다시 봐도 압권이다.

초광노와 검구황의 대결 (출처: WeTV)
부장홍갑 중 수갑과 싸우는 이순강


<설중한도행> 드라마에 주인공의 서사는 부족하지만, 주변 인물 이야기는 무척 세밀하고 각자 나름의 사정이 있어서 원작 소설의 방대함을 느낄 수 있다. 원작의 주인공 서사도 저 모양이라면 다소 아쉽지만, 세계관만으로도 강호를 느낄 수 있다고 한 독자평을 이해할 만하다.
비록 주인공 급 장약윤, 이강희, 유단단은 다소 아쉽지만, 그 윗대인, 서효를 연기한 호군, 노황을 연기한 양호우, 정안왕을 연기한 우상, 재상 장거록 등은 배역도 잘 맞고 연기도 훌륭했다. 하다 못해 왕선지도 잠시 나오는 역할임에도 꽤 눈에 띄었는데, 어디서 많이 들어본 목소리다 싶어 찾아보니 2010년 드라마 <삼국>의 관우를 연기한 우영광이었다(알고보니 경여년에도 나왔었다). 이번 드라마는 중견급 배우 캐스팅에 힘을 많이 쓴 느낌이다.
그리고 동시녹음을 했는지 이미 귀에는 익숙하지만 너무 뻔하고 어색한 성우 목소리가 안 들리고, 후시 녹음 느낌이 적어서 자연스럽다.

다음 시즌에는 젊은 배우들이 좀 더 힘을 내주고, 이야기도 좀 더 다듬어서 나와주면 좋겠다. 주인공이 호위들 다 쓰러질 때까지 가만히 서 있다가 마지막에 싸우는 척하는 순간 이순강이 나타나 처리하는 방식은 이제 그만했으면.

<설중한도행> 시즌 1은 서봉년의 무공 수련 과정이자 노황의 검 상자 찾기 과정이었다. <설중한도행> 시즌 2는 어머니의 다음 원수 찾기 과정일 것 같은데, 그러자면 황궁과 엮일 것이고, 또 그러자면 이름만 나왔던 장군 고검당과 마주하게 될 것이다. 기대되는 인물 중 하나여서, 비록 시즌1과 주인공 이야기에는 실망했지만, 시즌2의 주변인이 궁금해서 다시 보게 될 것 같다.

헌원세가 문객으로 위장한 고검당 휘하의 원정산 (출처: WeTV)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