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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고서랑은...

    예스러운 배경의 소설과 드라마를 이야기합니다.

미디어/영화와 드라마

<성한찬란> 전형적인 용두사미

by 와룡 2022. 10. 24.

성한찬란 포스터 (출처: 바이두 백과)

소개글을 쓰자니 비난만 할 것 같고, 안 쓰자니 아까운 마음이 들게 하는 <성한찬란>이다.

이 즈음에 재미있는 드라마가 없나 하고 이것저것 시작해봤는데, 그중에서 가장 영상미 있고 돈을 제일 많이 들였을 것 같은 게 <성한찬란>이어서 계속 보게 됐다. (나머지는 대부분 내 취향이 아닌 선협물이기도 했고) 아무 정보 없이 처음 보기 시작했을 때는 스토리가 탄탄하고 독특한 재미가 있어서 감탄했다. 아무리 봐도 원작 소설이 있을 것 같아서 찾아보니 다름 아닌 <서녀명란전> 관심즉란의 작품이었다. "어쩐지 내용이 탄탄하더라, 이 소설이 왜 아직 국내에 소개 안됐을까?" 했다. 하지만 드라마를 다 보고 나선 생각이 달라졌다. 나는 소설을 읽지 않았기 때문에 섣불리 말할 수 없지만, 만약 이 드라마가 원작을 완벽하게 잘 그려냈다면, 원작 소설에도 구멍이 참 많겠다는 생각이 든다. (작가 스타일 상 안 그럴 것 같긴 하지만)

아무튼 드라마 이야기를 한 번 해 보자.

스포일러에 주의하세요.

여주인공 정소상은 장군 부부의 막내딸이다. 태어나자마자 숙모의 간계 때문에 전쟁터에 나가는 부모님과 헤어져 숙모와 할머니 손에 구박받으며 자랐다. 그래도 천성이 영리하고 눈치가 빨라서 손해 보는 일 없이 복수할 거 다 하면서 살아왔지만, 그 일이 트라우마였던지 부모님의 사랑을 갈구하며, 자신은 타고난 운이 없다고 믿어 스스로 챙길 수 있는 걸 최대한 챙겨야 한다고 생각한다.

겨우 전쟁이 끝나 부모님이 돌아왔지만, 다정한 아버지와는 달리 엄격한 어머니는 정소상이 "현명한 처자"가 아니라 꾀 많고 왈가닥이라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아 사랑보다는 매를 많이 들었고, 정소상은 부모님에게서 벗어나 자유롭게 사는 것을 꿈꾼다. 

여주인공 정소상 (출처: 바이두 백과)

남주인공 능불의는 정소상에 비하면 좀 더 극적이고 심각한 상황에 처해있다. 그는 건국에 큰 공을 세운 곽씨 가문의 유일한 후계자로서, 가문의 원한을 풀기 위해 어려서부터 신분을 숨기고 적을 추적해 왔다. 능불의가 정소상을 보자마자 사랑에 빠진 건 그냥 로맨스 드라마기 때문에 당연하다고 생각하자. 이 드라마는 여주인공 정소상의 아기자기한 가정사와 여자들과의 소소한 다툼에서 시작해서, 그녀가 능불의의 과거에 휘말리면서 복잡하고 어둡고 무거운 일을 겪으며 성장해나가는 것을 그렸다.

남주인공 능불의 (출처: 바이두 백과)

정소상의 집안 이야기는 <서녀명란전> 느낌이 좀 나지만, 능불의 이야기는 요즘 흔하디 흔한 군사 가문의 전멸 원인을 밝히는 것이라 두 가지가 섞이면서 이도 저도 아닌 게 됐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그래도 일단 좋은 이야기부터 해보자.

막장이 아닌 황실

황실 이야기를 다룬 중국 소설이나 드라마는 워낙 막장 황실이 많았다. 오죽하면 시청자들이 황제를 "황썅"이라고 부를까. <후궁견환전>도 그렇고, <랑야방>도 그렇고, <천성장가>도 그렇고, <석화지>도 그렇고, <군구령>도 그렇고, 스포가 될까 봐 제목 못 밝히는 모모도 그렇고, <학려화정>도 그렇고(난 학려화정 황제를 좋아하는 편이지만, 대부분 시청자들의 평가는 별로더라)...

아무튼 차고 넘치는 게 나쁜 황제와 나쁜 황실인데, <성한찬란>은 그렇지 않다. 솔직히 내가 이 드라마에서 제일 좋아한 커플이 바로 황제와 월비였다. (최근에 보는 작품에도 유사한 황제-후궁 커플이 있는데, 이 작품도 우리나라에 들어오면 속 시원한 황제란 말 들을 것 같다)

 

<성한찬란>의 황제인 문제는 개국 황제로서, 폭정을 일삼는 기존 황제(여제)를 무너뜨리기 위해 궐기했다. 이때 친구 집안이었던 월씨와 곽씨가 도와줬는데, 곽씨는 고성에서 포위돼 몰살당하고 집안의 딸인 곽군화만 아들 능불의를 데리고 살아 돌아왔다. 문제는 이를 항상 안타깝게 여겨 능불의를 친아들처럼(거의 친아들보다 더 아까면서) 보살펴줬고 항상 그 행복을 염려한다. 영 여자한테 관심이 없던 능불의가 정씨네 딸에게 관심을 보였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한 번 만나보려고 안달이고, 어떻게든 맺어주려고 능불의에게 치도곤을 상황도 연출한다.

자기도 싸우러 가겠다는 능불의에게 니가 가긴 어딜 가냐며 만두 던지는 문제 (https://www.bilibili.com/video/BV13B4y167Go?share_source=copy_we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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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 짤 모음 (https://haokan.baidu.com/v?vid=4266654127545052246&pd=pcsha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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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비는 문제와 어려서부터 정을 나눈 사이로, 역시 개국 전투 중에 아버지와 형제들을 잃었지만 그나마 오라버니 한 사람은 살아남았다. 황제고 누구고 간에 할 말 다 하는 사람이고, 제 자식이나 가족이라고 봐주는 법이 없는 멋진 여자다. 할 말 하는 언관을 걷어차는 문제를 말리러 왔다가 자기가 더 화가 나 걷어차는 장면을 보면 웃음이 터진다.

공주 때리는 월비 (출처: https://baijiahao.baidu.com/s?id=1742095999212801137&wfr=spider&for=pc)
언관 걷어차는 월비 (출처: 상동)

두 사람이 티격태격할 때마다 어찌나 귀여운지 모르겠다. 물론 그 모습을 보고 있는 선 황후는 속이 문드러졌겠지만.

왼쪽부터 월비, 문제, 선 황후. 문제와 월비가 농담하며 웃는 걸 부럽게 보는 선 황후 (출처: https://baijiahao.baidu.com/s?id=1741409178142742345&wfr=spider&for=pc)

<성한찬란>의 문제는 한나라 광무제에서 모티브를 따왔다고 한다. 그래서 월비는 음려화고, 선 황후는 곽 황후다. 광무제와 음려화 얘기가 왜 드라마로 없나 했는데 이런 식으로 나올 줄이야.

내가 이 드라마를 끝까지 볼 수 있었던 건 바로 이 재미난 황실 덕분이었다.

조로사의 매력

두 번째로 이 드라마를 끝까지 볼 수 있었던 건 조로사 덕분이었다. <장가행>에서 주인공 디리러바보다 더 눈에 띄었던 조로사. <차시천하>에서도 꽤 마음에 들었지만 내용이 산으로 가서 보다 그만뒀는데, 역시 조로사는 초절정 강호 고수보다는 이런 사랑스러운 여자애 역할에 잘 어울리는 것 같다.

안타깝지만 남주인공을 맡은 오뢰가 연기가 너무 부족하고(어렸을 때부터 연기를 했는데 아직도 그 정도라니....) 역할도 너무 극적이라, 조로사가 제대로 푼수 역할을 하면서 받쳐주지 않았더라면 드라마가 정말 심심할 뻔했다. 어렸을 때 꾀병 부리는 장면, 잘 보이면서도 안 보이는 척하는 장면, 싸움에서 상대가 안 될 것 같자 제 눈을 제가 때려서 쓰러지는 장면 등등 조로사가 아니면 이걸 누가 해낼까 싶은 폭소 장면이 많았다. 그렇게 사랑스럽던 조로사가 능불의에게 휘말려 사랑의 아픔을 깨닫고 어른이 되면서 드라마의 재미가 확 떨어진 건 어쩔 수 없는 일인가 보다.

조로사의 코믹 연기(앞부분만) https://haokan.baidu.com/v?vid=12278863755319371256&pd=pcsha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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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의 깊이를 엿볼 수 있는 캐릭터들

악역들도 각자 스토리를 가지고 있는 걸 보면 원작이 방대하고 여러 캐릭터의 이야기를 입체적으로 다루었다는 걸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문수군은 문제와 종친인 건안왕의 딸로, 고성 포위전에서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집안이 급격히 쇠약해져 하는 수없이 평범한 가문에 시집갔다. 하지만 가문이 건국에 세운 공을 믿고 선 황후를 무시하기 일쑤인 데다, 가문을 다시 일으키겠다는 일념에 딸조차 돌보지 않다가 결국 평생 구금되는 신세가 된다. 그 딸인 왕령 역시 외가가 황실이라는 걸 믿고 콧대 높게 굴지만, 어머니의 강요로 지방에 살고 있는 삼촌을 위해 그 늙은 신하인 팽곤에게 시집가면서 사람이 바뀐다. 비슷한 캐릭터로 하소군이 있다. 정소상의 첫 약혼자인 누요와 혼약했을 땐 그렇게 콧대 높게 굴다가, 옹왕의 세자와 결혼한 후 역모에 휘말려 가문이 무너진 후로 가문을 살리려고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다. 하소군의 변신과 누요와의 재결합 이야기는 정소상을 한 단계 자라게 하는 소재이기도 하다.

완전히 바뀐 하소군 (출처: https://baijiahao.baidu.com/s?id=1738929671522753635&wfr=spider&for=pc)

누요의 형인 누분은 또 색다른 캐릭터다. 나라에서 한미한 집안의 인재를 등용하기 위해 귀족 가문 자식은 한 사람만 등용하는 규칙을 세우자, 누분의 큰아버지인 누 태부는 제 아들을 관직에 내보낼 욕심에 재주 많은 조카의 출셋길을 막았다. 이 때문에 누분은 다양한 경로로 출셋길을 열려고 노력하다가 결국 나쁜 길에 빠져들고, 마지막에 자결하는 안타까운 상황에 처한다.

시간 때문인지 상세한 이야기가 꽤 많이 잘려 나가서 깊이 감상하긴 어렵지만, 이런 캐릭터들이 도처에 있고 각각 이해할만하거나 이해하지 못할 스토리를 갖고 있는 것도 이 드라마의 매력이다. 

이제 불만을 말해 보자

가장 큰 건 능불의의 과거를 파헤치는 내용이 너무 대충 그려졌다는 거다. 누가 왜 그랬는지는 대부분 말로 때우고, 최대의 반전인 능불의와 능익의 관계가 밝혀지면서 능불의가 죽는 장면까지는 아예 개연성을 야무지게 말아먹으면서 진행했다. 죽을 것처럼 절벽에 떨어졌는데 며칠이 지나도록 멀쩡하게 살아 있는 것도 황당하고, 당연히 살아 있을 줄 알고 사람을 보내 데려오는 것도 황당하다. 밤늦게 집에 쳐들어가서 집안을 도륙한 죄인이 단순히 곽씨네 후손이라는 이유만으로 그 죄를 없었던 것으로 해주는 장면에서는, 법이 없는 나라인가 싶기도 했다.

그 전에도 뭔가 대단한 계략이나 음모가 숨어 있을 것 같은 분위기를 풀풀 풍기다가 그냥 대충 그런 거라고 설명하는 게 몇 번 있어서 한숨 나왔는데, 마지막 장면까지도 이러다니. 정소상의 아버지 정시가 반역했다는 누명을 쓰는 장면까지 WeTV에서 무료로 보다가 그 누명을 어떻게 씻나 궁금해서 결국 결제까지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대충 넘기는 걸 보고 황당했다. 난 그때 정시가 뭔가 대단한 음모를 알고 달아났다가 돌아와서 문제를 해결하기를 기대했다. 그런데 어딘가에 쓰러져 있다가 딸이 모든 일을 다 해결한 다음에야 가서 데려오는 걸로 끝이라니. 너무 정소상에게 모든 능력을 몰아준 모양이다.

그렇게 똑똑하다는 원신도 못 밝히고, 그렇게 잘 싸운다는 능불의도 못하는 일을, 항상 정소상 혼자서 여기저기 돌아다니다가 비밀통로를 발견하거나 단서를 얻어내 척척 처리하는 게 제일 큰 문제고, 막상 다 해결해놓고 꼭 무력 문제로 위험에 빠지면 능불의가 나타나 구해주는 뻔한 결말도 문제다. 이런 건 한두 번 하면 재미로 봐줄 수 있지만, 너무 반복되면 긴장감이 사라진다.

입체적인 캐릭터를 그리려고 조금 오버한 듯, 뒷부분에서 몇몇 캐릭터가 흑화하는 것도 황당하다. 낙제통과 왕연희의 흑화는 차라리 앞부분에 나왔으면 그럴싸했을 텐데 뒷부분의 최고 흑막으로 나오기엔 너무 개성도 없고 긴장감도 없었다. 게다가 폭발 현장에서 혼자 살아 돌아오는 능불의라니. 얜 화약이 터져도 안 죽고 절벽에서 떨어져도 안 죽는 불사신인가 보다.

마지막 위기를 견딘 다음 애틋한 하소군과 누요. 그 사이 외로운 원신 (출처: WeTV)

주요 캐릭터 간의 갈등이 자꾸만 반복되는 것도 그렇다.

정소상의 어머니는 늘 딸에게 미안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딸이 뭐만 한다고 하면 나서서 반대한다. 몇 번은 화해할 듯 하다가도 똑같은 일이 반복되면서 "도대체 왜 저래"라는 말이 절로 나오게 만든다. 정소상의 아버지가 반역 사건에 휘말릴 때 정소상의 시어머니와 어머니가 화해하고 가족들이 서로를 이해하게 되는 장면이 있는데, 여기서 어머니와 정소상도 서로 이해하면서 끝나야 했다. 그런데 그 일이 끝나면 둘을 또 갈라서서 결국 정소상은 선황후를 따라 스스로 궁에 갇히는 삶을 택한다. 그제야 후회하는 어머니도 이해가 안 가고, 아무리 황후에게 고맙다지만 가족을 전부 버리고 혼자 떠나는 정소상의 심리도 이해할 수 없었다.

반복되는 갈등은 능불의와 정소상도 마찬가지다. 서로 안 맞다고 생각해서 다투고, 그리고 또 화해하고, 또 다투고, 또 화해하고. 게다가 똑같은 문제로 만날 다툰다.

세상에 완벽한 드라마는 없을까

모두에게 완벽한 드라마는 없겠지만, 내게 완벽한 드라마는 몇 개 있었다. 사실 <성한찬란> 초반부를 볼 땐 (오뢰의 딱딱한 연기만 빼면) 완벽한 드라마가 되지 않을까 기대했다. 하지만 뒷부분에서 기대가 무너졌는데, 이건 자주 가위질당하는 중국 드라마의 고질적인 문제인지도 모르겠다. 아무래도 편수를 줄일 때 주로 뒷부분을 잘라내다 보니 용두사미로 끝나는 느낌을 줄 수밖에.

밝고 즐거운 이야기가 그립다면 <성한찬란> 한 30편까지 보는 건 괜찮다. 남주인공과 갈등 끝에 이어지는 로맨스가 좋다면 전부 다 봐도 좋고. 도중에 조금 잔인한 장면이 나오지만 그런 건 살짝 넘어가면서 보면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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