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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고서랑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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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독후감

[문학] 기욤 뮈소의 사랑, <구해줘>

by 와룡 2009. 2. 23.

기욤 뮈소의 화제작이지만, 출판 시기에 비하면 다소 늦게 읽은 셈이다. 온라인 서점에서 처음 접했지만 요즘 워낙 광고로 과대포장된 책들이 많아 직접 서점에 가서 뒤져보았더랬다.
사실 이런 류의 '베스트셀러' 책들이 내겐 잘 맞지 않아서 기대는 하지 않았다. 하지만 몇 장 넘겨 보지도 않았는데 왠지 '괜찮은 소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소설이 '배우 지망생 소녀'가 주인공이라는 것만 빼고는 아무런 사전 정보도 없이 구매하게 된 것도 그 때문이다.

손을 뗄 수 없게 만드는 책 이라는 수식어가 딱 그대로다.
줄거리를 음미해보면, 꿈을 위해 고국을 떠난 한 아름다운 여자가 꿈을 이루지 못해 힘들어하다가 또 다른 외로운 남자를 만나 사랑을 가꾸어가는 이야기다보니 특이하달 게 없다. 그 사이에 스며들어 있는 마약상과 경찰 이야기야 배경이 미국이라면 당연한 이야기일 테다. 물론 문제의 제시자이자 해결자로 등장하는 그레이스의 이야기는 환상적인 면이 있긴 하지만, 전체적으로 볼 때 아주 '기발한' 내용이라던가 '놀라운' 반전이 있다던가 하는 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은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너무나 자극적이거나 너무나 현실적인 이야기들이 차고 넘치는 요즘, 한 물 간 것처럼 느껴지는 '사랑'을 말함으로써 오히려 새롭게 느껴졌기 때문이 아닐까. 더구나 작가의 표현력 또한 나무랄데 없이 뛰어나지 않은가.
워낙 대중적이지 못한 내 취향 때문에 사람들이 '좋다'고 하는 것을 '별로'라고 평한 적이 여러 번, 참으로 오랫만에 나도 남들과 비슷하게 생각하고 느낄 수 있구나를 깨달았다. <연금술사>이후로 처음이랄까.
사실 <구해줘>는 <연금술사>와 비슷한 류의 소설이다. 차이라면, <연금술사>가 픽션보다는 메시지를 중시한 반면 이 작품은 픽션을 중시했다는 점과 <연금술사>가 '희망적 운명론'을 설파한 반면 이 작품은 '절망적 운명론'을 소재로 삼았다는 점 정도다.

꿈을 이루겠다는 생각으로 왔지만 꿈을 이루지 못해 절망에 빠진 줄리에트와 어두운 과거의 기억으로부터 아내를 구해내지 못해 스스로를 혹사하는 샘이 '우연히' 브로드웨이의 한 거리에서 마주쳤다. 작가가 이것을 운명이 아닌 '우연'이라고 표현한 것은 뒤에 나올 그레이스가 말할 '운명'과 그들의 만남이 전혀 다른 것이기 때문이다. 첫눈에 반한 두 사람의 이야기는 시간별로 대사를 나열한 독특한 영화적 구성덕에 독자로 하여금 그 모습을 정말 보고 있다는 착각을 하게 한다. 이런 방식은 나중에 샘이 줄리에트를 구하기 위해 택시를 타고 가면서 극적 긴장감을 증폭시키기 위해 다시 한번 사용되었다.
첫눈에 반하는 사랑, 비뚤어진 운명의 굴레를 바로잡으러 나타난 사자(使者), 결국 사랑과 용서와 화해를 부르는 해피엔딩. 어떻게 보면 유치한 소재와 결말이지만 기욤 뮈소의 뛰어난 문장력과 구성능력이 그런 것들을 부드럽게 잘 포장한 것 같다. <연금술사>에서도 그랬듯, '저게 말이나 되나'하는 부정적인 생각을 할 수 없게 만드는 무엇인가를, 작가는 가지고 있는 듯 하다.

그는 '사랑이야기 없이 글을 쓸 수 없다'고 했다. 사랑이야 말로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힘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절망에 빠진 두 사람이 사랑을 통해 다시 희망을 찾는 이야기를 쓴 것이리라. 그들의 만남과 그 사랑이 '운명'에 정해있지 않은 우연이었지만 그것은 결국 '프랑스로 돌아가는 길에 죽는' 줄리에트의 본래 운명을 바꿔놓은 것이다. 이야기의 반 이상, 샘은 그 본래의 운명을 돌려놓으려는 그레이스의 앞에서 신적 존재(?) 앞의 무력감을 느끼지만 마침내 운명은 그들을 비켜갔다. 그래서 책 읽는 내내 정해진 운명을 두려워하다가도 마지막에는 안도의 숨을 내쉴 수 있었다. 운명의 사자인 그레이스 또한 살아 생전 말하지 못했던 사랑을 얻고 그 사람과 함께 사라졌으니, <구해줘>는 사랑으로 절망을 극복하는 두 커플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셈이다.

생각과는 달리 글이 길어졌다.
참 오랜만에 마음에 드는 소설을 읽어 기분이 좋지만 어쩐지 그의 두 번째 책에 선뜻 손이 가지 않는다. 작가의 또다른 작품이 많이도 나와 있는데 그 중 <구해줘>를 능가하는 작품이 있을까 두려워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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