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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고서랑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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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서전 번역 논란을 보고...

by 와룡 2011. 12. 28.

스티브 잡스가 떠난지도 두 달이 넘었다. 애플빠는 아니지만, 나 역시 큰 별이 졌다고 생각은 한다.
그가 떠난 후에도 그의 유작들로 세상이 시끄러웠다. 자서전 역시 그 '유작' 중 하나다.

그 내용이 여러 차례 기사화 된 덕분에, 책을 안 사봐도 내용을 다 알게 되겠다는 농담도 왔다갔다했더랬다. 가지많은 나무 바람잘날 없다더니, 잡스 자서전의 국내 번역본이 오역 투성이라는 논란도 시작되었다.
나도 번역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다보니, 호기심이 생겨 그 글들을 읽어보았다.
- 읽은 당시에 글을 쓰고 싶었지만 차일피일 미루다보니 벌써 한 달이 훌쩍 지났다...

영어는 잘 모르지만, 오역 제기를 한 번역가의 마음이 이해는 간다.
내가 오래 전의 해적판 <소리비도>를 읽었을 때의 마음이 아닐까? 영화 <삼국지> 시리즈를 볼 때의 느낌이 아닐까?
마음에 드는 작품일수록, 그것이 좀 더 정확히 풀이되기를 바라는 마음은, 번역가든 독자든 똑같을 것이다.

뭐,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그 비판이 너무 감정적이라는 게 문제인 것 같다. 이의를 제기할 수는 있어도 상대를 비난하는 것은 자제해야 하지 않았을까.
그래도 번역을 '직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들이니만큼 좀 더 발전적인 토론이 되었으면 좋았을 것을.

오역 논란 제기자가 쓴 글을 보면, 모르는 내가 보기에도 오역인 것이 분명 있다. 하지만 번역가의 입장 차이로 보이는 문장도 몇몇 보인다. 어쩌면 그런 입장 차에서 오는 부분은 제외하고 '명확한' 오역 만을 지적했더라면 이렇게 '논란'까지 일어나지는 않았을지도.

글로벌 시대랍시고 영어를 잘하는 사람들이 많아진데다 모든 것이 인터넷 상에서 순식간에 공유되는 세상이니, 영문 번역가는 더욱 조심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 많은 '영어' 전문가 들이 발전적 방향으로 가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단어 하나 하나의 해석까지 이렇네 저렇네 따지고 들면 감정이 상하지 않을리 없다.

나도 번역을 하면서 일부러 해석을 빠뜨리는 부분이 있다. 중국어 문장에 반복이 많아서 그대로 한글로 옮기면 더 어색할 때가 있기 때문이다. 자서전 번역가가 몇 가지 단어를 번역하지 않았던 것도 뭔가 이유가 있기 때문이지, 귀찮아서는 아닐 것이다.

반면에 역사적 인물이나 사건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웹 상에서라도 그 내용을 찾아 확인해본다. 무협 소설에 종종 등장하는 외국인(일본인이나 북방민족 등)의 이름은 한자 독음이 아닌 원래 이름으로 옮기려고 노력한다. 잘 알려진 일일수록, 잘 못 옮기면 나중에 쓴소리를 들을 수 밖에 없어서다.
이번 번역 논란에, 오역 제기자가 직접 한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존 레논 어머니의 사인을 잘못 옮겼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 부분은 자서전 번역가의 성의가 다소 부족하지 않았나 싶다.

번역을 하는 사람은 누구나 그렇겠지만, 제아무리 고치고 또 고쳐도 오역이나 하다 못해 오타가 남아 있는 것을 느낀다. <무림객잔> 월결권을 번역할 때, 정말이지 몇 번을 반복해 읽었는지 모른다. 그런데도 출간된 책을 받아 봤을 때, 또다시 연필을 들어 여기 저기 표시를 해야했다. 사실 아직도 <무림객잔> 월결권은 초반 부분이 마음에 쏙 들지 않는다.
사람인데 뭐든 완벽할 수는 없다. 다만 '직업'으로 하는 일이니만큼 그만큼의 노력은 필요하다. 그렇게 노력한 후에도 남은 실수라면, 우리 그만 너그럽게 보아주자. (모른척 해달라는 것이 아니라, 부드럽게 알려달라는 것이다)

쓰다보니 자서전 번역가 분의 편을 든 것 같은데, 꼭 그런 건 아니다.

앞서 말했듯이 영어를 잘하는 사람이 많아져서 연문 번역가는 번역본을 내 놓을 때 마치 살얼음을 밟는 기분일 것이다. 잔뜩 기대를 가지고 책을 펼치거나 영화를 보았는데, 내가 보는 것, 내가 들은 것보다 못한 번역이라면 왜 실망하지 않겠는가.
그러니 힘들더라도, 어차피 직업이니 가능한 한 많은 노력을 쏟아붓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입장 차라든가, 단순 실수야 그렇다치고 누가 봐도 성의 없어 보이는 번역은 자제해야 하지 않을까?

눈치 봐야할 독자가 많아서 힘들것 같은 영문 번역이지만, 그래도 난 다소 부럽다. 영어는 언제까지나 번역거리가 많고 많을 테니까.

몇 달 전에 영화 <샤오린>을 보면서 당황했더랬다. 중국어 대사가 번역 대사와 정확하게 일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분명 중국어 대본을 번역한 게 아니라, 이미 영어로 번역된 대본을 한국어로 번역한 것이다. 그야 중국 영화도 글로벌을 지향하고 있으니, 영문판이 나오는 것이 순리일테지. 
그렇지만 중국 무협과 역사를 좋아하고, 그것을 엶심히 국내에 소개하고픈 나의 소심한 바람은, 영화에서조차 영어 번역가에게 빼앗기고 마는 게다.

아무튼 이번 논란이 다소 감정적으로 흐르지만 않았다면, 번역에 관심이 있는 나로서는 그저 유야무야 넘어가기 보다는, 번역가들의 자긍심과 존재감을 확인시켜주는 좋은 계기라 느꼈다.
지난날, 유명인의 번역이라고 광고하여 인기를 얻었던 책이 알고보면 무명 번역가의 번역 내용을 거의 그대로 옮겼다는 논란이 인 적이 있다.
인기 번역가가 등장하고, 번역가들 사이에 번역 대결(!)이 일어날 만큼 번역이 주요 이슈로 떠오른 것만 해도, 그 때에 비하면 훨씬 나은 입장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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