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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고서랑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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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영화와 드라마

학려화정 삭제분 <별운간> 감상

by 와룡 2020. 9. 26.

<학려화정>의 삭제분이 12화 분량의 드라마 <별운간>으로 공개되었다.

그간 방문하신 분들의 의견도 그렇고, 조금 성급하게 끝맺은 결말도 그렇고, <학려화정>에서 풀리지 않은 이야기가 그 속에 담겨 있을 것 같아서 주저 없이 감상해보았다.

다 보고 나니, 이것이 원작의 이야기인가 보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나 독자를 힘들게 만든다고 소문난 원작 소설의 결말을 보게 될 테니 부디 비극이 싫은 사람은 시작하지 말기를 바란다.
개인적으로는 드라마 <학려화정>의 연장선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부족하지 않았나 싶다. 아무래도 오랜 기간 고심 끝에 편집해낸 드라마 <학려화정>의 큰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애초에 이 결말을 염두하고 전체 흐름을 다잡았다면 조금 다를 수 있겠지만, 주제를 하나 마무리 지은 지금은 억지로 덧붙인 느낌이 없잖아 있다.

그래서일까? 제작사도 구태여 제목까지 따로 붙여 새로운 드라마처럼 꾸며놓았다. 첫화를 시작하면 "갑자기 사라졌던" 허창평의 내레이션으로 태자와 황제, 고사림 간의 얽히고 설킨 일을 간단히 술회한 후, 이어서 허창평 자신이 태자 편에 서게 된 이유와 함께 <별운간>이 시작된다.

별운간. 제목을 들었을 때, 저 멀리 하늘 너머로 이별하는 느낌이 들었다. 막상 찾아보니 명말 소년 의사 하완순의 시 제목이고, '운간'은 그의 고향 지명이라고 한다. 드라마 제목에는 중의적으로 쓰지 않았나 싶다.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으니 주의하세요.


스포방지용 멋진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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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자 소정권은 적의 침입 정보를 숨기고 이를 빌미로 제왕을 쫓아내려던 고사림의 계획을 반대함으로써 결국 아버지와의 오해를 풀었고, 고사림은 비분을 안고 장주로 달려가 평생 그래 왔듯 태자의 나라를 위해 적의 침입을 막아내다가 전사한다. 제왕이 군왕으로 강등되어 경성에서 쫓겨난 후, 태자는 사랑하는 육문석과 남은 삶을 행복하게 보내게 된다. 이것이 드라마 <학려화정>의 결말이었다.

육문석을 위해 호수에 유등을 잔뜩 띄워준 황태자. 이것 때문에 사치스럽다고 혼난다

<별운간>은 그 시점에서 약간 앞으로 돌아와서, 고사림이 전사하기 전, 제왕이 경성에서 쫓겨난 직후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허창평은 누구인가

많은 이들이 궁금해했던 허창평의 신세는 이렇다.

허창평의 어머니는 고 황후가 소왕부에 시집갈 때 함께 따라간 시녀 송 씨였다. 고 황후가 생전에 민태자와 사랑하는 사이였다는 것은 동요에서도 나오는데, 어찌 된 셈인지 되레 송 씨가 혼인도 하지 않은 채 민태자의 아이를 가졌고, 민 태자가 죽은 후 고 황후의 돌봄을 받아 무사히 아이를 낳았다. 당연히 그 아이는 민태자의 호적에 들지 못하고 송 씨의 고향에서 자랐다. 그가 허창평이다.

그리고 민태자의 죽음에 충격받아 첫 아이를 잃은 고 황후는 고씨 집안의 압박을 받아 결국 소정권을 낳고 뒤이어 딸 영국공주를 낳았다. 영국공주는 어린 나이에 병사했는데, 당시 그 곁에는 송 씨 및 조 황후의 심복인 강 상궁이 있었다는 말로 두 사람이 합작해 영국공주를 죽였음을 암시한다. 하지만 선량한 고 황후는 송 씨를 용서하고 구제해 고향으로 돌려보내 주었다. 송 씨는 허 씨의 외첩으로 살게 되었으나 충격으로 제정신이 아니었고, 어머니의 그런 모습을 본 허창평은 어머니가 고 황후에게 괴롭힘을 당했다고 여겨 황태자에게 복수할 마음으로 과거를 치렀다. (어떻게 알았는지 모르지만) 그는 자신이 죽은 민태자의 유복자임을 알기에 태자림에 있는 아버지의 나무(태자가 생기면 태자림에 나무를 심는 관습이 있었음)를 보며 태자와 자신은 양립할 수 없다고 다짐했지만, 태자의 행동이 정의롭다 느끼던 상황에서 고향으로 돌아갔다가 정신이 든 어머니에게서 옛이야기를 모두 듣게 된다. 어머니로부터 고 황후에게 은혜를 갚아야 한다는 가르침을 받은 그는 다시 경성으로 돌아와 황태자 편에 선다.

정식으로 황태자의 막료가 되는 허창평

비록 공식적인 측비는 아니었지만, 송 씨가 민태자의 아이를 낳은 것은 당시 소왕부 사람들은 모두 알았던 것 같다. 왕옹도 송 씨 이야기와 허창평이 태자림에 나타난 시점을 보고 알아챈 데다, 황제 또한 소문이 퍼진 후 어머니가 송 씨라는 말을 듣고 인정할 정도니까.

허창평은 태자 소정권과는 달리 과격한 인물이다. 어떤 면에서는 제왕과 조왕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조왕이 제 어머니마저 죽음으로 몰아갈 정도로 독하게 나오자, 허창평은 경성을 지키는 12위 가운데 고씨와 태자 편인 7위를 불러 조왕 편인 3위를 공격해 무너뜨리라고 조언한다. 물론, 태자가 그러지 않을 것은 이미 예상한 것 같다. 그래서 사전에 육문석, 왕옹과 짜고 뒷일에 대비해놓았고, 태자의 명의로 자신을 신고해서 공학에 갇혀 심문을 받는다. 모반죄는 구족을 멸한다는 황태자의 말에, 자신은 쉽게 죽거나 당하지 않을 것이며 자신의 구족을 멸할 수는 없을 것이라며 썩소를 짓는 장면이 예술이다. (캡처를 못해서 아쉽다)

조금 갑작스러운 연상이긴 하지만, 태자는 공학에서 죽은 백부, 즉 민태자를 떠올리며 허창평이 그 길을 가지 못하게 하려 한다. 자신도 공학에서 형을 당한 적이 있기에, 또 이미 자신의 편이었던 수많은 이들이 죽거나 떠나갔기 때문에 더는 참을 수 없었던 그는 황제 앞에서 형벌을 막거나 조왕을 윽박지르는 등 막 행동하기까지 한다. 그리고 허창평에게 옥대와 옷을 내리고, 경성 7위를 구슬려 모반을 꾸미고, 나아가 허창평에게 왕위를 약속했다는 누명 앞에서,  "또다시 날 버리고 새 태자를 세우려는 게 아니냐"며 서러움을 토해낸다.

경성 호위군에게 밀서를 보내 그들이 말을 듣는지 아닌지 보자던 황제와 조왕의 시험은 결국 실패로 돌아간다. 조왕이 태자의 필적을 흉내 내 쓴 밀서를 받자 (아마도 황태자 편인) 7위는 즉각 이를 알리며 사건 조사를 청했고, (아마도 조왕 편인) 3위는 모여서 태자 탄핵을 결의했다고 한다. 어머니까지 희생했던 조왕의 계략은 이렇게 허무하게 막을 내린다.

죄를 지어 낙향하는 허창평을 찾아가 고사림의 안위를 확인해달라 부탁하는 황태자. 여기서 형님이라 부른다

제2의 정적 소정해

조왕 소정해. <별운간>이 나오면서 가장 이미지가 달라져 버린 황자다. 실상 원작 소설에서는 정적으로 나오는 캐릭터지만 드라마 <학려화정>에서는 순수하고 착한 남자였다. 아마도 군데군데 그의 속내를 보여준 장면을 찍었는데 <학려화정>을 해피엔딩으로 만들기 위해 빼버린 것이 아닌가 싶다. 아무튼 <별운간>에서는 조왕이 제왕 소정당 대신 정적으로 등장한다. 분량이 짧아서 대단한 활약은 보여주지 못하지만, 어머니를 죽음으로 몰고 갈 정도 에다 죽기 전에도 세치 혀로 황태자를 무간지옥에 떨어뜨리는 것을 보면, 제왕보다 더 독한 인물이다.

변해버린 조왕. 표정부터가 야비하다. <별운간>에서 인물 소개 글씨체가 금착도라 눈에 띈다

마치 육문석의 사랑을 얻지 못해 흑화한 것처럼 보이지만, 들여다보면 이미 예전부터 뒤가 구린 상황이었다. <별운간> 초반부터 자신이 육문석과 관계가 있다는 사실이 태자 혹은 황제에게 알려질까 봐 육문석을 만류하거나 협박할 뿐 아니라, 과거를 연상하는 부분에서 이미 강 상궁과 손잡은 것도 볼 수 있다. 허창평의 내레이션 대로, 제왕이 사라진 후 황제가 황태자를 견제할 목적으로 자연스럽게 그를 높였기 때문이기도 하다. 후반부에 여섯째 황자 소정양이 황제의 눈에 드는 듯한 장면이 있는데, 이런 것을 볼 때 사람이 문제가 아니라 자리가 문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제왕이 없어도, 소왕이 없어도, 결국 황제에게는 황태자를 견제할 사람이 필요한 것이다. 이 점은 외척의 위험이 사라진 뒤에 황태손을 세우면서야 겨우 해결된다.

황제 옆에 앉은 여섯째 황자. 언제 누가 적이 될지 모르는 황실의 상황

조왕은 육문석을 협박해 동궁의 비밀 정보를 얻고, 조정 관리 및 경성 호위대와 선을 대는 등 조금씩 조금씩 태자 자리를 노린다. 그 순하고 귀엽던 동생이 그렇게 변한 것을 보고 "다 자랐구나"하는 황태자를 보면 마음이 아프다. 지금은 귀엽디 귀여운 여섯째 아우도 훗날 그렇게 되지 모른다고 생각하면 얼마나 괴로울지.

하지만 어머니를 닮아서인지 선량한 황태자는 차마 독한 술수는 못 쓰고, 조왕을 혼인시켜 봉지로 내보내려 시도한다. 조왕은 강상궁과 짜고 어머니 조 황후가 수연 날 자결하게 만들어 상을 핑계로 혼인을 피한다. 첫째 아들만 예뻐하고 조왕은 나 몰라라 하던 조 황후가 "그간 소홀해서 미안하다"며 조왕의 손을 잡는 장면은 황제와 태자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첫째 아들이 떠난 후 실의에 젖어 있어서 그런 줄 알았는데, 결과적으로는 제 목숨을 내던져 한 번도 사랑해준 적 없는 아들을 도우려고 하는 마음에 그랬을 줄이야. 

어머니가 죽은 후에도 허창평을 고발해 태자를 공격하려던 조왕은 결국 허창평과 육문석의 꾀에 당해 서민으로 강등되고 곤장 80대를 맞은 후 쫓겨날 운명에 처한다. 허창평이 민태자의 유복자인줄 몰랐던 그로서는, 그 이야기가 세상에 알려지면 가장 싫어할 사람이 황제인 것을 알기에 그 소문이 난 후부터 싸움을 포기했다. 자신을 그렇게 아껴주었던 강상궁을 찾아가, "더 싸워보자"는 강상궁에게 독주를 내밀며 "마지막으로 날 위해 해 달라"라고 하는 그의 태도는 왕옹 대신 독주를 마시겠다고 위협하는 태자의 마음과 크게 비교된다. 하긴, 어머니도 죽였는데 그깟 상궁을 못 죽일까.

태자에게 조왕의 형을 집행하게 한 황제 덕분에 두 형제는 마지막으로 속내를 털어놓으며 <별운간> 드라마의 주제를 명확히 드러내 보인다.

조왕, 그리고 제왕의 입장에서 태자는 그저 얄미운 사람이다. 나라의 후계자요 든든한 외숙부를 가진 태자가 자꾸만 자기들을 핍박하고 경성에서 내보내려 했고, 저 자신은 충분히 황위에 오를 수 있으면서도 그러지 않아 자신들에게 희망과 여지를 남겨 계속 준동하게 만들었다. 지나치긴 하지만, 아들들이 하나 하나 곁을 떠나는 것을 지켜보는 어머니에게는 죽음이야 말로 해탈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조왕은 자신들을 핍박하고 쫓아내려는 황태자의 행동은 결국 제 아들을 의심하고 기를 죽이려는 황제랑 다를 것이 없다고 비난하며, 태자는 끝내 자신이 바라던 천하를 얻지 못할 것이라 저주한다. 조왕의 이런 비난, 그리고 제가 전 태자비를 죽였으며 이제 고사림과 고봉은까지 죽일 생각이라는 고백, 또한 그것이 황제의 묵인하에 이루어졌다는 은근한 암시는 나중에 고봉은의 제안을 거절하는 황태자의 선택에 큰 영향을 미친다.

태자에게 고사림이 죽을 것임을 알려주는 조왕

두 사람의 대화에서 중요한 말이 나온다. "황제는 '술'을 중시하고 '도'를 경시한다"라는. 

중술경도 vs 중도경술. 금착도 비스무리한 글씨로 입력해보았다.

지식이 부족해서 명확하게 설명하기가 어려우니 간략히 "도"는 모든 것의 본질이고 "술"은 그 본질을 이루기 위한 수단이라고 생각하자. 황제로서 강산과 백성을 지키는 것은 본질이며, 그 본질을 위해 외척을 견제하거나 관리의 부패를 막거나 하는 수단을 쓰기 마련이다. 외척을 견제하는 데 정신이 쏠려 백성을 지키는 본래 목적을 잃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 황제들은 본질보다는 수단에 집착하게 된다. 조왕은 지금 황제도 그렇고, 황태자 너 또한 앞으로 그렇게 될 거라고 했다.

사람마다 자신의 "도"가 있고, 황제 역시 초반에 자신의 "도"가 무엇인지 태자는 결코 모를 것이라고 했다. 물론, 태자의 "도"가 무엇인지 또한 황제는 모른다. 하지만 태자는 고봉은의 반란 앞에서 "술"보다 "도"를 선택했다.

고봉은의 변신

결과적으로 태자는 고사림의 죽음이 황제의 짓이라 단정하면서 황제와 더욱더 멀어진다. 고사림의 영구를 모시기 위해 장주로 갔다가 흑화한 고봉은의 반란에 연루된 그가 끝내 거기에 끼어들기를 거부한 까닭은, 자신마저 아버지와 같은 사람이 될까 봐, 그 순수하던 고봉은도 결국 고사림같은 사람이 될까 봐 두려워서였다. 고봉은은 집안사람과 휘하 장병들이 피와 목숨을 바쳐가며 닦아준 권력의 길을 거부하는 황태자를 "나약"하다고 비난한다. 행동이 다소 충동적이어서 그렇지, 어찌 보면 그의 말도 일리가 있다. 지금도 내란에 시달릴 백성들의 아픔을 외면할 수 없다면서 어린 시절 벗이요 혈육인 고봉은의 행동을 저지하는 황태자다. 훗날 황제가 되어도 고봉은의 이런저런 행동을 전부 받아들여줄까?

고봉은이 자결한 후 망연자실하는 황태자

하늘이 준것을 받지 않으면 오히려 재앙을 입는다는 허창평의 말이 옳았다. 결국 황태자는 할 수 있으면서도 하지 못했고, 그로 인해 조왕이 득세하고 고봉은이 반란을 일으키고 저 자신도 세상을 떠나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어찌 보면 "나약"하다는 평가가 억울하지 않을 것이다. 

육문석, 태자의 마지막 희망

그 "나약한 사람"을 "작은 것은 두려워하되 큰 용기를 가진 이"라고 바꿔말한 사람은 육문석이다. 큰 용기란, 사적인 친밀감과 사사로운 복수, 눈앞의 이익 앞에서, 당장 자신은 손해를 볼지라도 "대의"와 "초심"을 선택하는 것을 의미한다. 내가 참 좋아하는 크리스토퍼 놀란의 <배트맨 비긴즈>의 주제이기도 하며, 그런 면에서 볼 때 황태자 소정권은 배트맨과 비슷하다. 

<별운간>의 육문석은 그 누구보다 강인하게 소정권을 지탱해주는 사람이다. <학려화정>에서 바른 길에서 벗어날 뻔했던 소정권을 독하게 깨우쳐 준 그녀는, <별운간>에서 그와 진심을 털어놓고 그의 후사를 잇는 역할을 한다. 소정권이 형부상서 사건으로 끌려가기 직전, 허창평에게서 들은 소식, 고사림이 일부러 동요를 퍼트려 황제를 흔들려고 했다는 사실을 전할 때부터 그녀는 이미 권력자의 더러운 싸움 속에 깨끗한 사람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 눈앞에서는 그토록 순진했던 조왕 소정해를 믿은 것이 문제였다. 자신이 육문석이라는 사실을 밝히면, 소정권과의 오해도 풀고 어쩌면 정정당당하게 태자비가 될 수도 있었지만, 처음에는 자신을 도와준 조왕이 해를 입을까 봐 두 번째는 아우가 다칠까 봐 육문석이 아닌 고아보로 남기로 했다. 그래서 태자비가 되지 못한 채 일개 측비로서, 그 뒤에 숨은 세력을 밝혀내려는 황태자 손에 3년 동안 갇혀 살아야 했다. 

태자비가 되지 못하고 측비로 들어가는 육문석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허창평 덕분에 소정권의 본마음이 어떤지 알게 되어 원망하지 않아도 되었다는 것이다. 게다가 조왕이 못된 생각으로 끌어들인 여섯째 황자 소정양은, 그녀가 전 태자비 대신 살려준 어린 꼬마였다. 독을 먹고 죽을 뻔했다가 아우를 떠올린 육문석의 도움으로 살아난 여섯째 황자는 나중에 그녀의 아우를 구하는데 일조한다. 이 모든 것 또한 보응이 아닐까.

여섯째 황자 소정양이 태자에게 혼날 때 우는 모습. 엄청 귀엽다

조왕에게 이용당했다는 것을 안 육문석은, 허창평, 왕옹과 짜고 황태자 몰래 함정을 파서 조왕을 궁지에 몰아넣고 시녀를 시켜 아우를 찾아낸다. 곁에 있는 사람을 더 이상 잃기 싫어서 그녀가 나서는 것을 꺼렸던 애정결핍 황태자에 비해, 육문석은 훨씬 용감하고 과감하다. 황태자가 만들어준 그네를 타면서, 황태자로부터 "내게는 폐위당하는 것이 곧 죽음이오. 남들에게 함부로 모욕당하지는 않을 것이오. 그런 때가 오면 당신이 비수를 하나 갖다 주시오."라는 부탁을 들었고, 훗날 자신이 자결하려고 쓴 적이 있는 비녀를 꽂고서 감금된 그를 찾아가 아이를 가졌다는 소식을 전하면서 작별 인사를 나눈다. 자기 자신도 잠깐의 실수로 아버지와 오라버니를 잃은 경험이 있는데, 그 실수의 대상이자 아이의 아버지인 남자가 죽음을 맞이할 것을 알면서도 의연하게 받아들이는 것을 보면 그녀야말로 누구보다 강한 사람임을 알 수 있다.

비녀를 꽂고 마지막으로 황태자를 찾아온 육문석

드라마에는 명확히 밝히지 않았지만, 육문석은 아이를 낳은 후 자결해서 황태자와 함께 쌍쌍이 학이 되어 세상을 주유한다. "기대한다는 건 추억을 기대한다는 말이 아니라, 조금만 더 날 기다려달라는 말"이라는 명대사와 함께.

드라마 <학려화정> 마지막 장면에서 정자 안에 서로 의지하며 서서 학을 구경하던 두 사람 모습은 <별운간>에서는 죽은 뒤의 모습이 되었다.

조왕의 말대로 죽음이 곧 해탈인 걸까. 죽어서야 안식을 찾는 두 사람

누가 황제에게 돌을 던질 것인가

황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황제 소예감을 미워하지 않는다. <별운간>에서는 황제의 마지막 장면 때문에 많이도 울었다.

앞서 <학려화정> 감상문에도 썼지만, 황제의 입장도 황태자 못지않게 절박하다. <별운간> 초반 허창평의 내레이션에서 나쁜 황제로 묘사되어서 심히 마음이 불편하므로 그에 대해서 한번 더 써보자.

모두가 떠난 후 태자와 점차하던 광경을 그리는 황제

황제의 입장에서 볼 때 고씨 가문은 처음에는 큰 힘이었다. 소예감이 소왕이던 시절, 그에게 야망이 있었는지 아니면 어쩔 수 없이 권력 싸움에 내몰린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어쨌거나 그는 고사경을 사랑했고 고씨와 손을 잡아 황위에 올랐다. 고씨가 왜 민태자를 택하지 않고 별로 눈에 띄지 않던 소왕을 골랐는지는 모를 일이지만, 추측해보자면 민태자는 이미 태자비가 있었고 군인 외척을 내켜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에 차선책으로 소왕을 선택하고 딸이 사랑하는 남자와 헤어지게 만들었다. 드라마에는 황태자 편이므로 정의로워 보이지만, 실제로 고씨의 야망은 작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고씨는 반란을 일으킨다

고 황후가 충격으로 첫 아이를 잃은 사이, 황제는 측비인 조씨와 가깝게 지내 첫아들을 낳는다. 조 씨의 친정은 부자지만 귀족이 아니어서 세력은 없고, 그래서 마음이 편했을 것이다. <별운간>에서 조 황후의 수연 장면을 보면, 황제가 조 황후를 "경경"이라고 부른다. 실제로 조 황후 이름이 "경"이었는지 아닌지를 떠나서, 고사경의 애칭인 그 이름을 쓰는 것을 보면 황제가 여전히 첫 황후 고사경에게 큰 의미를 두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나중에 갇혀있는 황태자에게 "네 어머니와 나는 소문처럼 그런 사이가 아니었다. 네가 태어났을 때 나도 정말 기뻤단다"라고 술회했듯, 그 역시 처음부터 그들 모자를 싫어한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 나중에 사이가 멀어진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고씨의 도움으로 황위를 차지한 황제는 "고씨로 하여금 황위를 잇게 하겠다"는 맹세를 해야 했고 내켜하지 않는 황후와 억지로 아들을 만들어야 했다. 즉, 황위에 올랐음에도 고씨가 횡포를 부리자 막을 방법이 없었고, 소씨의 황제로서 그들을 억눌러 평안한 나라를 물려주고자 하는 마음을 품기 시작한 것이다. 선조들 앞에서 "반드시 정권(황태자의 이름이지만, 권력을 안정시키겠다는 뜻도 있음)하겠다"라고 맹세한 것만 봐도 그렇다.

둘째, 조씨나 이백주 등 옆에서 계속 그와 고사림을 이간질하는 자들이 있었다. 그들은 황태자가 "소씨"가 아니라 "고씨"라면서, 생김새나 성격도 꼭 고사림을 닮았다고 속닥여댔다. 아마 황태자도 누군가에게 이간질을 받았거나 고씨에게 세뇌되었거나 하는 이유로 아버지를 잘 따르지 않고 멀리했을 것이다. 오죽하면 고사림에게 무슨 일이 생길 때마다 달려와서 아버지 짓이냐고 묻거나, 황제와 거래를 해서라도 구하려 하는 아들을 보면서 "네 그런 모습엔 이골이 났다"고 할까. 

훗날 조왕이 황태자에게 한 말을 황제에게 적용해보면, 황제 입장에서 고씨 가문은 언제든 황제를 뒤흔들 수 있는 위협적인 세력인데 황태자라는 녀석은 외숙부만 연관되면 앞뒤모르고 보호하기 바쁘니 제어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래서 여러 황자들을 이용해 황태자를 훈련시키려고 했지만, 결과적으로 실패해 오히려 고씨와의 관계만 좋아지고 황제 자신과의 관계는 멀어지기만 한다. 황태자가 언제든지 고씨와 손잡고 반란을 일으킬 수 있다고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최악의 경우를 대비해 장주로 떠나는 아들 뒤쪽에 2만 병사를 딸리고 조서까지 써 보낸 것이다. 제 아들인 황태자의 됨됨이가 "나약"해서 차마 그런 일을 할 수 없다는 것을 몰랐다는 것이 황제의 가장 큰 잘못이다.

선조들 앞에서 반드시 후세에 권신이 없는 평안한 나라를 물려주겠다고 맹세하는 황제

그런 복잡한 상황에서 서로 대립한 끝에, 황제 역시 소중한 사람들을 잃었다. 첫자녀를 잃었고, 사랑하던 고사경을 잃었고, 딸을 잃었다. 나중에는 큰아들 제왕을 잃고, 두 번째 황후도 잃고, 다섯째 아들을 잃었다. 그 과정에서 오랫동안 자신을 시중들었던 내시 진옹도 잃었다. 그의 곁에도 아무도 남지 않았다. 나이 들고 병을 얻은 황제도 차차 외로움을 느끼게 된 것이다.

고봉은의 반란이 끝나고, 황제는 "나는 그녀석을 폐할 생각이 없었다. 그 녀석이 스스로 폐위당해 돌이킬 수 없게 만들어 놓은 게야"라고 부르짖는다. 육문석에게서 손주가 생겼다는 말을 듣고 아들을 설득해달라고 보낸 뒤 아들의 마지막 글을 받고 부자의 정을 느낀 그는 이제야 아들을 단순히 "고씨와의 권력 싸움 대상"으로 여기지 않게 되었다. 물론 이미 고씨가 무너졌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문밖에서 눈을 맞으며 옛일을 회상하고 속마음을 털어놓는 황제의 모습이 그렇게 짠할 수가 없다. "그 아이는 아비를 걱정하니까 문을 열어줄 것이다"라거나 "삼랑, 문을 열어주렴. 아비가 정말 춥구나"하는 대사, "나도 오랫동안 손주를 바라 왔단다. 나중에 가끔 손주를 데려와 아비에게 보여주겠니"하는 대사에서 울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삼랑, 정말 춥구나

어차피 드라마는 비극이지만, 결국 황제는 무사히 손자를 얻어 황태손으로 삼고, 지난날 아들에게는 못해주었던 사랑을 듬뿍 준다. 저 어린 아이가 자라서 뒤를 이으려면 얼마나 더 오래 건강하게 살아야 하는지 모르지만, 이제야 비로소 "정권"하고 마음 편히 손자를 사랑해줄 수 있으니 황제에게는 해피엔딩이라고 할 수 있겠다.

장난치는 손자를 안은 황제


다 보고 난 후 잠시 웹을 뒤져보니 <별운간>은 "계륵"이라고 평한 사람이 있어 크게 공감했다. 사실상 <학려화정>으로도 충분히 주제는 전달되었으니 없어도 되는 이야기인데, 그래도 재미있게 본 드라마다 보니 삭제분이 궁금해서 보지 않을 수 없었다.

조왕과 고봉은의 갑작스런 흑화라거나 다소 성급하게 마무리된 점에서 완성도가 떨어지는 편이고, <학려화정> 이야기와 매끄럽게 이어지지 않는 부분도 있지만, 태자의 눈물이 그립고 너무너무 볼 것이 없다면 보는 것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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