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한찬란>을 보고 나면 <비호외전>을 보겠다고 생각했는데, 보고 글을 써야지 하고 미룬 게 벌써 반년 째다. 늦었지만 그때 써 놨던 걸 정리해 본다.
김용님 작품 중에서 <비호외전>을 세 번째로 좋아하는지라, 비록 변발의 충격이 있어도 이 드라마만큼은 꼭 봐야만 한다. 다행히 주요 인물들은 변발과 비(?) 변발이 섞여 있어서 <녹정기>보다는 견딜만하다.
선대의 로맨스
2007.12.01 - [미디어/영화와 드라마] - 설산비호 07 - 호일도 vs 묘인봉에서도 썼지만, <비호외전>의 진짜 묘미는 호일도와 묘인봉 이야기다. 호일도는 작중 이미 죽은 사람이니 그렇다치고, 묘인봉이야말로 세상을 주름잡는 대협객이요, 대인물이니까. 2007년 드라마 <설산비호>에서도 호일도와 묘인봉을 멋지게 잘 그렸는데, 이번 드라마 <비호외전>역시 두 사람을 제법 멋지게 그리려고 한 모양이다. 뭣보다 '특별 초청 주연'이라는 화려한 수식어를 달고 등장한 임우신이 묘인봉을 맡은 걸 보면 말이다.
임우신이 나온다는 건 어디서 잠깐 봐서 알고 있었는데, 진가락 정도의 인물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런데 묘인봉이라니! 묘인봉을 멋있게 그리는 건 좋은데, 얼굴이 누런 편이어서 '금면불'이라고 불리는 사람을, 심지어 아내가 자식까지 버리고 전귀농과 달아날 정도로 무뚝뚝하고 멋이 없는 사람을 임우신에게 맡긴 건 상당한 원작 파괴라고 할 수 있다. 더구나 임우신은 덩치도 작고 연약해 보여서 양소처럼 서생 느낌의 고수는 괜찮은데, 강력한 외공을 쓰는 묘인봉 같은 거친 남자와는 이미지가 안 맞긴 하다. 더군다나 남란이 임우신 같이 생긴 남편을 두고 하윤동 같이 생긴 사람에게 반한다는 것은....뭐, 사람마다 취향이 다르니까 남란을 이해해 보도록 하자. (나도 하윤동을 싫어하는 것은 아닌데, 그래도 그 당시 세상에 손가락질받는 것을 각오하고 남편을 갈아타기엔 두 사람 외모 차이가 딱히 크지는 않을 텐데)
물론, 원작을 깡그리 무시한 캐스팅이라고 해도 개인적으로 임우신이 다시 무협 드라마에 나와서 무척 반갑고, 진가락이 아니라 40편 내내 계속 나올 묘인봉을 맡은 것도 상당히 마음에 든다. 그래서 이번 <비호외전>은 거의 묘인봉을 주인공이라고 생각하고 봤다. 실제로도 꽤 많은 비중을 몰아주기도 했고. 덕분에 묘인봉 - 남란 - 전귀농 이야기가 끝날 즈음에는 갑자기 흥미를 잃어버려서 결국 끝까지 보지 못했다는 부작용이 생겼다.
앞서 말했듯 전귀농은 요즘 들어 악인을 잘 맡는 하윤동이고. 처음 등장했을 때 표정이 너무 비열해 보여서 충격적이었다. 하윤동은 이제 이렇게 악인 계열로 가는 것인가! 하지만 남란을 향한 마음은 진심으로 나온다. 묘약란도 정말 예뻐한 것 같고. 물론 끝까지 안 봐서 나중에 남란에게 못 되게 굴었는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전귀농의 진심이 어떻든, 남란이 호일도 일을 가족보다 앞세우는 남편에게 얼마나 섭섭했는지를 떠나서, 김용님도 둘의 관계는 부도덕하니 미화할 필요 없다고 언급하셨다니, 이번 드라마의 두 사람 이야기에 너무 감동하지 않도록 하자. 물론 임우신이 상대방이므로 절대 전귀농과 남란 편이 될 순 없다!
호비의 로맨스
호비 이야기도 삼각관계인데, 묘인봉네 이야기보다 조금 덜 매력적이었다. 일단 나는 원자의 같은 캐릭터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두 사람이 엮이는 내내 조금 피곤했다. 좋으면 좋다고 말하던가, 자긴 출가해서 맺어질 수 없으니 포기하라고 말하던가, 아무튼 좀 깔끔하게 관계를 매듭지으면 좋겠는데, 버리긴 아깝고 갖기는 어렵고 괜히 혼자 툴툴거리며 호비 마음만 힘들게 해 놓고 제멋대로 구는 게 정말 마음에 안 든다.
내가 <비호외전>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정영소다. 김용님 작품 중에 단 둘 뿐인 좋아하는 여자 캐릭터 중 하나여서. 정영소는 원작에서는 추녀에 가깝지만 드라마 특성상 당연히 예쁜 여자로 나올 수밖에 없다. 이번에 정영소를 맡은 배우는 형비로, 양염 못지않은 미모를 자랑했다.
원작에 충실한가
다 보지는 못했지만 기본적인 줄거리는 꽤 원작을 잘 따랐다고 생각한다. 묘인봉네 이야기가 조금 비중이 커진 것도 있고, 묘인봉이 원작과 달리 죽는다고 들었는데, 그 외에는 비슷하다고 볼 수 있겠다. 물론 팬들 입장에서는 완벽하지 않다고 하겠지만.
천룡팔부도 다시 나왔는데 끝내 보지 못하고, 비호외전도 완주하지 못한 건 이제 내 감성이 어린 시절 그 감성이 아니기 때문인 걸까. 아니면 드라마가 그만큼 매력적이지 않은 걸까.
비록 나는 다 못 봤지만, 변발에 내성이 있고 김용님 원작 소설을 안 본 분들, 임우신을 좋아하는 분들은 봐도 좋을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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