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천고서랑은...

    예스러운 배경의 소설과 드라마를 이야기합니다.

미디어/영화와 드라마

대한천자 이야기

by 와룡 2008. 9. 10.

사용자 삽입 이미지

장르 : 역사 무협(?) 드라마
주연 : 진도명, 가정문, 황효명, 진사리

<대한천자>라고 하면 워낙에 재미있는 드라마인지라 중국 드라마 팬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을 것이다. 꽤 오래전에 케이블에서 방송했었는데, 우연히 본 후로 너무 재미있어 아예 다운까지 받아놓았다. 그러다 오랜만에 조용한 곳에서 주말을 맞자 문득 생각이 나서 다시금 돌려보았다. 모두 다는 아니고, 동방삭이 떠나기 전까지만.
역시 참 잘 만든 드라마군, 하는 생각이 든다.

제목에서 보는 바와 같이 이 드라마의 배경은 한나라 시대이다. 그것도 한나라의 전성기라는 한무제 시절. 중국 역사를 통틀어 내가 좋아하는 시절은, 물론 처음은 삼국시대이고 두번째는 수말당초 시대이다. 그런데 이 드라마를 본 후부터는 한무제 시절도 무척 좋아하게 되었다. 그 정도로 매력적인 인물들과 사건들이 많기 때문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대한천자>는 주인공 한무제 유철이 태자시절부터 제위에 오르기까지를 다루고 있다. 물론 마지막 장면에는 늙은 한무제가 옛 친구들을 떠올리며 쓸쓸해하는 모습이 나오지만, 대부분 청년 시절 이야기이고 중년 이후는 아마도 시리즈물인 <대한천자2>에 나올 것으로 생각된다(물론 보지 않아서 모르겠다)
비록 한무제가 한나라 최고의 성군이라 불리긴 하나, 그가 그런 위치를 차지할 수 있었던 것은 '문경의 치'라 회자되는 문제-경제의 선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항우라는 큰 적을 겨우 물리치고 나라를 세운 한고조가 죽은 후 여황후의 집권과 어린 황제의 등극으로 불안한 상태가 지속되었는데, 문제와 경제 시대에 나라를 바로잡고 국력을 비축했다. 그것을 물려받은 무제였으므로 마음놓고 흉노를 칠 수 있었던 것이다. 어쨌거나  이 드라마에서는 여황후와 오초칠국의 난 등으로 혼란을 겪었던 한나라가 중앙집권을 이루고 황권을 세워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유철의 아버지인 한나라 6대 황제 경제는 본래 황후와의 사이에서 아들이 없었다. 문제는 본래의 황후를 폐하고  비 왕씨를 황후자리에 앉힌 후 그 아들인 유철을 태자로 삼는다. 서열로 따졌을 때 아홉번째 아들이기 때문에 유철의 의형제들이 그를 '아홉째 형'이라 부르는 것이다.
외척인 두씨 일족을 요직에 등용하고 있던 문제의 어머니인 두태후는, 문제의 병이 심해지자 태자인 유철을 폐하고 또 다른 아들인 양왕을 제위에 앉힐 모략을 꾸미기 시작했다. <대한천자>는 여기서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어린 태자답게 유철은 아버지가 병상에 있음에도 미복잠행 삼아 염차라는 곳으로 떠난다. 여기서 기녀로 신분을 숨긴 여협객 염노교와 추선, 그리고 길거리의 점쟁이 동방삭을 만나게 된다. 염노교는 장군이었던 아버지에게 누명을 씌워 죽인 염차후에게 복수하기 위해 태자를 이용하려고 그에게 접근한다. 염노교로 분한 가정문은 본래도 예쁘지만, 특히 이 드라마에서 최고였다. 지금도 그렇지만 부귀영화의 보증수표인 태자가 그렇게나 졸졸 따라다님에도 불구하고 눈하나 깜빡않고 동방삭을 선택하는 그녀의 모습이 어찌나 아름답던지. <측천무후>의 엉뚱발랄 소녀라던가, <의천도룡기>의 못된 조민따위보다는 훨씬 잘 어울린다.

동방삭이라는 인물은, 확실히 '제갈량'의 캐릭터를 고대로 따왔음을 알 수 있다. 일단 입고 있는 옷부터가 그렇다. 종종 수수께끼같은 해답을 알려주고, 비단 주머니에 계책을 적어 보내기도 한다. 세상에는 그가 모르는 일도, 그가 못하는 일도 없다. 너무나 완벽한 캐릭터라서 어찌보면 매력이 떨어질지도 모르는데, 내게는 완벽한 이상형이다. 진도명이라는 배우가 조금만 젊었더라면 이번 <적벽대전>에서 제갈량을 맡아도 잘 어울렸을 것 같다.
사실 이 <대한천자>에는 황제 유철을 비롯해 그 의형제들보다는 주변인물들이 훨씬 매력적이다. 동방삭-염노교 커플은 물론이고, 평양공주-위청 커플, 황제를 둘러싼 진아교와 위자부, 늙은 이광 장군, 비록 잠깐 등장하지만 멋진 모습을 보여준 탁문군 등이 그렇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흉노와 싸우려고 모병을 할 당시 어린 곽거병이 등장한다. 아마 2부에서 활약하게 될 것 같은데, 나는 개인적으로 곽거병보다는 위청이란 캐릭터가 더 좋다. 그가 너무도 어린아이로 나와서, 차분하고 지적인 평양공주와 맺어진다는 게 조금 우습긴 했지만, 두 사람은 나름 귀여운 커플이 되어 주었다. 평양공주를 분한 배우는 아마 <의천도룡기>에서 주아로 나왔던 것 같은데, 그 역할보다 품위있는평양공주를 연기하는데 훨씬 잘 어울렸다.
조금 아쉬운 것이 있다면 위자부 정도. 자꾸 보면 나름대로 귀엽긴 하지만, 천하절색의 황후를 연기하기에는 가장 외모가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하긴 굳이 외모를 따지자면, 동방삭-염노교 커플이 가장 문제다. 아무리 잘보아도 삼촌과 조카 정도로 보이니 말이다.

두태후로 분한 진사리의 연기는 정말 예술이었다. 그녀가 없었다면 아마 이 드라마의 재미도 반쯤 떨어졌으리라. 그녀와 동방삭이 드라마의 주축을 이루고, 나머지는 여러 캐리터들이 나눠 갖는 것 같다.

태자 유철은 진아교의 도움으로 황제 자리에 오르지만, 할머니 두태후가 수렴청정을 제의하여 결국 이름뿐인 황제가 되고 만다. 그런 와중에 질투를 일삼는 진황후가 귀찮아졌을만도 하다. '금옥장교'라는 말이 수없이 나오는 만큼, 비록 사촌누나이기는 해도 어려서부터 그녀에게 반해 아내로 삼겠다고 약속한 황제인데 금세 그녀에게서 마음이 떠났다는 사실이 참으로 가엾다. 두태후가 정치때문에 악녀가 되었다면 진황후는 사랑때문에 악녀가 된 케이스인데, 그래서인지 그녀가 밉다는 생각은 별로 들지 않는다. 끝까지 보지 않아 진황후가 폐위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역사상 그녀의 뒤는 평양공주부의 가기였던 위자부가 잇는다. 물론 위황후 역시 나중에는 폐위되어 자살한다. 위대한 황제 무제의 사랑은 위자부에서 다시 왕미인-이부인으로 옮겨간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어쨌거나 드라마에서 그가 가장 사랑한 사람은 염노교지만, 그녀는 동방삭에게 가버리고 황제는 항상 곁에 있어주었던 위자부를 귀비로 삼는다. 결혼까지 약속(?)해놓고 예식 전날 몰래 동방삭에게 달아난 염노교지만, 그래도 황제는 황제답게 동방삭의 인물됨을 깨닫고 두 사람의 혼인을 주선하겠다며 그를 등용하려고까지 한다. 그렇게 열심히 황제의 자리를 굳건히 만들어놓고서 왜 그의 곁을 떠났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물론 그래서 그의 모습이 아름답긴 하지만, 계속 남아서 2부에도 나와주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평양공주의 죽음도 안타깝다. 그녀는 본래 부마였던 조수가 남자답지 못하다고 늘 퉁을 주곤 했었는데, 그가 아우를 살리기 위해 대신 죽자 그것을 후회하고 늘 남편의 영정을 곁에 두곤 했다. 그러다 꿈에 그리던 이상형인 영웅다운 위청을 만나 결혼하지만, 그가 출정한 사이 어떤 원인으로(병이었나? 기억이 잘...^^;) 죽고 만다. 물론 마지막에 위청을 만나기는 하지만, 그녀가 사라진 것또한 <대한천자 2부>가 기대되지 않는 원인 중 하나다.

<대한천자>에는 역사적인 인물들이 많이 나온다. 사마천의 아버지 사마담이 사관으로 등장하고,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가 죽은 후 사마천이 뒤를 이어 사적을 집필한다. 초반부터 등장하는 장건은 두태후가 정권에서 물러난 후 무제의 힘을 얻어 서역으로 떠나기도 한다. 진황후의 억울함(?)을 토로하는 시를 지은 탁문군과 그 남편이자 당대 최고의 문인 사마상여도 등장한다. 의형제중 막내로 등장하는 이릉은 훗날 흉노와 싸우다 항복함으로써 사마천이 궁형을 당하게 되는 원인을 제공하기도 한다. 단순히 황권을 두고 싸우는 할미와 손자, 그리고 똑소리나는 천재 서생의 이야기를 보는 것도 재미있지만, 종종 튀어나오는 역사적인 사건들을 하나씩 짚어보는 것도 나름대로 재미가 있다.

자막을 넣고 봤는데, 대작이라 그런지 다른 무협 드라마의 자막들에 비해 꽤 잘 되어 있었다. 각 편마다 다른 사람이 번역한 듯 통일성이 약간 떨어지긴 했지만 그래도 정말 이해가 쏙쏙되는 문장들이었다. 도중에 웃음이 터진 부분이 하나 있었다. 염노교가 황궁에 들어가 춤추는 것을 보고 황태후가 그 미모를 칭찬하는 부분인데, '마치 양귀비같이 아름답다'는 표현이 들어있었던것. '한나라 때 왠 양귀비?' 하며 다시 돌려 보았지만 원본에는 그런 대사는 없었다. 내내 뛰어난 의역에 감탄했지만, 의역도 너무 오버하면 안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