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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고서랑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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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뮤지컬과 음악

<지킬앤하이드> 오리지널

by 와룡 2009. 9. 28.


(이미지 출처 : 공식 홈페이지 http://www.musicaljekyllnhyde.com/

사실 썩 마음이 끌리는 공연은 아니었지만, 큰 기대를 하던 누군가 덕분에 보게 되었다.
본래도 외국어로 하는 공연은 좋아하지 않는데다 <지킬앤하이드> 같은 경우는 특히 외국어 발음 자체가 힘이 없어서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던 중이었다.

약혼식, <Take me as I am>

시작과 동시에 그 예상이 맞아떨어진 것이, 좋아하는 노래 중 하나인 <Facade>가 아주 실망스러웠다. 어딘지 손발도 짝짝 안 맞는 것 같고 파워도 없다. 앙상블의 목소리도 별로 매력적이지 못했다.

나에게 있어 이 공연의 의미는, 한국식 <지킬앤하이드>와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볼 수 있었다는 것 정도이다. 그 의미가 크게 느껴지는 것은 그간 여러번 봐 온 <지킬앤하이드>가 다소 지루한 부분이 있고 이야기 전개도 어색한 데가 있기 때문이다. 이 공연에서 지난번 본 <지킬앤하이드>와의 차이점이며 숨겨진(?) 이야기들을 살펴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오리지널 <지킬앤하이드>는 한국 공연보다 좀 더 많은 내용을 담았음에도 전개가 빨라서 지루한 부분이 없어 좋았다. 그리고 대사보다는 노래로 진행하는 부분이 많다는 생각이 든다.
'지킬'이라는 인물의 이미지도 한국과는 다르다. 어딘지 연약하고 고지식한 학자, 진실을 추구하려하지만 사회를 타파하지 못하고 끙끙대는 다정한 청년이었던 지킬이, 브래드 리틀을 만나면서 경험많고 약간은 독선적이고 건방진 느낌의 아저씨로 다시 태어났다. 대놓고 병원 이사회에게 '니들이 바로 악마다'고 떠들어대는 것이나 자신의 신념만이 진실하다고 믿고 약혼녀의 아버지에게조차 양보하지 않는 모습이 꽤 비호감이다. 오죽했으면 엠마조차 '나의 악마'라고 했을까.
하긴, 그런 인물이기 때문에 하이드가 되는 일까지 벌어졌으리라. 하이드는 실제로 그런 지킬 안에 있던 내면이 맞다. 지킬이 속으로는 원하면서 겉으로는 하지 못했던 것, 말하자면 루시를 만나는 것이나 병원 이사들을 죽이는 것들을 할 수 있게 만들어준 것이 하이드다. 약혼식을 치른 날 밤에 술집을 찾아간 것도 어터슨의 권유 때문이 아니라 그 스스로 결정한 일이다. 아마도 스트라이더가 지킬을 싫어한 것은 엠마를 빼앗겼기 때문만은 아니라 그의 독선적이고 콧대높은 성격또한 한가지 이유가 아니었을까?

포스팅 전 웹서핑을 해 보니 브래드 리틀에 대한 칭찬이 자자하다. 하지만 난 다르다. 어떤 점에서 이 '오리지널' <지킬앤하이드>는 우리네 뮤지컬 - 배우, 스텝, 무대 장치 등 모두 - 도 결코 오리지널에 뒤지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해주기도 했다.

브래드 리틀의 지킬

브래드 리틀의 하이드


브래드 리틀은 아무래도 젊은 배우는 아니다보니 헨리 지킬이라는 캐릭터가 별로 매력적이지 못했다. 그렇다고 목소리가 매우 아름다운 것도 아니다. 연기력이나 무대에서 보이는 카리스마는 한국 '지킬'을 압도하는 것 같지만 - 어쩌면 그 카리스마는 엄청난 체격에서 나오는 것일지도^^ - 노래만 봤을 때 '참 대단하구나'는 평가를 할 정도는 아니었다. 물론 전문가도 아니며, 오리지널보다는 한국식 <지킬앤하이드>에 익숙하기 때문에 객관적인 평가라고 말하진 못하겠다.

너무 기대를 했을까? 브래드 리틀의 <This is the moment>는 별로 열정적이지 않았다. <The Confrontation>은 지킬인지 하이든지 목소리 구분도 되지 않았다. 그저 파워가 있구나, 라고 느낄 정도. 극적이어야 할 살인 장면과 변신 장면도 별다른 공포를 느끼게 할 정도는 아니었다. 처음 변신 후 루시를 쫓아가는 장면에서는 대단한 연기력이요, 목소리 변화라고 생각했지만 말이다. 어쩌면 하필 그가 내가 본 공연에서 혼신을 다하지 않았던 걸까?

루시는 한국식과는 달리 참 전형적인 창녀를 보여주었다. 하지만 정말이지 노래는 김선영을 따라갈 수 없다. 이 공연을 보고 새삼 느낀 것이, 실제로 김선영이 이 '루시'라는 캐릭터를 정말 제대로 살려놨구나 하는 것이다. 한국 <지킬앤하이드>를 보면 아무래도 여주인공은 루시이고 엠마는 엑스트라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런데 오리지널에서는 엠마가 매우 성숙하고 아름다운 여주인공처럼 보였다. 여전히 루시의 곡이 좋긴 하지만 전체적인 분위기에서 엠마에게 밀리는 느낌이랄까. 김선영이 루시의 곡을 얼마나 잘 소화했는지, 이제 루시라고 하면 김선영 특유의 허스키 보이스가 생각난다. 오리지널의 다소 고운 목소리의 루시는 루시답지 않게 느껴질 정도다.

루시 등장

지킬을 유혹하는 루시


내가 아주 좋아하는 매력적인 <Bring on the man>은 한국식과 춤이 완전 다르다. 또한 도중에 좀더 자극적인(?) 가사가 들어있는데 이부분은 한국판에서 완전히 빠져있다. 개인적으로는 한국식이 좀 더 즐겁고 볼거리도 많은 것 같지만, 루시라는 캐릭터가 어떤 사람인지 보여주기애는 오리지널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어른스러운 느낌의 엠마는 역할 자체가 마음에 들었다. 다소 어린애같던 기존 이미지에서 벗어나 실제로 지킬의 모든 것을 포용해주는 정신적 안식처다운 느낌이다. 브래드 리틀과 서 있으면 어쩐지 삼촌과 조카같은 느낌이 나지만.
그래도 <In his eyes>, <His work and nothing more>등은 듣기 좋았다. 모두 엠마가 함께 부르는 곡이니, 아무래도 난 오리지널팀의 엠마가 상당히 마음에 든 모양이다.

공연을 보고 바로 포스팅을 했어야 좀 더 느낌을 살려 썼을텐데, 지금은 그 때의 느낌이 많이 사라진 상태다. 하지만 이야기 흐름이 색달랐다는 것 외에는 굳이 오리지널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든다. 브래드 리틀이 한 때는 팬텀을 얼마나 잘 연기했든, 지킬과 하이드로써는 그다지 매력적인 배우는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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