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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고서랑은...

    예스러운 배경의 소설과 드라마를 이야기합니다.

취미/뮤지컬과 음악

가슴 벅찬 뮤지컬 <영웅>

by 와룡 2009. 11. 17.


처음에는 창작뮤지컬이라고 해서, 게다가 류정한이 <오페라의 유령>을 포기(?)하고 택했다고 해서 많이 아쉬워했던 기억이 난다.
나중에야 뮤지컬 <영웅>이 한국사람들이 마음속에 그리는 진짜 영웅 '안중근'에 대한 이야기라고 하기에, 거기다 쟁쟁한 배우들이 줄줄이 나온다기에 꼭 봐야겠다고 다짐했다.

공연한다는 소식을 들은지 정말 오랜 기다림끝에 티켓 오픈을 했다. 처음에는 안중근과 이토 역만 공개되었기 때문에 류정한의 공연을 예매했지만, 뒤늦게 다른 배역 캐스팅이 공개되자 김선영이 나오는 공연으로 변경했다. 나야 김선영을 별달리 좋아하지는 않지만, 사실 공연을 보고나니 썩 괜찮은 선택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공연 전에 <영웅>, <그날을 기약하며>, <사랑이라 믿어도 될까요> 등 세 곡이 공개되었다. 특히 <그날을 기약하며>는 그 전에 주요 배우들이 함께 부른 영상을 본 적이 있었는데, 그 때부터 아주 마음에 들어 했었다.


아직 마음이 어려서 그런지 몰라도, 난 항상 영웅과 의리에 감동한다. 그런 곳에 흘리는 눈물은 정말 아깝지 않다. 넘버 공개 후 가끔 <그날을 기약하며>를 듣곤 했는데 그 때마다 울컥하는 감정을 추스르느라 혼났다. 그래서 난 벌써부터 이 공연 앞에서 한 바탕 울거라고 예상하고 있었다.

안중근역 류정한


당연하다. 한국 사람치고 안중근 이야기를 보며 울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나름 교훈적인 뮤지컬이다보니 어머니를 따라 온 아이들이 많았다. 하지만 어린아이의 감정이란 것은 아직 애국심을 느낄만큼 자라지 못했던지, 그들은 별로 감동받은 것 같지 않았다.

아무튼, 100년 전 10월 26일 하얼빈 거사를 기념하며 10월 26일에 첫공연을 시작한 뮤지컬 <영웅>은 그 어떤 감동적인 영화보다 더 가슴벅찬 공연이었다.
공연이 끝나고 커튼 콜 하기 무섭게 관객들이 기립박수를 쳤다. 물론 나도 그 중 한 명이었다. 단순히 어떤 배우가 연기를 잘했다고 박수를 치는 게 아니라, 정말로 공연 자체가 훌륭해서 일어나지 않을 수 없었다.

1막이 시작하고, 어두운 숲 속에서 안중근(류정한)을 비롯한 애국지사들이 손가락을 자르며 독립투쟁을 맹세할한 때부터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눈물을 쏟았다. 사실 <그날을 기약하며>에서 한 바탕 터트릴 준비하고 있었는데 뜻밖이었다. 공개된 곡이 셋 뿐이라 그렇지, 사실 1막 첫곡 또한 훌륭하고 감동적이었다. 아쉽게도 관련 블로그에 넘버 제목들이 나와있지 않아서(아니면 내가 못찾는 건지...) 곡 제목을 알 수가 없다. OST를 구매하려 해도 11월 중순에 발매된다고 한다.
그래도 <그날을 기약하며>는 역시 압권이었다. 이토 저격을 결심한 네 명의 독립투사와 최재형, 링링 등이 함께 부르는데, 메인 넘버는 <영웅>일지라도 진짜 독립투사의 마음을 나타낸 것은 이 곡이라 생각한다. 맑은 류정한의 목소리와 곱게 어우러지는 임진웅과 문성혁의 목소리, 그리고 참 매력적이라 생각되는 다소 낮은 톤의 조휘의 목소리가 노래를 제대로 살려준다. 특히 조휘가 마음에 들었는데, <돈주앙><클레오파트라>에도 출연했다고 한다.

계속 감동이니 눈물이니 하는 얘기만 했는데, 내용을 떠나 생각해봐도 아주 잘 만들어진 작품이다. 우선 곡들이 하나 같이 심금을 울린다. 특히 김선영이 부른 (제목을 알 수 없는) 명성황후를 그리는 노래는 그녀의 목소리에 너무 잘 어울렸다. 아마 그녀가 아니면 저 노래를 저렇게까지 깊이있게 부르지 못할 것 같다. 뒤이어 기차에서 뛰어내려 자결하기 전에 부르는 곡도 대단했다.

설희역 김선영

채가구에서 이토를 기다리는 우덕순(문성혁)과 조도선(조휘)이 부르는 아리랑은 잔뜩 긴장된 마음을 풀고 듣는 사람도 흥겹게 만들어 주었다. 만주에서 안중근과 독립투사들이 일본 순사들의 눈을 피해 달아날 때마다 나오는 빠른 템포의 곡도 노래는 없지만 상황에 꼭 어울렸다. 무대 장치도 훌륭해서, 투사한 화면을 움직임으로써 마치 투사들이 정말 도시를 헤매며 달아나는 것같은 시각효과를 영보여주었다. 쫓고 쫓기는 일본순사와 독립투사들의 움직임은 화려하고 힘있는 댄스로 시선을 끌었다. 아무래도 보기 좋으라고 키 큰 배우들만 뽑지 않았나 싶다.
이토(조승룡)가 설희(김선영)와 함께 하얼빈행 기차를 타고 갈 때는 영상과 실제 기차를 겹쳐 보여주어 기차의 안팎을 번갈아 볼 수 있어서 인상적이었다.

명성황후를 모시던 궁녀로 일본에 건너가 게이샤로 위장해 첩보활동을 하던 설희는, 자신을 소울메이트라고 생각하는 이토의 다정함에 고뇌하다가 결국 암살 실패 후 기차에서 뛰어내려 자살한다. 가상 인물이기는 하지만, 그녀가 이토의 하얼빈 행 정보를 독립군에게 알려줌으로써 안중근과 일행들이 이토 저격을 시도하게 되는 것이다.

링링역 소냐


전체적인 줄거리와는 거의 무관냐한 링링(소냐)은 독립군의 친구인 중국인 왕웨이(정의욱)의 동생이며 안중근을 짝사랑하는 어린 소녀다. 사실 나는 소냐의 노래를 기대했는데 별로 폭발적인 곡이 없을 뿐 아니라 역할도 미적지근해서 다소 실망했다. 그녀는 일본순사가 안중근을 향해 쏜 총을 맞고 대신 죽는다.

이같은 희생 앞에서 안중근은 죄책감과 두려움을 느끼지만, 상상속에서 어머니(민경옥)의 격려를 받으며 홀로 하얼빈 역으로 향했다.
공연 시작시 일곱 발의 총성과 함께 화면에 북두칠성 모양의 총탄 흔적이 나타나므로 이토를 향해 일곱 발을 모두 쏘았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로 그는 이토에게 세 발을, 옆에 있던 세 사람에게 각기 한 발을 쏘았다고 한다. 나머지 한 발은 왜 쏘지 않았냐는 심문에서 '일본인을 미워해서 쏜 것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는 이야기다.
아무튼 세 발을 맞은 이토는 절명하고, 안중근은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면서 체포되었다. 재판장에서
'명성황후를 시해한 일본무사는 무죄, 이토를 저격한 나는 사형이라니 무슨 이런 법이 있는가'
하고 외치던 모습이 감동적이다. 여기서 그는 각 국의 기자들 앞에서 이토를 죽인 이유를 선포(?)했다. 그것은 물론이고 심문을 받을 때
'나는 독립전쟁을 하고 있다, 따라서 형사범이 아니라 전쟁포로다'
라고 한 말도 감동이었다.

안중근의 이토 히로부미 저격


그의 나이 31살 때 일이다. 조국을 잃어버린 청년은 빨리 철든다고 유동하가 그랬다지만, 안중근이 나라의 미래를 위해 이토를 저격한 그 나이에 나는 여전히 철없이 하루를 흘려보내고 있다는 사실이 부끄러울 뿐이다.

수감 중 동양평화론을 집필한 그는 자신에게 공감한격 일본 간수에게 '위국헌신 군인본분'이라는 글을 남긴 후, 어머니가 지어보낸 수의를 입고 형장으로 나간다. 이토 저격에서부터 처형까지 다소 늘어지는 느낌이었기 때문에 나는 조금 마음을 가다듬었는데, 도리어 어머니가 마지막에 부르는 노래에 가슴 뭉클해서 눈물 흘렸다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가 죽기 전날 상상속에서 이토가 나타나 '왜 하필 나를 쏘았나'라고 물으며 안중근과 설전을 벌인다. 이토는 동양평화를 위해 강력한 나라로 통일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안중근은 평화란 다같이 더불어 사는 것이라 주장하지만, 결국 두 사람 다 '나라를 위해서 한 일'이라고 끝맺는다. 하지만 난 한국인이라 그런지 이토의 주장을 지지할 수 없다.
이토는 일본의 영웅이요, 이토를 죽인 안중근의 일본의 척살대상임이 당연하겠지만, 안중근의 유체는 일본인들에게 철저히 유린되어 지금 그 묻힌 곳조차 찾을 수 없다고 한다. 그는 자신이 죽은 후 하얼빈에 묻었다가 나라를 되찾으면 다시 우리 땅으로 옮겨달라고 유언했다지만 독립 60년도 더 지난 지금까지도 한국 땅에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독립투사들이 부르는 <그날을 기약하며>


이천만 동포의 깊은 한숨을 대신하듯 불어오는 이 바람
잠자던 내 영혼 지친 나에게 스쳐가며 말하네, 이제는 떠나가야 할 시간 그것은 너의 길
험난한 시련을 겪을 수 밖에 없겠지, 머나먼 타국 땅에서 하지만 그것은 내게 주어진 운명

잊을 순 없는 건

빼앗긴 조국, 신음하는 우리의 부모 형제
우리가 가는 길, 기약없는 내일과 두려운 미래
하지만 포기할 수는 없어 우리 후손 위해

시간이 흐르면 역사 속에서 사라져 이름도 없겠지만
나 오늘 이 순간 후회없이 살고 싶어

그 날을 위하여, 우리 모두 어깨 감싸며 말하네 힘을 내자고
바람이여 도우소서, 우리에게 힘을 주오 기약되 있는 그 날을 위해
자, 우리들의 외침 세상이 들으리라 민족의 울음 뜨거운 열정
사랑하는 조국을 위해

가끔 생각한다.
내가 그 시절에 살았더라면, 과연 나도 독립투사가 될 수 있었을까? 혹시 친일파가 되진 않았을까?
그 같은 세상에서 당당하게 자신의 의견을 말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지금의 나로선 내가 무엇이 되었을지 확신할 수 없다. 따라서 친일한 사람들의 자손이라고 무조건 욕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그들은 조상의 행동을 부끄러워할 줄 알아야 하며, 조상으로 인해 얻은 이득이 있다면 기꺼이 내놓을 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 독립투사의 자손들이 조상을 자랑스럽게 여길 수 있도록, 그토록 원하던 독립한 대한민국에서 즐겁게 살 수 있도록 도울 수 있어야 한다.

뮤지컬 이야기를 하려다가 결국 이런 이야기가 되고 말았다.
하지만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만큼 한 번쯤은 생각해 볼 일이다. 100년이면 그렇게 오래된 일도 아닌데, 우리 나라는 비약적인 발전을 하면서 어려웠던 시절을 너무 빨리 잊어가고 있다. 공연에 어린아이들이 많은 것을 반기는 편은 아니지만, 이런 공연이라면 좀 더 많은 학생들이 보고 과거를 되새겨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미지 출처(뮤지컬 영웅 공식 블로그 http://blog.daum.net/acommusic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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