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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고서랑은...

    예스러운 배경의 소설과 드라마를 이야기합니다.

미디어/영화와 드라마

드라마 <절대쌍교> 2020 다 본 후

by 와룡 2020. 2. 25.

2020년 드라마 <절대쌍교>를 드디어 다 봤다. 줄거리는 대강 알지만 세세한 부분을 잊어버린 덕분에 뒷부분을 궁금해하면서 볼 수 있었다. 기다리기 아쉬워 책을 볼까 했지만, 책을 먼저 보면 오히려 드라마가 재미없을까봐 꾹 참은 덕분이다.

 

 

 

오랜만에 나온 이 드라마가 양조위/오대륭 주연의 80년대 TVB 판 드라마나, 임지령/소유붕 주연의 대만판 드라마, 장위건/사정봉 주연 드라마 <소어와와 화무결>과 비교해 다른 점이라면, 크게 두 가지를 들 수 있겠다.

  • 첫째, 원작을 거의 따랐다.
  • 둘째, 촬영지 배경이 예술이다.

원작과 비슷

첫번째 다른 점 이야기를 먼저 해보자. 솔직히 세세한 부분은 기억이 나지 않아서 “원작과 완전히 똑같다"라고 자신할 수는 없지만, "거의 따랐다"라고 한 가장 큰 이유는 원작 캐릭터를 거의 다 그대로 그렸다는 점이다. 양조위/오대륭 판은 모용구와 소앵을 합쳤고, 연성궁주가 안 나온다. 임지령/소유붕 판은 연남천과 요월궁주를 연인으로 설정헀고, 흑지주를 모용씨 집안 하인으로 만들었다. 정확히 기억이 안 나지만 두 판 모두 고소매가 안 나왔다. 장위건/사정봉의 <소어와와 화무결>은 아예 이야기를 마구 뒤섞었고, 그 유명한 유덕화/임청하가 주연한 영화 <절대쌍교>는 화무결을 남장여자로 설정해 본래는 형제인 두 사람을 연인으로 만들었으니 말할 것도 없다. 그에 반해 2020년 <절대쌍교>는 요월궁주, 연성궁주는 물론이고 소어아가 만나는 여자 캐릭터(도화, 철심난, 장청, 모용구, 해홍주, 단삼낭... 그리고 소앵!)를 모두 등장시켰고 십대악인과 십이성상도 주요 인물 이야기를 다 그대로 그렸다. 원작 추종자라면 충분히 좋게 볼 수 있는 점인데, 아무래도 44편이라는 짧은 작품에 이야기를 욱여넣다 보니 약간 산만하긴 하다.

 

모용구와 소어아의 첫만남

 

김용님 작품도 드라마화 될 때마다 매번 원작 훼손 이야기가 나올 만큼 팬들에게서 미움받고 있지만, 실상 그간 고룡님 작품은 훼손이 더 심했다. 작품이 많지 않고 인지도가 비교적 낮아서 말이 덜 나왔을 뿐이지... 그렇기에 다소 산만하다 해도 원작을 잘 살린 것은 분명히 의미가 있다. 저작권이 해결된 후 나온 작품이라 살짝 짐작해보자면, 저작권자 측에서 원작 훼손을 막은 게 아닐까? 넥슨에서 <천애명월도> 책 낼 때도 저작권자 측에서 고룡님 작품을 너무 가볍게 다루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고 들었으니까.

눈을 시원하게 하는 배경

두번째 다른 점은, 사실 따지고 보면 시간이 흐르면서 당연한 변화이긴 하다. 수십 년 전 홍콩/대만에서 찍은 것에 비하면 가장 최근에, 그것도 돈 많고 땅 넓은 중국이 찍었으니 당연히 촬영기법이 세련되고 배경도 멋있을 수밖에. 개중에서도 색다른 점은, 주요 배경 설정이 곤륜산, 아미산 등지여서 그런지 기본적으로 배경이 중화보다 소수민족 색채가 짙다. 소어아가 입고 다니는 옷도 알록달록한 것이 아주 색다르다.

큰 도시나 건물보다는 산과 물이 많이 보이는 것도 개인적으로는 아주 마음에 든다. 몇 군데는 직접 가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 정도로.

 

이런 객잔이 있다면 꼭 가보고 싶다. 
어느 강가. 물빛은 별로지만 주변 장식이 좋다
예쁜 강가. 여긴 주로 화무결과 철심난의 장소다
두 형제의 결전 장소. 여긴 그래픽인 듯

 

그 밖의 것들

액션 장면은 연남천 같이 몸으로 싸우는 사람이 등장하면 꽤 볼만한데, 이화궁 무공 같은 내공을 쓰는 씬은 그래픽이 조금 어색하다. 특히 뒤로 갈수록 액션 장면이 어색해지는 걸 느낀다. 앞부분은 꽤 화려했는데.
다행히 마지막 장면, 소어아와 화무결의 대결은 몸싸움과 그래픽을 섞었고, 일부러 볼거리를 그리려고 했는지 제법 길어서 볼만하다. 고룡님의 결투 스타일은 ‘휙', ‘퍽', ‘윽'으로 정리할 수 있어서 저렇게 긴 대결이란 있을 수 없지만, <절대쌍교>는 그런 특성이 나타나기 전의 초중반 작품이기 때문인지 전형적인 무협의 싸움 방식을 따랐다. 하긴, 42편을 기다려온 대결이 너무 쉽게 끝나면 허무하겠지.

 

결투하는 두 사람
결투하는 두 사람 
결국 소어아가 쓰러졌다.

 

이제 배우 이야기를 해보자.

진철원의 소어아는 아주 마음에 들었다. 이따금 양조위를 떠올리게 하는 장면이 있긴 하지만 (어쩌면 그냥 소어아 느낌인데 양조위의 기억이 강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연기가 부족하단 생각이 들지 않을 만큼 능청맞게 캐릭터를 잘 살렸다. 세상에 꾀로는 당할 자가 없는 소어아를 꼼짝 못 하게 하는 세상에 하나뿐인 사람, 소앵은 사실 내가 기대한 스타일은 아니었다. 모용구와 소앵을 합친 옛날 양조위 주연 드라마에서 나온 사녕이 워낙 도도한 느낌이다 보니 그런 모습을 기대했나 보다. 이번 소앵은 일단 목소리부터 아기 같아서 카리스마가 부족한 게 흠이다. 하지만 뭐, 워낙 늦게 나오고 그전에 오히려 훨씬 더 오랫동안 소어아와 얽히는 장청이나 모용구가 있어서 견딜만하다. 특히 모용구는 훌륭했다!

 

소앵이 사는 곳
모용구와 장청

 

소어아 쪽과 달리 화무결-철심난 커플은 조금 아쉽다. 이야기 속에서 가장 오랫동안 마음의 상처를 받고 헤메는 두 사람인데, 둘 다 스타일이 너무 딱딱해서 공감하기가 쉽지 않았다. 44편을 보는 도중에 가장 많이 딴짓하고 넘긴 장면이 화무결과 철심난 장면이었다. 철심난은 남장했을 때는 나름대로 임청하 느낌이 나면서 꽤 멋있었는데, 여자로 돌아간 순간부터 화무결과 잘 되려고 그러는지 어찌나 빼다 박은 듯이 딱딱한지...

시간이 갈수록 정이 가는 건 연남천과 요월궁주다. 특히 연남천은 본래 캐릭터가 가진 매력이 있는 데다 이번에는 파워도 넘쳐서, 진주인공이라 생각하면서 봐도 아깝지 않다. 괜히 천하제일대협이 아닌 것이다. 요월궁주는 사랑에 미친 것을 빼면 당대 최고 고수다운 카리스마가 있는 데다, 자꾸 보다 보면 웃을 때 귀엽기도 해서 차라리 연남천과 화해하고 친구가 되어 잘 살지, 하며 아쉬워했다.

 

진주인공 연남천 등장. 생각해보면 노중원일 때는 스타일이 다르긴 하다.
마침내 만난 소어아와 연남천

 

악인도 빼놓을 수 없다. 악인중에서는 강별학보다는 강옥랑이 눈에 띈다. 아버지는 위군자지만 아들은 아예 대놓고 소인배다. 멀끔하게 잘 생겼는데 태세 전환이 이를 데 없이 빨라서, 조금만 유리하면 위세를 부리다가 불리해지면 바로 꼬리를 내리는 모습이 얄미우면서도 귀엽다. 보통 아버지가 나쁜 일을 해도 아들에겐 안 시키기 마련인데, 훌륭하신 강별학은 아들에게도 나쁜 것만 가르치는 게 참 대단하다.

 

강별학. 첫 인상도 악인인데...
소미미에게 걷어차이고 이를 가는 강옥랑. 이 잠깐의 눈빛을 보고 소어아는 강옥랑이 모진 인간임을 알았다

 

이야기는 해피엔딩이다. 18년이라는 긴 세월, 복수를 위해 소어와와 화무결이 형제라는 사실을 숨겨온 요월궁주의 음모는 결국 깨지고 소어아는 소앵과, 화무결은 철심난과 행복한 결말을 맞이했다. 나쁜 짓을 해온 강별학, 강옥랑, 십대악인 증 여섯, 십이성상은 모두 나쁜 최후를 맞았다.

이대취가 마지막에 말했듯이, 악인들은 소어아를 최고의 악인으로 만들기 위해 18년을 노력했지만 결국 착한 본성을 바꿔놓지 못했다. 어쩌면 그게 이 이야기의 주제일지도 모르겠다. 악인은 악인으로서 죽고 선인은 선인으로서 살아나는.
악인 흉내만 낸 이대취는 그래도 제 손으로 키운 소어아를 살리고 싶어 했기에 마지막에는 딸과 해후하는 행운을 얻었다.
무아궁에 갇힌 소어아를 해치려고 십대악인 중 여섯이 달려왔을 때, 악도귀 헌원삼광이 마구 꾸짖자 이대취가 자신은 진심으로 소어아를 살리고 싶다고 하는 대목에서 마음이 찡했다. 생각해보면 “그래도 우리 손으로 키운 아인데'라고 망설이던 건 이대취와 연성궁주 뿐이었던 것 같다. 참, 그러고 보니 연성궁주가 아이들을 구하려고 일부러 그 잔인한 계책을 냈다는 건 왜 알려주지 않는 거지? 연성궁주는 착한 사람인데....

어쨌거나 감동적인 내용은 그것말고도 또 있다.

바로 모용구와 흑지주의 사랑이야기. 흑지주는 지고지순한 순정파다. 모용구를 위해 모든 것을 다 주지만 그녀에게 바라는 건 자신을 기억해주는 것밖에 없었다. 고룡님이 여자를 많이 만나봐서 그런지 몰라도, 감동적인 사랑 이야기는 확실히 잘 쓰는 것 같다.

 

기억을 잃고 기루에 갇힌 모용구 
흑지주와 모용구의 사랑이 꽃핀 아름다운 장소
모용구에게 접근했다가 흑지주에게 잡힌 소어아

 

드라마를 다 봤으니 이제 책을 읽어야지, 하던 참인데 우리나라에 나온 책을 못 구하고 있다. 예전에 읽은 내용을 되짚어보자면, 강소어라는 캐릭터 때문에 밝고 코믹스러운 작품 같지만 원작은 생각보다 무거웠다. 드라마에서는 잘 표현되지 않았지만, 소어아가 철심난의 희생(!)으로 겨우 화무결에게서 달아난 일은 그의 인생에서 가장 큰 수모요, 좌절이었다. 화무결이 "모두 나에게 소어아를 죽이지 말라고 하면서, 왜 소어아에게 나를 죽이지 말라고 하는 사람은 없는 거야"하고 소어아를 부러워하듯이, 근심 걱정 없어 보이는 소어아도 화무결을 향한 열등감을 간직하고 있다. 그런 깊은 내면은 역시 원작에서나 볼 수 있으니 정발을 기원해보자.

 

소어아의 흑역사, 화무결에게 죽기 직전에 철심난이 몸을 던져 구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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